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작가후기에서 말하길 우익청년 탄생기를 한번 써보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건전한 상식과 나름의 철학을 토대로 한 우파가 득세한 나라에서는‘우익청년 일대기’로 분류될수 있는 소설이 많이 나와있지만, 우리나라는 줄구줄창‘좌익청년 일대기’만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정당성도 없고 부도덕한 우파가 득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舊우익은 일제와 독재에 부역한 원죄가 있고, 상대적으로 젊은 뉴 라이트는 좌파에 대한 피해의식과 원한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는 우익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고 얘기한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느냐가 우익의 탄생비밀 이란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영어학원을 다니다 만나게된 스무살 연상인 화가의 유혹에 빠져 그녀와의 성적유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금이와는 달리, 은이는 어느날 화랑에서 본 한소녀의 잔영을 잊지 못하고, 그후로 이성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금이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자신을 느낀다. 이러한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고있던 은이는 어느날, 이나라 뉴 라이트들의 중심인 법대교수 작은 아버지와의 얘기중, 자신의 노트를 본 작은아버지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그의 작은아버지도 똑 같은 고민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빠져 나온적이 없기 때문이다. 은이의 작은아버지는 이야기 한다.“이땅의 젊은 우파라면 강한 것이 선한 것이고, 강한것이 아름다운 것 이라는 너의 말처럼 그렇게 자긍심과 자기정립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에는 진리가 없고, 유일한 진리라면 정의로 포장된 강자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진리 따위는 없다는 비밀스러운 지혜는 소수의 선택된 엘리트만이 알고 있어야 한다. 너의 고민을 절대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된다.” 은이는 이후 자연스럽게 작은아버지가 정신적 대부로 있는 우파대학생 동아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이 나라는 이라크파병과 민주당의 분당후 대통령과 시민사회 사이에서 고민하던 금이 아버지는 보수신문들로부터 모략을 받자 그 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한다. 사업의 실패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가던 은이 아버지는 어느날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신이내려 무당이 된다. 이 무렵 금이와 은이는 학교엔 거의 나가지 않은 상태로 지낸다.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있던날, 금이는 탄핵반대 시위대로, 은이는 탄핵찬성 시위대의 일원으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만난다. 서로를 발견한 그들은 피켓을 내려놓고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금이는 고향에 내려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은이는 다시 공부를 해서 정치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저자는 은이에게는 다른사람 에게는 없는 자기개발의 특성과 반성능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구 우익과 뉴 라이트들의 영향아래 있지만 그들과의 사상투쟁을 통하여 젊고 순수한 우익으로 단련되어 갈 것 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나서도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이 땅에 우익이 다시 태어나길 갈망하는 것일까? 책을 읽어도 저자의 심중을 이해하기가 녹녹치 않다. 작가후기에서 그의 의중을 들어내고 있지만, 그것 또한 내 머리로는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소설은 너무나 작위적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고, 그가 보여주려 했던 우익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는 논리도 부산이라는 지역과 기업가라는 집안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튼 책을 읽고서 이렇게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힘든적은 근래에 없었던 것 같다. 독서는 삼독이라고 하는데… |
|
장정일이 10년 만에 낸 소설이라는 문구에 끌려 무작정 책을 집어 들었다. 만사 제쳐놓고 읽기 시작!!! 아~ 4시간도 안 돼 읽기가 끝나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나를 덮친 느낌은... 짠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하는 말, 우리의 '이틀'이 끝난 게 아닐까, 라는 부분에서는 울컥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기사 검색을 해보니, 대부분의 언론이 '우익청년 탄생기'라는 말로 이 소설의 의미를 단정 짓고 있었다. 물론 작가 후기에서 작가도 자신의 창작의도를 그렇게 설명했으니, 그렇게 읽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내가 읽은 <구월의 이틀>은 단순히 '우익청년 탄생기'라는 단편적인 표현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이상이 있었다. 젊은이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키기에 현실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혹은 분열은 '어느 편'에 서기를 강요한다. 상처입은 두 젊은 영혼이 택할 삶의 방식은 현실에 빠르게 편입하거나 외면하는 것, 둘 중 하나다.
<구월의 이틀>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장정일스러움'은 예전보다 확실히 덜하다. 어느 신문기사에서 '그도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에 일부 공감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과연 장정일 아닌 그 어느 작가가 이러한 화두를 들고 정면에 나설 수 있을까. 덜 선정적이거나 덜 자극적이거나 덜 실험적이어서 그를 '나이들었다'고 말한다면, 일면 진실일 수 있지만, 아무도 하지 못할 말을 하고, 어느 누구도 다루기를 꺼리는 문제의 핵심을 돌파하는 작가의 그 패기 앞에서 과연 누가 그를 '나이들었다' 말할 수 있을까.
