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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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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마니아 컬렉션의 마지막 권이다. 이 책은 소설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는 관점과 소설 속에 숨겨진 행간, 그리고 미묘한 기교 혹은 해석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책에 대해 리뷰 남기기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이 책 한 부분에 대한 나의 다른 생각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지으려고 결심했다.   '장미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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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마니아 컬렉션의 마지막 권이다. 이 책은 소설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는 관점과 소설 속에 숨겨진 행간, 그리고 미묘한 기교 혹은 해석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책에 대해 리뷰 남기기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이 책 한 부분에 대한 나의 다른 생각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지으려고 결심했다.

 

'장미의 이름'은 '요한의 복음서'에 대한 인용(<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과 함께 시작한다는 것은 모든 독자가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거인 모르간테'의 서두를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깨달은 독자는 얼마나 많을까요? 그 작품도 '요한의 복음서'를 인용하면서(아주 존경스럽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하느님은 말씀이셨고 말씀은 하느님이셨다./태초에 그랬으니, 내가 보기에/그분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내 소설이 '요한의 복음서'를 인용하며 시작한다는 것을 정말로 깨달은 독자는 얼마나 될까요? 나는 일본의 일부 독자들이(아마 너무 멀리 갈 필요도 없을 지 모릅니다) 그 덕망 높은 생각을 착한 아드소의 것으로 간주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 젊은 수도사의 말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신심의 숨결을 놓치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상호 텍스트적 아이러니는 아이러니의 형식이 아닙니다. 아이러니는 사실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 상대자가 사실로 믿는다고 추정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데에 있습니다. 멍청한 사람을 아주 영리하다고 정의하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 사람이 멍청하다는 것을 수신지가 알고 있을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만약 그걸 모른다면 아이러니는 포착되지 않고, 단지 그릇된 정보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러니는, 수신자가 게임을 의식하지 못할 경우, 단지 거짓말이 됩니다.

그런데 상호 텍스트적 아이러니와 관련해서 보면, 가령 나는 분신 이야기를 하는데, 수신자는 바로크의 토포스에 대한 참조를 느끼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문자 그대로의 존중할만한 분신 이야기를 동일하게 즐길 수도 있습니다. '전날의 점'에서 몇몇 반전들은 뚜렷하게 뒤마를 상기시키며, 때로는 문자 그대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참조를 포착하지 못하는 독자도, 비록 순진한 상태에서이긴 하지만, 반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앞에서 상호 텍스트적 아이러니의 유희는 귀족주의적이고 속물적이라고 말했다면 지금 정정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진한 독자들에 대해 <배타적 합의>를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위층의 남은 음식들을 아래층에 나누어 주는 잔치와 같지만, 잔칫상에 남은 음식들이 아니라 냄비의 남은 음식들이며, 그들도 배불리 잘 먹습니다. 순진한 독자는 그 잔치가 한 층에서만 벌어진다고믿기 때문에, 남은 음식들을 있는 그대로 맛보지만(간단히 말해 그것들은 맛있고풍부하지요),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p329-330

 

위의 글을 읽다보면 소설의 여러 면을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저자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릇이 다른 음식이 아니라 똑같은 접시에 담겨진 음식들이다. 내 개인 생각으로 상호 텍스적 아이러니와 여러 참조들, 끼여들은 많은 다른 부분들과 오마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은 음식의 맛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번역으로 접시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같은 언어의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똑같은 그릇에 담겨진 음식일 뿐이다. 그 음식의 한 술을 떴을 때 누군가는 단맛을 분석하여 단맛을 낸 재료가 무엇인지 느끼며 음식을 먹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단맛이군 하며 음식을 먹을 것이다. 누군가는 맛의 조화를 이뤄낸 식재료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향신료가 어떠니 하며 이야기를 떠들 것이고 누군가는 내게 잘 맞는 음식이라던가 혹은 썩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기에 제공된 동일한 음식에 대해 각자가 요리사의 음식평을 할 수 있고 요리사가 세밀히 신경쓴 부분에 대해 감탄하기도 하고 혹은 그저 넘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독자 스스로 느끼는 것이며 그것이 때로는 저자를 난감하게 만들지라도 그 순간의 독자가 누군가에 의해 저자의 의도를 때닫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저 부분을 읽으면서 뭐랄까 엘리트주의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때로 나는 작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른 작가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책을 읽는 각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색다른 해석, 색다른 원전을 찾았을 때 나누는 이야기가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난다 할 지라도.

YES마니아 : 골드 e***h 2011.12.04. 신고 공감 4 댓글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