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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나라... 자신의 선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건국 이후로 수많은 절대악(파시즘, 중동, 북한 등)들을 만들어 내면서 마치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솔로몬왕이라도 된양 오직 자신의 잣대에 따라 벌하고 상을 내린다. 이러한 기득권의 착취와 폭력에 대한 반동이 바로 좌파이고, 좌파는 바로 기득권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그것에 대한 해결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즉 타인이 보기엔 좌파는 언제나 딴지투성이고 투덜이며 욕심쟁이다. 아무리 바뀌어도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좌파의 진정성이다! 기득권은 사전의 뜻 그대로 "권력을 가진 자"이며, 그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집단이다. 그들이 공리를 위해 그 권력을 이상적으로 사용한다면 가장 옳겠으나.. 개인적인 판단이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권력의 수행에서 언제나 소외와 같은 실패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좌파는 이러한 오류와 실패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부각함으로써 이슈화함으로써, 보다 개선된 방향으로의 진화(또는 혁신)을 제안한다. 그런데 로티는 이 책에서 이런 식으로 딴지나 거는 좌파는 나라를 걱정할 자격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즉 부모의 애정없는 자식의 훈육은 결국 그 자식을 삐뚤게 만든다는 비유를 통해 좌파는 국가의 개선을 위한 아방가르드가 아닌 파괴의 무뢰한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진정 나라를 위한다면 무엇보다 애국심이 불타올라야한다고 주장한다. '링컨'이라던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善政을 펼치는 이들을 열심히 공부하고, 좌파들이 음모론에 몰입하여 문제삼고 있는 미국의 대외적 행위들을 보다 애국적 시각으로 바라보길 주장한다. 일견 그럴듯 해 보인다. 군대에서 선임한테 이유없이 뺨따구 맞을 때도 선임은 다 나한테 애정이 있어서 그런거란다. 학교 선생님이 이성을 잃고 학생들을 가혹하게 체벌한 후에도 교무실에 불러 피해 학생에게 그만큼 더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거란다. 로티 말대로 좋게 보면 뭐든 안좋을게 있을까.. 삼성 쁘띠 건희 오빠를 특별히 관대하게 사면시켜준 것도 다 국가경제를 사랑해서 내린 대승적 결론이요, 우리 쥐박이 각하께서 대운하 삽질 하시는 것도 다 경제를 위한거겠지..
로티 말대로라면 기득권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어떻게 착취를 하든 지금 당장 먹을 파이를 크게 키우고, 당장 먹을 수 있는 마시멜로우를 앞에 두고 인내해서 더 많은 마시멜로우를 분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근데.. 이렇게 좋은게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도대체 무슨 좌파적 딴지를 걸 수 있단 말이지? 로티는 스스로를 [애국적 좌파]라고 아주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다. 우리는 로티와 같은 사람을 [프락치]라고 부른다. 양의 탈을 쓰고 자신이 마치 양인양 행세하는 늑대처럼, 보수적인 본성을 가슴속에 가득 품고 논개처럼 좌파의 연못으로 뛰어들어 "나처럼 해봐라 요로케~"라고 좌파들을 도발한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건 로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렇게 삐딱한 나를 로티가 보면 찌질이 좌파라고 혀를 찰 노릇이겠지만..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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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로티의 이 책은 미국 내에서의 좌파 사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서술한 책이다. 특히 20세기 후반의 강단 좌파들에 대한 비판은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왜냐면 국내의 젊은 학자들은 현대 프랑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가면서 그들의 연구작업이 현실을 바꾸는 데에 이바지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문화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 후기구조주의 사상에 기반한 연구들은 현실을 바꾸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반형이상학적이고 반데카르트적인 철학자들이 영혼의 파토스를 유사 종교적인 형태로 제시하는 한, 이들 철학자들은 사적인 삶으로 격하되어야 하며, 정치적인 논의의 지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해왔다. 에마누엘 레비나스가 정식화하고 때때로 데리다가 전개시킨 '끝없는 책임감'이라는 개념 - 데리다 자신이 빈번히 발견한 불가능성, 도달 불가능성과 재현 불가능성 등과 같은 개념과 더불어 - 은 개인적인 완벽을 추구하는 개별적인 탐구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인 책임감을 가정할 때, 무한한 것과 재현 불가능한 것은 그저 성가신 것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책임감을 고려해 본다는 것은 죄의식의 경우만큼이나 효과적인 정치 조직에 장애가 되는 일이다."(116쪽-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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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단 제목의 문제, 원제는 Achieving Our Country다. Achieve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서 어떤 상태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육학에서는 ‘성취도’라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 따라서 굳이 번역하자면 ‘우리 나라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까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좋은 나라 만들기’ 정도가 제목으로 적당하지 않았을까? 뜬금없이 미국 만들기라니... 무슨 레고도 아니고.. 2. 전에 로티를 꽤 열심히 파던 친구가 있어서 그저 곁눈질로 보면서 꽤나 어려운 사람인가 싶었는데 최소한 이 책에서 본 로티는 대단히 미국적인-욕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철학자라는 느낌이었다. 단순명료하고, 그래서 때로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실용적이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분야들에서 여러 가지 예를 따오는 것도 전형적인 미국적 태도로 보이고, 또 단정적이고... 어쨌거나 반가움 반 두려움 반이었다. 내가 앞으로 연구해야 할 애국심의 문제가 바로 로티의 기본적인 입장과 상당히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든든한 원군이 있다니, 싶은 생각이 반가움이라면 언뜻언뜻 보이는 몰역사적이고 보수적인 발언들-예를 들어 냉전이 세계를 구했다고 굳게 믿는다든지 하는-이 앞으로 눈앞의 적보다 더 힘겨운 내부의 적으로 등장할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이 두려움의 근원. 성과라면 미국식의 입헌적 애국주의(Constitutional Patriotism)의 전통을 좀더 연구하면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겠다는 방향을 얻게 된 것. 3. 책 자체는 나와 같은 주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다지-전혀 권할만하지 않다. 얇고 작은 주제에 값은 절대로 얇지도 작지도 않고 더구나 그 가운데 앞부분 세 꼭지 정도를 빼놓고 뒷부분은 쓰잘데기없는 인사말이며 잡문들이니 논문의 참고문헌을 늘리는데는 효과적으로 기여하겠지만 두뇌개발에는 그다지-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휘트먼에 대한 대책없는 감동말이지, 시도 별로 맘에 안들고 ‘했던 짓’(혹은 생애)이나 발언이나 전혀 호감이 안가는 친구를 시도때도 없이 끌어들이는 거 대략 게으른 짓으로 보인다. 다음에 로티를 만나면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 해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