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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슬프지만, 궁극적으론 긍정의 미학을 말하고 있는 작품
"조금은 슬프지만, 궁극적으론 긍정의 미학을 말하고 있는 작품" 내용보기
... 그렇지만 세상은 소용없는 몸짓에 기대어 아주 소량의 소용 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덧없이. 그녀는 안다. ... ... 추운 겨울 포석이 깔린 분수 주변의 돌바닥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는 모습은 뭐랄까, 보는 이들의 마음 구석에 하나 정도는 숨겨두고 있는 가장 불편하고 부끄러운 생각들을 불러내곤 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녀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 김경수라는 이가
"조금은 슬프지만, 궁극적으론 긍정의 미학을 말하고 있는 작품" 내용보기
... 그렇지만 세상은 소용없는 몸짓에 기대어 아주 소량의 소용 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덧없이. 그녀는 안다. ... ... 추운 겨울 포석이 깔린 분수 주변의 돌바닥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는 모습은 뭐랄까, 보는 이들의 마음 구석에 하나 정도는 숨겨두고 있는 가장 불편하고 부끄러운 생각들을 불러내곤 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녀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 김경수라는 이가 쓴 이 소설의 해설에서는 이 작품을 우화소설, 혹은 환상소설이라고 구분할 수 있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포스트모던적인 환상/우화 소설. 잘 된 작품이다. 하지만, 마르께스와 비견될 만한 성격과 더불어 요시모토 바나나식의 분위기도 조금은 느꼈다. 이건 일차적인 인상이었고...... 아무래도, 작가의 대표적 단편중 하나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언급할 수 밖에 없다. 이 장편은 십여년이 넘는 인생경험의 추가와 성찰을 통해 다시 쓴 '꽃잎'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꽃잎'을 연출한 장선우 감독에게 분노를 느꼈다. 영화를 먼저봤고, 시대에 맞선 이들이 격는 나약함과 좌절을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어릴때 생각했다. 그 이후에 원작 소설을 보았을 때, 상당히 정제된 문장으로 우화처럼 쓰여있는 그 분위기에 참신함을 느꼈던 것 같다. 장선우의 오버는 부채의식의 발로로 운동판 정서를 과하게 덮었다는 것에 한 측면이 있고, 천박한 남근주의의 클리셰로 떡칠을 해 놓았다는 것에 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분노'라고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당연히 개인에 대한 분노는 아니다. 그 작품(영화)의 저열함에 분노를 느낀다는 것일 뿐이다. 비록 아주 친한 사람(우리 작은형)이 그 영화음악으로 떴고, 음악이 좋았다는 건 인정한다고 하더라고 말이다. ^^ 왜 분노를 느끼느냐.... 물론 내 개인 판단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작가의 의도를 모르고 지 맘대로 원작을 훼손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느껴진 분노다. 아마 영화를 먼저보고, 소설을 나중에 봐서 그 당시에는 그 괴리를 잘 못느꼈나보다. 주인공인 소녀/여인이 외상을 가지고 방랑을 하는 모티브,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무기력함과 집착, 그리고 찾아나섬. 그러다가 우연히 만나는 이들 - 룸펜. 기본 플롯이 딱 '꽃잎'이 아니더냐. 단지 외상이 직접적인 시대적 배경을 가진 폭력에서, 간접적인 시류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폭력으로 바뀐것이 다르고, 주변인들의 성격들이 운동판의 개인들에서 보다 일반적인 이들로 바뀐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 짧은 단편을 확장하여 장편이 되었더라도, 반복적으로 '꽃잎'을 상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영화가 떠오르더라. 그리고, 이 작품이 그 감독에 의해서 그런 스타일로 영화화 된다고 한다면, 진짜로 짜증이 날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괜스레 장감독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거다. 두번째로 인용했던 부분, 그게 이 작품을 관통하는, 그리고 동시에 '꽃잎'도 관통하는 주제를 상장하는 문장이라고 본다. 박제화되어가는 자신으로부터 탈피하여, 그냥 순수를 찾아가는 여정에 들어선 주인공의 행태를 나타낸 것인데,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절대미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감동을 받는 사람들의 정서를 표현했다. 내가 스스로 뭔가를 속이고 있구나, 뭔가를 부자연스럽게 억누르고 있구나, 그걸 일깨워주는 저 아이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차마 계속 쳐다보기가 어렵구나, 하지만 눈을 뗄 수 없구나.... 이런 정서 말이다. 주인공 지니는 스러져가면서 아주 소량의 의미있는 몸짓을 세상에 남겼다. 마네킹으로 살아가느니, 그냥 자신의 몸짓을 가지는 이별을 택한 주인공이다. 작가의 문학적 의지가 반영된 것과 같은 문장,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이 작품을 쓰게 했다", 그래 이거인 듯하다. 부채의식의 살풀이도 아니고, 리얼리즘을 가장한 남근주의적 환타지도 아니다. 긍정의 미학이 잘 살려진 작품이라고 본다. 좋다.
e****s 2004.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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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빛을 뿜는 섬광같은 순간이 있다... <마네킹>
"살다보면 빛을 뿜는 섬광같은 순간이 있다... <마네킹>" 내용보기
살다보면 섬광처럼 빛을 뿜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대저 섬광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러하듯 그 순간은 곧 자취를 감추고, 그 여운만이 길고 진하게 낙인찍힌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간혹 어떤 이는 그 섬광의 근원을 찾아 멀고 험한 길을 떠나기도 한다. 그 중 또한 몇몇은 그 근원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근원을 찾지 못한다. 게다가 그 근원을 찾은 대부분은
"살다보면 빛을 뿜는 섬광같은 순간이 있다... <마네킹>" 내용보기
살다보면 섬광처럼 빛을 뿜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대저 섬광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러하듯 그 순간은 곧 자취를 감추고, 그 여운만이 길고 진하게 낙인찍힌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간혹 어떤 이는 그 섬광의 근원을 찾아 멀고 험한 길을 떠나기도 한다. 그 중 또한 몇몇은 그 근원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근원을 찾지 못한다. 게다가 그 근원을 찾은 대부분은 다시금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일에 소원해지고 만다.

