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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제대로 읽기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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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제대로 읽기 위한 안내서 한때, 문학은 나의 호기심의 범위에 있지 않았다. 역사나 철학 등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으면서 어쩌다 읽게 되는 문학책은 어렵기만 해서 도저히 끝까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유야 찾아보면 분명하게 있을 테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제법 된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늘 문학은 어렵게만 여겨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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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제대로 읽기 위한 안내서

한때, 문학은 나의 호기심의 범위에 있지 않았다. 역사나 철학 등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으면서 어쩌다 읽게 되는 문학책은 어렵기만 해서 도저히 끝까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유야 찾아보면 분명하게 있을 테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제법 된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늘 문학은 어렵게만 여겨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책 읽는 사람들 모임에서 접하기 시작한 문학은 나에게 실로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주었다. 문예출판사와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하는 고전문학을 섭렵하면서 문학이 가지는 속 깊은 매력이 역사나 철학과 같은 인문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문학은 여전히 어렵다. 무엇이 문학과의 사이를 벌려놓은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지만 딱 집어 그렇다할 이유를 말할 수 없다.

 

작가와비평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인문학 수프 시리즈를 접하며 어렵게만 느껴지던 문학에 대해 새로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가이며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양선규라는 사람이 쓰고 있는 인문학 수프 시리즈의 네 번째 ‘우청우탁(寓淸于濁)’은 문학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소설에 대한‘장졸우교’, 영화 이야기 ‘용회이명’, 고전에 관한 ‘이굴위신’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주목받고 있는 시리즈다. 독특한 시각으로 각각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저자의 글맛이 보통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치를 충분하게 발휘하고 있기에 저자의 개인적인 삶을 함께 볼 수 수 있다는 점도 관심거리 중 하나가 된다.

 

이번 주제인 ‘문학’에 관한 중심 키워드는 ‘우청우탁(寓淸于濁)’이다.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다는 말이다. 픽션으로써 문학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는 말로 보인다. 문학이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을 토대로 하여 작가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것이기에 관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여, 저자가 펼치는 문학이야기는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으로써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문학을 ‘문식’이라는 의미 있는 인식의 출발점을 제시하고 있다. 문학의 ‘읽고 쓰는 일’에 대해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체와 분리된 기존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로 문학이 작가들만의 활동이 아닌 실천적 글쓰기와 연결된 문학으로 이해하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준다.

 

문학의 구성요소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학 속 장치들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것이 글로만 머무는 것이 아닌 실제 문학작품과 저자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여타의 문학에 관한 이론서들과는 다른 맛을 전해준다. 특히, 시와 장엄에 관한 이야기인 참 좋은 울음터에서 박지원과 김정희 그리고 이육사로 이어지는 정서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문학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유 하나를 찾아 고백한다. 저자의 밀대로 단순한 줄거리 쫓아가기 식으로 읽어왔던 문학에서 ‘제대로’ 읽을 것을 발견한 것이다. 꾸며낸 이야기로 문학을 대한다면 사람들 삶과 구체적인 결합을 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듯 문학의 기본 바탕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일 것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물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문학 역시 그 범주 안에서 머물러 있기에 사람들의 삶과 문학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심심풀이나 시간 떼우기, 줄거리 쫓아가기 식이 아닌 제대로 읽은 문학작품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 영향력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책 ‘우청우탁’을 통해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는 독특한 문학 강의를 듣는 기회가 되었다.



m*****8 2013.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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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청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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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청우탁, 일견하여 책 제목으로는 고사 성어를 풀이해 놓았거나, 사서삼경 류의 중국의 고전을 해설해 놓은 책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서 찬찬히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저자는 소설가이면서 교육 행정가이신 분이 우리 주위에 흩어져 있는 인문학에 대하여 써 놓은 글이다. 이 분은 이 책을 굳이 ‘문식’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명명하기를 고집한다. 저자는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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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청우탁, 일견하여 책 제목으로는 고사 성어를 풀이해 놓았거나, 사서삼경 류의 중국의 고전을 해설해 놓은 책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쳐서 찬찬히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저자는 소설가이면서 교육 행정가이신 분이 우리 주위에 흩어져 있는 인문학에 대하여 써 놓은 글이다.

이 분은 이 책을 굳이 ‘문식’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명명하기를 고집한다.

