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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선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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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씨의 '초의'를 읽었다. 다기에다 선물받은 좋은차를 내려 마시기도 하고, 종이컵에 티백을 넣어 마시기도 하면서 초의선사의 행장을 따라다녔다. 초의선사에 대한 유명세는 일찌기 '완당평전'에서 접한바 있다. 초의선사가 '다신전'과 '동다송'을 썼을뿐 아니라 당대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과 교유했다는것, 소치허련의 스승이었다는것은 알고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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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씨의 '초의'를 읽었다. 다기에다 선물받은 좋은차를 내려 마시기도 하고, 종이컵에 티백을 넣어 마시기도 하면서 초의선사의 행장을 따라다녔다. 초의선사에 대한 유명세는 일찌기 '완당평전'에서 접한바 있다. 초의선사가 '다신전'과 '동다송'을 썼을뿐 아니라 당대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과 교유했다는것, 소치허련의 스승이었다는것은 알고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초의는 조연이었을뿐이다. 그가 주연으로 등장하자 선비들의 풍류속에서 하나되지도 떨어져 나오지도 못하는 낯선 모습으로 양각되어 두드러진다. 소설속에서 초의선사의 속명은 중부라 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에게서 학문을 익히며 영특한 기질을 내보였으나 역병에 가족들이 몰살당한후 집을 떠나 운흥사 벽봉 스님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본래 하나를 배우면 서너가지를 뛰어넘는 재원인터라 이때 벽봉스님에게서 범패, 바라춤,탱화,등을 배운다. 이후 대둔산의 완호스님으로 부터 구족계를 받고 법호를 초의라 했다. 불경과 선,노자,장자, 등을 공부하며 선지식을 찾아 다닌 초의선사는 24세에 그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다산 정약용선생을 만나게 된다. 다산선생과의 만남은 곧 또다른 세상과의 통로가 되어 시,글씨,그림에 능한 삼절로서 ,또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갖가지 재주를 가진 팔방미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초의선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차」를 빠트리고는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은것과 마찬가지다. 초의 선사는 산에서 면벽수도만 하고 있는 선승들을 경멸했다. '산에서 깨달았다면 내려와야지 산속에서 혼자고고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려와서 대중을 제도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들이 그를 실사구시의 실학선승이라고 불리우게 만들었다. 선사는 차를 통해서 , 차잎을 따느라 딴 차잎을 덖느라 비비느라 수고한 손들의 의미를 알고 마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차를 제대로 잘 마실 수 있고 참된 차의 맛과 향기를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삶의 신명을 알 수 있다고 본것이다. 차와 선은 한가지 맛이니 다선일체 , 다선일미, 다선삼매라고 했다. '다신전'과 '동다송'을 통해 이런 생각들을 펼쳤고, 차를 통해 대중들이 깨달음을 얻기를 바랬다. 책으로 세상에 소개될만한 인물들은 너나 할것없이 우리같은 범인들하고 다른 사람들이다. 초의선사또한 그렇게 못하는것 없는 팔방미인에 살아계실적에 이미 호남칠고붕으로 추앙받았으며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 보제존자 초의선사라는 사호를 받았다. 역사적인 인물을 소설속에 부활시키는일이 힘이 든것은 이렇게 뛰어난 인물을 뛰어나다고 만 하면 소설에 맥이 빠져버리는것이다. 초반부의 고향 삼향시절의 이야기와 후반부 김정희와의 교유 부분에서는 흥미롭게 이어지지만 중반 선사가 선을 탐구하는 과정은 허술하며, 지나치게 이질적이다. 선을 탐구하는데 있어서는 화두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화두가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점도 있지만 용비어천가식의 찬양일색은 매력이없다. 그렇다고 무슨 초의선사의 러브스토리에 각색을 요구하는것은 아니다. 단지 개인적인 고뇌에 대한 부각이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다. 거기다 가끔씩 보이는 시점의 혼란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소설이 기대했던 만큼의 수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400여페이지의 소설을 써내려가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텐데 나는 이렇게 가볍게 잘 된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잔인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이또한 독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아닌가. ) 그렇지만 이제 곧 사월이다. 곡우가 다가오고 보령 차밭은 초록으로 덮힐것이다. 보령으로 차밭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 비록 싸구려 티백을 하나 넣어 마실지언정 차 한잔에 '대숲과 솔 물결 소리 다 서늘하니 맑고 차가운 기운 뼈에 슴배어 속마음 일깨운다. 흰구름 밝은 달만 두 손님으로 깨달음 얻으려 하는 이는 이 이상 좋을 수 없지 ' 선사께서 노래하신 다선삼매를 느껴보길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봄직하다. 한승원씨의 <초의>를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좋은 차인 경우 열 번까지 우려 마신다. 첫번째 우린 것은 배린내가 나는 십대의 맛이고, 두번째 우린 것은 혈기방장한 이십대의 맛이다. 세번째 것은 삶의 맛을 바야흐로 알기 시작하는 삼십대 맛이고, 네번째 것은 깨달음이 보일둥 말둥하는 사십대 맛, 다섯번째 것은 부처님이 눈을 반쯤 감은 뜻을 알기 시작하는 오십대 맛이고, 여섯번째 것은 연꽃잎을 스치는 부처님 눈빛을 보기 시작하는 육십대 맛, 일곱번째 것은 연꽃들이 다 지고없는 연못의 황달든 연잎에 어린 불음을 듣는 칠십대 맛이다. 그리고 여덟번째 것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니라' 하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팔십대의 맛, 아홉번째 것은 햇볕에 잘 바래진 모시같이 머릿속이 바래지는 구십대 맛이고, 열번째 것은 사바세상과 아미타 세상을 넘나드는 맛이다
