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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에코 마니아 컬렉션의 작품 중 내게 가장 반가운 부류의 작품이라서 읽고 난 다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애석하지만 출판할 수 없습니다'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평론집은 읽는 부담을 떨쳐냈다.
맨 처음 책을 펴면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살가리의 작품 '검은 해적'을 떠올리게 하는 소제목이었다. 아쉽게도 '검은 해적'의 분석은 없었지만 그저 '검은 해적'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반가운 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일 것이다.
일반소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펼쳐나가는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과 작품의 소통인 것처럼 느껴진다. 좌파적인 경향의 분석도 눈에 뜨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이데올로기는 계층과 계층 사이를 구분짓는 선이라는 것이다. 그 속에 자리잡은 것은 혁명과 같은 사상이 아니고 오히려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양쪽 계층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일으키는 소용돌이, 그리고 철학보다 소설에서 먼저 나타난 초인(일명 슈퍼맨)에 대한 고찰이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한다.
고전처럼 느껴지는 니체의 초인 개념이 소설보다 늦게 나왔다는 것과 이 초인들의 설정에 대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게 소중하게 자리잡았던 수없이 많은 초인들이 어쩌면 상처에 뿌려진 마취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나보다 뛰어나고 흠잡을 데가 없어보이는 초인들, 그들은 인간적인 고뇌를 하고 자신을 인지하고 가장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이 초인들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읽어보노라면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자명하게 드러난다.
그들 모두의 특징은, 억압받고 있는 하층민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 또 그들을 위해 어떻게 복수해 주어야 하는가 자기 나름대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슈퍼맨은 하층민들이 자기 나름대로 결정할 수 있고 또 결정해야 한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며, 따라서 절대로 그들을 계몽하거나 그들의 의견을 묻지 않는다. 자기 덕성의 강한 욕망에서 슈퍼맨은 끊임없이 그들을 원래의 하위 역할로 다시 몰아넣으며, 또한 구원을 가장하는 만큼 신비화된 억압적인 폭력과 함께 행동한다.(p131-132)
그래서 위의 부분은 마치 내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느낌을 주었다. 대중들의 인기를 끈 많은 소설들에 등장하는 초인이란 신에 근접했으되 신이 아니고 마지막에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와 인간들을 긴장감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중에게 위안을 준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실행하는 초인들이 있으므로 대중은 행복하고 기댈 곳은 가진다. 그것은 때로는 행동의 실체를 이루어 행동이 물결치게도 한다.
더불어 초인은 인간이기에 그들만의 상승과 하강을 가진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선할 필요도 없고 자비로울 필요도 없다. 17세기 이후 작품들에서 나오는 초인들에 대한 분석을 읽으면서 내게 재미있었던 것은 이 초인들과 현대의 초인들(예를 들면 슈퍼맨과 같은)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거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현대의 초인들은 소시민이 되어버렸고 그들은 거창하게 보이는 것을 행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많은 장면들을 관통해서 과연 초인이 초인으로서 자신의 정의를 어떤 범주에서 세우는가를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초인은 언제나 절대적인 완전함을 가지지 않았기에 그들의 약점에서 독자들은 동질감을 느낀다.
책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피티그릴리와 플레밍에 대한 부분은 결정적으로 피티그릴리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넘어가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평전만으로 피티그릴리의 작품이 어떤 작품일 지 상상이 갔다. 그것은 앞쪽의 외젠 쉬의 분석을 읽으면서 느낀 것과 비슷하지만 외젠 쉬의 경우 언급된 책들의 30% 정도만 읽은 상태에서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 있었지만 피티그릴리의 경우는 그저 윤곽을 잡고 어슴프게 형체를 잡을 뿐이라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읽어보지 못한 많은 작품들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 언급된 책들을 구입할 길은 요원해보이기에 그저 입맛만 다시는 형국이다. 그래도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그 책들은 내 손에 들어오게 될 지 모르리라 여기며 아쉬움 속에 책을 덮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