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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작품 중에 '완전한 사랑'이란 드라마가 있다.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와 그 남편의 사랑, 그리고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극 중에서 아내와 남편의 사랑은 시종일관 눈물겨운 순애보의 결정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드라마 속 남편의 모습은 죽을 병에 걸린 배우자를 둔 사람의 바람직한 롤 모델로 보였다. 그러나 그 드라마를 함께 봤던 엄마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드라마라서 저런 남편도 있는 것일 뿐,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그 때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했지만, <사랑을 떠나가면>을 읽는 동안에는 엄마의 말을 실감했다.
유방암 말기인 아내 카르멘과 그녀의 남편 댄의 이야기라는 이 작품의 줄거리를 처음 봤을 때 난 서두에 언급했던 그 드라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당연히 드라마에서처럼 어느 부부의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보게 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최루성 멜로와는 거리가 멀다. 드라마를 보며 엄마가 내내 말했던 '암투병을 함께 겪는 부부의 적나라한 현실'은 마치 이 작품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드라마 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부가 암 진단을 받은 후 겪는 일들이 곧 현실 그 자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여자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사랑이 떠나가면>은 저자 레이 클룬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이 아니라 저자의 체험 수기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정확하고 부가 설명까지 자세하다. 그런데 그런 지나친 솔직함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카르멘과 댄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지만, 남편 댄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만큼 심각한 바람둥이다. 댄의 설명으로는 그가 '고독공포증(고독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으로 충동적인 성적 욕구를 갖게 되는 심리 증상)'이기때문에 그의 외도도 병적 증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 자신도 병인 것을 안다면 치료를 받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텐데 댄은 자신의 고독공포증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오히려 즐긴다. 댄의 이런 무분별한 행동을 카르멘은 어떻게 참고 용서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카르멘이 암과 사투를 벌이는 그 순간에도 댄의 외도와 약물 복용, 음주 운전 등은 계속 됐고, 그러다 그에게도 한 때의 바람이 아닌 카르멘의 빈 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사랑이 나타난다. 그리고 댄은 그녀와의 밀회를 카르멘과 암의 도피처로 삼는다. 이쯤 되자 댄에 대한 분노로 나는 그의 사랑이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카르멘이 안쓰러웠다.
책을 읽으며 내내 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는 댄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외도를 하지 않을 때의 댄은 헌신적인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매일 그 모습을 유지하라고 강요한다면 댄의 인생까지 암에게 내주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댄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다. 그러자 곁에서 지켜보는 댄도 환자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게될 그의 상처도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댄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만약 남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주인공 댄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카르멘의 죽음을 지켜보며 죽음의 공포보다는 이별의 슬픔이 더 컸다. 그리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카르멘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암에 걸리는 순간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인생의 주도권을 암세포와 의사들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런데 그 의사들은 권위적인 태도로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인생의 선택권을 되찾는 것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 작품에서 잘 보여준다. 문화적 격차와 가치관의 차이 등으로 <사랑이 떠나가면>을 편하게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건강하게 살아간다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고 그것에 더욱 감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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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좀 갸우뚱하면서 읽은 게 사실이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와 어린 딸을 둔 남편의 처신으로는 댄의 행동에 이해가지 않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인 카르멘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그녀는 고통과 싸우고 항암제에 시달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과 이별해야하는 두려움 속에 떨고 있다. 아기인 루나는 늘 돌봐주는 손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댄은 암에 걸린 아내를 둔 남편의 괴로운 심정에 몰두하느라, 자신을 구원하느라 바쁜듯 보였다. 아마도 우리의 의식과는 아주 많이 다른 네덜란드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곳 암스테르담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고 그들은 마약을 허용하며 그리고 안락사가 허용되는 곳이 아닌가 말이다. 아파서 몸부림치는 아내를 두고도 그는 해소할 수 없는 그의 욕망을 돌보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며 술집으로 클럽으로 돌아다니며, 카니발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플로리다로 여행을 한다. 그의 친구들 역시 여행지에서 혹은 페스티발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걸 보면 그런 것은 그 나라에서는 일상인가 보다. 그러나, 내게는 조금은 낯설고 거북하기까지 했다. 특히 그가 로즈에게서 위안을 찾고 카르멘을 끊임없이 속이는 것은 그에게조차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날마다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고, 사랑하는 아기 루나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삶을 연장하기 위해서 괴로운 항암치료를 견디고, 남편을 힘들게 하는 것을 알고, 그가 가끔은 혹은 자주 자신을 속인다는 것을 아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조금만 아프고 힘들 때 가족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인데, 카르멘은 도대체 어떻게 지냈을까?