소설의 발단은 바로 이러한 섬광과도 같은 순간에서 비롯된다. 스킨 스쿠버인 쏠베감펭과 핑크 아네몬은 결혼식 전날 마지막 추억을 담은 잠수를 감행한다. 그리고 모든 수면 아래의 활동을 마치고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순간 바로 그곳에서 CF 촬영에 한창이던 지니가 하강하는 중이었다.

“...바다색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얇은 청색 천으로 된 슈트를 입고 여자는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그렇듯이 몸을 구부리고 우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바다를 침대삼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지순한 표정을 짓고, 여자는 눈을 감고 하강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감고 있는 얇은 천은 바다 물결에 따라 흔들려, 여자는 투명한 수초에 휩싸인 신비한 여신 같았다. 바로 나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것만 같은 어린 여신.”

그리고 두 사람은 다음날 결혼을 한다. 하지만 피로연이 끝나고 찾은 바닷가에서 핑크 아네몬은 운명처럼 죽음을 맞이하고, 쏠베감펭은 결혼식 전날의 그 섬광같았던 순간을 찾아, 어린 여신 같았던 지니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우뭇가사리(지니의 엄마), 상어(지니의 오빠), 불가사리(지니의 언니), 소라(지니의 매니저)와 함께 살던 지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선다. 그 하강의 경험은 지니에게도 특별한 것이었음이 바로 그 이유이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 한 번의 하강. 기온과 색채와 물의 촉감이 그녀의 몸 속에 만들어내던 무한한 안도감...”

소설의 대부분은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골고루 빛을 보내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지니가 있다. 어린 시절 상어(의 것을 비롯한 많은 손들)에 의해 목졸린 이후 목소리를 잃은 지니, 하강의 순간 솔베감펭의 인생을 뒤흔들어버린 지니, 우뭇가사리의 막내딸이면서 집안을 일으켜세운 지니, 지니가 떠난 후 불가사리로 하여금 지니와 닮은 스스로를 찾도록 만든 지니, 솔베감펭과 함께 소라가 전국을 여행하며 사람찾기에 몰두하게 만든 지니가 있다. 모든 일의 시작이고 끝이며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창궐케하며 모든 행동을 마무리짓는 절대 여신의 자리에 바로 지니가 있다.

하지만 그 끈끈해 보이는 최윤의 문체에도 불구하고 설정 자체가 튼튼하게 마감되고 있지는 않다. 마네킹이라는 제목이 결국 어린 시절부터 CF 모델(그럼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로만 살아왔던)의 삶을 살았던 지니를 상징한다는 설정도 어설퍼 보이고, ‘핑크 아네몬의 죽음은 죽음 이후에도 오래 계속됐다’는 쏠베감펭이 아내의 주검을 뒤로 한 채 지니를 찾아나서는 것도 납득 불가능이다(모든 납득 가능한 것만이 소설의 재료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또한 지니의 목소리를 빼앗는 가족들의 손이라는 설정도 너무 표면적이고 쉽다. 대체적으로 각각의 문장이 보여주는 그윽한 은유의 빛에 비해 내러티브는 너무 조악한 것 아닐까.

다시 한번 말하건대 사람이 살다보면 섬광과도 같이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어쩌면 문학이란 바로 이처럼 개개인이 느끼는 섬광의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길이길이 남기는 작업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런지도 모른다. 작가라면 모두들 이러한 순간을 침이 마르도록 고대할 것이고, 자기가 지금 느낀 것이 그토록 고대하던 그 섬광이라고 믿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감 있는 설명과 설정, 묘사와 은유가 제대로 결합되지 않을 때 그 섬광은 너무나 개인적인 것에 머무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ps1. 『마네킹』은 계간지인 <문학/판>에 연재되었던 것이다. 고백하건대 난 우리나라 문학지 연재소설들을 불신하는 편이다. 작가와 평론가 사이의 그 끈끈함이 준비 안된 우리의 소설가들을 서두르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ps2. 글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마루야마 겐지의 『천년동안에(문학동네,전2권)』라는 소설이 자꾸 떠오른 것은 왜일까. 그가 그 소설에서 보여준 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가 갖는 실재감과 최윤이 보여준 환상적 리얼리즘 세계의 부재감이 비교되어서는 아닐까. 아쉽다.

ps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간에 출간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어지간히 잘 쓴 소설이라는 점을 힘겹게 덧붙여야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7.02.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