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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의 <트래픽>을 포함하여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거듭된 고찰로 이야기를 교통체증을 바탕으로 운전이라는 한 가지 테마에 대해 마인드맵을 그리듯 진행되는 이 책은, 최근에 읽은 우리는 이제 결코 돌이켜 연구해 볼 수 없는 지나간 시절에 대해 묘한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 이 책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한 고찰이라고 판단하기에 매우 놀랄 만큼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미국의 스타벅스에는 자동차 전용 창구가 있으며, 오디오북이란 상품은 매일매일 출퇴근 등 교통 체증 속에서 오랜 시간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아이템이라고 한다. 위의 내용들은 내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이런 부류의 책들은 매번 이렇게 새로운 지식들을 내게 전달해주어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준다.
저자는 말했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환경에 대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관찰해보겠다는 의도로 이 연구를 독서 내내 ‘와 진짜 그렇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 했다. 한 때, 서점가에서 대 파란을 일으켰던 만화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심리와 그것으로 인핸 태도양상에 관해 연구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복잡한듯하지만 결국에는 매우 단순한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분석하지만 그 결론은 최종적으로 나는 일상의 대화에서 내가 주로 화자가 되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편이다. 그런 내가 어느 한 구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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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운전을 썩 잘 한다고 생각했다. '예의바른 모범 운전자'. 어떤 이는 내가 운전을 잘 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다소 거칠다고 했다. 전자의 칭찬은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후자의 지적은 '깐깐한 친구'라며 무시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흠...'하고 한숨을 쉬게 되는 건 왜일까.
우리는 운전대를 잡았을 때에도 여전히 이성적일까? 논리적 사고와 성숙한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줄까?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성적이고 냉철한 면모보다는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면이 더 강하지 않은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 우린 조급해진다. 걸을 때에는 옆 사람이 자신을 앞질러 가든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지만 도로에서 추월당했을 때엔 얼마나 불쾌해하는가. '날 무시하는 거야 뭐야! 한번 해보자는 거야?' 그러면서도 막상 다른 차를 추월할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란. 저자는 그러한 이면성, 운전대를 잡으면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분석한다. 책의 부제처럼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 탐구'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막연하게 생각했던-혹은 상식선에서 너무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 여겼던- 교통에 대한 인식이 산산이 부서져나감을 느낄 것이다.
오래전부터 교통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왔다.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때에도 여전히 교통정체와 충돌로 인한 사망사고는 존재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교통수단의 발전에 따라 그러한 정책은 더욱 세분화되고 수정, 보완되어 왔으며 현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일관된 형태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교통체계는 완성단계에 이르렀나? 여전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교통문제를 생각한다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저자는 운전자의 운전습관부터 여러 교통체계,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그 한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읽다보면 매번 느낄 것이다. 그 한계의 주요 원인이 바로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운전자의 습성 때문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패턴을 분석하고 결과를 추측하여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운전자들이 비논리적을 달려든다면 별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7장. 위험한 길은 더 안전하다>와 <9장. 그 차는 왜 위험한가>이었다. 이 두 챕터에서 교통문제의 핵심을 슬며시 들여다봤다고 해야 할까. 7장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신호등이 없는 로터리가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보다 더 안전하다든가, 위험한 도로와 안전한 도로 정의의 애매함, 다양한 표지판과 신호등의 실효성 등등. 저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안전한 도로-뻥 뚫린 시야, 운전자와 보행자를 보호하는 여러 안전장치, 과속방지턱, 수많은 위험표지판 등이 사용된 도로-는 진정으로 안전한 도로라 볼 수 없다. 운전자가 느끼는 안전감과 운전자의 긴장감, 경계심은 반비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느껴질수록 덜 조심하게 된다. 오히려 위험한 도로에서 운전자는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경미한 사고에 대한 치명적 사고의 비율이 안전한 도로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7장이 도로의 안전장치를 언급했다면 9장의 <안전이라는 위험>에서는 차체의 안전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앞서와 비슷하다.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안전장치가 운전습관의 위험한계선을 상향조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차의 브레이크 성능이 좋아지면 그만큼 더 과속할 가능성이 크다. 커브에서의 차체 제어가 안정적이라면-그래서 전복의 위험이 감소한다면- 커브를 돌때 예전보다 더 속도를 낼 것이고, 후방감지 센서는 운전자가 ‘더 방심한 상태에서’ 후진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일례로 한 친구는 새 차 구매 3일 만에 후진 중 기둥을 박았다. 동승한 다른 친구들이 주의를 줬고 센서가 울리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기둥이 아니라 잡초인줄 알았다고 했다-
결국 안전운전의 핵심요소는 안전장치의 첨단화도 탁월한 교통체계도 아니다. 운전자의 자각과 의식의 전환이다.