h******h 2004.03.19.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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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너의 삶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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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하나는 거울(龜鑑)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他山之石)이다. 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가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투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의 성정을 벼리는 데 숫돌로 쓰면 된다.’ 초의 스님이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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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하나는 거울(龜鑑)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他山之石)이다. 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가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투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의 성정을 벼리는 데 숫돌로 쓰면 된다.’ 초의 스님이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며 평생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올바른 삶이 바로 이것이라 여겼다. 곧은 삶을 산 사람을 늘 가슴에 새기면 그들을 닮고자 할 것이고, 타인의 잘못된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른 길로 이끌며 사는 삶이야말로 자신을 바른 길로 이끄는 밑거름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실천일 것이다. 초의 스님은 차를 제대로 잘 마심은 삶을 제대로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를 마시되 찻잎을 하나하나 땄을 손길을 생각하고, 그것을 덖고 비비는 이의 손 뜨거움과 끈질긴 참을성을 생각할 때 진정한 차향 차맛 차 색깔을 느끼며 차를 마시는 것이라 한다. 또한 이런 마음이 진짜 사람의 맛, 사람의 향기라 말한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쏟는다. 건강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웰빙(참살이)’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음식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패스트푸드 음식에서 슬로우푸드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추세이다. 차와 관련된 문화에서도 전통 차에 관심을 기울이고 제대로 즐기고자 ‘다도’를 배우는 주부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건강을 생각하며 거피보다 우리의 차, 특히 녹차를 마시려 노력했다. 녹차 중 어떤 게 가장 좋은 차인지 아주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그것을 골라 틈만 나면 남편과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낸다며 만족해했다. 그러나 ‘초의’를 읽으며 나의 어리석음에 웃고 말았다. 진정한 ‘웰빙’, 아니 ‘로하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그들에게 권하고 싶다. ‘초의선사’를 만나보라고. 우리의 차를 제대로 음미함은 물론 나뿐만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로하스’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선승들이 산중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 텅 빔의 큰 깨달음을 얻으면 만족해했지만 초의 스님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속 사람들과 함께하려 했다. 이것이야 말로 ‘로하스’가 아닐까?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아니 후세들까지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차를 마실 때는 차를 만든 이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고, 가마꾼의 고통을 잊지 않았으며, 어릴 적 도움 받았던 동전 두 닢을 갚으려고 평생 마음에 간직하며 살았던 삶이 그것을 대변한다.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건방지게 까불지 말고, 항상 풀옷을 입은 사람같이 소박하게 세상을 살라는 뜻을 담은 법호처럼 그의 삶은 현대인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삶이었다. 자신의 실체를 끊임없이 찾아가며, 동전 두 닢을 어디에 갚아야 할지 늘 고민하는 삶이란 세상과 동떨어진 삶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삶이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은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하나는 거울(龜鑑)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他山之石)이다. 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가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투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의 성정을 벼리는 데 숫돌로 쓰면 된다.’
j****l 2006.06.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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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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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보시로 맑고 고요하며 향기로운 삶을 전해주는 '초의' 작가의 책은 한권 한권 연관이 있는 듯 읽어야만 하는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먼저 <흑산도 하늘길>이란 정약전에 대한 책을 읽고 난 후 잠깐 다른 책인 <시인의 잠>이란 연애소설을 읽었다. 그런 후에 다시 정약전의 동생이며 그가 흑산도에서 그렇게 그리워 하던 <다산1,2>을 읽고 나니 <초의>를 집어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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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보시로 맑고 고요하며 향기로운 삶을 전해주는 '초의' 


