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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보면 외국의 사고체계가 나와 잘 맞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깊은 담론을 읽으면서도 이것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딱 이 책이 내게 그랬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하고 혼란에 휩싸인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애썼던 적은 '에티카' 이후로 처음이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에티카'는 끝까지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끝까지 읽긴 읽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광대한 내용을 다룬다. 기호와 관련된 이야기이며, 기호의 분석과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근원적인 그 무엇을 파헤치려 노력해온 과정의 이야기이며 앞으로 나아갈 바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이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다른 언어체계였다. 한자는 표음, 표의, 상형의 모든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 음을 몰라도 글자를 보고 뜻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언어에 관한 부분의 일부분은 한자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금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세분화시키는 분석법과 용이한 분석을 위한 실험적 가설과 분석법의 조작에 대한 사유는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이론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한 학문의 중요 분석기법에 대한 오류지적과 가설로 세워진 여러 초기 이론의 주의점뿐이었다. 그래서 대체 내 자신이 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가 의심스러웠고 결말 부분 외에는 딱히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다 나온 광고에 대한 분석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고, 건축분과는 읽기 수월했지만 그 외 분야에 대해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이 책이 쓰여진 시기와 이 책을 읽는 현재 사이의 간극 때문인지, 내가 이 책이 다루는 기호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 책을 덮었다.
서양의 철학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 완전히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고 적어도 촘스키의 저서들을 읽은 다음에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