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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좋은 책들을 많이 읽는다. 그래서 별점을 참 후하게 주었다. 이 책 서울 북촌..을 읽고 무슨 일이 있어도 별점은 박하게 주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너무 인간적인 감성이 넘치는 책이라 두 손들고 다시 별점을 후하게 주려고한다. 이 책은 인간적인 미에 더해 서울의 고풍스러운 도시풍경과 인간적 삶의 자취들 그리고 우리가 잊었던 우리의 살아온 흔적들 진솔한 모습들을 이 책에서 아주 자세히 보았다. 서울에 한옥이 그렇게 많이 없어졌나를 생각해볼때 정말 그렇기도하겠구나란 생각이든다. 재래시장도 우리주변에서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단독주택도 기회만 닿으면 부수고 건물을 올리는 현실에서 인간미를 상실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아파트만 지으면 모든게 다 해결된다는 생각들 골목길이 있는 동네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으려는 사람들 돈만 바라고 사는 우리의 일상들 성적만 좋으면 자식의 감성이 메말라도 상관없는 사람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일을 하고 사는데 왜 우리는 행복을 멀리하고 공부만하려할까 이 책은 서울에 마지막 남은 삶의 공간인 북촌의 한옥마을서부터 얼마전 서울시장이 밀어버린 피맛골의 이야기와 마지막 황족의 이야기들 예전에 야사로 전해진 한양의 건축물과 그 뒷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아주 진솔하게 풀어쓴 아주 보기드문 우리의 자화상을 그린 책이라 할 수 있곘다. 바쁘신 분이라도 자기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이 책은 제공한다 나는 단언한다. 모쪼록 이 책을 볼까 고민이라도 한 번 해보신분은 무조건 읽기를 진정으로 간곡히 간구하는 바이다.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책이다.
제목 : 조선은 대통령제 국가였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다.
역사의 발자취다..
조선시대 상놈은 양반의 20배였다 지금은 모두 양반의 후손이다.(노컷 조선왕조실록) 일제시대 친일한 사람이 독립운동한 사람의 수십배였을것이다(와다하루끼의 북한현대사, (문재인 ,한국에 재앙),아리랑,장준하평전) 지금 다 독립군 후손이다. 정은아씨가 사회를 보는 어느 프로에서 논객분이 말한다. 중앙청헐때 지하실에서 나무말뚝이 나왔어요 거짓말이다. 이건 건물을 받쳐주는 받침대였다.(조선총독부건물 철거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건물안정을 위해 설치된 것이다. 국민들의 정서를 이용해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 시키려고 한 이야기다. 우린 그런식으로 자신이 보고싶어 하는것만 본다.
걸리버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는 백제인 행기큰스님이 지은 동대사의 백제대불을 보고 걸리버여행기의 영감을 떠올렸다고한다. 지금 일본에 남아있는 고대사찰 중 백제사가 다섯군데나 있다. 아무도 안건드린다.(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 1400년된 건축회사 곤고구미도 백제인 유중광이 만든것으로 지금도 일본에선 곤고구미가 망하면 일본이 망한다고 외치며 소중하게 보존하고 있다.(일본의 상도) 시텐노지 창건을 위해 본국 백제에서 건너온 장인이 3명 있었다. 지금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93년8월13일 중앙청철거반대 11.9% 찬성68.4%로 압도적 철거입장이었다. 조선일보,김종필,박지원,KBS,국립박물관,경주국립박물관,이회창,김대중 같은 저명 인사들은 반대했자만 철거했다. 고려시대 진봉선이라고 100년간 일본이 고려에 조공한 일이 있었다. (대마도에서 만난 우리역사) 역사는 돌고돈다. 중앙청은 독일건축가 게오르그 대 라란데가 설계를 했고 폐렴으로 완성을 보진 못했지만 초기조선호텔,서울역도 그가 설계한 것이다.
