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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가 처음본 것은 중학교 때 친구에게 선물받았을 때다 참 오래전 인데도 , 난 아직도 그때의 심정을 기억한다. 무언가 쿵. 하고 세게 맞은 듯한 기분. 그 심정을 글로 잘 표현할 방법은 , 아직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개정판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반갑고, 계속 그래주길 바란다.
한 미술작가에게 누군가 한마디를 했다. 작품에 깊이가 없군요..
그 말은 작가에게 큰 고통으로 돌아왔다. 그 말 한마디는 한 작가를 더이상 열정을 꺼내지도 못하게 만들었고, 끝내는 자살이란 비극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이후 작품은 재 평가된다. 열정이 가득한..깊이가 있는 작품이라고...
14살쯤 읽은 이 소설로 나는,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큰 절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36살이 된 지금, 그녀가 타인의 시선에 힘겨워 자살을 선택했어야만했을까, 정말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한다. 죽도록 힘들었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든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러지 못할 수 도 있는게 더 쉬운일이다.
짧지만, 복잡한 감정을 주는 소설이라, 토론용 소설로도 적합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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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3 ]리뷰- 깊이에의 강요 / 피트리크 퀴스킨트 2014. 12. 13.(토) 오늘은 토요일 리뷰를 쓰는 날이군요. 참으로 빨리 시간이 흘러가는군요. 감사합니다. 1.저자소개 파트리크 쥐스킨트 : 가느다란 금발에다 유행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낡은 스웨터 차림의 남자. 사람을 만나기 싫어해 상 받는 것도 마다하고 , 인터뷰도 거절해 버리는 기이한 은둔자. 이 사람이 바로 전 세계 매스컴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다. 피트리크 쥐스킨트는 1949년 뭰휀에서 태어나 암바호에서 성장했고, 뭰휀 대학과 엣 상 프로방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 했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편의 단편을 썼으나 별다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 』가 ( 희곡이자 문학작품으로 우리시대 치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알려지지 시작했다. 그 후 냄새에 대한 천재저거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향수』 조나단 노엘이라는 한 경비원의 내면세계를 심도 있게 묘사한 『비둘기』 , 『깊이에의 강요』,등을 발표하면서 정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로시니 혹은 누가 구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는 독일의 영호 감독 헬무트 디틀과 함께 쓴 시나리오로 영화와 되어 1996년 독일 시나리오 상을 수상하였다. 2.내용 짧게 요약 깊이에의 강요는 차례를 보면 깊이에의 강요 /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문학적 건망증/ 옮긴이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깊이에의 강요」는 한 젊은 열 화가를 소재로 하여 쥐스킨트가 즐겨 다루는 예술가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추은 자신의 ㅣ예술에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고 번민하고 고내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예술가 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논평으로 본의 아니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느 평론가, 두 사람이다. 평론가는 그녀의 죽음 후 관점을 180도 로 뒤집어 ,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수 있다는 글을 쓴다. 상황에 따라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 그런 그의 한마디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 , 이 웃지 못할 모순과 희곡 앞에서 독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승부」에서 두 명의 체스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삶의 축소판이다. 3. 공명하는 구절 및 왜 공명되는지 느낌 p.11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 p.11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그 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이 작품에 대에 처음엔 칭찬을 하였으나 마지막에 깊이가 없다는 말에 이 작가는 결국 고민하고 낙심하고 많은 깊이가 없다는 것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p.12 「그녀에게는 깊이가 없어요. 