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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다가 너무 문장이 이상해서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고 있다. 역자의 이력을 보니 영어권에서 공부한 경험이 없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을 대충하게되면 역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게 된다.
책의 p.82. 만물은 유전한다. -> 무슨말인가?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마치 유전자를 가진 것 처럼 새끼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낼 때 영향을 준다는 말인가? 사람이나 동물이면 이말이 타당하지만 사물의 경우 유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원문에는 "Everything is in a state of flux" 로 나타나 있다. 이를 원문대로만 해석하면, 만물은 액체상태에 있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있다. 만물은 유동적이다. 만물은 유전하는 상태에 있다. 등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철학에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어느 해석이 정확한지는 알수 없으나 유전으로만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인듯하다.
그런데, 책의 p.86 을 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영원히 계속되는 변화를 믿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면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말이 정확한 번역이 될 것 같다. (p88 에서도 "어떤 존재도 항상 똑 같지 않고 만물은 생성하며(플라톤의 평가), 아무것도 고정불변하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의 평가)로 가르쳤다는 일치된 견해를 보여다"는 말이 나오므로 이 번역이 더 적합한듯 하다). 만물은 유전이라는 말은 이책에서 연이어서 '만물은 변화한다'는 말로 다시 등장하며, 뒷 부분(p.224)에 가면 다시 '만물 유전설'이라는 말로 다시 등장한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유전은 총 13개에 달하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遺傳, 油田, 流轉, 謬傳, 有錢, 柳箭, 流典, 流傳, 流電, 流箭 등이 있다. 이중에서 이 책에서 쓴 유전은 流轉 즉, 끊임없는 변천을 말하는 듯 하다. 엄밀하게 번역해야 하는 철학책에서 한자 각주조차 달지 않고 '만물은 유전이다'는 말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다. 독자에게 이렇게 지식적인 횡포를 하다니. 참으로 황망하다. p.78. 종교와 추리 -> 우리가 추리라고 말할때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뭔가를 추적하면서 고민해들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국어사전의 추리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서 생각한다". 하지만 러셀의 원문에서는 "religion and reasoning"이라고 되어 있다. reasoning이란 일반적으로 이성적인 생각, 엄격한 사고라는 의미가 강하지 추리라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추리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좀더 철학적에서 흔히 쓰는 용어로 번역해주길 바란다. 철학에서는 논리적 사고, 추론 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나는 철학에 문외한이다).
저자보다는 을유문화사의 이름을 보고 이 책을 선택한 독자로서 매우 실망스럽다. 곧 개정판이 나오면서 엄밀한 철학적 용어로 재해석한 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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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꼭 읽어야 할 책 리스트를 뽑아봤습니다. 그 리스트중 하나가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입니다. 이 책을 뽑은 이유는 이 책이 러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흐름(역사)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서양철학사"는 그리스 철학에서 현대 분석철학까지 철학사의 지평을 넓힌 20세기 대표 지성 버트런드 러셀의 기념비적 명저로 꼽히고 있습니다. 러셀은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또한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과 과학사이에 자리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 무인지대(No Man's Land)가 바로 철학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 무인지대를 탐험하기 위한 멋진 가이드 북입니다.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꼭 곁에 두고..두고 두고 읽을 책입니다. 책의 사이즈도 제법 크고 색인 포함 1059쪽이나 되지만 러셀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책 전반에 흐르고 있어 단조로운 통상의 철학사 책보다 읽기가 쉬우면서도, 날카로운 비판력과 통찰력을 보여 주어 영미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사의 전범(典範)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러셀이 서문에서 쓴 다음 내용은 각자의 전문분야를 막론하고 우리가 철학을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철학은 애초부터 학파들, 곧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공동체의 삶을 통합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고찰하려 애썼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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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마치고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질문을 받는다면, "좋았어" 아니면 인상깊었던 특정 풍경에 대해 "무엇 무엇이 인상깊었어" 정도의 짧은 답변외에는 별로 떠오른 것이 없는 경우가 있다. 도리혀 나중에 발효 과정중의 거품처럼 올라오는 기억들, 그리고 내 머리속에 남아있었나 하는 신기함마저 주는 디테일, 그런 것들이 여행의 묘미일 수 있다. 두꺼운 벽돌책의 전형이고 내용 또한 딱딱하기 그지 없는 서양철학사, 길고 긴 여정이었다.