외국은 전승했을때 국기계양하는걸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우린 김종필총리가 9.28수복 당시 태극기 단 깃봉만이라도 남겨두자고 건으를 했지만 김영삼대통령은 무시하고 없애라고했을때 참전용사회,독립운동협회 우파단체 어디에서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오로지 먹고 사는것에만 관심이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변절한 첫번째 이유도 돈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차고문화가 발달해 있다. 1938년 빌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에디슨가 367번지를 빌려 그집 창고에서 휴렛패커드를 창업. 지금도 에디슨가 367번지를 성지순례한다. 스티브잡스,워즈니악,구글의 어도비등 이리하여 차고문화는 실리콘밸리의 창조성과 기업가 정신의 대명사가 되었다.(운동화를신은마윈)
티벳,위구르,내몽골,간도는 중국의 식민지다. 중국땅이 아니다. 어느나라에나 반체제 인사들이 있다.중국공산당,중국반체제인사들 모두 이곳은 중국땅이라고 얘기한다.(중국의 조용한 침공) 일제시대때도 반체제 인사들이 있었다 일본관료는 조선이 일본땅이라고한다. 반체제 인사들은 조선은 일본땅이 아니라고 한다. 중앙청 철거전에 KBS에서 철거를 찬성하는 성신여대 사학과 김현희교수와 철거에 반대하는 이탈리아에서 고건축학을 전공한 젊은 교수간에 설전이 있었다. 한국사학계는 철거하자는 김현희교수편이었다. 그후 오세훈서울시장이 베네치아 골목같은 유서깊은 피맛골을 민다. 가장 오래된 극장인 단성사도 민다. 중앙청철거에 대해 설전을 벌이던 김현희교수와 젊은 교수 모두 관심이 없다. 지금의 중국사람들 보는것 같다.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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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년간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으로 일했던 '김유경'님의 글과 사진작가 '하지권'님의 사진이 멋스럽게 어우려진 책이 바로 '서울, 북촌에서'이다. 흔히 '북촌'하면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를 일컫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그곳에만 한정지어서 '북촌'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옛조상들의 멋과 전통이 있는 강북지역의 한옥촌을 비롯한 궁궐터와 옛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많은 곳들의 골목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옛스러운 모습과 풍취가 좋은 곳들, 성벽에 둘러싸여 있던 곳들,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들을 모두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이 책에서 '친근한 숨은 힘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울 생활의 한 전형으로 붙여진 이름'(p5)이 북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2003년이래 사진작가인 하지권씨와 동행하면서 심도있는 취재를 시작하였으니, 이 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품을 팔아서 얻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은 인사동 쌈지길 정도가 기억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이 아주 많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안국동에 있는 안동별궁에 위치한 풍문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 그 일대가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강남으로 이전을 한 많은 학교들이 그곳에 상당수가 있었다. 이화여고, 배재, 진명, 숙명, 창덕, 경기여고, 경기고, 중앙, 휘문, 중동 등이 그 일대의 중고등학교였다. 버스노선도 많지가 않아서 그 당시에는 종로2가, 광화문, 무교동, 광교에서 부터 걸어 다녔으니, 봄부터 가을에는 여학생의 하얀 교복과 남학생의 파란색, 회색 교복의 물결이 그 일대를 수놓았다. 어려서 부터 안국동에서 인사동에 이르는 등하교길에 골동품상이며, 고가구점을, 조계사에서 관훈동에 이르는 길에는 서예용구점, 탱화와 불상, 그리고 세밀하게 목련, 목단, 국화 등을 수놓은 고수예품을 파는 상점들을 끼고 등하교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학창시절부터 북촌의 멋스러움을 느끼면서 자랐다고 생각된다. 그당시에는 골동품상들의 주인들도 친절해서 하교길에 학생들이 기웃거리면서 이것 저것 신기한듯 살펴보아도 잔소리 한마디하지 않고 반겨 주었었다. 거기에 학교의 사생대회와 미술대회는 항상 그당시 비원이라고 불리던 창덕궁의 깊은 궁궐에서, 아니면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하였으니, 고궁과의 인연도 깊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경회루를 맘대로 걸어 다니고, 창덕궁의 향원정도 멋대로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특히, 학교 뒷담을 따라 가회동에 이르는 길에 전 대통령인 윤보선의 저택은 담길이만도 끝이 없었으며, 그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위을 따라 나즈막한 한옥들이 꽤 있었다. 이런 시절을 추억을 되새기면서 읽는 '서울, 북촌에서'는 정말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책임에 한 눈 팔시간도 없이 책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 지금 이곳에는 마지막 남은 900여 채의 한옥들이 있다고 한다. '600년 봉건 사회의 핵심을 형성한 서울 사람들의 조용한 자신감이 서려 있는 마지막 모습' (p37)을 작가는 골목 골목을 따라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전해 준다. 