저자는 ‘읽고 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표현했다고 그 저의를 설명한다.

저자는 그가 쓴 저자의 말에서, 문학은 공허한 사유나 관념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문학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을 구원하는 최초, 최후의 수단(6페이지)’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이와 같은 문학에 대한 인식은 이 책의 첫 번째 내용인 연암 박지원의 ‘소단적치인’이라는 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연암은 글쓰기를 전투에 비유했는데, 저자는 연암의 비유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글쓰기의 금과옥조를 삼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마, 이 연암의 글이 이 책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의미와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30년 전 쯤, 성공한 선배 작가로부터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평가들에게 먹기 좋은 먹잇감을 던질 것과 가급적이면 문장은 3(4)∙4조에 맞추어 쓰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자신의 소신껏 글을 써 왔다고 자성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동화, 소설, 시, 기타 문화적 매개물에 대하여 원론적인 내용과 사족이라고 하는 개인적인 의견들을 대비시키면서, 작품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론을 적어 놓고 있다.

특히, 황순원과 헤르만 헤세가 쓴 작품에 대하여 많은 내용을 할애하였다.

황순원 소설의 본령을 ‘에로티즘’으로 정리하면서, 그 양태를 소년기 에로티즘, 삼각관계 에로티즘, 나르시시스트 에로티즘으로 대멸하여 작품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헤르만헷세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 J,B랑과 함께 정신분석을 연구하고, 융과의 교류를 통하여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이 그의 유명한 작품, 마흔 이후에 쓴 데미안에 반영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유명 작가가 된다는 것은 자기 식을 관철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198페이지)‘고 결론 짓는다.

저자가 서두에서 정의한 대로 문학은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피와 땀의 결실임이 ‘푸른빛과 싸우다-등대가 있는 바다’에서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송재학이 쓴 이 시는 선뜻 의미 파악이 쉽지 않는 난해한 시에 속한다.

이 시를 저자는 시인의 의도까지를 파악해 가면서 조근 조근 섬세하게 풀이해 준다.

‘시는 입에 넣기만 하면 자기가 알아서 녹는 달콤한 초컬릿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시를 감상할 때는 말뜻, 느낌, 어조, 의도 등을 두루 살펴야 ‘시의 시간과 공간’에 들어 갈 수 있음을 가르친다.

즉 시인과의 동일화가 필수라는 말로 이해가 된다.

문태준의 가재미의 시를 설명하면서, ‘살아서의 모든 일도 살아서는 모릅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죽어서야 알게 될 활어관 속의 넙치와 같은 것입니다’의 말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한 편의 길지 않는 시어 속에서 이토록 깊고 높은 철학과 사유를 담을 수 있음을 깨달으며, 짧은 시 한 편도 우주와 같은 무게임을 비로소 알게 해 준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h*******0 2013.1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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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청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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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너무 가벼이 읽어댄 것이 아니었나' 이 책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목젓에 따끔하게 걸리듯 술술 넘어가지 않은 문장이 거슬리기도 하면서 이런 시선이, 이런 관점이 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도 했던 책이 '우청우탁'이었다. 조금 어려워질즈음이면 저자의 일상이나 경험의 연결로 불편을 달래주기도 하는 책. 책을 거의 읽어갈 무렵에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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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너무 가벼이 읽어댄 것이 아니었나'

이 책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목젓에 따끔하게 걸리듯 술술 넘어가지 않은 문장이 거슬리기도 하면서

이런 시선이, 이런 관점이 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도 했던 책이 '우청우탁'이었다.

조금 어려워질즈음이면 저자의 일상이나 경험의 연결로 불편을 달래주기도 하는 책.

책을 거의 읽어갈 무렵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시에 대한 부분에 가서는 특히 관심이 가는 분야여서인지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서양의 고전과 작가들의 문학과 삶의 이야기와 이 시대의 풍조며 저자의 삶이 어우러지는 우청우탁에는

글 속에 삶이 어떻게 묻어나는가를 보여주며 글의 이면과 문학작품의 짜임새며 내면에 깃든 사고들을 펼쳐주고

세상에서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며 책을 읽어갈수록 넘기기 껄끄러운 무언가가

감미롭기까지 한 무엇으로 변화되어 앞장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말미에 가면서 한번은 더 음미하며 읽어보고 싶어지는 '우청우탁'은

