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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겪게는 되는 다반사나 좀 더 한차원을 넘어서 사고를 고찰하거나 대상을 관찰할 경우 거시적 즉 매크로적인 사고에 익숙해 있다. 특히 우주라는 담론적인 개념에선 그 방대함과 거대함에 자칫 기가 눌릴 수 밖에 없다. 인류가 고안한 아니 정의한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진 빛의 속도로 우주의 범위를 표현하고 가장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추론되는 은하 역시 우리의 상식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숫자들의 향연속에서 그저 멍해질 뿐이다. 이런면에서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 세상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보이지 않는게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라는 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매크로적인 그리고 그 크기의 정량화를 가늠할 수 없는 세계를 과연 우리는 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역으로 생각해서 우주-->우리은하-->태양계-->지구라는 크기의 절대화를 축소하여 마이크로적인 시각으로 대상을 볼때 비로소 현학적인 대상으로 가늠자의 범위내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마이크로적인 범위 즉 우리가 쉽게 보고 넘기는 대상들을 우리는 많이들 외면하고 있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볼 필요성이 없어서 넘어가는 것인지 몰라도 다름아닌 바로 우리 발길에 닿고 손길로 느낄 수 있는 미시적인 대상에 대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같은 추세로 가면 머지않는 장래에 환경파괴로 인한 엄청난 댓가를 치룰것이라는 대재앙을 여기저기서 예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저자는 나름대로 이 책에서 자연의 위대한 힘을 확인 시켜준다. 한때 황무지화된 들판과 초원 그리고 개울과 숲에서 인간의 약간의 노력(부작위을 포함해서)만으로도 자연은 그 자정능력과 회복능력에서 탁월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대표적 사례로 보아서 그동안 환경파괴에 앞장선 인류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인류와 자연과 우주라는 존재는 같이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중에서 인간인 우리에게 선택의 폭이 다소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인류가 수렵, 채집생활을 포기한 오래전 부터 자연에 대한 인공적 변경과 우월의식은 가졌던 것이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의식은 버리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인류와 자연의 대립관계가 아닌 상호유기적관계를 인식하고 상생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자신이 오래동안 걸어왔던 길주변의 아주 작은 세계를 통해서 재확인 하고 그 생명력의 기적에 다시금 감탄한다. 그동안 너무 거시적 시각에서 접급했던 인류와 자연과의 공생관계의 방법을 작은 숲과 개울에서 찾은 것이다. 저자와 같이 걷는 길은 주변에 햇살을 머금고 있는 숲과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그리고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는 초원에는 자연 나름대로의 규칙과 생명의 기적이 숨어있는 것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미스터리의 해법이 바로 우리 발아래에 놓여있다. 대우주의 거대한 생명이 바로 1마일속으로 고스란히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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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어떤 경로로 구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읽으려고 산 건지, 우리 애들에게 읽으라고 사 놓은 건지. 천문학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걸로 봐서는 내가 읽으려고 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과학과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안 읽었더라면, 섭섭할 뻔 했다. 과학자가 과학 이야기를 하면서 문학적 감수성까지 보여 주면, 나는 아주 잘 빠져든다. 어쩌면, 아는 것도 많으면서, 그것을 이렇게 시적으로 나타낼 줄도 알다니, 웅얼웅얼... 어떤 지도를 받았기에 이렇게 다 잘하게 된 것일까...감탄하면서. www.ScienceMusings.com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이다. 나는 이곳까지 들어가 보고야 만다. 영어가 왕창 떠오르는 것이 좀 어질어질하기는 했지만, 괜히 뿌듯해진다. 천문학자라고는 칼 세이건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더 알고 싶고 더 읽고 싶은 새로운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세상에나, 어쩌자고, 그의 웹사이트는 뒤늦게 나를 한 번 더 감동시키는 것인지. 갤러리에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곳들의 사진을 담아 놓은 것이다. 방금 책에서 읽은 바로 그 길, 그 나무, 그 정원, 그 꽃들의 사진을. 우주천문학자라면서, 하늘을 보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바로 그 하늘 아래 땅 위의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고 말하는 작가. 우주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노라고, 길을 걸으며 풀을 밟으며 벌레를 만나고 꽃을 보면서 우주를 확인한다는 작가. 어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데 술술 넘어가는 책이 아니다. 