경복궁 서쪽 통의동에는 대궐 환관들의 집들이 있었는데,안채와의 연결이 비밀스러운 구조로 지어져 미로같던 건축물들이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거의 보호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체코의 프라하에 가면 '황금소로'가 있는데, 길지도 않은 좁은 골목들이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살았고, 소설가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었다고 관광객이 발디딜 틈없이 북새통을 이루고, 유럽 광장의 중세 시대의 보도블럭은 닿고 닿아서 빤질빤질할 정도로 오래되었는데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경박한 인식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같다. 개발보다는 보존을 해야 되는데, 그대로 두면 아름다운 골목길들도 소방도로 확장이라는 미명하에 넓은 차도로 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있어야 운치가 있는 길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구태여 개발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왜 인위적인 모습의 이상한 기형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키는지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행정담당관들의 무지를 한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아쉬운 것은 한옥을 비롯한 옛모습의 건물에 시멘트 범벅을 해 놓은 모습은 아예 얼굴을 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수치스러웠던 경우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일깨워준다. ![]() 전 총리이자 고대 총장일 지내셨던 김상협 총장의 개성음식 이야기는 우리의 마지막 남은 옛 음식에 대한 정갈함과 깔끔함과 함께 맛깔스러운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집의 안방 문짝에 쓰여진 예서체나 산수화, 그리고 민화에서 엿볼 수 있는 전통의 멋이 그대로 나타난다. 옛 조상들은 정원의 담에도 화초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화초담은 정원의 대용 역할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삼청동에 관한 글이다. '이 곳을 지나는 인파는 단순히 가게들이 호화로워서 쳐다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옷이나 음식이나 국적불명에 소위 퓨전이 범람하지만 삶의 어떤 정수라고 할 배경으로 쌀가게 옆에 보석 가게가 나란한 동네길이 태연해서 좋다.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박물관과 화랑과 대궐, 신구가 엇갈리는 건축과 진열장의 눈요깃거리, 다양한 음식점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천천히 떼고 여기저기 눈길을 주며 한가롭게 지난다. 오랜 골목길과 새 건물, 미술품과 진열장의 상품, 먹을 것과 가게 꾸민새, 예술과 자본 등을 만나는 길이다. 보도 폭이 좁고 오르락내리락 불편해도 삼청동 길의 생명력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골목을 들어섰다. 나갔다. 절벽위 맹현으로 올랐다 내려왔다 하는 시간은 전통으로 회귀하는 휴식이 된다. 더 좋은 점은 어슬렁거리는 산책이 무한하면서도 언제든지 바로 도심 속 업무로 복귀가 가응하다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삼청동은 불과 한 발짝 떨어져 있다. '(102~103) 바로 삼청동의 진정한 매력은 주택가의 천연한 분위기인데, 이미 그 매력은 반감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보존할 곳은 그대로 놓아두면 좋으련만.... 유명한 삼청각은 1973년 남북회담을 위해서 지어졌는데, 지금도 이처럼 잘 지은 한옥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 또한, 혜화동에서 성북동 올라가는 길목에 기념물 또는 민속자료로 지정된 예쁜 한 옥 세 채, 바로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의 집, 이재(또는 이종상)의 별장이 있는데, 이 한옥들도 제대로 돌보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어릴적엔 세검정이란 곳이 물놀이가던 곳이고, 이곳의 자두가 맛나기로 유명했었는데,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은 안평대군의 별장, 이항복의 별장, 흥선대원군의 석파정이 있다. 그런데, 이곳들도 세검정 바위아래까지 차가 드나들고, 생활하수가 흐르고 세검정 높은 바위벽에는 시멘트범벅이 되어 있다고 한다. 도시계획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미학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가로 정비로 옛 정취를 찾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노라.... 이렇게 서울, 북촌을 누비면서, 맛집도 둘러 보고, 연주회가 열리는 곳도 소개해 주고, 전시회와 박물관도 알려주니 꽃피는 따뜻한 봄날에는 서울의 북촌 나들이를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 ![]() 골동품하면 인사동이 본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도 인사동 개발로 아기자기한 맛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여기에서 청진동쪽으로 나와서 낙지골목에서 낙지볶음과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을~~~ 대학시절 이코스도 대학생의 낭만이 깃들었던 추억의 장소들이지만, 언젠가 한 번 가보니, 옛 모습을 찾기 힘들었고, 남아 있는 낙지 골목도 너무 지저분하고 퇴락해서 마음만 상하고 온 기억이 난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과 보존을 왜 조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의 상징은 무엇일까? 저자는 보신각, 광화문(익살스러운 해태상까지, 그런데 해태를 언제부터 해치라고 했을까? 해태의 원말이 해치이고 서울의 상징이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성돌이(서울 성곽돌기,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에 이르는 성곽 18.2km에 이르는 길) 등을 들고 있다.
