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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 궁궐, 우리의 궁궐
"제국의 소멸과 함께 사라진 궁궐, 우리의 궁궐" 내용보기
주변의 오래된 것들은 그 안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안을 정리하다 무심코 열어본 서랍속의 어지러운 물건들은 지나 온 시간들의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선물받은 만년필을 하루만에 잃어버리고 난감해하며 돌아다니다가 지난 시간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 본 적이 있다. 결국 어느 마트 직원의 가슴팍에 꽂혀있던 내 물건을 찾아냈다. 더 이상 새것의 모양이 아닌, 누군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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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오래된 것들은 그 안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안을 정리하다 무심코 열어본 서랍속의 어지러운 물건들은 지나 온 시간들의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선물받은 만년필을 하루만에 잃어버리고 난감해하며 돌아다니다가 지난 시간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 본 적이 있다. 결국 어느 마트 직원의 가슴팍에 꽂혀있던 내 물건을 찾아냈다. 더 이상 새것의 모양이 아닌,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역력한 만년필, 지금도 그 만년필을 가지고 있는데 꽂이부분의 벌어진 틈은 한 때 다른 사람의 것이었던 증거이다. 그 후로도 나는 그 만년필을 애지중지하며 사용했고 지금도 잉크만 삽입하면 쓸 수 있다. 금빛과 은빛이 한번도 바랜 적 없이 항상 새로운 느낌이지만 벌어진 꽂이부분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 소중한 것은 이렇듯 남의 손을 타면 본래의 모습이 변질되고 그 흔적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게 된다.

개인의 값진 물건도 이러할진대 한 나라의 중심이 되는 건축물이 남의 손을 타 변질훼손되고 점차 붕괴되어가는 과정이 일제치하에서 수없이 벌어졌고 해방이후에도 우리는 그 수치심에서 벗어나려는 일련의 몸부림조차 없었다. 뼛속 깊은 친일의 입김은 한반도를 내내 지배했고 지금도 그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는 현실이다. 오호 통재라!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시기 우리의 궁궐이 어떻게 훼철(毁撤)되어 갔는지를 건축사학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여덟편의 논문이다. 따라서 왕조시기와 대한제국으로의 입지를 세우는 과정속에서 궁궐과 그 부수 건축물들의 역할이 권력과 나라운명에 미쳤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누구나 시간은 흘러가면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으로 알지만 공간은 미처 생각지 못한다.  공간 또한 지나온 시간만큼 변하고 변해간 그 공간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이 논문들은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반 한 때 존재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이전되고 왜곡된 궁궐의 모습과 역사적 진실속에 묻혀 훼손된 우리 정신문화의 각성을 요구하는 외침이다. 수록된 흑백사진들은 옛궁궐의 모습을 담고 있고 비루했던 능욕의 역사속에서 기꺼이 지키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참욕의 현장을 제시한다.

 

1895년 10월 8일 고종의 왕비였던 민왕후가 시해되던 사건(을미사변)이후 자신과 왕세자의 안전을 위해 1896년 2월 11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 약 1년간 머물게 되는 아관파천의 시기, 고종은 그 시기동안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한양의 공간 구조 개혁을 실행한다. 조선조 경복궁과 창덕궁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공간 구조를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을 중심으로 한 구조로 변화시킨다. 1년여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마치고 경운궁에 돌아온 고종은 황제로 등극하는데 그 중심에 원구단이 있었고 대한제국이라는 본격적인 역사가 이루어진다. 허나 권력의 상징이었던 원구단이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된 뒤 1911년 건물과 대지가 모두 총독부 소관으로 이전되는데 원구단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이 들어서고 차후 새로 신축된 조선호텔로 변화된다. 원구단은 당대 진정한 독립국으로써 첫걸음을 내딛고자한 대한제국의 표상으로 1967년 웨스턴조선호텔이 들어선 시기에 권력의 이동과 사회적 분위기, 즉 역사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대중의 욕망을 넘어서지 못한 이유로 역사적 건축물은 뒤안길로 밀려난다.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 경복궁의 섬세한 구성력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편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경복궁을 들여다본다. 과거 후원과 궁성을 제외하고도 대략 7225.5칸 규모의 전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1990년대 중반까지 남아있던 것은 10%가 안되는 695.5칸에 불과했다. 그 나머지 90%인 6530칸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훼손과 철거가 자행되고 이건되거나 변형되는 것은 물론 여기저기 전각들이 헤체되어 팔려나가거나 아예 사라졌다. 역사서에 등장한 적이 있었던지 아니면 학습이 부족해서 몰랐던지 평양의 풍경궁이라는 궁궐이 있었다고 한다. 황제의 어진이 봉안되어있던 풍경궁은 러일전쟁당시 일본군의 군사기지로 활용되었고 러일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군의 주둔지로 전락했다. 황궁으로써의 면모를 살릴 수 없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풍경궁은 1914년 평양자혜의원이 되었고 풍경궁이라는 이름을 아예 잃어버렸다. 궁궐의 상징성은 물론 황실의 기능조차 무시되고 훼손된 처사는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수원화성의 봉수궁이 수원자혜의원으로 변형되었듯 황실의 권위와 위상을 실추시키고자하는 그들의 의도는 정확히 맞아들었다.