작가의 책은 한권 한권 연관이 있는 듯 읽어야만 하는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먼저 <흑산도 하늘길>이란 정약전에 대한 책을 읽고 난 후 잠깐 다른 책인 <시인의 잠>이란 연애소설을 읽었다. 그런 후에 다시 정약전의 동생이며 그가 흑산도에서 그렇게 그리워 하던 <다산1,2>을 읽고 나니 <초의>를 집어 들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나를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는 책은 <추사1,2>다. 다산의 제자로 알고 있는 '초의'를 제자이기 보다는 다산의 아들들과 긴밀한 우정을 나누며 추사와도 같은해에 태어나서인지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듯 그들이 누린 삶은 '행복' 그 자체로 보였다. 

속명 '중부'인 초의는 시.서,화의 삼절을 만들려는 할아버지의 욕심도 있었지만 그가 지닌 천재성이 모든면에서 들어난듯 하다.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그가 어린시절 누린 시서화에 대한 능력과 역병으로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고향집을 불사르며 떠나야 했던 고향 다음으로 그의 삶의 터전에 되어 버린 절에서  내재된 그의 재능이 모두 발휘되어 나오듯 범패며 바라춤이며 금어며 단청이며 못하는 것이 없던 그가 아홉번이나 덕으며 비로소 제 맛을 찾는 ''를 무서운 보릿고개를 넘으며서 곡우부터 입하전까지 찻잎을 따고 차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땀과 배고픔으로 배우고 가마꾼으로 가마를 메지 않았다면 그 힘든 과정속에서 깨달음은 얻지 못할 수도 있었을터인데 일찍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법을 배운듯 하다.

왜, 자신이 힘들게 차잎을 따야하는지 배가 부르지도 않는 차를 마시는지 모르던 그가 차의 '다선' 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아홉번의 덕음처럼 평범한 그의 삶이 물에 빠져 스님을 만난것부터 인연처럼 만난 향기로운 사람들, 벽봉스님이며 완당스님이며 정약용과 그의 아들들인 학연과 학유와 그리고 추사 김정희에서 소치 허련까지 그의 삶을 더욱 맑게 해준 사람들이 있어 그의 진가는 더욱 빛이 난 듯 하다. 작가는 초의스님의 '다선' 보다는 한인간의 고뇌와 삶을 조명하듯 역사속의 그를 추적하면서도 그의 파란만장한 행로를 그려내려 노력한것 같다. 역사속에 흩어져 있던 그의 퍼즐들을 한데 모아놓듯 '인간 초의' 를 그려내려 했기에 그와 함께 시,서,화를 논했던 풍류객들이 등장을 하여 그가 스님으로 보다는 삼절을 뛰어 넘는 사절 오절쯤의 이야기들이 조금은 나른한 맛도 있지만 작가 한승원을 읽기에는 좋은 작품인듯 하다.