그러나 그들은 다투고 화해하고 울고 웃었다. 아마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래도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디고 그리고 아름답게 최후를 맞았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처음에 느꼈던 거북함은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지만, 카르멘의 최후를 준비하면서 댄이 보여준 훌륭하고 다정한 태도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댄의 태도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내 혹은 남편의 죽음을 함께 맞이해야할 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것이고 그것은 누구에게 먼저 찾아올 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속담에 "내일(來日)과 내생(來生) 중 무엇이 먼저 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示唆)하는 말이다. 그리고 삶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또한 닥쳐올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 남은 삶이 언제 멈출지 모르므로 우리는 오늘을 좀 더 알차게 신나게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이 책은 참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카르멘을 기억하는 게 슬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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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中............ 카르멘과 댄이 유독 마음 아픈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이별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때문에 소설이 고맙다.
....p374 당신은 사람들에게 무너가 남기길 원했고 루나에게 편지를 썼지. 당신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즐기기를 바랐어. 당신의 장례식을 즐기기를. 그들의 여생을 즐기기를,, 사랑, 우정, 예쁜 옷, 사소한 일들, 독특한 것들을 즐기기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삶의 기술이지. 당신은 삶의 기술에 있어 전문가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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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암을 선고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직 내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기억이 없다. 내 일생에 통틀어서 열 번 만날까 말까하는 친척이 돌아가셨을 때를 제외하곤 기억에 남는 장례식조차 없으니, 내겐 죽음은 아직 먼 이야기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의 엄마의 울부짖음이었으나 그 때도 내겐 실체로 와닿지 않았던 현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부고보다도 더 안타깝고 사람을 힘겹게 하는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아닐까? 그 길고도 모진 암투병과 확신없음과 답답함을 같이 싸워하는 상황이 갑작스러운 죽음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얻는 것이니, 어쩜 더 나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봐야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더 크고 아플 것이다. 이 소설은 레이 클룬이 유방암으로 아내를 잃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사랑이 떠나가도 남아있는 것은 결국 사랑 뿐이라는 걸, 그런 크나큰 감동을 준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내가 아직 인생의 반쪽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가 암투병 환자의 적나라한 현실이 감당키 어려웠다. 특히나 암에 걸린 아내가 집에 있는데도 끊임없이 밖에서 온갖 외도를 벌이고 다니는 남편이라니... 이럴수가!!! 이것은 내 장미빛 결혼 환상에는 위배되는 일이다. 어쩌면 이 사랑스러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불륜을 저지르는 남주인공 댄이 독특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만, 아내가 투병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사고를 친다. 결혼 생활 중에 스무 번이나 넘게 외도를 했다니까 할 말이 없다. 그것도 동료 여직원과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도 이루어지는 외도를 어떻게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런 내 비난에 처음부터 변명거리라도 만들어두고 싶었던지, 서두에서 자신이 '고독공포증(모노포비아 - 고독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으로 충동적인 성적 욕구를 갖게 되는 심리 증상)'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럼, 결혼하지 말던가.