구월의 이틀... 재미있었다. |
|
구월의 이틀 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구월의 이틀이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 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 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을 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 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 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 이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모래의 강물들
멀리 손을 뻗어 나는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손 안에서 부서져 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 비를 내리고 높은 탑 위로 올라가 나는 멀리 돌들을 나르는 강물을 본다 그리고 그 너머 더 먼 곳에도 강이 있어 더욱 많은 돌들을 나르고 그 돌들이 밀려가 내 눈이 가닿지 않는 그 어디에서 한 도시를 이루고 한 나라를 이룬다 해도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나의 구월이 있다 구월의 그 이틀이 지난 다음 그 나라에서 날아온 이상한 새들이 내 가슴에 둥지를 튼다고 해도 그 구월의 이틀 다음 새로운 태양이 빛나도 빙하시대와 짐승들이 춤추며 밀려온다 해도 나는 소나무숲 감춘 그 오솔길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을 본다
|
![]()
책을 읽기 전에 인터넷 서점들에 올려져 있는 광고나 서평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책의 주제는‘우익 청년의 탄생기’라는 단어였습니다. 테제가 다소 의아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우익이 아닌 사대주의자와 정상배들이 우익의 탈을 뒤집어쓰고 설치고 있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우익’의 모습이라면 민주 투사보다도 오히려 더 ‘가짜 우익들’의 위선과 모순을 폭로하기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상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난 후의 결론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우익 청년의 탄생기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우익들의 저열함과 무능력을 비꼬는 정치 우화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금’과 ‘은’이라는 두 대학생의 1년 남짓한 대학 시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광주 출신으로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을 발탁되면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된 ‘금’의 이야기는 (내용상으로는 가장 많지만) 연상의 여성과의 관계에 탐닉하는 정도 외에는 별다른 사상적 편력이나 방황없이 지내다가, 아버지가 자살을 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낙향한다는 비교적 단선적인 스토리로 그려집니다. 문학보다 사회 과학이나 실용적인 학문의 가치를 훨씬 더 높게 여겼던 금이 낙향 후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는 점 정도가 두드러진 변화라고 할까요. 잘생긴 얼굴에 키도 크고 체격도 건장한 법대생인 금보다도 작가의 관심은 왜소한 체구의 시인 지망생이었던 국어교육학과생 은 쪽에 더 집중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사회적 성공을 거둔 아버지를 둔 금과는 정반대로 거듭된 파산 끝에 고향을 떠나 서울의 큰집을 봐주러 올라온 부모 밑의 은은 상대적으로 패배의식과 나약함에 가득 차 있습니다. 아버지의 자살로 현실에 회의를 느낀 금이 멸시하던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과 대비되듯 은은 뜻밖에도 우익 운동의 길을 선택해 걷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적 패배와 시인을 꿈꾸던 자신의 나약한 정서,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성적 정체성 등의 복합적인 열등 의식에 대한 반발과 그 돌파구로 선택한 우익의 길은 ‘박정희가 빨갱이라는 거짓(?)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이 김정일에게 퍼주기를 한 댓가라는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자신의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열등감’이라는 은이 우익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물론 이후에 길게 펼쳐질 과정들 역시 ‘건강한 진짜 우익’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은에게 우익의 길을 권한 은의 작은 아버지의 말을 통해 ‘세상에는 진리란 없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강자의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엘리트들은 그 사실은 꽁꽁 감추고 도덕과 종교라는 채찍으로 대중을 조종해야 한다’라는 우익들의 가증스러운 속내를 드러내고, (누가보아도 김동길이 분명한) 거북선생이라는 우익의 원로의 입을 통해서는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총량 중에서 우파가 쓸 수 있는 것은 5%도 안된다. 이렇게 좌파와 대적하는 우파의 논리가 허약하므로, 우파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에게 그냥 빨갱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이다. 논리 따지기 좋아하는 놈들에게는 다짜고짜 빨갱이라는 인장부터 찍어서 그들과의 대화를 무조건 거절하고 보는 것이 유일한 전략인 것이다’라고 ‘빨갱이로 몰기’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물론 은은 거북선생같은 친일의 원죄가 따라다니는 Old Right나 좌파에 대한 열등감과 적개심으로 가득찬 작은 아버지 세대인 New Right가 아닌 ‘강한 것은 아름답다’라는 근원적인 사상을 기치로 한 Pure Right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거북선생이나 변지갑(변듣보?)