재동에 있는 백송부근, 조선말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살았고, 그곳에서 역사적 모의가 이루어 지기도 했던 곳들, 그리고, 대궐여인들의 이야기... ![]() 이 모든 이야기들이 역사속 뒷이야기들로 재미를 더한다. 그밖에 성균관, 5월의 종묘대제, 불교 영산재, 각종 굿판이 일어나는 국사당의 이야기...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울, 북촌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로 우리가 알고 싶었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나처럼 인생을 한참 살아온 사람들은 옛 추억이 깃든 골목 골목이 눈에 선하면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만들어 준다. 이야기가 있어서 재미있는 서울의 북촌.... 그러나, 개발에 밀려서 옛 모습이 허물어지고, 허술한 문화재청의 관리에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야기들이 흘러간 역사속 이야기처럼 들려 온다.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친근한 힘처럼 서울, 북촌의 이야기가 다가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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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돌담길, 정감이 가는 골목과 담장이 인상적이어서 손에 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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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길이 넓혀지고 상전벽해란 말이 무색해질 정도 서울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주거개선이란 명목으로 삶의 질 향상이란 명목으로 서울은 전통이나 문화의 보존보다는 개발이 우선인 시대를 숨가쁘게 건너고 있다. 한반도의 중심도시가 된지 600년이란 역사를 지닌 서울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유럽의 도시를 보면 고색창연함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주 오래되고 유서깊은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도시 자체가 문화유적이란 생각이 들정도의 화면을 자주 보게 된다. 과연 선진국이라 다른군! 우리도 자칭 선직국이라 하고 20개국인가 22개국인가 하는 클럽에 가입하고 회의를 유치한 것을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들떠 알랑방구를 끼지 않았던가. 그럼 우리도 선진국 다운 안목으로 개발과 보존의 공존을 모색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하지 않은가 이말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수장되어도 대책이 없고,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피맛골이 사라졌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주 많이 사라지고 있고 명목하에 흙담이 시멘트 담이 되고 흙길이 포장도로 바꾸는 것을 보존이라고 해도 맞는 말인가? 추억이 사라지고 문화가 사라지고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나면 박제화되지 않을까?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려는 영국인 킬번, 미국인 바도로뮤씨와 같은 한옥지킴이 문화지킴이의 안타까운 뉴스를 보면 정말 너무 흔해서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시멘트로 지은 집을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인으로 20년간을 발품을 팔아 서울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취재하면서문화인, 주민들을 만나고 관련 문헌을 수집하는 저자의 땀이 행간마다 베여 나온 책이 '서울 북촌에서'라는 책이다.
북촌은 행정구역상으로 삼청동과 가회동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저자는 그 범위를 인근의 평창동, 성북동은 물론이요 한양 도성안의 전 지역으로 그 시야를 확대한다.
서울 하면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경희궁, 남대문, 동대문 식으로 로 보존된 명소만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서울에 이런 아름다운 골목길이 있구나. 일제시대, 전쟁, 개발독재를 거치며 하나둘 헐리고 잘리어나가고 시멘트로 포장되어 원모습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실하게 묻어난다. 수 많은 골목길을 오갔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체취, 나라의 정국을 논의했던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집들은 사라지고 겨우 표지석으로 남은 곳도 많지만 나름으로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켜켜이 담겨 있어 안타까움과 흐뭇함, 북촌의 골목길을 아이들과 손잡고 거닐고 싶은 마음이 흠씬 베어나게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가 그들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려고 찾는 것이 아닐진대 우린 명소위주의 관광아이템에만 눈길을 주고 있는지.