사실이에요. 나쁘지는 않는데,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어요.」 p.14 「나를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나는 깊이가 없어요!」 p. 15 그림을 잘 그렸던 젊은 여인은 순식간에 영락했다. 그녀는 외출도 하지 않고 방문도 받지 않았다. 그녀는 외출도하지 않고 방문도 받지 않았다. 운동부족으로 몸은 비대해졌으며, 알코올과 약물 복용 때문에 유달리 빠르게 늙어 갔다. 집안 여지저기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고, 그녀에게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결국 그녀는 이런 깊이가 없다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몸은 쇠약해지고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고 몸은 병들어 더 빨리 늙어갔다. p.16 돈이 떨어지자 그 여인은 자신이 그런 그림을 전부 구멍 내고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가 139미터 아래로 뛰어 내렸다. 그러나 이날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었기 때문에 그녀는 탑 아래 타르 포방된 광장에 떨어져 으스러지지 않고, 넓은 귀리 밭을 가로질러 숲 가장자리까지 날려가 전나무 숲속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즉사했다. -이런 환경이 되자 그녀는 마음속에 괴롭고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결정을 이제는 죽는 게 났다. 하며 결국은 목숨을 끊었다. p.17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 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 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 충분치 않다. 〉 정말로 재능이 뛰어난 작가 가 이러한 평론의 한마디에 흔들리고 인생을 망치고 망가져서 죽음으로 가게 된다면 누구 책임인가? 자신의 책임이면서 평론자의책임도 있다고 본다. p 96. 단편 모음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세평의 이야기는 비록 분량은 짧지만, 쥐스킨트 문학의 묘미와 깊이를 십분 보여 준다. 「깊이의 강요는 」 는 한 젊은 여류화가를 소재로 하여 쥐스킨트가 즐겨 다루는 예술가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축은 자신이 예술가에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고 번민하고 고뇌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예술가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논평으로 본의 아니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느 평론가, 두 사람이다. p.97 『승부』에서 두 명의 체스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살의 축소판이다. p. 『장인 무사르의 유언 』은 세계와 인간이 점점 돌조개로 변화되고 있다는 독창적인 기발한 착상을 토대로 하고 있다. p.99 문학적 건망증에서 쥐스킨트는 직접 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번의 리뷰에서는 주로 『깊이의 강요 』를 주로 다르면서 기록한 정리했다. 감사합니다.
4.내가 저자라면 ( 어떻게 쓸 것인지) 『깊이에의 강요 』에서 깊이의 강요 , 승부, 장인 뮈사르의유언, 문학의 건망증 모두 재미있는 단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 중에 깊이의 강요는 슬픈 생각이 들었고 나가 작가라면 평론에 치우지지 않고 나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러면 언제가 그 평론가 가말한 것도 저절로 해결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제목을 칭찬의 강요 , 아니면 배려의 강요로 해서 그 주인공도 죽지 않고 잘 되어 성공하여 이 세상 많은 사람들에 보고 배울 수 있는 작가로 만들고 싶다.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 하나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2월 13일, 토, 05시40분 청포로우 신종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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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읽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으로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향수>에 이어 네번째 책이다. 이 중 스토리 그 자체를 가장 잘 살린 이야기는 <향수>인 듯 싶고 예술적 감각을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좀머씨 이야기>와 <깊이에의 강요>는 사뭇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시집과 같이 얇아서 놀라기도 했는데, 이 두께에 담긴 깊은 내용에 더 놀랐다. 이 책은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그리고 하나의 고찰 이라는 4개의 단편을 담은 책이다. 가장 인상깊은 단편은 역시 표제로 사용된 소설 '깊이에의 강요' 였다. 두 번째는 '......그리고 하나의 고찰' 이었다.