와 마음에도 없는 동성애 관계를 가지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스로의 논리와 지향점과는 정반대의 모습만을 마지막까지 보여줄 뿐입니다. 금과 은의 관계는 결국 두 사람이 동성애 관계를 맺고, 사상은 정반대이지만 정신적인 유대만은 굳건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에서 끝맺는데, 작가는 후기에서 이 두 사람의 다시 한 번 정반대로 역전되는 이후의 삶을 그린 속편의 구상을 거의 완성시켜 놓았다고 하여 금과 은의 성장한 모습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품게 만듭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네오콘인 앨런 블룸과 그의 스승인 레오 스트라우스를 모델로 거북선생을 비롯한 책 속의 우파들을 묘사했고, 우리 문학사에서 아직 그려진 적이 없는 진정한 의미의 우익 청년의 탄생기를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지는 은의 모습은 자신의 성적 소수성과 정신적, 경제적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정반대인 우익 성향으로 전화시켜 발산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는데(마치 동성애를 비난하던 앨런 블룸이 AIDS로 죽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작가의 아직 미완인 과정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우파의 이중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야유가 이 작품의 본질인지는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저는 후자의 관점으로 읽혔습니다). 이 작품 속에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실명과 실제 사건으로 계속해서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슬픈 정치 우화’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hajin817 |
![]() 책을 일고 이렇게 답답한 마음이 들긴 처음이다. 10년만에 들고온 장정일의 신작 '구월의 이틀' 이야기다. 실험적 성격의 시대저항적인 그의 작품은 발표 때 마다 문제작으로 문단을 들썩이게 하고 독자들의 밤잠을 빼앗아 가더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책을 덮고 나서도 며칠 간을 밤잠 설쳐가며 한참을 되새겨 보아야만 했다. 낮의 일과로 바쁜 생활 동안은 생각할 여력이 없다가도 밤이 되면 머리속을 떠 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그의 문제작. '아! 궁금해도 참을 껄 그랬나보다' 라는 후회마져 들게 한다.
성장 소설이라기에 조금은 부담 없이 접한 나의 경솔함을 탓한다. 속은 느낌이랄까.... 성장 소설 맞긴 하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우리사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모두 헤집어 냈으니 그 수습은 우리게 떠맡기고.
노무현 정권의 탄핵시기를 배경삼아 '금'과 '은'이라는 두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광주에서 태어나 자란 금은 시민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청와대 보좌관으로 발탁되었기에 가족과 모두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고. 한편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은의 가족은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실패와 서울 사시던 부자 큰아버지네 온 가족이 미국으로 잠정적인 이민을 떠나는 시기가 용케도 맞물리면서 서울의 빈 집과 생활비의 일부를 보조 받기로 하고 은의 가족도 서울로 이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입학을 한 달여 앞둔 금은 반고경이라는 연상의 여인과 알게되고 은 또한 인사동 화랑거리를 순례하던 중에 만난 한 소녀를 보고 첫 눈에 반하고,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으로 매일 화랑 순례를 계속한다. 우연히 학교에서 마주친 금과 은은 출생지에 관계없이 서로에 끌려 친구가 된다.
반고경에게 청혼을 하지만 그녀는 금을 버리고 떠나고. 은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고민하게 되면서 그도 미쳐 몰랐던 동성애 성향을 알게 되어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같은 고민을 겪었던 법대 교수이자 보수주의자인 작은아버지는 우연히 은의 일기장을 읽게 되고 조카의 우파적 기질과 동성애적 성향을 간파하고는 보수 우익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거북선생을 소개해준다. 남편이 가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것에 충격을 받은 은의 어머니는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고 아버지 마져 쓰러져 반신불수의 몸이된다.
금의 아버지는 광주출신 운동권이라는 태생적인 고민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으로 괴로워하게 되고, 바람난 아내의 이혼 요구까지 겹치자 자살을 하게 된다.
하루 아침에 처참히 깨진 두 가족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런지? 작가는 금과 은을 고아 아닌 고아의 입장에 처하게 하여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여기서 잠깐 작가 장정일의 의도가 궁금해 진다. 왤까? 부모 세대와의 인연을 끊고자 하는건지, 기성 세대에게서는 더 이상 배울 것도 없으니 그들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들의 길을 가고자 함인지. 아무튼 둘은 대학을 휴학하게 된다. 부푼 꿈과 기대에 찬 대학은 금과 은에게 무엇이였을까? 그들에게 짦고도 격정적인 대학생활이 ,구월의 이틀, 일까? 계속읽어 보자.