p.401 여러 분야의 전문가는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이나 장치가 오히려 더 위험을 초래하며, 반대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안전 의식을 강화한다는 주장을 해왔다...(중략) 사실 도로를 위험하거나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운전자 자신이다.
운전자는 스스로 교통의 주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도로, 자동차, 신호등 등은 결국 ‘교통’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잘 닦인 도로, 고성능의 차에 포악한 운전자와 열악한 도로, 낡아 빠진 차와 차분한 운전자의 조합 중 어느 쪽이 더 안전하리라 생각하는가. 그러한 요소들을 개선, 보강하는 것도 교통문제를 풀어가는 한 방법이겠지만 한계가 있다. 운전을 하는 것은 운전자이지 차도 도로도 신호등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의 주체인 운전자 의식의 성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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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동차와 도로는 현대생활을 재현하는 핵심은유다. 자동차는 현대판 유목민의 대표적인 운송 수단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를 표현하는 재현적 상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자동차는 「개인적 신체」의 확장된 분신인 셈이다. 운전은 단순히 목적지로의 이동과 기분전환용 행위만이 아닌 일종의 인생사용메뉴얼의 은유로 활용되곤 한다. 도로는 인간 내면의 축소판이자 우리 사회의 청사진이다. 「사회적 신체」의 비유를 활용한다면, 도로는 사회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일종의 혈관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도로는 사회적 신체의 소통채널이다. 교통법규는 도로상의 질주에서 생명과 양심을 책임지는 도덕적, 미학적, 사상적, 정치적 규범이다. 특히 신호등은 소통규범의 축소판이자 대표적인 상징기호다. 이 책 《트래픽》은 교통과 운전에 대한 개인적 성찰과 사회적 관찰의 진수를 보여준다. 저자 톰 밴더빌트는 사회학, 문화 인류학, 정치학과 경제학이라는 다양한 도구를 동원하여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을 탐구한다. 교통이 정체되면 우리 두뇌는 어떤 혼란에 빠지는가? 난폭 운전은 정말로 위험할까? 추돌 사고는 왜 날씨와 도로 상황이 좋은 날 많이 발생할까? 옆 차선 차들이 더 빨리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운전자의 태도는 남성 운전자와 어떻게 다를까? 왜 인간은 교통 정체 상황에서 한없이 기다릴 수 있는 걸까? 왜 10분짜리 사고 때문에 100분간 정체가 지속되는 걸까? 고속도로 전용차로제는 교통 정체 해소에 도움이 될까? 대형 트럭은 실제로 얼마나 위험할까? 왜 코펜하겐에는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뉴욕에는 그토록 많은 걸까? 혼란 그 자체로 보이는 뉴델리의 도로 상황은 실제로도 그처럼 엉망진창일까? 저자는 이런 물음에 과학적 답을 제시한다.
교통법규는 사회적 신체의 운행코드가 된다. 교통의 문법은 선천적으로 규제적이며 인간 본성에 대해 전제하고 있는 가치관을 드러낸다. 가령 차선 바꾸기 전략에 있어서, 「조기 차선 변경 방식」은 인간은 본래 착하다는 가치관이 전제되어 있고, 「최후 차선 변경 방식」은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가치관이 전제되어 있다. 어느 광고의 문구처럼 우리는 성선설에 근거하여 소통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우리가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도로주행시험을 치루는데 차선 변경은 모두 조기 변경 방식에 따르고 있다. 그러나 삐닥선을 한번 타기시작하면 편파적인 사고와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책임전가 때문에 우리는 성악설의 실천자가 된다. 그것이 운전대만 잡으면 점잖은 신사가 미쳐 날뛰는 정신병자로 돌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또한 운전능력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의 실력이 평균이상이거나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자기긍정의 경향이 있다. 이런 낙관적 편견이나 과대평가도 우리가 야만적인 나쁜 운전자로 돌변하는 데 일조한다. 자기는 잘하고 있으니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금지 같은 규제는 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제3자 효과나 자아도취증상은 자신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여기에 남녀의 구별은 없다.