그 안에 담긴 작품들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하듯 보고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b******m 2013.1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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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청우탁 -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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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청우탁 -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읽기는 읽는 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면서 읽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가 설명을 해준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그냥 그렇게 지나가곤 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문학을 아무 생각없이 한 번 읽고 말았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읽었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문학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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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청우탁 -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읽기는 읽는 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면서 읽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가 설명을 해준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그냥 그렇게 지나가곤 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문학을 아무 생각없이 한 번 읽고 말았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읽었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문학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 제목만 기억될 뿐 거의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문학은 정말로 여러 번 읽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면서 진짜 내 것이 됩니다.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도 됩니다.
우청우탁은 문학 작품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문학을 이야기 합니다.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문학은 각자의 실천적 글쓰기이며, 삶으 현장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지는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는 최초, 최후의 수단이 문학이라고 합니다.
문학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글 속에 녹아 표출됩니다.
시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하며 더 나아가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우청우탁은 책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재미를 선물합니다.
데미안과 싯다르타는 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서 보고 싶은 책이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저자 또한 데미안과 싯다르타에 대한 기억이 남달랐습니다.
저도 다시 한 번 읽고 나의 경험과 연관지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싶고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럴 때 참고하면서, 비교하면서 읽어본다면 더욱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먹는 것이 사람의 신체를 만든다면 보고 듣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만듭니다.
독서가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을 주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으로 이루어집니다. 동양에서는 문, 사, 철이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문화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역사를 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또 문화사는 한국인도 서양사를 생산하는 입장에 설 수 있게 하며, 수많은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사적 시각의 역사 읽기는 우리 역사를 풍부하게 만들고 폭넓게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합니다.
우청우탁을 통해 책을 읽겠다는 아이, 공부하겠다는 아이로 먼저 키우고 책을 통해 생각을 키우고 변화하는 시간들을 갖었으면 합니다.
j*****6 2013.12.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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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청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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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시리즈 제 4권 우청우탁. 저자는 이 책을 크게 잡아 '문학의 이해'편 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우청우탁은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문학을 '구름 위의 것'으로 여기지 말고 '내 발등 위에 불'로 생각하자는 취지로 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서론은 작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등학교2학년 때부터 글을 쓰게된 이유와 수상의 영광. 그리고 평생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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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수프 시리즈 제 4권 우청우탁. 저자는 이 책을 크게 잡아 '문학의 이해'편 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우청우탁은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문학을 '구름 위의 것'으로 여기지 말고 '내 발등 위에 불'로 생각하자는 취지로 이 글을 썼다고 합니다. 서론은 작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등학교2학년 때부터 글을 쓰게된 이유와 수상의 영광.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가시밭길. 그리고 나서 소단치적인 일이 나옵니다. 글을 읽다보니 처음들어보는 생소한 용어와 책들이 나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방불패의 <규화보전>,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 소단, 적치, 주화입마, 사문난적, 흑세무민 등. 하지만 글을 배우는 사람으로써 어려운 것을 피하고 쉬운거만 본다면 실력이 향상되지 않으니, 열심히 보았습니다. 뭔가 이 책을 읽으면 머리 속에 지식이 쌓여 간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미쳐야 쓴다. 하이퍼그라피아.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로 수많은 세상의 병든 영혼들을 구제했으나 정작 본인은 간질 발작을 일으키며 고통 속에 시달렸습니다.

 

 "나의 가난한 뇌에 아이디어와 이미지들이 마치 소용돌이치듯이 들어왔다. 내 의식, 아니 내 전부가 폭풍으로 침몰하는 배처럼 느껴진다" - 도스토예프스키 p.27 

 