언제고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는 것처럼 꼭 읽어보고 싶어던 책 중에 하나였고, 다만 체력이 받쳐주어야 갈 수 있는 고행길의 여행처럼 약간의 각오를 하고 덤벼들어야 했던 책이다. 서양철학사에 관해 많은 책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내가 원하던 책은 철학사의 흐름을 교과서처럼 설명하는 책이 아닌 약간의 편견이나 오류가 발생할 망정 작가의 생각이 담긴 철학사였고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버트란트 러셀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어릴적 어디에선가 사진을 봤는지 낯이 너무 익었고 다른 책에서도 가끔씩 러셀의 이름이 회자되었기 때문에 이 또한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내 자신이 피상적으로 알 던 러셀보다는 더 훌륭하고 포스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세속의 일들이 어떤 이의 업적보다는 그 사람의 사생활을 가지고 가십화하고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 대는데 러셀의 사생활 이야기에는 너무 뺘져들 일은 아니다.
러셀 본인도 머리글에 언급했듯이 각 철학자에 대해서는 그 사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의 식견이 제일 정확할 수 있으나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서 짜깁기식의 철학사를 쓰게 된다면 전체에 흐르는 통일된 관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체를 흐르는 러셀의 통찰과 관조 - 이 책이 주는 맛이 거기에 있다. 플라톤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되면 칭찬 일색이다. 그런데 러셀은 거침없이 비판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어쩔 때는 자신도 잘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시인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비판도 나에게는 퍽 신선했다. 교부철학으로 대표되는 중세철학에 대한 긴 설명들도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 책의 제목은 철학사이지만 인간의 역사를 느끼게 한다. 로크, 버클리, 흄은 짧게 짧게 주어들은 지식밖에는 없는데 좀 더 맛을 볼 수 있는 계기였다. 맛보기 음식 sampler식이지만 제대로 된 것들로 구성된 것처럼 그 위대한 철학자들의 핵심을 찌르는 러셀의 해석이 대단하다. 너무도 어려운 칸트도 균형있는 비판과 함께 해석하고 어찌 판단해야할지 모르고 있던 쇼펜하우어의 사상도 러셀의 손위에서는 하나의 음식재료처럼 다루어지니 대단한 내공이다. 니체의 책을 읽으면 니체는 나치와는 상관이 없는데 오해가 있다라고 설명을 듣게 되는데 러셀은 사상적으로 연관이 있음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러셀이후의 현대철학은 별도로 찾아봐야 겠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철학자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위치는 거의 독보적인 듯 하다. 사제 지간으로서의 인연을 포함 두 사람간의 이야기도 재미있는 부분이지만 러셀이 천재이며 일면 기인스러운 비트겐슈타인을 만나 사변적인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를 인정하고 도리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부분에서는 인간 러셀을 보게 된다. 각 연대기별로 철학자들의 사상을 설명해주는 교과서같은 책을 기대한다면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역사에서 통사이후에 역사분석책을 보면 한층 심화된 재미를 느끼듯이 일반 철학사를 보고 난 이후에 접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긴 시간도 필요하고 러셀이 친절하게 풀어 썼다지만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고 러셀의 비판이 공정한 것인가 갸우뚱하게 하는 구석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점이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6/27/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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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버트란드 러셀은 명문가의 훌륭한 교육환경에서 자라난 천재적인 학자이자 문필가이다. 주양육자였던 할머니는 3개국어에 정통한 재원으로 세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에 정통한 인텔리였다. 그녀가 손자인 러셀의 교육을 위해 최고의 가정교사를 선택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총명한 러셀은 그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훌륭한 청년으로 자라주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이 불행한 유년을 보냈다. 