'깊이에의 강요'는 유능한 한 화가가 그녀에게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평론가와 대중으로 인해 무기력 상태가 되고 결국 자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쥐스킨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한 인간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사람들의 경솔한 언변을 꾸중하는 것일까? 소심한 화가의 어리석음을 탁하려는 것일까? 둘 다로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의 평론가들이 종이 한 장 뒤짚듯 하는 태도도 꼬집고 있다. 말이 나와 이야긴데, 명색이 평론가라는 자들의 평론을 보면 어떨땐 왠만한 사람들의 '후기'가 더 현실적이고 잘 와닿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들 또한 죽어버린 한 화가처럼 깊이데 대한 강박이 있을런지도. 우리도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그 사람은 깊이가 없어' 나는 깊이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보고 싶다. 가로의 폭이 좁고 세로나 높이가 긴 밀폐된 그 무엇을 보고 말할 수 있는 그 깊이? 그렇다면 그 깊이를 무형의 어떤 것에서 어떻게 담거나 발견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깊은 것은 훌륭한 것이고 얕은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인가? 예술작품이나 인품을 보고 쉽사리 표현하는 '깊이' 이것이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이야기 속 화가는 그 깊이를 찾으려다 찾으려다 결국은 깊이 있는 떨어짐(투신)을 통해 숨바꼭질을 끝낸다. 어떤가? 우리도 누군가에게 깊이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의내리기 힘들며 발견하기 힘든 그 무언가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또한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승부' 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체스를 두는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체스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여하튼 체스에는 많은 전략들이 존재하고 사고가 필요한데 폰을 살리기 위해 퀸을 죽이기도 하는 대담한 패자의 모습을 통해 체스의 대가가 체스판에서는 이겼지만 스스로가 패배자라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뭔가 스릴있고 아찔한 필치로 담은 듯한 이야기나 체스를 모르는 나로서는 반밖에(혹은 그보다도 덜) 이해할 수 없었을 밖에.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에퓨~
'장인 뮈사르의 유언' 네 편의 단편 중 가장 난해한 단편이었다. 또한 가장 쥐스킨트다운 독특한 단편이 아닌가 싶다. 화단에 장미를 가꾸려던 뮈사르가 땅에서 우연히 조개 암석을 발견하게 되고 땅은 모조리 조개 암석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땅은 조개화 되어가고 인간의 뼈역시 조개화 되어간다는 일종의 맹신(?)을 담고 있다. 죽음을 면전에 둔 한 인간의 (어떤 특정 대상이나 현상에 대해) 무모하고 광기어린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장미를 심고 화단을 가꾸며 삶을 제대로, 잘 살고 싶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절망의 메세지, 죽음앞에서 무엇에든 매달려 보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뮈사르를 통해 그려내었는지도.
'......그리고 하나의 고찰'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 내지는 자아성찰을 가져다 줄 단편이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본다. 방대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겠으나 많은 책들.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을 넘어선 정보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자연적으로 망각하게 된다. 그런 망각에도 불구하고 읽는다는 것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기억하기 위함보다는 읽는 순간의 즐거움을 위함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책이 정보전달의 기능보다는 유희의 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망각이 간섭한다손치더라도 별 억울함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방대한 정보와 망각의 사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원수지간일게다.
얇은 책에 담긴 네 단편이었지만 읽고난 뒤의 느낌은 몇 권짜리 전집을 읽은 듯한 기분이다. 이 책이 얇았으니 망정이지 두꺼운 자태로 왔다면 아마 읽다 몇 번이고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휴~ 파트리크 쥐스킨트씨, 이 책이 얇아서 감사하네요.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을 다루기엔 적당한 두께가 아닐까?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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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괴짜다, 이 사람,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사람은 언론에 노출되는 걸 너무 싫어해서 개인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고 아마 돌아다니는 사진도 한 장일 거다. 누군가 지인이 그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고 사정없이 절교를 선언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하나의 고찰>을 보다보면 중반까지 어쩌면 그렇게 나랑 똑같냐고 감탄을 한다. 읽는 건 아무리 정성들여 읽었어도 모두 잊어버린다는 거다!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근데 왜 이렇게 달라?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의 글은 물론 모두 다는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건 매우매우 확실하게 남는다.
아마 국내에 소개된 쥐스킨트 작품은 거의 다 가지고 있을 거다. 다 읽은 게 아니고 가지고 있다. <로시니 혹은..> 어쩌구 하는 작품은 표지가 색이 바랜 채로 책장에 꽂혀 있다. 몇번인가 시도해봤는데 안 읽히더라..
<좀머 씨 이야기>는 삽화가 이뻐서 인상적이었고(덕분에 나는 또 장 자끄 상뻬의 책들도 모으게 된다), 좀머 씨란 캐릭터도 참 독특했다. <향수>도 매력이 대단해서 한번 잡으면 끝을 봐야 한다.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소설이기도 하고, 가장 일반적인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기도 하다.
내게 덜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 빼고, <비둘기>가 그 인물묘사가 너무 치밀해서 막 재미는 없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면, 이 <깊이에의 강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집이며 그 속의 단편 제목이기도 하다. 굉장히 짧고 단순한 플롯인데 인상은 강하다. 내가 만일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을 누구한테서 빼앗아올 수 있다면 맨 먼저 떠올릴 게 이 <깊이에의 강요>를 쓸 때의 파트리크 쥐스킨트다.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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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특이한 소재, 뛰어난 인물들의 심리 묘사로 많은 독자들을 매료 시켜왔다. 한 번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그의 모든 작품을 찾아 닥치는 대로 읽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나역시 그러했다. '깊이에의 강요' 는 세편의 짧은 이야기가 실린 단편 모음집이다. '깊이에의 강요' 제목 자체가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든다.