이 책은 교통문화와 운전자의 인지심리에 대한 거의 전반적인 현상을 다루고 있는 역작이다. 비록 정보학자의 사회구조적인 시각이나 역사적인 시각은 약하지만 동시대적인 국가간 비교나 심리적 관점은 포괄적이다. 운전은 우리가 매일하는 일상적 행위지만 식사를 하거나 물건을 사는 행위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위험부담이 있는 경우다. 단일한 일상적 행위에 대한 이런 포괄적이며 심층적인 고찰은 아마 처음 대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도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임의적인 장소로 연령, 종교, 사회계층, 성별, 정치적 신념, 라이프스타일, 심리적 성향을 떠나서 아무런 규제 없이 한곳에 모일 수 있는 장소다. 운전도 일상적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소통행위다. 이 책은 일상적 행위에 대한 자기 자신의 메타인지를 심화시켜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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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일어나는 일?
도로 위에서 나타나는 거대하고 미묘한 인간들의 심리적 상태는 곧 내 자신의 심리상황일 것이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여 어떤 선택을 해야 올바른 운전이 될지 한 순간도 방심을 허락하지 않은 현실임에도 우리는 늘 잊고 습관처럼 운전을 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교통관련 문제점이 해결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책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며 사회구성원과 공동의 삶에 대한 사색을 하게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운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 한다. 물리적인 해결책이 없다면 운용하는 주체인 사람이 해결책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내일 운전대를 잡는 순간 조금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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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 -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 탐구
항상 궁금했다. 어째서 사람들은 차를 타기만 하면 변신하는가? 평소에 얌전하고 착하기만 하던 사람이더라도, 운전대를 잡기만하면 갖은 욕설에 보기만 해도 깜짝 놀랄만한 운전습관을 보여준다. 운전도중에 끼어드는 사람들은 용서하지 못하고, 반대로 내가 자신이 끼어들 상황에서는 양보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욕을 퍼붓는다. 왜 그런 것일까.
트래픽에서 그 해답을 들을 수 있다. 답은 자동차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본성 때문이다. 트래픽은 도로위에서 행동하는, 자동차를 탄 인간들이 내보이는 본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왜 다른 차선은 항상 차가 빨리 빠지는 것처럼 보일까 에 대한 답 또한 결국은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어 놓는다. ‘손실 혐오’라고 말하는 인간 특유의 본능적인 행동은, 자신이 추월한 차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을 추월한 차들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도로는 인간 내면의 축소판이자 우리 사회의 청사진이다!” 도로위에서는 인간들의 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들 자동차라는 거대한 쇳덩어리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수십, 수백, 아니 수천대의 가면들 사이에서 서로 자신의 본능만을 내보일 뿐이다.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양보해준 운전자는 잠깐 기억하지만, 자신을 위협하며 끼어든 차는 경적을 울리거나 앞을 가로막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인간이란 본디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악설을 믿는 필자로써는 연신 끄덕거리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본성은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니다. 모든 것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악순환일 뿐이다. 자동차라는 것은 소통의 구조가 간단하다. 멈춤,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이동. 혹은 무언가 이상 있음. 몇 개의 방향지시등과 빨간 멈춤등 만으로 다른 수많은 차들과 이야기 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 아닌가. 나는 반가움에 클락션을 울려대도, 상대방은 그것을 비난으로 알아듣고 자연스레 손가락이 올라가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책에는 수많은 사례와 우리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는, 하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에어백은 오히려 위험운전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트럭이 위험하다 생각하는 소형차 운전자만큼이나, 트럭 운전자는 소형차를 위험하다 생각한다. 운전하면서 생각했던 궁금증들이 속 시원하게 풀이되어 있는 트래픽. 읽고 나면 시원함과 함께, 변하지 않는 운전자들에 대해 답답함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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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순한 성격이면서도 차를 운전하는 순간 괴물처럼 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도 이 부류에 속한다. 평소에는 전혀 하지 못했던 욕도 마구 나온다. 한마디로 사람 성격 이상하게 만드는게 운전이다. 교통과 도로, 운전에 대해 할 얘기가 이렇게 많을줄 미처 알지 못했다. 