'차는 텅 빈 곳에 어리는 향기로운 모양새(공즉시색), 그 모양새 속에 어려 있는 텅 빈 것(색즉시공), 우주의 원동력과 순리와 평등을 가르친다.'  작가 또한 차밭을 직접 가꾸며 자신이 만든 차만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또한 '초의선사'와 무엇이 다른 삶일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차는 혼자 마시는 것은 제일 제대로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는 것은 잘 마시는 것이고, 3~4인이 함께 마시는 것은 그저 맛을 보는 정도이고, 5~6인이마시는 것은 제대로 마신다고 할 수 없고, 7~8인이 둘러앉아 마시면 차를 보시하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자신이 만든 차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려 노력하여 <다신전> 과 <동다송>을 쓴 초의선사. 시,서,화는 물론 차,사상,예술까지 아우르는 그의 재능은 정말 대단한듯 하다. 범인人으로 살았다면 그의 삶을 정리하기 쉬웠을테지만 스님으로 전국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셨기에 그의 행적을 찾아 나가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삼년여동안 '초의' 를 찾으려 노력했던 해산 한승원님 덕에 초의선사를 쉽게 만나고 헤어졌지만 아직 한승원을 알아가기엔 역부족인것 같다. 그가 '초의'와 함께 등장시킨 '추사'를 읽으면 갈증이 조금 더 줄어들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는 거울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이다.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가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두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이 성정을 벼리는 데 숫돌로 쓰면 된다.' 할아버지가 주신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 초의, 그 말씀처럼 어긋남이 없이 살려 노력한 그의 삶처럼 거울에 비추이며 잘못을 숫돌에 벼르듯 맑고 향기로운 삶을 전해 준 초의선사, 한 잔의 차를 마시고 난 후의 개운함처럼 맑은 향기가 나는 듯한 책 '초의' 는 마음에 때가 끼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읽으면 좋을 듯 하다. 





y******2 2009.07.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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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다산의 벗이된 스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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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출구가 없는 동굴 같은 삶을 사는 이나 고급 차를 몰고 호의호식하는 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마음 다지기를 가끔씩 한다. 뉴스를 통해 어미가 두 아이와 지하철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한승원의 ‘초의’를 읽었다. 한달 전쯤 사두고 읽지 못하다가 출퇴근 길에 천천히 읽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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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출구가 없는 동굴 같은 삶을 사는 이나 고급 차를 몰고 호의호식하는 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마음 다지기를 가끔씩 한다. 뉴스를 통해 어미가 두 아이와 지하철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한승원의 ‘초의’를 읽었다. 한달 전쯤 사두고 읽지 못하다가 출퇴근 길에 천천히 읽었다. 사실 전번에 읽은 ‘추사’와 날줄이 닿아있는 소설이다. 이미 출간되어 전번에 만지작했던 ‘다산’과도 역시 상통하는 책이다.


추사나 다산과 달리 초의라는 인물을 잘 몰랐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가장 큰 것은 동시대에 이런 위대한 인물들이 태어났고, 만났고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지식과 벗을 찾아서 험난했던 길들을 오갔을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팩션을 한번 끄적여보고 싶은 나에게 한승원은 정말 거대한 산 같은 인물이다. 그처럼 사람과 시대를 관류할 힘이 나에게 있나 싶어서 가끔 절망한다.