자신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지, 뭐하러 결혼해서 그런 생고생을 시키는지. 카르멘은 암과의 결투도 모자라서 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온갖 상상으로 자신을 괴롭혀야 하지 않나 말이다. 흐음,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으면 암이 생긴다는데 혹시 그 암 댄 때문에 생긴 것 아니야? 어쨌거나 그런 댄도 사실은 카르멘을 사랑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가 카르멘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길 때조차도, 그가 아내를 사랑했음은 믿는다. 그것은 그의 외도 상대가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불안하고 방황되고 암에 걸린 카르멘을 마음 속에서는 거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과도하게 일어난 성욕 현상이라는 것을. 어쩌면 말이다, 그런 외도를 했기 때문에 카르멘 곁에서 안정적으로 보살펴 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노라의 말처럼!!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유부남의 외도는 물론 잘못이지만 어느 정도의 외도는 당연하다는 것을, 내가 너무 이상적인 모습으로, 장미빛으로만 결혼을 봤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된 장면이 있다. 카르멘이 유방절제술을 받고서도 암이 계속 진행된 후에 갖는 무플 모임에서 말하기를, 아내가 유방암을 걸렸을 때 이혼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유일하게 댄과 카르멘 부부가 합심해서 병원에 같이 가서 치료를 받는다니, 어쩜 인간들은 아주 이기적일 수 밖에 없을지도.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 서글프다. 사랑한다고 믿어서 결혼하고 같이 살았는데, 병에 걸렸다고, 그것이 감당키 어렵다고 그렇게나 외면해버리다니 그럴 수가 있는 걸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면 결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참 좋았다. 카르멘이 혼자 거동조차 힘들어 할 때가 되었을 때, 꾸준히 만나온 불륜 상대가 있었음에도 카르멘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댄의 모습은 멋졌다. 카르멘이 마지막을 할 수 있게 아주 아름다운 집으로 이사가서 혼자서 단장하고, 카르멘의 수발을 들어주고, 그녀의 모든 기록을 정리해서 딸에게 줄 것을 남겨두고, 그녀를 목욕시켜주고, 구토할 때 곁에 있어주고, 마지막으로 대화까지.... 그렇게나 서로에게 미안해하면서 어색해하면서 지긋지긋해하면서 살아왔던 기억이 무색하게 그렇게나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일로 댄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댄은 이제껏 카르멘에게서 받아왔던 사랑을 다시 되돌려줄 수 있게 되었고, 카르멘은 아름답고 안정감 있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서른여섯 살, 죽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나이이지만, 그래도 살아있어서,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꾸려서 서로에게 아주 값진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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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중에 아픈사람이 있으면 환자는 당연히 힘들다 그렇지면 옆에서 지켜봐야하는 이는 두배의 고통을 받는다. 이글은 그런 이의 마음을 말하는 글이다. 레이 클룬의 자전적인 글 댄과 카르멘은 중산층으로 둘다 일에서는 성공한 부부다. 그런데 카르멘이 6개월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정상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럿도 치료가 힘든 암이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다음부터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카르멘의 병을 고치기위해 댄이 노력하지 않는건 아니다. 그런데 댄이 카르멘의 병에대한 대처는 독특하다. 댄은 결혼전에 바람둥이였다. 그만큼 여자를 좋아했는데 카르멘과는 사랑을 할수없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는 자신의 현실을 이겨낼수가 없다. 죄책감을 갖고서도 불륜이란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카르멘또한 댄의 행동을 모르지는 않는다. 댄그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들 부부가 병으로 인해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우리같은 동양적인 정서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또한 한 가정의 주부로 카르멘같은 입장이라면 이란 설정에서 책을 읽다보니 불륜에 빠져 허우적대는 댄이 너무나 한심하고 그를 응징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든다. 그런데 마지막을 맞이하는 카르멘이 댄을 불러 고통을 멈춰달라고 하면서 댄의 행동을 알고있고 또 이해한다고 그리고 그런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내가 누굴 판단하고 누구를 단죄할수 있느냐를 생각해봤다. 그당시 카르멘에게 필요한건 댄이었다. 불륜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 아픈 그녀에게 필요한건 댄이라는 것이다. 댄은 불륜속에서 로즈를 사랑하지만 카르맨을 끝까지 지켜본다. 그남자의 사랑방법을 누가 뭐라 할수있나 댄을 카르멘의 장례식에 로즈를 초대한다. 어찌보면 참 쿨한 글이다. 이글의 소개를 읽었을때 나는 문론 삼류적인 눈물의 간병과 사랑을 기대했다 그런내 예상을 빗나가게 했지만 책을 덮을때는 그래 사람이 다 똑같은 사랑을 할수는 없는거니 댄과 카르멘이 행복했으면 된거다라고 누구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좌절에 대처하는 방법을 각각의 취향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댄 당신은 로즈와 지금 행복한가요 아니면 다른 여자를 찾아 헤메고 있나요 카르멘의 마지막 바램인 당신이 행복하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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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서 그럴까요? 