정치가가 되고자 했던 금은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문학을 택하게 되고, 그와 달리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던 은은 예술이란 위조지폐이며, 퍠배자들의 몫이라고 예술을 싸잡아 비판하더니 문학의 무력함에 실망하고 작은아버지의 스승이기도한 거북선생 밑에서 우익청년으로 성장한다. 좌파가 아닌 우파의 입장에서 우파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겠다더니 강항것이 아름답다고 외치던 은은 비로소 강한 우파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최종 판결하던 해인 2004년 5월, 금과 은은 우연히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마주치게 되고 둘은 대립하고 있던 각자의 진영을 빠져나와 포옹을 한다. 그리고 그 장소를 벗어나, 함께 대학을 다녔던 지난 1년을 추억하며 우정을 확인한다. 좌파와 우파를 떠난 금과 은의 우정을 글 말미에 내세워 작품을 포장하려는 그의 의도인지? 작품의 끝에 와서도 장정일 그의 알수 없는 정치색은 과연 뉴라이트나 영라이트를 표방하는 우익계인지, 영원한 좌파인지 모호 하기만 하다.
온갖 정치적 경험과 경제적, 성적, 문학적 경험을 하고 가치관을 확립하기에 청춘의 이틀은 너무도 짧기만 하다.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던져준 이 책으로 인해 앞으로 얼마의 독자가 고민에 빠질런지.....
|
|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팽배한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그 지역감정의 부피가 큰지역은 전라도 였다. 지리적 위치로 인해 전라도사람들은 항상 피해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농사를 지어도 전라도보다 경상도가 더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것도 지역감정의 일부분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때부터 지역감정의 칼날을 세운 어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서로의 지역 물건을 절대 사먹지 말자는 식이였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그 지역감정이 많이 완화된듯 하지만 뿌리까지 뽑히지는 않은듯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서 당선되면서 전라도는 비로소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이유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이 어느정도 완화된듯 보였다. 그 뒤를 이어 두번째로 전라도에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본관은 김해였고 이로써 영남과 호남의 해묵은 감정들이 뿌리까지 씻겨나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5년간 집권하실동안 많은 고초를 겪으신걸로 안다. 정치에 가장 무관심하다는 집단인 주부이지만 여기저기 들리는 소리로 조금씩 주워들은 풍월들은 있었다. 금과 은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고향이다. 이들이 서울의 명문대에 합격하면서 그들의 가족들은 근거지를 서울로 옮기게 된다. 이사하는 날이 우연히 겹치게 되고 이들은 휴게소에서 고속도로 사고현장에서 스쳐지나간다. 금과 은은 같은 대학교에 같은 교양을 듣게 된다. 그들은 지독히도 뼈속까지 다르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그 마음을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킨다. 표면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적인 감정을 앞세워 근본적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작가는 금과 은을 통해 노무현 정권을 무대로 금은 탄핵 무효를 은은 탄핵 찬성을 외치며 서로의 정치색을 확연하게 드러내놓고있다. 하지만 금은 겉표면은 남성적이고 사교적이지만 품성은 여리고 나약한걸로 비치는 반면 은은 나약하고 여성스러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광기와 강인함으로 묘사하며 좌파와 우파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있다. "강한것은 선하고, 강한것은 아름답다." - 은 정계로의 진출이 목표였던 금과 문학소년이였던 은은 지독한 내면의 성장기를 겪은후 금은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 문학에 몸담고자 하고 은은 배의 바닥짐처럼 이나라에 보수로써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그 이념으로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던 좌파와 우파가 탄핵 무효를 외치던 금과 탄핵 찬성을 외치던 은의 뜨거운 포옹으로 화해를 하는듯 했지만 서로가 나아가고자 하는길은 변함이 없었다. 책을 읽는내내 이해될듯도 하면서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던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정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지만 이미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 비판하며 다시금 그 아픔을 들춰내는것 같아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세상에 이미 없는 분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는짓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의 어느 한 때를 가리켜 인생이라고 한 뿐, 일평생이 인생은 아니다." |
|