미국 지도를 찾아 그가 살고 있다는 동네를 확인해 보기도 하고, 그가 쓴 다른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책을 읽고 난 뒤에도 내 마음이 여전히 설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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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다.여지껏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라는 당연한 믿음으로 당연하게 바라본다.쳇 레이모의 글은 우리의 무관심에 제동을 건다.일반인과 전문가의 격차가 너무 커져버린 과학의 세계에 그는 1마일의 다리를 놓아 산책하듯 가볍게 일상의 언어로 과학을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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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연에의 몰두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 줄 것이다. 나는 (생명 나무의 사랑스러운 잔가지인) 손녀와 함께 물가 초원 옆에 서서 대담한 캐나다 거위(그러니까 브란타 카나데니스)와 덜 공격적인 물오리(아나스 폴라티린모스)에게 빵조각을 던지면서 미궁 속에, 초원의 퇴비 속에. 생명이 우글대는 어두운 시간의 심연 속에 나를 뿌리박게 하는 수십억 세대의 인력을 느낀다. p 152
‘한 천문학자의 사계절 산책기’라는 부제가 아니었다면 천문학에 관한 다소 어려운 책이라 여기고 읽지 않았을 것이다. 천문학은 우주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던가. 지구과학을 끝으로, 밤 하늘의 별을 보는 것 외에 관심이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생각만큼, 쉽게 읽히지 않았다. 책을 손에 들었다, 내려 놓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미국의 천문학자 쳇 레이모 교수가 37년 동안 다녔던 1마일의 길, 그 길에서 만나는 자연과의 만남이 아니라, 나는 그의 이야기를 지식으로 이해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1마일(1.6km)의 길을 매일 같이 걸어서 노스이스턴의 마을의 집과 직장이었던 스톤힐 대학을 출퇴근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그가 걷고 있는 길이 100년전 산업혁명 당시 삽을 만들어냈던 역사를 시작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까지 이른다. 천문학자라 그랬을까? 첫 레이모에게 제목 그대로 1. 6km의 길은 우주였다. 길을 걸으면 만나는 마을, 숲, 개울, 물가 초원, 정원은 모두가 우주의 시작이었고, 구성원이었으며, 신비로움이었다.
밤하늘의 시인답게 그는 시종일관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연을 묘사한다. 천문학만이 아닌, 생물학, 지질학, 인류학까지 조곤조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쳇 레미모 교수가 산책 길을 떠올리면 그 길에 들어선 느낌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는 우주가 아닐까. 문득, 내 눈에 보이는 산과 나무가 태초에 어떤 형태로 어떻게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나 생각해본다. 한 편으로 우리가 맘껏 누리는 자연이 파괴되지 않고 후세에 전해질까 염려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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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있다. 같은 공간일지라도 각 개인의 의식에 따라 다른 우주가 된다. 매일 반복되는 걷기에 한정된 공간은 전 우주를 생각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쳇 레이모의 1마일 속의 우주가 그렇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또한 과학적인 사색을 함께한다. 그가 발견한 돌 하나로도 지구의 생성과정을 사유한다. 털부처꽃을 관찰하면서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생각한다.그래서 감상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개발을 반대하기보다 자연과 인간의 속성을 이해하고 합당한 길을 찾기를 바란다.
우주가 본래 복잡성을 만들어내기에 시간의 화살을 되돌려 처음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선진환경보호자들이 개발도상국에게 줄 것으로 단순히 '야생을 보호하자'가 아니라 자원경영의 윤리(심미적 토지경영)를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물질에 대한 새로운 지식은 세계의 신비를 설명하기는 커녕 알수록 물질이 우리가 감히 짐작했던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고 하는데, 아마도 과학의 발달을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한없이 복잡한 자연 앞에 과학하는 사람들의 겸손한 마음가짐을 주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제왕나비에 보내는 감탄과 찬사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황홀한 감탄이자 우리가 그런 자연들을 어떻게 보호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일깨운다.
사람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부와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야생과 인공, 양극단 어딘가에 있는 아르카디아인 정원을 대부분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사실 완전한 야생이란 없다고 본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 여유가 생겼을 땐 심미적 이유로 인공을 가미해왔다. 저자가 거니는 거리도 처음에는 개발에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옴스테드라는 조경사에 의해 아름답게 가꾸어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되찾은 것이다.
책에 소개된 영국인 길버트 화이트(1730-1793)는 25년간 자연관찰일기를 남겼는데, 그날 그날의 기온, 기압, 풍속등 관심사를 모두 기록했는데, 그 자체가 시라고 한다. 그의 좌우명이 멋지다. "나는 가슴설레는 산들바람을 홀로 만나고 활짝 펼쳐진 자연의 책을 감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