의외로 측두엽 간질 환자는 많았습니다. 테니슨, 리어, 포, 스윈번, 바이런, 모파상, 몰리에르, 파스칼, 페트라르카, 단테,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 성 바올로 등. 헤어릴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글쓰기는 인간이 자신의 불구를 넘어서는 인간승리. 하나의 '길 없는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치유의 글쓰기로 승화시킨 대단한 작가들이죠. 이 외에도 시도 떄도 없이 눕는 것들 : 초상지풍에서는 김수영의 시 <풀>에 대해서도 <논어>의 안연편과 비교하며 문학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역시 한자어가 많아 놀라긴 했지만 뜻풀이를 자세히 해주고 있어 글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내용과 용어들을 알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시 뿐만 아니라 소설과 다양한 문학적 실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어려운 부분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한 저자의 노고가 만족스러웠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학문의 깊이와 견문을 넓히기 위해 꼭 한 번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v***o 2013.11.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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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해진 머리가 단단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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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작가의 책이 시리즈로 몇 권이 나왔는데도 읽어 볼 생각을 못했다.  인문학에 관심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저자의 책은 매번 나의 선택을 비껴갔다. 그러다 겨우 인연이 닿아 읽어보게 된 책이다. '우청우탁'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란 말이란다. 마침 이 책을 읽었던 지난 주는 중국발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연 것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작가는 왜 이런 제목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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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작가의 책이 시리즈로 몇 권이 나왔는데도 읽어 볼 생각을 못했다. 

인문학에 관심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저자의 책은 매번 나의 선택을 비껴갔다. 그러다 겨우 인연이 닿아 읽어보게 된 책이다.

'우청우탁' 흐리고 맑음이 둘이 아니란 말이란다. 마침 이 책을 읽었던 지난 주는 중국발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연 것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작가는 왜 이런 제목을 썼을까? 

머릿말을 읽으니 저자가 '문학을 '구름 위의 것'으로 여기지 말고 '내 발등 위의 불'로 생각하길 바라는 취지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인문학이란 학문을 식자층의 전위물로 나누어 생각하지 말고 두루 알고, 즐기는 학문(?)이 되길 바랬던 건 아닐까?

몇 년 전만해도 인문학이 그런 인상이 없지는 않았다. 대학 조차 거의 외면했던 학문 아닌가? 인문학을 표방하는 강의를 한다고 하면 수강생들이 거의 없다고 울상을 짓곤했단다. 그러던 것이 스스로 그 권위의 외피를 벗어버리고 대중과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건 확실히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인문학은 역시 인문학인가 보다. 인문학자들의 그러한 자구적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독자 스스로가 자신의 매너리즘을 벗어버리고 일부러 다가서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만나질 수 없는 것 같다. 

인간은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는 동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 필요에 의해서만 무엇을 하려한다면 그쪽에 관한 촉수는 발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른 부분은 퇴화가 돼 결국엔 불균형에 도태되는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은 나에겐 좀 어렵고, 버거운 책이었다. 

글쎄, 저자의 시리즈의 책을 읽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예를 들면 내가 관심있어하는 쪽은 영화였으니 저자가 그 방면을 다룬 '용회이명' 같은 책이나, 소설을 다룬 '장졸우교' 같은 책이라면 좀 더 났지 않았을까? 하필 문식이라니. 문학의 형식을 이름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읽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뒤섞이곤 했다. 

그냥 문학은 즐기므로 자연스럽게 알게되고 확대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굳이 '문식'이라는 걸 의식적으로 알 필요가 있는 것일까? 평소 땐 나도 이만하면 어디가면 무식하다는 소리 안 듣고, 그런 지식없이도 사는데 지장이 없다. 그러다 구조주의가 어떻고, 현상학이 어떻고 하면 지레 경기부터 하고 보는 나의 얕은 속내가 드러나는 것 같아 편치마는 않다.  또한 저자의 식견이 너무 고상하고 깊어 따라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과 거부감 사이를 줄다리기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깊은 식견에 나의 알량한 자존심은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다. 나는 과연 앎에 대해 어디까지 넓어지길 바라며, 어디까지 깊어지길 바라는 걸까? 자책감이 스멀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나의 지적욕구(그것이 비록 누구 보기엔 지적허영처럼 보일지라도)가 한창 이었던 때는 10대 후반에서 20대 때였던 것 같다. 한창 젊을 때였다. 그때를 가리켜 돌이라도 씹어 먹을 때라고도 하지 않던가? 하지만 난 그때 학교를 싫어했던 관계로 이 지적욕구를 미처 다 채우지도 못했다. 마치 그 시절 듣지 못했던 인문학 강의를 듣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거친 지적 욕구는 지금도 필요하다. 매 쳅터가 에세이로 시작해서 한 편의 논문을 보는 듯도 하고, 오랜만에 대학 교과서를 보는 것도 같다. 말랑말랑해진 나의 머리가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읽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m****9 2013.12.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