마지막엔 <…그리고 하나의 고찰>이라는 짧다한 에세이가 있어 좀더 쥐스킨스와 친밀해 질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그 다운 성격을 지닌 사람이였다.
이 에세이에서 쥐스킨트는 직접 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문학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미칠것인가? 쥐스킨트의 네버마인드 정신이 살아있는 에세이 이다. [인상깊은구절] 「한쪽 귀퉁이에 <아주 훌륭하다>라고 적고 느낌표를 힘주어 찍자. 그리고 앞으로 잎어버리지 않고 그렇게 장엄하게 깨닫게 해준 저자에게 몇 마디 경의를 표할겸, 이 글이 내안에서 불러일으킨 생각의 흐름을 요점만 기록해 두자」그런데 이런! <아주 훌륭하다!>라고 긁적거리기 위해 연필을 기울이자 내가 쓰려는 말이 이미 거기에 적혀 있다. 그리고 기록해 두려고 생각한 요점 역시 앞서 글을 읽은 사람이 벌써 써놓았다. 그것은 내개 아주 친숙한 필체, 바로 내 자신의 필체였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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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독자 첫리뷰를 기대하고 도서 검색을 했었더랬다. 쥐스킨트라는 작가는 내 기억에서 자그마치 5년여를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이름과 책제목이나 끄집어내는 정도이기에...
역시 쥐스킨트의 책은 고전이다. 남발되는 치즈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 우리는 언제부터 그런 성공에 목매는 자기실현책들을 보며 자기최면을 걸었을까.
오랜만에 꺼내들은 '깊이에의 강요'는 아주 짧고, 강렬하다. 길고, 강렬한 책들은 많다. 고르기도 쉽다. 예를 들어 내가 몇달째 밤에만 읽고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책은 한장한장 빛이나지만, 과연 언제나 다 읽을지. ..
'깊이에의 강요'는 아주 얇고, 작은 책이다. 그 안에 자그마치 네편의 단편이 있다. 개인적으로 쥐스킨트의 모든 책들을 구입했었고, 읽었었다. 5년전에, 그러나 그 내용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것은 이 단편집이다.
첫번째 단편인 '깊이에의 강요'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겠지. 평론가들의 말은 다 x이다. 특히 알 수 없는 형용사들이 길게길게 늘어선 평론을 하는 이들. 뭐 그런 책도 있지 않은가, 피카소 어쩌구 하는. 또 하나는 귀가 얇은 우리네들에 대한 경고이다. 남의 시선에, 남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중심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깊이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심각하고, 진지하고, 심각하고, 진지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요즘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들에게 깊이를 강요하고 싶기는 하다.
두번째 단편은 '승부'이다. '승부'의 등장인물은, 마을의 체스 고수, 뭔가 고수의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 이방인, 체스 고수에게 한번 이상씩 져본 구경꾼들.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는 십중팔구 구경꾼의 입장에서 손에 땀을쥐고 가슴은 두근반세근반 하며 글을 읽게 될것이다. 구경꾼과 같이, 작가가 여러번에 걸쳐서, 결말의 복선을 눈에 드러나게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말을 바라며, 그래도 혹시,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게 된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뻘쭘한 구경꾼들과 같이 역시 민망함, 그럴줄 알기야 알았지 하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 글에서 얘기할 수 있는것은? 말로 하기보다는 글을 읽어보고, 감정을 내맡기는 편이, 가슴에 찡~(민망함이) 와닿게 될 것이다.
세번째 장인 뮈사르의 유언, 개인적으로 조개류에 대한 공포증이 있기때문에,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혹시 쥐스킨트도 자신의 조개공포증을 소재로 글을?
