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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예술의 위치는 18~19세기 시민사회를 주도하는 열쇠도 아니었으며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논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팩트 또한 아님이 분명하다.
네덜란드에서 유럽 비교문화정책 및 예술 연구소를 운영하는 저자 요스트 스미르스는 미국도, 유럽도 문화예술의 헤게모니를 이끄는 주체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유럽의 근대화는 불과 200여년 전부터 시작되어 왔고 이슬람과 남미문화권에서 번성했던 문화예술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책 서두에서는 예술작품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투쟁의 한 부분으로서 예술의 공유 요소(즐거움, 호전성, 욕망, 부드러움, 권력, 냉소)들이 언급되고 있다.
저자는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책 4페이지에 언급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술작품에 부여된 질 또는 중요성은 상대적 개념이다. 예술작품에는 상당한 질적 차이가 존재하고,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도 그 장르의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보다 더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한 사회에서 어떤 예술가들은 주목을 받는 반면 다른 작품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질이 아니라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그 기준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기준이라는 것이 사회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 투쟁의 장으로서 예술의 정체성이 언급되었다면 다음 장에서부터는 문화상품, 정치적 연관성, 경제적 이해관계로서의 예술의 역할과 기능과 한계가 설정되고 있으며 기업화된 문화 속에서의 예술과 문화정책, 저작권, 문화유산, 표현의 자유 그리고 21세기 초반부터 화두가 되었던 미디어 매체와 예술과의 관계성에 대한 저자의 접근은 예술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한계성과 기능에 대한 분류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21세기 이후 변화된 예술의 위상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책 169페이지 발췌 <소비 자본주의의 부상, 특히 문화복합 기업의 확산은 정상적인 일상과 예술적 창작 과정 사이의 간극을 더 크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사회는 어디에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음악, 춤, 이야기 그리고 시각적 재현에 관한 전통적인 형식이 거의 존재하지 못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현대적 경향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책 후반에는 한국의 사례가 소개되고 있는데, 스크린 쿠터제 한국 방송법의 외국 콘텐츠 규제의 사례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도래에 따른 비 영어권 국가들의 문화 위기를 저자는 반복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문화다양성의 지속적인 추구와 이미 정치집단과 동급의 위치에 포지셔닝 되어 있는 기업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부가적인 언급은 있지 않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원칙수립을 통해 세계 문화다양성의 확보 필요성을 그 절박함을 부언하고 있다. (책 306페이지 발췌)
- 기업문화헌장을 마련해야 한다 - 문화헌장을 공표하고 국립예술위원회와 논의해야 한다 - 논의의 결과에 따라 헌장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 문화헌장 준수를 위해 도입한 조치에 대해 매년 보고하고, 국립예술위원회는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발간해야 한다 - 문화헌장이 최소한의 책무조차 충족하지 못할 경우 특정한 행위조건을 강제하는 지침이나 법적 도구로 대체되어야 한다 - 문화다양성 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내 활동은 종식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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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전공수업을 듣다가 받은 문제.
[Q. 광고는 예술인가 상업인가?]
난 당시에 상당히 오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광고는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 그렇지만 다분히 상업적인 성격을 가진 그 커뮤니케이션을 잘 달성하려면 예술이라는 탈은 얼마든지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예술도 광고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라고 요약할 수 있는 답이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답이 너무 오만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겹치면서 [예술의 위기]라고 이름붙은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예술, 경제, 문화 세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짚어보는 책.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난관이 딱 한가지 있다. 표지의 부제[우리 삶의 행복추구권이자 지역예술의 버팀목이 돼줄 문화아양성의 자유와 보호에 관한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도서와 다른 연구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책의 위력은 전혀 가볍지 않다.
1부는 소통이라는 목적아래 특수한 형식을 보여주는 예술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그 예술이라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생산/배급/홍보된다는 당연한 듯 이상한 그 현상에 대해 얘기하면서, 생산/배급/홍보의 수단이 누군가(이를테면 기업)에게 소유되는 상황의 문제점을 짚는다. 그리고 다시 그 문제점이 어쩔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말한다. 예술가의 역할의 한계, 소비에 제약이 없는 자유시장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정작 재미있는 부분, 주목해야할 부분은 바로 2부이다. 2부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저작권의 폐지]라고 할 수 있다. 2부를 읽으면서 비로소 이 책이 예술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 예술을 다루는 방법론에 가까운 책임이 드러난다. 그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유래없는 위기를 맞은 것처럼 보이는 예술에게 창의성이라는 그 핵심적인 특징을 되찾아주는 방법은 저작권의 페지라는 것이다. 일부 문화복합기업이나 유명한 예술가가 저작권을 통해 가지는 수익은 개인에게는 좋을지 모르나 예술이라는 분야에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따라서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그 자체로 어떤 수익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예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작권을 폐지하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 기업의 측면에서, 예술가의 측면에서, 소비자의 측면에서. 그 뿐만 아니라 법, 국제 제도, 첨단기술, 경제정책, 문화유산의 측면까지 모든 지식이 총 동원되어 있다.
[예술의 위기]는 제목과는 달리 예술이라는 분야를 깊게 다루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다. 생산자, 소비자, 공급자라는 구조를 바라보되 그 대상이 예술이라는 분야일 분이다. 오히려 정치, 경제서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 책이 과연 예술의 위기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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