소설이지만 정말 솔직하고 솔직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돕니다. 배우자가 암에 걸렸다..그리고 죽는다.. 보통의 소설이나 영화라면 같이 따라 죽지는 않더라도 배우자의 남은 생에 내 자신을 올인하고 더 없이 배우자를 사랑하는 그런 모습일껍니다. 저 역시 그런 소설인줄 알았습니다. 가을인데 우울한데 눈물 좀 흘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봤죠. 그러나 읽어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댄은 그런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카르멘을 사랑합니다. 순애보랑은 색깔이 다른 그런 사랑이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댄처럼 배우자보다는 나의 외로움과 나의 고독을 먼저 걱정했을까? 저 역시 확실한 답을 못주겠네요. 아마도 댄처럼 그랬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그리고 제 자신이 무서워 배우자를 먼저 생각하는 척 하겠죠. 배우자가 떠나고 나면 제가 배우자에게 제대로 못한게 얼마나 후회가 될까요. 그래서 아마 저를 생각해서 배우자에게 잘해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마음도 있죠. 같이 살아온 세월과 많은 추억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둘 사이의 자식이 있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책에 나오는것처럼 병색이 짙어지는 배우자를 보고 마냥 사랑할 수 있을까 싶네요. 마음이 아플것 같습니다. 사랑보다는 연민이 앞설것 같네요. 저도 처음엔 댄이 너무 심하다 싶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픈 카르멘을 두고 자기가 외롭다는 이유로 클럽에 다니고 여자들과 자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우고.. 이해가 안되더라구요. 그러나 책을 읽을 수록 댄의 마음이 읽혔습니다. 저 역시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단지 현실을 도피하는 돌파구가 다를 뿐이죠. 죽음이라는게 참 힘든거네요. 먼저 떠나는 이도 슬프지만 남겨지는 이에게도 한없이 잔인합니다. 마지막에 송별모임을 갖고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모습이 하나하나 자기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이 멋있어보였습니다. 저 역시 할 수 있으면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아무 준비도 안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죽음은 먼저 떠나는 저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당황스러운 일인것 같습니다. 배우자의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색다르고 색다른 소설이었습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야 되겠단 생각이 드네요. 더 많이 사랑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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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유방암 선언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책 소개와 이책 저자 소개를 읽으면 알 수 있듯, 이는 작가의 죽은 아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르멘 반 디펜의 '육아종성 유방염'이라는 고질의 병의 선언이 죽음의 판결처럼 다가왔다. 그녀의 눈물이 안카까웠고, 그녀의 절망이 안쓰러웠다. 카르멘의 남편인 댄 반 디펜은 소설 초반 자신이 고독 공포증을 가진 쾌락주의자, 즉 바람둥이임을 선언한다. 나는 이들 부부의 관계 속에서 아내의 죽음ㅇ르 앞둔 남편의 헌신과 반성을 상상하였다. 하지만, 책은 예상을 개고, 내 진부하고 비 현실적인 사랑을 조롱하듯,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니, 정확히 말해 모두 반대 방향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또는 아내갈 될 여성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댄은 행동하였다. 하지만, 왠지 죽어라 비난만 할수도 없었고, 그의 친구 프랑크처럼 모두 덮을 수만은 없었다. 정확히 카르멘의 관점에서 댄을 바라볼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마지막에는 그녀처럼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내가 이책에 대해 이처럼 장황이 떠드는 이유는 절대로 진부한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서이다. 이책의 형식이 마치 하루 하루 일기를 써놓은 병상일기의 형식을 하고 있듯이, 실질적인 카르멘과 댄의 삶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자인 나에게 '신델렐라가 구드를 신은 후 모든 것이 행복하였다'가 아니듯 때로는 잔인하게 다가왔지만, 잔잔하게 다가오는 현실이 아름다웠다. 두 부부의 삶을 읽어나가면서, 나도 카르멘과 댄의 친구가 되었고, 볼터스 박사는 쳐다보기도 싫었고, 스켈테마 박사의 휴가에 분노하고, 카르멘의 치료에 안타까웠 했다. 그들의 딸 루나에게 카르멘에 대한 편지를 보내고 싶어질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해준 그들의 친구들이 모두 고마웠다. 특히, 카르멘이 좋아하는 댄의 친구 프랑크의 관대함에, 항상 카르멘의 편이 되어준 토마스와 안네에게 고마웠다. 처음 댄의 바람게에 나는 토마스처럼 뚱해져서 토라지기도 하였지만, 결혼반지를 챙겨준 프랑크처럼, 그리고, 카르멘처럼 댄의 바람기와 댄과 로즈사이를 모른척 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미 번히 드러내는 결말 속에서 책을 읽는 동안 흥미가 반감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독자가 있다면, 결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책속에 있는 댄과 카르멘이 함께 하는 순간, 둘이 나누는 대화,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 그리고 서로를 향하는 몸짓과 행동이 이 책의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따라서, 매순간 한장 한장이 모두 흥미롭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내가 책을 든 순간은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덕분에 나는 방해받지 않고 책을 든 순간부터 계속 읽어나갔고, 내가 잠시 책 읽기를 멈춘 것은 바커의사에게 약속 시간을 정하러 댄이 연락하는 순간이었다. 