사실 한승원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의 딸 한강이 생각난다. 어떻든 이 부녀는 바다 속 같이 깊은 뭔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 가족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하고 어떻게 놀까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YES마니아 : 로얄 c*****i 2008.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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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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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마시는 차,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이고 쉽게 접할수 있는 차, 단연 녹차라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차가 언제 존재 했으며 또한 언제 들여 왔으며 , 차가 넓게 보급된 때는 언제 인가를 여기 초의 ,풀옷, 풀로 만든 옷, 즉 자연을 소재로 옷을 해입고 도를 닦는 사람 , 맞습니다 단연 우리의 녹차를 체계화 시키고 차의 우수성을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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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마시는 차,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이고 쉽게 접할수 있는 차, 단연 녹차라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차가 언제 존재 했으며 또한 언제 들여 왔으며 , 차가 넓게 보급된 때는 언제 인가를 여기 초의 ,풀옷, 풀로 만든 옷, 즉 자연을 소재로 옷을 해입고 도를 닦는 사람 , 맞습니다 단연 우리의 녹차를 체계화 시키고 차의 우수성을 대중화 시키신 분은 단연 초의선사 일것 입니다. 조선말 일개 스님이었던 초의는 그 어떤 궁극의 道로서 茶를 배웠으며 다 로서 자신을 일깨웠고 다 로써 도에 도달하였으니 과연 茶의 스승이요 다 의 박사요 본인 자신이 다 의 일부분있으리라 그런데 초의 에게도 홀로 다 에 대해 스스로 깨쳤다고는 말할수 없는, 불세출의 스승이 있었으니 그이름 유명한 정다산, 즉 여유당 정약용 입니다 초의는 정다산을 인생의 스승이요 ,道의 크나큰 산으로 여기고 섬겼습니다 그렇지만 정다산은 초의를 도반이요 생의 벗으로 여기며 함께 茶를 마십니다 여기서도 알다시피 정약용의 호가 다산이 된 이유도 차를 즐겼으며 차를 전수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초의에게 다 를 전수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추정해 봅니다 아무튼 차의 보급에 있어 다산 정약용이 큰 역할을 한것은 틀림이 없는 것 고 초의가 체계화 시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대적 걸출한 인물이 있으니 추사 김정희 입니다, 초의와 추사는 비슷한 연배인고로 진정 동료애로서 벗이었다 할 수있었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초의는 조선후기의 크느큰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도에 대해서 승화를 할 수 있었으며 ,나름대로의 道를 안고 궁극의 도를 추구했습니다 특히 , 동다송 이라는 저서를 집필 했으며, 진정 차를 최고의 도로 끌어 올렸으니 즉 道와 茶는 같다 다는 진정 대쪽 같은 선비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대여 지금 차를 마시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차의 기품과 은은한 차의 향을 함께 감상해 보십시요

[인상깊은구절]
새들의 노래에 꽃은 질탕하게 춤을 추고 함께 살면서도 관자재를 알지 못하고 만나서도 묘길상에 절하지 못했구나 만일 나에게 길을 묻는 다면 오직 금강과 인연하여 터득했을 뿐이라 하리라
b******k 2005.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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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수록 향기로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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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실제 살았던 사람이란다. 한승원의 글로 읽으니 인물의 삶이 더 잘 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상태였고, '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니, 내게 이 글은 그저 새로운 영역이었다. 이렇게 살아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이런 사람에 대해 수많은 조사를 하고 그를 소설로 만든 작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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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실제 살았던 사람이란다. 한승원의 글로 읽으니 인물의 삶이 더 잘 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상태였고, '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으니, 내게 이 글은 그저 새로운 영역이었다. 이렇게 살아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이런 사람에 대해 수많은 조사를 하고 그를 소설로 만든 작가도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정약용과 김정희를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 우리의 역사 속에 이런 시대와 이런 인물들이 있었다는 것.

 

소설 속 글귀를 타이핑하면서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내 속에 떠오르는 말이 없구나. 그런데 글이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내 속에 글이 머물다 보면 내 말도 생겨나겠지. 또 굳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떠리. 머물고 있는 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한 것을.

 

 

143

달빛 비친 산이 그림자를 만들고,

대나무나 꽃이 그림자를 만든다.

세상보다는 세상의 그림자가 더 아름답다.

그림자에게는 거짓이 없다.

꽃보다 꽃의 그림자가, 대보다 대 그림작가 더 아름다워.

그림자는 숲 뒤편에 있고, 대나무가 디디고 선 땅 아래에 있고,

강물에 있고, 네 마음 속에 있지.

그림자 속에 달이 있다.

달이 부처님이라면 중생은 그림자 아니냐?

부처님의 그림자는 중생들 속에 있고, 중생들의 그림자는 부처님 속에 있다.