그는 2살때 누이와 어머니, 4살때 아버지, 6살에 할아버지를 연이어 잃었고, 홀로 남은 할머니의 엄격한 청교도적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학교를 가지 않고 가정교사와 홀로 공부했기에 마을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그는 외로웠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를 죽음으로 부터 보호해 준 것은 수학에 대한 호기심과 문학으로 얻은 위안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회적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위대했다. 100세 가까이 장수하면서 논리학자·철학자·수학자·사회학자·논리학자로 활동하면서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말이다. 명문가의 자손으로서 누렸던 양질의 교육환경이 그의 사회적 성취의 배경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영국의 대표적인 명문가를 이뤄냈던 그의 조상들은 물론 러셀의 딸과 아들도 당대의 지성으로 활약했던 것을 보면 유전적으로도 탁훨하게 우수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다였을까? 그는 자서전에서 삶을 '고통과 절망의 깊은 바다'·'차갑고 불가해한 생명력없는 심연'으로, 외로움을 이러한 삶의 실체와 마주하게 하는 소름끼치는 감각으로 묘사하면서, 지식추구를 위한 자신의 열정은 이런 끔찍한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고백했다.
혹자는 그를 500년에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삶이 많은 부분이 그의 업적의 혜택을 받았다는 의미일게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의 모습과 소리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비에 대한 원망을 넘어 서편제 소리꾼으로 살아가는 송화가 오버랩되어 떠오르며 가슴이 저려왔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분명해지는 생각이 있다. '사람에겐 날 때부터 그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고, 우리가 행복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살아 있음'의 느낌은 그 사명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러셀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을 게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는 '불행'마저도 행복의 연료로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만를 위해 '신'이 준비한 사명을 따라 궁극의 행복을 누릴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는 왜 그토록 탁월하게 행복했던 그를 맘편히 부러워하지 못하는 걸까?
그저 감탄할 뿐이다. 한 시대 한 사람의 철학자를 이해하는 것도 엄두가 안나는 내가 어찌 감히 저자로서 이 책을 비평하겠는가? 초인적 지력의 소유자인 버틀란트 러셀의 대표작을 말이다. 구조부터 살펴 보기로 한다.
옮긴이 서문 지은이 서문 서론(전체를 개괄)
제1권 고대 철학 제1부 소크라테스 이전 제1장 그리스 문명의 발흥 제2부 소크라테스... 제11장 소크라테스 제3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제25장 헬레니즘 세계 ※ 개괄적 서술 없음
제2권 가톨릭 철학 서론(2권 개괄) 제1부 교부철학 제1장 유대교의 발전 제2부 스콜라 철학 제7장 암흑기의 교황체계
제3권 근현대 철학 제1부 르네상스에서 흄까지 제1장 일반적 특징(1부가 아니라 3권 전체 개괄) 제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제18장 낭만주의 운동 찾아보기
다음은 편집에 관한 부분이다. 러셀보다는 현대의 편집자가 들어두는 편이 좋을 이야기라는 말이다. 이 역시 본인의 이해력 부족에서 나온 투정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야 말로 꼭 전하고 싶다. 러셀의 문체가 감칠맛나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제시된 스토리가 흥미로운데다, 곳곳에서 보여준 그의 매력적인 독설을 기다리는 재미에 쉽게 책속에 빠져들 수 있었지만 책을 덮으면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시작할 땐 꼭 예열작업이 필요했다. 이 전 페이지를 후루룩 넘겨보는 식으로 예열을 하곤 했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몰입도가 심하게 떨어진 걸 보면 그다지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1권 1부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는 아직도 의심스럽다. 정말 1권 1부가 특별히 재미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처음이라 그렇게 느껴졌는지.. 문득 고등학교 보던 참고서가 그리워졌다. 각장마다 처음에 학습목표가, 마지막에 요점정리가 나와 있는 친절한 참고서 말이다. 