저자가 발품을 팔면서 성돌이를 하면서 다닌 한양도설의 도보여행길, 영산대제, 종묘제례 등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관광자원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올정도의 편벽고루함의 상징이었던 성균관의 오늘이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고향의 한옥마을이 문화마을로 지정되면서 고색창연했던 기와를 걷어내고 흙담길을 시멘트 돌담길로 새단장한 것을 보면 어릴 적의 추억이 모두 지워지고 전시물이 되어버린 안타까움이 서울 북촌이란 책에도 담겨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는 정책, 사람의 온기가 흐르는 유적이 되어야지 사람의 온기는 사라진 문화유산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엔 고루한 사람이란 말을 들어도 북촌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그분들과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우리 서울도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몰랐던 서울의 아름다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알게 해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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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서울은 참 추웠고 많은 눈이 내렸다. 추위와 눈 때문에 한동안 자전거 타기를 즐기지 못했고 대신 겨우 내 인왕산과 북악산, 효자동과 삼청동, 성북동 더러는 북한산 자락 평창동과 구기동 일대를 순서를 바꿔가며 걸어 다녔다. 요즘 손에 쥐고 있는 <서울, 북촌에서>라는 책이 소개하는 동네다. 굳이 순서를 이야기 하자면 책이 있어서 그 동네를 걸어 다닌 것이 아니라 그 동네를 걸어 다녔기 때문에 책 제목이 내 눈이 든 것이리라.
두 젊은이가 들어와 빈대떡 한 접시를 시키고 이야기도 하고 젓가락 씨름도 하며 웃곤 했다.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떠나간 젊음이 거기에 있다. 박인환의 시처럼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듯하고 젊음과 중년과 장년의 서정, 왁자지껄함이 그대로 꽉 차있는 공간이다. 옆자리에는 부동산 이야기부터 형이상학적인 내용까지 들려온다. 왁자한 소리들로 열띤 분위기를 내는 가운데 모든 계층이 어울려 있다.
책이 다루는 공간은 서울 북촌,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안국동, 계동, 삼청동, 효자동, 부암동, 성북동 등등, 거기에 이 동네들이 등지고 혹은 쳐다보고 있는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 자락들이다. 거기에 남은 어느 화랑, 어느 한옥, 어느 골목, 어느 계곡들에 관한 이야기들인데 어느 건물이 잘 지은 건축물이고 어느 골목이 과거를 잘 보존하고 있는 골목이며 어느 계곡이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더라는 이야기이리라 짐작하였지만 아니었다, 책은 계곡과 동네 골목을 밟고 다니던 발길, 건물의 문고리를 잡던 손길들에 관한 격 있는 여성이 조근조근 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그 목소리는 발랄함을 앞세우지도 정연한 논리로 날을 세우지도 않는다. 애써 귀 기울여야만 들리는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 다 담고 있는 그런 목소리, 누구의 것일까
박인희
http://blog.daum.net/oalbat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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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옛 한양의 중심지에 위치... 성북동 삼청동 인사동 안국동 가회동 ....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갔던 인사동은 이름도 낯설고 동네도 낮설었다.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다만 옛물건이 많고 신기한 물건들이 많은 그런 동네였다. 그곳들을 통틀어 북촌이라고 했는지 여부는 잘 몰랐다. 성인이 되어 갔던 인사동은 여전히 나에겐 별천지였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만날 수 있는 곳..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사실 처음 책을 접했을때.. 아 자주 찾던 곳..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곳이 북촌에 속해 있어 내가 참 작은 소견으로 그곳에 가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촌의 맛은 굽이굽이 골목길이 많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작은 몸짓이나마 가보았던 나의 의견도 작가님과 같다. 북촌만큼 골목길이 굽이치는 곳이 또 있을까? 그런데 요즘 새로운 상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그런 멋진 골목들은 찾아보기가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인사동등지도 소위말하는 돈이 되는 상점들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모습은 찾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세태를 지켜보시던 어떤 주민분이 이렇게 글을 남기셨다고 한다. "서울의 인간답고 그래서 그나마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자산을 잃고 싶지 않다. 너희들이 깨끗하고 멋지게 보이는 게 쓰레기였다는 건 서울서 70년 정도 살게 되면 알게 될거다." 사실 난 서울에 단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앞으론 어떨지 모르지만..) 그런데 단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는데 저 주민분의 말이 우리가 깨끗하다고 멋지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어쩜 쓰레기일지도 모른다는 저말에 너무 동감이 되는건 왜일까? 어쩜 외국에 소개할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던 어떤 저명한 인사의 말이 떠올라서 일까? 책을 한장한장 읽어나가면서 더욱 느낀건 (작가분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서울이 참 깨끗해지고 멋져지고 좋아지고는 있지만 너무 삭막해지고 현대화 되어서 우리 것을 많이 잃어 버린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게 아닐까란 것이었다. 현대식 건물은 어딜 가든 만나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옛날 한옥들이나 모습은 다시 재현할 순 없다.