마지막 단편은 '...그리고 하나의 고찰'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고, 가장 공감가는 글이며, 내 독서생활을 통틀어 마지막까지 의지할 수 있는 단한편의 글이라고 하겠다. 이유는? 읽어보면 안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혹시-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본다-(인생에서처럼)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활동일 수 있다. 의식 깊이 빨려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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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가지 서로 다른 단편과 하나의 에세이를 엮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이다. 아마 이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오래전에 읽었겠지만-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이고-그래고 다시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아닌가한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문학적 건망증
으로 짜여진 이 내용들중에서 책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첫번째 이야기 깊이에의 강요가 단연 으뜸이다. 그러니까 제목도 그리지어졌을테지만 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난 단지 생각없는 글 하나에 주인공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채 나중엔 천재 예술가의 죽음을 탄식하는 글을 쓴 평론가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 내 나이가 조금 들어서 다시 읽어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그렇게 생각없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을 이렇게 단편적으로 그러나 아주 적나라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감정을 담지 않은 절제된 언어로 글을 써내려간 쥐스킨트의 글재주에 다시 감동하고 있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음이라. 어린시절 '권선징악'의 세상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던 의식에서 이제는 어쩔 수 없는 타인이 있을 수도 있고 나에게는 소중하지만 어처구니 없게 쓰러져 내려앉는 영혼이 있다는 것을 가슴아프지만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 글을 시사하는 의미가 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고 또 그렇게 느낌면서도 힘이없는 지금의 나를 인식하면서 또 다시 조금은 슬픈감정에 빠져들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고 살고 있을까? 아마도 쥐스킨트는 그리고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가는 A형이 아니었을까? 혈액형을 논한다면 A형이 아닌 다른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이 불끈 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평론가의 혈액형이라고 생각되는 타입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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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4가지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간결하지만 깊은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책은 굉장히 얇고 간결하지만 책을 다 읽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해하고 질문하면서 읽는데에 전혀 부담이 없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그리고 문학적 건망증 깊이에의 강요에서는 한 여류화가의 인생이 평론가의 한마디에 의해 자살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승부에서는 진짜 승리자와 패배자가 누구인지 체스라는 승부의 세계를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승부는 체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테고 내 경우는 체스에 무지해서 글을 이해해는데 좀 어려움이 있었다. 간단하고 쉽게 읽을수 있지만 다 읽고나면 큰 깨달음을 얻은거 같은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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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쥐스킨트는 우리 나라에서 '좀머씨 이야기'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작가이다. 어느 매체의 광고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당시 '좀머씨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개인적으로 그 책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몰래 봐서인지는 몰라도 쥐스킨트는 내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얼마 후 기회가 있어 '콘트라베이스'를 보게 되었고, '어? 이건 좀 괜찮네!' 라는 생각에 결국, '향수'라는 소설까지 보게 되었다. 나는 그 '향수'라는 작품으로 첫 만남이 대단히 실망스러웠던 쥐스킨트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 후 난 쥐스킨트의 책이라면 모두 사서 보았고, 그 중에 하나가 '깊이에의 강요'이다.
이 책은 하나의 소설이 아니라 세 개의 소설과 한 개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쥐스킨트의 단편 모음집이다. 책의 타이틀인 '깊이에의 강요'는 네 개중 첫 번째 소설의 제목과 일치한다. 두 번째 단편의 제목은 '승부', 세 번째는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마지막으로 에세이 '......그리고 하나의 고찰'..이렇게 세 개의 소설과 에세이 한편이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 글들의 구체적인 장르나, 무슨 틱? 하다는 말을 못쓴다. 하지만 이 글들은 상당히 독특하고 인상적이다라는 말은 감히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깊이에의 강요'와 마지막 글인 '......그리고 하나의 고찰'이 가장 맘에 든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둔 체스로, 비록 졌지만, 그러나 지지 않은 체스게임을 한 청년과 그의 상대 노인을 이야기하는 두 번째 소설 '승부'와, 지구가 조개껍질로 덮혀버리고 말 것이라는 걱정으로 당황하는 세 번째 소설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은 개인적으로 그리 유쾌하지 못하였다.