번역가 공경희 처럼 나에게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고, 한 모금의 물이 필요했고, 카르멘의 친구들과 가족들처럼 나에게도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웠다. 사랑, 삶, 죽음이 그 경계를 뭉개면서 한 덩어리로 다가왔다. 진실이며 사실이기에 더욱더 다가오는 이 세 단어에 가슴이 저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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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친정어머니께서 췌장암에 걸리셨다는 소리를 듣고 같은 사무실의 우린 함께 걱정을 했다 그리고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을때도 함께 슬퍼했다 하지만 암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의 슬픔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암에 걸리신 어머니를 보고서였다
남들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때는 걱정은 되었어도 무섭지는 않았는데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런일이 생기고보니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두렵기만 했었다
그로부터 열 달의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는 지금도 병원을 다니시며 치료를 받고 계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동료의 어머니와는 달리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시단다 병원에서, 집에서 구토로 힘들었던 것도 몇달에 한 번씩 입원해야하는것도 식이요법도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것에 묻혀갔다
이 책 [사랑이 떠나가면]을 읽으며 만약 어머니가 카르멘처럼 죽음을 앞둔다면 난 댄과 카르멘이 그랬던 것 처럼 "카르페 디엠"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행복한 부부인 댄과 카르멘의 이야기다 어느 날 카르멘은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되고 암에 걸린 카르멘이 죽기까지 2년정도의 부부생활을 댄의 눈으로 사실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던,암 투병 기간동안 아내를 위해 눈물겨운 사랑을 보여주는 다른 남편들과 거리가 조금 있는 작가 레이 클룬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내가 투병생활로 힘들어하는 와중에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고 어떻게든 집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행동이 보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어쩜 댄의 그런 솔직한 이야기 덕분에 이 책이, 댄과 카르멘의 사랑이 더 공감이 되고 안타까웠다
우린 모두 사랑이 떠나간다는 그 소설같은 슬픔에 떠나보내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떠나가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당해보지 못한 우리가 아무것도 몰라서,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들에게는 너무 너그러운 우리들이 그들을 간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나도 이기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댄을 보며 고민했다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날들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을 보며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부여잡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죽은 뒤의 장례식까지도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었던 카르멘의 마지막을 보며 그녀의 용기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안락사를 위해 약을 마시는 카르멘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하고 조금 더 같이 있어주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떠나보내는것은 슬프다 떠나가는 사람은 한 번에 떠나가지만 떠나보내는 사람은 두고두고 하나씩 그를 떠나보내야하기 때문이다
그가 함께 쓰던 물건을 볼때도 그와 함께 했던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릴때도 그가 좋아했던것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문득 그를 떠올릴 것이고 우린 그때 마다 또다시 그를 보내기 위해 힘들어 해야 할 테니까
댄에게서 카르멘이라는 사랑이 떠난 지금 그녀와 같은 또다른 사랑이 댄에게 찾아오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카르멘도 댄이 루나에게 말한 것처럼 가장 예쁜 천사가 되었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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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두께와 작은 소제목에서 전혀 내용을 짐작하기 힘들었어요. 가벼운 사랑얘기가 아닐꺼같은 느낌이 책장을 펼치는순간 바로~ㅎㅎ
죽음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에요. 깊게 생각하기 싫을때도 있었던거 같아요. 언젠가 모든이들에게 오는 그 죽음을 준비한다고할까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저로인해 미련이 없도록..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하네요.