(많은 노력으로 가장 비슷하게 복원되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작가님 말처럼 옛날의 북촌을 느끼기 위해(많이 변하긴 했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작가님께서 20년 동안 취재하시고 5년동안 저술하셨다는 그런 수고로움으로 탄생한 600년의 이야기가 담긴 멋진 책을 옆구리에 끼고 북촌 순례를 떠나야겠다. 책으로만 북촌을 배우지 말고 발로 뛰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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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서 과거의 흔적이나 아직 남아있는 과거의 한 부분을 만나기란 어렵다. 세상은 점점 변화되고 발전하고 있기에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상기시켜 줄 만한 무언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소중하고 귀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현대 사람들은 발전하고 변화하기를 좋아하지만,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기에 아주 가끔은 과거의 추억이나 기억을 생각나게 해줄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바쁘고 편리한 지금의 시대에 또 다른 활력소와 생기를 불어넣어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방에 살고 있지만, 서울에 가본 기억을 더듬어 본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서울을 향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서울 하면 남산을 비롯한 경복궁이 떠오른다. 그리고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 광화문을 붉은 물결로 만들었던 곳을 비롯한 가보고 싶은 곳투성이다. 그런 서울에도 과거의 흔적이나 기억을 더듬게 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마치, 과거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울, 북촌에서」라는 책을 통해서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서울이 따뜻하고 정감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지금 시대에 서울은 급변화 함과 동시에 점차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재나 나라에서 보존하는 것을 빼고 나면 높은 빌딩과 세련된 건물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서울에서도 과거의 손때 묻은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골목이나 장소를 통해서 정감 가고 따뜻한 곳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과거의 흔적이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과거에 일어난 일들과 함께 역사적 배경으로 더욱 뜻깊은 장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에 담겨 있는 사진과 함께 저자가 가는 발길을 따라가면 이런 곳도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북촌이라는 곳이 점점 알려지고 유명해지면서 과거의 전통이나 문화에 대한 모습이나 보존에 대해서 관심이 더해지는 것 같다. 편리함만 추구하는 지금의 시대에서 과거에 직접 손으로 올린 기와나 한옥은 소외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북촌’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북촌에서만 볼 수 있는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을 통해서 한옥촌의 멋스러움과 과거의 전통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소외되고 점점 잊히는 북촌에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전통과 한옥 그리고 과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북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바쁜 생활 속에서 한 번쯤 뒤돌아보게 해주는 정겨우면서도 과거 여행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기에 ‘북촌’은 도심 속의 오아시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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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알기로 북촌에 관한 책이 꽤나 많이 나오고 있는 것같다. 그중에서 선택한 책! <서울, 북촌에서>는 저자가 20년을 걸려 준비한 책이라고 한다. 한옥에 관한 책을 몇몇권 읽었던 것같은데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율이네집>이라는 책뿐이다. 한옥을 개조해 살고 있는 세명의 가족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우리의 한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한옥이 주던 포근함을 잊을수가 없게 만들었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린 시절 방이 두칸뿐인 작은 한옥에서 할머니와 언니와 함께 잠을 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땐 시골에 대부분이 한옥집이었던 것같은데, 지금은 전부 양옥집이 아닌 곳이 없고, 커다란 공장들이 여기 저기 들어서 있으니 옛 추억을 떠올리기엔 너무나도 삭막한 동네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경주 한옥마을을 지날때면 참 많이도 부럽기도 하고 참 아릅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서울에도 그런 한옥들이 보존 되어 있는 곳이 북촌이라 들었다. 아직 서울 북촌을 한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그곳에서도 그런 인간미넘치는 따뜻함을, 오래됨의 미학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북촌에 대한 막연한 기대때문에 책장을 넘기기전 내 가슴이 더 두근거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서울, 북촌에서>는 정말 내 가슴을 두근거리기에 충분했다.
북촌 한옥마을, 정작 가보진 못했지만 책으로 만난 북촌은, 정말 오랫동안 우리들이 보존해야할 곳중에 한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게끔했다. 소방차가 들어가기 힘들고, 자본이 유입되면서 보존되어야할 우리들의 한옥이 사라지고 있는 그 모습은 정말 씁쓸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은 한옥이라도 제대로 보존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간절히 들게끔했다.