이건 개인적 소화능력의 부족이거나, 아니면 취향의 차이인지 싶다. 하지만, 다른 두 글로도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우연하게도 이 두 글은 네 개의 글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짧은 글이다. 그러나 길이와 반비례하게 여운은 남았다. '깊이에의 강요'는 한 유망한 여인이, 한 평론가의 악의 없는(?) 비평 때문에 몰락해 가는 모습을 그린다. 신문에 올린 '깊이가 없다'라는 그 문구가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에 대해서 '깊이가 없다'라고 평하게 했고, 그 여류 화가를 고민하게 했다. 결국 그녀는 순식간에 영락했다.
외출도 하지 않고 방문도 받지 않고, 몸은 비대해졌으며, 알코올과 약물 복용 때문에 유달리 빠르게 늙어갔다. 결국 그녀는 투신자살을 한다. 그리고 그녀를 자살까지 몰아넣었던 그 비평가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깊이에의 강요를 읽는다. 이 어찌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이 글은 한 사람의 사소한 말이 얼마나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말해주며, 또한 식자들이 남의 생각을 자기의 생각인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타인의 말에 스스로 얼마나 많이 공명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내가 집어낸 코드는 대략 이 정도이다.
네 번째 글인 '......그리고 하나의 고찰'은 문학의 건망증(?)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신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가? 그러면 그 책 중에서 기억나는 구절은 무엇인가? 그 책이 당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정말 기억이 나기는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내가 볼 때 이 글은 어디선가 봤던 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음...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있는 그런 것?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는데, 링크를 따라 가다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고도 자신이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이다. 혹자도 그렇지 않는가? 링크와 링크를 연결하다보니 한참 뒤에야 '어? 내가 첨에 뭘 하려고 했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황당해 했던 적이 없었는가?
두 개의 글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리고 쥐스킨트의 팬이라면 꼭 소장할만한 책이다. 다시 읽을만한 몇 안돼는 책 중에 하나이다. 쥐스킨트의 글은 전투적이지 않게 우리의 일상에 딴지를 건다. 그 말투는 상당히 부드러우나, 뜨끔하다. 그래서 난 그의 소설을 계속 읽는다. 다른 이들도 이 책에서 그의 매력을 느꼈으면 한다. [인상깊은구절] 단편 모임집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세편의 이야기는 비록 분량의 짧지만, 쥐스킨트 문학의 묘미와 깊이를 싶분 보여준다. 깊이에의 강요는 한 여류 화가를 소재로 하여 쥐스킨트가 즐겨 다루는 예술가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축은 자신의 예술에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고 번민하고 고뇌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예술가와,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논평으로 본의 아니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어느 평론가, 두 사람이다. 평론가는 그녀의 죽음 후 관점을 백팔십도 뒤집어,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열정,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수 있다는 글을 쓴다. 상황에 따라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 그런 그의 말 한마디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 이 웃지 못할 모순과 의극 앞에서 독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단편 모임집 깊이에의 강요에 실린 세편의 이야기는 비록 분량의 짧지만, 쥐스킨트 문학의 묘미와 깊이를 싶분 보여준다. 깊이에의 강요는 한 은 여류 화가를 소재로 하여 쥐스킨트가 즐겨 다루는 예술가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축은 자신의 예술에 깊이가 |
| 좀머씨를 읽구나서 왠지모르게 그의 책을 더 읽고픈 맘이 들어 바로 구입했던 책이였다. 단편이야기 몇편을 묶어놓은 솔직히 몇년이 지나다보니 다른 내용은 생각이 안나고 책 제목과 동일한 단편 '깊이에의 강요'는 아직까지도 기억속에 남아있다. 평론가의 말 한마디에 화가는 절망하다 끝내 죽음으로까지 가버린다는 글쎄.. 난 화가도 아니고 예술가가 아니라서 그 말한마디가 내포하는 의미를 전부 이해할순 없지만 작가는 대표적으로 화가와 평론가를 예로 든게 아닐까 싶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무심코 던진 말한마디로 인해 상처받고 원수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깐 말이다. 죽어버린 화가의 모습에 나약한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아 씁쓸했던 기억이 리뷰를 쓰다보니 생각나는군. 쥐스킨트글을 읽다보면 모든게 한없이 가라앉을것 같고, 우울하고, 적막하며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이 드는데 그런데 저런 기분일때 그의 글을 읽으면 위로가 된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왜일까? 거 참. 기분 묘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