책을 받자마자 그야말로 허겁지겁 다 읽어 버렸다. 항상 전위적인 작품들로 파문을 일으키는 장정일 작가가 십 년 만에 발표한 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 탑재되어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장정일 작가의 소설 귀환에 즈음해서 많은 신문에서 “제대로 된 우파 청년”이 탄생했다는 기사들 쏟아냈다. 그동안 한국 문학계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좌파 지식인 청년들이 아니었던가, 그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였을까? 그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성적 담론의 언어적 유희에서 벗어나 뜨거운 감자를 꿀떡 삼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원래 책의 제목을 <금과 은>으로 정하려고 했다고 작가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이 책의 주인공 둘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는 빛고을 출신의 금과 부산 출신의 은이다. 금과 은이라는 항상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처럼 그들의 배경은 다르다. 금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지역타파를 외치며 진보운동을 한 후광으로 2003년 막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로 입성한 노무현 대통령의 보좌관이 되어 고향을 떠난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 은의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게 된다. 진보적인 집안 분위기에도 금은 이상보다는 현실세계에 더 집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 반고경이라는 정체불명의 여인과 만나게 되면서, 황음(荒淫)의 세계로 빠져든다. 자 비로소 장정일 작가 특유의 성적 상상이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 리얼하게 펼쳐진다. 한편, 강한 것은 아름답고, 그것이 바로 선이라는 도식화된 이데올로기화 되어가는 시인지망생이자 문학청년이었던 은은 어느 갤러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환영[Maya]의 소녀’에게서 첫 사랑을 느낀다. 같은 대학에 입학한 금과 은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알아가게 된다. 장정일 작가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아 엇갈리는 감정의 실타래 속에서 금과 은의 이야기들을 종횡무진 구사한다. 독자들이 무척이나 궁금해할, 제목 <구월의 이틀>에 대한 설명을 대학 강의식의 구성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틀’이 상징하는 시간은 바로 인생의 최절정에서 맞이하게 되는 고갱이란 것이다. 아마 찬란한 이십 대를 다 떠나보낸 이들이 들으면, 분개할지도 모르는 이십대 청춘예찬을 들으면서 저절로 ‘난 시절에 뭘 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시절에 책도 읽지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는 대신 죽도록 술을 먹었었다. 한 때 대문학(大文學)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우던 은은 예의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환영의 소녀’를 만난 뒤 은밀하게 꿈과 현실이 뒤섞인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노트에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암시하는 글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과 괴리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반발하게 되면서 은의 삶의 수레바퀴는 기이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보수진영의 총아로 촉망받던 교수 출신 작은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창 태동하던 뉴 라이트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그리고 거북(拒北)선생을 만나 자신의 정신적 혹은 성적 멘토로 삼으면서, 걸출한 우파 청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은과는 달리 스무 살 정도 더 먹은 연상녀와 황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금의 캐릭터에서는 기대했던 극적인 변신 대신 21세기 평범한 대학생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는 반고경과 갖는 ‘헐떡임’이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닌 반복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지옥이었다. 문득 김소진 작가의 어느 책에서 읽었던 “아름다운 지옥”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마 ‘아름다운 지옥’이 존재한다면 금이 빠져 있던 그 허무의 바다였으리라. 개인적으로 <구월의 이틀>에서 장정일 작가가 구사하는 뉴턴역학적인 동시성(simultaneity)을 바탕으로 한 시간적 구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금과 은이 같은 시간대에서 각기 다른 무언가 - 예를 들어 황음의 세계에 빠진 금의 열락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환영의 소녀를 찾아 헤매는 은의 방황 - 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설적이게도 그 행동들은 나중에 서로에게 상대적 파문을 일으킨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장정일 작가가 서술한 다양한 인간 삶의 또 다른 층위들에 대한 묘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겠지만, 나는 작가가 의도했다는 “우파청년 탄생기”라는 관점보다 꿈을 잃어버린 채 학문의 상아탑인지 아니면 취업소개소인지 모르게 되어 버린 대학에 갇혀 청춘을 저당 잡힌 이 땅의 젊은이들에 대한 장정일 작가의 일갈로 <구월의 이틀>을 받아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에 와 닿은 문구는 바로 ‘나한테 절실한 책을 읽어라’는 작가의 선언이었다. 아마 책 좀 읽는다는 책쟁이들이라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있으리라. 오래전 빙하시대를 불태워 버릴 기세를 가진 열정을 품고 있던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참, 작가가 후기에서 <구월의 이틀>의 속편에 대해 완벽한 구상을 해두었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
요즘은 책을 꾸준히 꽤 읽고 있는데 근래 읽은 것들 중 가장 재밌게 읽은 책 (핀란드 교실혁명이나 1Q84를 뒤로 밀어내고!)