그들의 삶의 방식,사랑이 잔잔하게 다가오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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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 거주하고 있는 서른 다섯살의 댄과 카르멘은 부족한 것 없이, 각자 광고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쁜 딸 루나까지.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부부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만족하며, 주위의 친구들까지. 결혼 후 위기라고 한다면 댄이 결혼 후 1년이 지나 고독공포증이라는 이름하에 회사 여직원과 바람을 핀 적이 있다는 것. 하지만 카르멘의 이해와 극복으로 지금의 결혼 생활은 만족스럽다.
그러나 이 가정의 행복을 깨드릴 일이 생겼으니, 몇달전 유방암 검사에서 문제되지 않았던 카르멘의 유두에 이상한 점이 발견되고, 남은 시간이 몇달 남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여자에게 가슴이란, 여성의 매력을 드러내는 상징 중 하나. 그곳에 문제가 생겼다. 상황은 썩 좋지 않고, 수술을 해야한다.
애써 괜찮은 척, 그녀를 위로하는 댄. 당신은 가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아름다워. 난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남들에게 좋은 남편인 척, 순애보를 보내고 그녀의 옆에서 든든한 버틈목이 되어주는 남편으로 보이고 싶지만, 댄은 계속 우리의 삶이 불행에 사로잡혔다는 기분이 든다. 의무감, 책임, 체면 때문에 암에걸린 여자에게 더 잘해야한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힌다.
카르멘의 항암 치료에도 따라가고 싶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너무 싫다. 그리고 왜 내가 이런 상황에 빠져 이 불안감에 빠져야 하는지 댄은 자신의 상황이 싫기만 하다. 항암치료로 대머리가 되버린 카르멘, 수술로 가슴 한쪽이 없어져버린 여자. 카르멘도 자신의 모습에 속상하고 댄과 카르멘의 마음이 멀게만 느껴진다.
병으로 아파하는 아내를 두고도, 자신의 취미나 쾌락을 뒤로 한 채 아내에게만 매달려 있어 조금씩 탈출을 꿈꾸는 댄. 남성으로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아내를 대신 할 상대를 구하기도 하며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아내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여자와 쾌락을 즐길 수가 있냐고. 저렇게 철저히.
하지만 댄의 마음도 전혀 이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상황이 답답하지 않았을까. 아내의 병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처음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가 발견만 했다면, 카르멘도 자신도 이렇게 힘들지 않아도 될텐데. 벗어나고 싶은 마음. 또 한편으로는 아내를 잃어야 할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인간이라는 내면의 본능. 그런것들. 반면 만약 내가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면 그 엄청난 배신감과 실망감을 어떻게 해야할까.
아직도 아내가 죽어간다는 것이 남의 일만 같게 느껴지기도 하는 댄. 그러나 수술을 한 후 오히려 암이 전이가 되면서 카르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댄은 공포를 느낀다. 아픈 아내를 모든 것을 제쳐두고 눈물흘리며 돌보는 그런 순애보적인 사랑을 담은 책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더 인간의 본성을 잘 담아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 또한 조금 놀라운 부분이기도 하고. 특히 이 책은 끝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타인에 의해 죽음을 맞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분명한 상태에서 본인이 선택한 안락사라는 점이 논란의 대상이 되겠지만, 나였다면. 나 역시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지 않았던 것보다 사랑했다가 실연하는게 정말 낫는 걸까? 책을 다 읽고 난 후 뭔가 풀리지 않는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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