부처님을 알려면 중생을 알아야 하고, 중생을 알려면 부처님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살아가는 참 이치를 제대로 그리려면 세상의 그림자를 잘 그려야 한다.

그림자를 그리면 달은 그 위에 둥두렷이 떠오르게 되어 있다.

 

144

“시는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반드시 둘이라는 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둘에다 둘을 더하면 하나가 될 수도 있고, 공이 될 수도 있고 열이나 백이 될 수도, 만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시다. 시의 묘미는 엉뚱한 데에 있는 법이다.”

‘엉뚱한 데에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의는 할아버지 몰래 읽은 노자와 장자에서 엉뚱하다는 말의 해답을 얻어냈다. 잘 가는 자는 자국을 남기지 않고, 잘 묶는 자는 밧줄 없이도 놓여나지 못하게 묶고, 잘 잠그는 자는 빗장 없이도 잘 잠근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 세상을 올곧게 나아가게 하는 그윽한[玄] 힘이다. 말하자면 도道라는 것이다. 엉뚱한 표현이라는 것은 그윽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160

사람은 모름지기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는 거울(龜鑑)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他山之石)이다. 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가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투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의 성정을 벼리는 데 숫돌로 쓰면 된다.

 

172

사람이 누구인가를 오매불망 진실로 사모하면 그를 닮게 됩니다. 선비도 그렇습니다. 한 선지자를 진실로 사숙하게 되면 그의 모든 것을 닮게 됩니다. 학식이나 인자함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나...... 심지어는 표정이나 행동까지도요. 좋은 그림은 좋은 시이고, 좋은 시나 그림은 그 사람의 마음의 표상이고 그윽한 그림자입니다.

 

173

사람이 글을 읽는 것, 글씨를 쓰는 것, 시를 짓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귀를 타고 길을 가는 것하고 같습니다. 길을 가는 목적은 나귀를 타고 흔들거리며 가는 데에 있지 않고 지나쳐 가는 풍광을 음미하고 목적지에 이르는 데에 있습니다. 글 읽고 글씨 쓰고 시 짓고 그림 그리는 그것들의 등뒤 쪽에 사람이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향기로운 사람, 모나지 않고 동그라미같이 원만한 사람...... 그렇다고 두루뭉수리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자는 서로 화합하면서도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소인은 개성을 지니지 못한 채 부화뇌동합니다.

 

177

사람에게서 문장이 나오는 것은 풀이나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 심는 자는 나무를 심을 때 뿌리를 북돋아 주고 줄기를 안정시켜 주면 됩니다. 얼마 지나면 진액이 올라서 가지와 잎이 퍼지고 꽃이 핍니다. 꽃은 밖으로부터 가져오지 못합니다. 성실한 뜻과 바른 마음으로써 뿌리를 북돋우고, 독행 수신으로써 줄기를 안정시키고, 경전과 예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진액을 빨아올리고, 널리 듣고 아름다움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잎과 가지를 퍼지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장 쓰는 도리입니다. 문장은 밖으로부터 가져오지 못합니다.

 

201

세상은 낡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은 나이 들어 낡아가고 있으면서 늙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늙어감은 금강석처럼 찬란하고 향기로운 무게를 더하면서 견고해지고 새로워지는 일이고 값진 일이지만, 낡아가고 있는 것은 썩어 소멸해 가는 것이고 미망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냄새나고 추한 것이었다.

 

271

벽이란 바람벽만 벽이 아니다. 나를 막아선 세상은 모두 벽이다. 나의 참을 참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모든 것들은 다 벽이다. 사람도 벽이고, 짐승도 벽이다. 부처도 벽이고 조사도 벽이고 중생도 벽이다. 우주의 시공 모두가 벽이다.

벽이 벽 아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내 몸에 물이 새들어 오지 않도록 견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강심을 흐르는 물이 벽이다. 그 물 속에 몸을 담가도 내 진흙으로 만든 몸이 물에 풀리지 않아야 한다. 물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우선은 물이 내 몸에 묻지 않도록 통을 둘러쳐서 막아야 한다. 물이 들어오지 않을 동안 내 몸을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홍수가 밀려들고 사람들의 도끼질 괭이질 톱질에도 허물어지거나 꺾이거나 무너지지 않게 되었을 때 막았던 통을 제거하고 세상과 만나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면벽 참선이다. 그 참선을 해야 물을 건너도 허물어지지 않는 진흙소가 되는 것이다.