더구나 아련한 기억속에 있었던 추억을 만나게도 해준 책이다. 저자가 예를 들어준 디즈니의 만화 모토마니아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정지선에 도착한 구피가 신호등을 노려보면서 출발을 기다리는 장면과 순하던 얼굴이 차에 타면서 괴물처럼 변하고 다시 차에서 내릴때는 천사처럼 변하던 장면말이다. 내가 공부하던 로스엔젤리스의 거리로 다시 돌아간듯한 착각도 들었다. 도시에 뿌옇게 끼어있던 스모그와 후리웨이의 트래픽이 새삼 그리워도 진다. 왜 영국과 일본이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는지도 무척 흥미있는 자료이다. 사무라이의 칼집과 마부들의 습관이 한나라의 교통방향을 결정짓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여지없이 깨는 자료도 있다. 헬멧을 쓰고 손동작까지 모범으로 하는 여성이 자전거를 몰고 차로로 들어서면 훨씬 더 안전할것이라는 관념이 잘못되었음을 알게된다. 여성이 훨씬더 위기상황에 대처가 늦고 기계동작이 미숙함은 인정하지만 인정머리없는 남성운전자들은 아량이 부족하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남성이 여성에 비해 3배가 높다는 통계는 생각보다 여성들이 사고를 덜친다는 반증아니겠는가. '밥이나 하지 뭐하러 차몰고 나왔냐'고 큰소리칠 일이 아니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길거리에 있는 교통표지판을 몽땅 치워야 하고 가로수는 더 많이 심어야 할것이며 앞차를 따라잡는 운전이 하고싶다면 선글라스를 끼고 가능하면 옆차나 보행중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 할것이다. 각나라의 교통정책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필히 이책을 읽어보고 지침을 세워야한다. 차가 많아지고 정체가 심각하다고 해서 도로를 만드는일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하지말라''금지구역'등의 교통표지판을 치우면 오히려 평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길거리에 서있는 차들이 훨씬 줄어들텐데. 운전하는 습관을 보면 그사람이 보인다는 평소의 생각이 그대로 맞는것 같다. 물론 그나라의 민족성도 엿볼수 있다. 인도의 델리는 그야말로 지옥의 거리라는 표현이 맞다. 온갖 탈거리가 쏟아져 나온 거리에 소는 낮잠을 자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나라 사람들은 잘 살아가고 있으니 인도란 나라는 정말 불가사의한 나라가 아닐수 없다. 중국에서는 아예 운전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지인의 충고가 맞는 모양이다. 어쩔수 없이 운전을 하게 된다면 목소리를 키워서 싸울준비를 하고 시작해야 한다니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그나마 얌전한 편인가..하고 위안이 될 정도이다. 자동차회사들이 망하지 않는한 차는 계속 만들어질테고 도로가 만들어져도 트래픽을 계속될것이다. 우리의 인생이나마 막힘없이 잘 뚫리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이제 차를 운전하는 순간 괴물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도로에 나서야 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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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들의 다양한 심리! 도로위에 그대로 표출되어진다
오너드라이버로 생활한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면허를 따고 황홀감을 누리던 잠시를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운전대만 잡으면 나는 또 다른 나로 변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핸들만 잡으면 평소보다 성격도 급해지는 것 같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을 하게 된다. 트래픽. 이 책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에 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나 역시 직접 경험하며 생각해왔던 궁금증이기도 하다. 도대체 운전석에만 앉으면 사람들은 왜 변하는 걸까? 내 차선이 잘 빠지는 것, 또는 막히는 것을 단지 운에 맡겨볼 수 있는 문제일까 단지 도로 상황에 따라 그날 그날 운전 방식이 달라지는 것뿐이라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들일까?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듯한 몇 가지 문항이 트래픽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내 차선이 항상 더 막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거나, 남성보다 여성이 운전은 더 약하다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다른 차와 나의 속도를 비교해가며 운전을 한다든지, 내 운전에 방해되게 끼어들려는 차는 끝까지 끼어주지 않으려 하는 것, 또는 차선을 바꿔야 할 때 먼저 끼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최후까지 버티다 마지막 순간에 차선을 바꾸며 끼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늦은 시각 차가 별로 없는 한산한 도로에서는 추월만이 나의 살길이란 식의 도로위의 무법자들도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같은 운전면허시험을 보고 같은 도로를 달린다. 운전자들이 모인 이상한 그 곳, 도로 위의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압축해 놓은 곳이자, 운전자의 정신세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성격과 정체성, 더 나아가 국가의 문화와 환경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인문학적 소재이기도 했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교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한 이래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사회적, 기술적인 대책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2륜 전차가 갑자기 증가하면서 낮 시간에 한정적으로 전차 통행을 금지했고, 15세기 런던에서는 빈 수레 속도제한법이 존재했었다.