정치니 우익 좌익이니에 별 뾰족한 입장이 없는 내겐 큰 거부감 없이 슥슥 잘 읽혔는데 인터넷 북리뷰들을 찬찬 살펴보니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 못 배우고 못 가지고 못난 것들은 죽어야 한다'는 주인공의 독백에 몸서리치며 절레거리는 이들이 상당히 많더라 난 오히려 그 부분은 눈에 띄지도 않았고 "삶의 어느 한 때를 가리켜 인생이라고 한 뿐, 일평생이 인생은 아니다" "매미가 단 7일간 빛을 보기 위해 7년을 땅 속에서 보내는 것처럼 인생은 한평생이 아니라 청춘의 어느 한 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짧고 귀한 순간에 죽도록 놀고 죽도록!!!!!! 어우 씨" 이게 이 소설의 포인트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섬광같은 그 구월의 '이틀'을 살아가는 젊은이인 터라 이 소설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틀의 '끝자락' 날 선 부분에 오늘의 내가 서있을런지도
|
|
장정일의 글은 처음 읽는다. 야한 영화의 원작자 정도로만 알았었는데, 친구가 내게 버린(?) 책 묶음에 포함되어 있어, 어찌 어찌 읽게 되었다.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리뷰가 삐딱선을 탈지, 보편적인 흐름에 편승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첫장부터 주인공의 이름이 금과 은,이라는 부분은 살짝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무슨 주인공의 이름들을 이렇게 성의 없이 지었나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잘 읽혔다. 그런 면에서 장정일은 이야기꾼인가보다. 어느 저녁에 책을 읽기 시작하여 단박에 읽어버렸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윤대녕이나 파트릭 모디아노 같은 마음의 그림을 그려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 그 이야기들이 마치 내 이야기인것마냥 마음에 남아 그 아득함이 미미해질때까지 잔잔하게 남아야하는데...이상게도 이 책을 읽고나니, 여운 보다는 책 속에 담겨있는 몇몇의 말들이 가시와 같이 박혀 버린다. 무슨 선생님이 이야기했다는...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시나 소설같은 문학을 읽지 마라. 그대신 젊었을 때에 그런류의 책을 원없이 읽으라는 훈화(?)같은 이야기나, 삽입되어 있는 류시화의 시 '구월의 이틀' 의 이미...아마도 이 나이가 되도록 계속 문학작품을 손에 쥐고 있는 나에게 던지는 비수 같은 느낌이기도 하였고, 류시화의 페이스북 글은 좋아하지만, 그의 책에서는 그닥 재미를 보지 못한 '나'에 대한 멸시(?)같기도 하였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나는 여전히 책을 읽을테지만) 문학을 꿈꾸다 정치를 꿈꾸게 되는 은. 정치를 꿈꾸다 문학을 꿈꾸게 되는 금. 마치 헤르만헤세의 '지와 사랑(혹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같은 느낌이 든다. 슬쩍 보자니 우파가 어찌 만들어지나에 대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뭐, 내 입장에서는 그닥 와 닿지는 않았다. 우파든 좌파든...항상 100% 완벽한적은 없었기에...만들어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생각이 맞다고 난리치는 꼰대들이 문제였겠지. 여하튼 헤르만헤세식의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제프리 아처의 '카인과 아벨'처럼 풀어나갔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무래도 둘의 사이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둘이 친해지는 건 그럴수 있다치지만...동성애는 또 뭔지.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반호경인가 하는 인물도 개연성이 조금 떨어진다.(아니만, 널리 만연해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고)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글을 술술 잘 읽힌다. 그러나, 한쪽 아버지는 죽고, 한쪽 아버지는 바람을 피워도 그닥 동요도 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그냥 섹스의 대상 정도로 주변인으로 나오다 사라진다. 둘도 없던 친구는 동성섹스를 하지만...그냥 친구끼리 어쩌다 한 번 영화보는 것마냥 무덤덤하다. 노무현 정권의 이야기도 나오고...류시화의 구월의 이틀도 나온다. 정리하면, 이야기는 정말 잘 읽히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쏟아지니...괴상한 책이 되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장정일의 책은 조금 더 읽어 보련다. 덧붙임. 성장 소설을...이미 다 성장한 사람이 읽으니...내가 그냥 노인네가 되어버린 것 같다.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