물론 시험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할 것 있겠냐는 반문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꼭 테스트용이 아니라도 중간중간 체크포인트를 만들어 놓으면 좀 더 안심하고 여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요즘엔 꼭 수험서가 아니더라도 그런 시도를 담은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러셀의 말대로 이런류의 책이야말로 한사람이 집필할 수 밖에 없어, 그로 인한 제약에서 오는 아쉬움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120% 인정하기에 러셀에게는 한마디도 투덜거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도 누군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해석과 요점정리를 더하는 것 정도는 허락하지 않을까? 혹 저작권법때문에 어렵다고 한다면 배경지식이 충분한 누군가가 '서양철학사' 해설을 출판해준다면 책값 아깝단 생각은 안할 것 같다. 2차 레이스 책자 목록에서 '서양철학사'를 발견하고, 이 기회에 서양철학사를 머리에 쫙 정리해야지하며 야심차게 책장을 열었다. 그런데 책을 덮을 즈음엔 조각조각 기억나는 몇 에피소드를 얻은 것 말고는 오히려 머리가 더 멍해져 버린 것 같아 많이 속상했다. 아니 굳이 의의를 더 찾자면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한없이 겸손해져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상한 캠벨 할아버지의 격려에 한껏 오만방자해졌던 것을 떠올려 보면 꼭 필요한 처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줄기 희망을 가져본다. 연구원 수련이 끝날 때쯤 다시 읽으면 좀 더 쫄깃하게 즐길 수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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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고대 철학 2권은 가톨릭 철학 3권은 근현대 철학 사람들은 왜 철학을 공부할까?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할까? 서양 철학사의 분류니체 사상은 과대망상 환자의 말이라고 치부해도 좋은 부분이 많다. 니체는 고통에 대해 숙고하기 좋아하고, 기만을 의무로 세우며, 그가 찬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복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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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영혼을 사유했다. 같은 대상을 사유했을지라도 그들이 도출해낸 사유의 결과는 모두가 다르다. 1.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 영혼은 육체의 형상이다. 형상은 사물의 본질이자 제 1실체이다. 영원한 사물도 존재하는데, 이것은 질료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물이 형상을 얻어야 현실성이 증가하고, 현실성을 얻지 못한 질료는 가능태일 따름이다. 형상은 질료와 독립적으로 실존한다. 형상이란 보편자와 공통점을 공유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형상은 이상이 가지는 실재성을 가진다. 오직 신만이 질료없는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는 점점 신과 닮은 상태로 진화하지만, 질료가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완전할 수가 없다. 육체와 영혼은 질료와 형상으로 설명되고 영혼은 가능태인 생명을 안에 품은 육체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서 분명한 실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계(질료) 와 이데아(형상)이라는 두 세계의 대립을 동적인 일원론으로 통일한다. 그에 따르면, 현상계안에 이데아가 내재한다. 이데아는 현상계를 움직이며 실체를 구성하고 각기 자기실현을 한다. 소나무가 기둥이되고, 기둥이 집이 되는 과정을 보자. 소나무는 기둥의 질료이고, 기둥은 집의 질료이다. 그 이데아는 질료안에서 꾸준히 운동을 통해 고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유기적인 종적관계들에 의해 목적론적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것은 플라톤의 그것과 구별되는 것이다. 영혼은 감각적 영혼과 비감각적 영혼으로 나뉘는데, 감각적 영혼(비이성적) 생물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용을 한다. 생장과 욕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개체들과 개별성을 갖게하여, 개체들간 차이를 생기게 한다. 반면, 비감각적 영혼(이성적), 즉 정신(Nous)은 감각적 영혼과 구별되는 무엇으로서 육체와 맺는 관계가 덜 밀접하다. 비감각적 영혼은 신성하며 개인과는 무관한 것이다. 감각적 영혼은 우리를 분리하고 비감각적 영혼은 우리를 통합한다. 따라서 정신(비감각적 영혼)의 불멸은 개인의 불멸이 아닌, 불멸하는 신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 정신(Nous)을 가진다면, 불멸하는 신성에 참여할 수가 있다. 자신의 본성속에 깃들인 신성한 요소를 늘려야 하고 이것이 덕의 본질이다. 이렇게 덕을 쌓은 뒤에 인간은 분리된 개인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절대자의 불멸에 참여할 수가 있으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Nous) 개념은 아낙사고라스에게서 다시 인용된다. 2. 아낙사고라스의 영혼론 영혼이란 정신(Nous)이 일부의 생명에 들어가 죽은 실체들과 구별시켜주는 것이라 믿었다. 