 

333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상을 분석하고 따지고 가리고 우열을 매기고 순서를 정한다. 그러한 순서 정하기는 화합하는 총체성의 우주를 놓칠 뿐만 아니라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논리는 논리를 낳고 그 논리는 다시 다른 논리를 낳는다. 결국 논리의 숲이 이루어진다. 울창한 논리의 숲은 진리를 보이지 않게 가린다. 그 숲 앞에 선 자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 길을 따지고 가리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가리는 일은 다툼을 만들고, 다툼은 자기 논에 물대기식으로 논리를 이끌어 간다.

 

336

게는 성장하기 위하여 껍질을 벗지 않으면 안 된다. 껍질을 벗는다는 것은 과거라는 껍질을 쓰고 있던 자기를 죽이는 것(살인검)이고, 옛날의 딱딱한 껍질로부터 부드러운 새 몸으로 태어나는 것(활인검)이다. 죽이기와 살리기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탐욕스런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 깨끗하고 고요해지는 자기가 살아날 수 없다.

산은 산, 물은 물이 그것이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라는 인식은, 산이 산 아니고 물이 물 아닌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점에서 활인검이다. 그러나 그것이 거기 머물러 있을 때, 자기를 죽이는 칼이 된다. 살리는 칼이 되려면 ‘산은 산 아니고 물은 물 아니다’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기 머물러 있으면 자기를 죽이는 살인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살리려면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이다’가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또 거기 머물러 있으면 자기를 죽이는 살인검이 된다. 그것을 살리려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가 나타나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화두 속에는 살인검과 활인검이 다 들어 있다.

초의



YES마니아 : 로얄 j***6 2012.04.18. 신고 공감 0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노장과 불교사상....
"노장과 불교사상...." 내용보기
차가 일상의 주요한 일로 된지 어언 3년이 되었다. 우리차, 중국차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쌓여 갈수록 해남의 대흥사 일지암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져Tes 것이 사실이다. 마음이 자주 그곳을 향하더니 결국은 지난주에는 대흥사에서 준비한 일반인을 위한 여름 경전수련회에 4박 5일을 참여했고 그 때 일지암 산행과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참 좋은 경험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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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일상의 주요한 일로 된지 어언 3년이 되었다. 우리차, 중국차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쌓여 갈수록 해남의 대흥사 일지암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져Tes 것이 사실이다. 마음이 자주 그곳을 향하더니 결국은 지난주에는 대흥사에서 준비한 일반인을 위한 여름 경전수련회에 4박 5일을 참여했고 그 때 일지암 산행과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참 좋은 경험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와서, 이 책을 대했다. 평생 처음 가본 해남 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형상화 되어 있는 연고로 책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역사인물소설이란 참으로 작가의 노고가 많았을 것이란 생각이 줄곧 들었다. 서울 생활을 떨치고 그 주변지역에 살면서 3년에 걸친 초의선사의 행적을 따라다니며 당시 선사의 마음을 읽어내려 했던 작가의 한걸음 한걸음이 몹시도 고맙게 느껴졌다.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배냇향 속에, 상상으로만 있던 다양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해준 귀한 시간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에게서 문장이 나오는 것은 풀이나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 심는 자는 나무를 심을 때 뿌리를 북돋아 주고 줄기를 안정시켜 주면 됩니다. 얼마 지나면 진액이 올라서 가지와 잎이 퍼지고 꽃이 핍니다. 꽃은 밖으로부터 가져오지 못합니다. 성실한 뜻과 바른 마음으로써 뿌리를 북돋우고, 독행 수신으로써 줄기를 안정시키고, 경전과 예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진액을 빨아올리고, 널리 듣고 아름다움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잎과 가지를 퍼지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장 쓰는 도리입니다. 문장은 밖으로부터 가져오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