그동안 운전에 대한 감각이 무뎠던 것인지, 아님 운전자의 심리에 대해 통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이 책으로 알게 된 운전자와 교통체계의 놀라운 비밀은 정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수 만가지 일들을 읽다보면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 더욱 흥미로운 주제가 바로 도로 위의 상황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교통을 주제로 사람들의 운전습관 이면에 숨어있던 운전자들의 심리, 인간의 본성에 이르기까지 트래픽은 분량도 상당한 책이었지만 (무려 77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다)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라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이기도 했다.
이제 운전은 현대인들에게 걷는 일만큼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는 매일 길을 달리지만 운전 방법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중요한 것은 도로위에서 지켜야 할 것은 신호등만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트래픽을 통해 운전하는 사람들의 본성과 습관 하나하나가 만들어 낸 도로 위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욱 실감나게 느껴볼 수 있다면 자동차 문화와 더불어 엇갈리는 사람들의 운전규칙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운전이야말로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재였고, 인간의 사고는 습관이 되어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도로 위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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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도로라는 장소가 얼마나 특이한 곳인지 알 것이다. 도로를 통해 우리는 완전히 밀폐된 차 안에서 순식간에 원하는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 바깥이 추운지 더운지 시끄러운지 평화로운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흐름에 따라 편안히 운전해서 가면 된다. 도로는 매혹적이지만, 때로는 “교통 정체”라는 거대한 괴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럴 적에는 꼼작없이 차안에 갇힌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발을 동동 굴려도, 연신 혼자 욕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정체가 언제 어디서 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언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옆 차선에 차들이 얌체처럼 갓길로 쌩쌩 달리다가 내가 기다리고 있는 열의 맨 앞에서 깜박이를 키고 끼어든다. 한두 녀석이 아니다. 정의는 죽었다며 홀로 분노하다가 결국 자신도 얌체족들의 대열에 끼어든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의를 수호하는 자들에게 양해를 얻어내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도대체 교통 정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왜 내 차선 바로 옆 차선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도로는 얌체족들이 승리하는 인간사의 비정한 축소판인걸까? 이런 의문을 한 번이라도 가져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기본적인 주장은 “위험한 길이 더 안전하다”는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상식을 뒤집는 주장 같이 보이지만, 여러 증거들과 저자가 구성하는 논리들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다. 말하자면, 위험한 길일수록 운전자는 더욱 조심하고, 따라서 더욱 주의 깊게 운전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이다. 운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능력을 요구하고, 훨씬 위험한 작업이다. 운전 환경이 운전자에게 더 호의적일수록(더 편리한 차량, 더 잘 닦여진 도로 등) 사고의 발생율은 높아지고, 특히 사망 사고율은 더욱 그런 경향을 보인다.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지만 사실 진부하게 느껴지는 논리다. 그러나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훨씬 철학적이고 복잡한 구석이 있다. 즉 도시(의 도로)를 운전자(자동차) 중심의 살벌한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보행자와 자전거 라이더 등을 포함한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지금의 도로는 사실 자동차 운전자 독재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도시는 자동차에게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이동을 제공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부여했고, 그렇게 진화해왔다. 도로는 실제로 자동차의 배타적 공간이 되면서 도시의 공간을 구획한다.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며 쌩쌩 달리는 도로는 분명 도시라는 공적 공간의 일부인데도 불구하고, 자동차들에게만 부여된 특권적 공간이라는 사실도 명백하다. 