모든 것엔 원소의 일부가 들어있고, 그 중 일부엔 정신(Nous)가 들어있다. 정신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으로서 무한하고 자기조절 능력이 있으며 어떤 것 과도 혼합되지 않는다. 모든 물질은 순수한 결정체가 아닌, 일종의 혼합물이다. 정신은 모든 운동의 근원이며, 정신의 회전운동을 통해 가벼운 것들은 경계선 주변에 흩뜨리고, 가장 무거운 것들은 중심으로 모은다. 정신은 한결 같아서, 인간이나 동물에게나 모두 같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단지 신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지능의 차이일 뿐, 정신의 차이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과 비교 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부의 생명에만 존재하는 정신(Nous)을 통하여 불멸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 개념을 이용한 아낙사고라스는 정신(Nous)은 모든 생명에게 들어 있는,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영혼 으로 개념화 하였다. 그 의미를 보다 더 확장 시킨 것이라고 보인다. 3. 플라톤의 영혼론 플라톤의 ‘파이돈’이란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를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은 이상과 감각,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이원론을 전개한다. 영혼은 육체보다 실재하는 정도와, 선한정도에서 우월하다. 영혼은 영원한 세계 이데아로부터 나오며 불멸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소 출산되기도 하며 덕성을 지니고 있다. 영혼은 이데아를 갈구하고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이상을 사모하는 마음, 에로스다. 사물은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상이며, 이데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영혼이 상기하는 이데아가 감각물의 본래의 상이며, 진정한 실재다. 이데아는 영혼의 고향 인 것이다. 이런 이원론에서 금욕주의 도덕론이 파생한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쾌락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체에 관심을 갖지 말고 한결같이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학설이 대중으로 하여금 금욕주의적 경향을 갖게 하였지만, 감각쾌락을 포기하게 하는 대신 정신적 쾌락과 같은 쾌락에 빠져들게 되는 위험성을 간과하게 된다. (히틀러는 감각적 쾌락을 하찮게 여겼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육체는 방해가 될 뿐이다. 그것은 사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소리나 시각 고통이나 쾌락으로 방해받지않고 참존재를 열망할 때 사유는 최고 상태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절대 미 절대 선은 눈에 보이지 않고 지성의 통찰로만 가능한 것이며, 육체에 갇혀 있는 동안엔 만족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진정한 철학자의 영혼은 사는 동안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고, 죽은 다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떠나 신들과 더불어 천국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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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를 통틀어 그리스 문명의 돌연한 발생만큼 놀랍고 설명하기 어려운 일은 없다. 문명의 형성에 필요한 요소는 수천 년 동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이미 존재했으며 이웃 나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어떤 요소는 그리스인이 발명해낼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이 예술과 문학에서 이룩한 업적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지성의 영역에서 훨씬 비범하고 이레적인 업적을 성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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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을 고대에서 현대까지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책. 서양 철학을 연구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용한 도서가 될듯. 작가의 한 마디는 그다지 신뢰가 안됨.
무더운 여름을 철학 공부를 하면서 식혀보시길.
한 번 구입해서 읽어 보십시오. 후회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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