서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높은 스카이라인에, 북적대는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자동차들인데 이제는 북촌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북촌에서는 우리의 아름다운 한옥을 만날수 있고, 그곳에 몇대째 살고있는 사람들의 인정을 느낄수 있는, 사람냄새가 물씬 맡을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들의 삶 그 자체가 바로 북촌이 아닐까? 책을 통해 만난 북촌은 어느 것하나 없어서는 안될것같은 곳이었다. 상업자본의 유입으로 오래된 쌀가게가 문을 닫고, 포목점이 문을 닫고, 유명한 커피 전문점이나 대형화랑들이 그곳을 매워내고 있다지만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살아 숨쉬는 역사를 없애는 것이 아닐까,
참 많은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아직 서울에는 이런 곳이 남아있다는 뭔가의 위안을 받을수 있었던 책이다. 울퉁불퉁한 대들보하며, 제대로 얹어진 기와하며, 뜨끈뜨끈한 온돌까지 한옥은 정말 우리들에게 잊지 못할 그런 마음의 집이 아닐까 싶다. 북촌에가면 그런 집들을 볼수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시민들은 복을 받은게 아닐까~ 요즘 북촌은 정말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숨을 쉴수있게 해주는, 숨통이 탁 트이는 그런곳이 아닐까 싶다. 아아아아아~ 책을 읽고나니 정말 북촌에 꼭 한번 가보고싶다. 아니 좀 오래 머물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든다. 책에 나오는 많은 곳들을 둘러보려면 몇일이 걸릴까~ 저자는 20년이 걸렸다는데~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우리의 아름다운 골목을, 우리의 한옥을, 우리의 인정을 느낄수 있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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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촌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옥이 가진 매력에 더해 현대식 인테리어가 접목되고, 문화예술 관련 인사들의 한옥과 상점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북촌을 안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처음 안 건 두 번째 직장이 경복궁 앞에 있는 동십자각 근처에 있었을 때다. 한 8개월 정도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 삼청동으로 산책을 가고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 뒤로 서울성곽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잡지에서 오래된 한옥과 함께 북촌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북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촌 혹은 한옥에 대한 나의 관심 또한 높아졌다. 북촌 한옥마을에 들어가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북촌을 소개하고 있는 책을 읽었다. 김유경 기자가 글을 쓰고, 하지권 사진작가가 촬영한 <서울, 북촌에서>(민음인, 2009년)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은 작가가 20년간의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썼다는 것이다.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북촌을 수없이 취재하며 글을 썼고, 북촌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서는 본격적으로 5년여를 준비해 이 책을 세상에 낸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책들이 북촌의 간단한 역사와 풍경, 가볼만한 곳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북촌이라 상징할 수 있는 서울의 한옥동네와 그 역사들이 아주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한옥마을과 그 골목길이 신도시처럼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을 쓰기 위한 발품은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한옥을 소개하면서 집 주인의 내력이 일일이 밝혀지고,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줄을 잇는다. 때론 그 집을 지은 대목장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로 인해 독자들은 북촌 한옥마을에 담긴 내력과 정서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깊은 내력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조상들의 삶과 영혼이 깃든 주거형태란 점일 것이다.
덕분에 북촌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기쁘고 슬픈 과거의 역사와 변모해 가는 북촌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까지….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북촌의 인기가 높아가면서 집값이 올라가고, 한옥 개량이 한옥의 본모습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현대식 일변도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옥과 양옥의 좋은 점들을 취합해 개량해 가는 한옥은 반드시 북촌에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북촌에서는 기왕이면 우리의 전통양식을 따르는 한옥을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촌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가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점 중 하나라도 생각한다.
by 꽃다지, 2009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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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쪽에 나오는 4.성돌이 이야기가 굽이굽이 흐른다 부분을 읽으며 서울성곽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서울성곽투어를 실행하여 가을의 정취에 어울리는 즐거운 성곽걷기를 하였다. 4군데 포스트에서 스탬프를 찍으면 기념으로 완주 배지를 주는데 그다지 이쁘진 않지만 완주했다는 기쁨에 나름대로 뿌듯하다.
북촌의 과거 사진도 여러장 수록하여 읽는 즐거움에 더해 눈으로 보는 풍요로움까지 선사해주는 책이다.
삼청동길도 아름다워 특히 삼청공원에서의 주위를 돌아봄은 아직도 내 머리에서 시원한 기억이다...
서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책으로 북촌을 알고싶은 사람들은 가쁜한 마음으로 1독을 권하고 싶다. 다시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의 아름다움은 역시 북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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