도로라는 공간을 두고 정책적 목표가 효율적이고 원활한 소통(좀 더 협소하게는 속도)인가 아니면 보다 인간적이고 평등한 도시 환경(좀 더 협소하게는 안전)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나는 한 명의 운전자로서 저자의 주장에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도로라는 배타적이고 특화된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도시와 시민은 훨씬 큰 불이익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도로의 기능과 목적에 대해 의심없이 운전자 중심으로 생각해온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저자의 이런 논지는 도로 증설에 관한 이야기에서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이 부분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는데, 요지는 이렇다. 과포화 상태의 도시 교통량을 소화하기 위해 더 많은 도로를 증설해야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트래픽의 특성상, 새로 증설된 도로는 곧 더 많은 자동차를 불러 들이게 되고 결국 도시는 도로 증설 이전의 상태와 동일한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의 추가 건설은 교통량 증가로 이어진다. 언뜻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주장은 아주 강력한 증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LA 롱비치 항에서 트럭 운전자 노조가 파업한 일이 있었다. 그때 파업한 트럭의 수는 9000대 였다. 당연히 이 물류 수송 트럭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속도로는 주행속도가 67% 증가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고속도로는 파업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교통량을 보였다. 문제는 다른 고속도로의 통행 수요를 이 도로가 흡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그동안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교통 정체 때문에 차를 몰고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트럭이 빠진 도로를 차지한 것이다. 이것을 교통 전문 용어로 “잠재 수요 출현 현상”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파업이 끝났을 때의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파업 이후 새로 출현한 교통량에 9000대의 트럭이 가세하면 끔찍한 교통 지옥이 연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파업이 종료되자 9000대의 트럭이 도로에 쏟아져 나왔지만, 교통 상황은 파업 이전으로 “동일하게” 돌아갔다. 하수도를 증설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목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로의 경우에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저자는 일반의 상식과는 다른 급진적인 주장을 내어놓는다. “교통 정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교통 정체가 교통량에 대한 어떤 균형점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도 도로 증설과 상관없이 교통량 전체가 증가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도로를 증설하든 말든 사람들은 LA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증설하는 도로의 수용 능력을 쇄도하는 새로운 교통량이 금방 무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100년 전(100년 전이면 자동차 발명 이후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다) 교통량 예상치로 건설된 지금의 LA 도로 체계가 지금도 아무런 무리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정체는 발생하지만, 어째든 “돌아가고는 있다”. 저자의 주장은 주차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일관적이다. 도심의 주차장은 언제나 포화상태이다. 문제는 주차할 데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차할 곳을 찾는 차량이 전체 도심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그로 인해 정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도 상당히 급진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도심에 주차할 데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짜로(혹은 너무 저렴하게) 주차할 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차를 끌고 나와서 공짜로(혹은 저렴하게) 주차할 곳을 찾아 빙글빙글 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얼마 안되는 주차비를 피하기 위해 딱지를 끊을 위험을 무릅쓰고 길거리 구석에 주차한다. 주차장 증설은 도로 증설과 동일한 문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마스때 주차량을 소화하기 위해 월마트 주차장을 최대로 증설하는 것의 문제는 러시아워 때의 교통량을 소화하기 위해 간선 도로를 증설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저자는 무료 주차로 인해 우리가 훨씬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도심의 주차비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는 매혹적인 공간이다. 도로에서 사람들은 익명의 세계를 온몸으로 맞닥뜨린다. 거기에는 난폭한 놈, 서툰 놈, 정의로운 놈들이 서로 로테이션을 하며 존재한다. 사람들은 진정한 혼자만의 공간을 즐기며 파워풀한 공간의 정복을 맛본다. 때로는 혹은 자주 거대한 정체의 물결 속에 갇힌 무력한 자신을 보기도 하고, 바퀴가 몇 개가 달려있는지 셀 수 도 없는 트레일러와 호기롭게 맞짱을 뜨기도 한다. 도로는 인간의 합리성이 극도로 발휘된 공간이면서도 비합리성이 분출되는 모순된 공간이다. 도로는 인간 내면의 축소판이자 우리 사회의 청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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