 

1970년대 지방에서 서울행을 결심하거나 창경원 놀이구경을 하는 일은 좀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지방에도 물론 동물원이 있었지만 서울에는 좀 더 특별할 것이라 생각하잖은가. 창경원은 그냥 나에게 동물원이었다. 한번도 가본 적 없지만 우리의 고궁이었던 사실은 그 후에 알았다. 창경궁에서 비원(창덕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도 그 후에 알았다. 무지의 소치였을 것이다. 얼른 이 무지를 넘어서야겠다싶어 꼼꼼이 읽어보려 노력했다. 조선이 근대사회로 도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메이지 일본은 온갖 몹쓸 짓을 다했다. 그 중에 괄목할 만한 일은 바로 궁궐을 유락시설로 전락시키는 거였다.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을 능욕하며 벌이고자 했던 짓은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졌다. 상대가 신성시하는 장소에 근대의 문화시설을 배치하고 그 배치를 위해서 과거의 공간은 선별적으로 남겨지거나 사라진다. 과거의 기억은 변형되고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대중은 과거를 향수하지만 무시하는 그 이면에 중첩된 근대를 향유한다. 그들의 확고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창경궁은 순종이 거처하는 동궐에 속하는 곳이었다. 일본의 공간 지배 방식의 기본은 누구에게라도 보여질 수 있는 투명한 유리그릇속의 물체처럼 보여져야한다는 원칙을 창덕궁에 적용했다. 일본식 경관을 만든 벚나무 식재가 그 원칙의 하나였다.

볼거리 제공이라는 미명하에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독일 함부르크 하겐베르크와 계약문서를 주고 받은 일은 경악스러웠다. 하겐베르크는 동물원계의 선두주자로 세계 최초 울타리와 철창없는 동물원을 제안한 사람이다. 현재 우리집에서 두 정거장 더 가면 하겐베르크 동물원이다.

 

1895년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이후 공식적인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았던 조선왕조의 정궁 경복궁은 1912년 총독부 소관이 되었다. 경복궁에 각종 근대건축물이 들어선 시기는 1915년으로 조선총독부의  식민지정책 보고의 장으로 만든 각종 박람회를 조선의 정궁에서 개최하였다. 궁안에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어 고적 조사 사업으로 수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역사왜곡과 식민사관의 잘못된 이념교육을 심어주기 위해 경복궁을 변형시키고 유럽등지에서 유행하는 르네상스 화이트 근본없는 건물들로 작위적 배치를 일삼았다.

1930년대 궁궐 내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은 대부분 미술관이었다. 정치권력의 문화적 면모를 내세우려는 의지였는지 아무튼 예술이 정치권력에 무한활용되는 일은 광복이후에도 변함없이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서 1990년데에 걸쳐 궁궐안에 새로 등장한 문화건축물은 다름아닌 박물관이었다. 경복궁내 국립중앙박물관자리는 과거 선원전이 있던 자리인데 1932년 일제는 선원전을 헐어 그 자재로 이토오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장충동)를 지었다. 지금의 궁궐내 박물관 자리 이전계획을 얘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여덟명의 저자들이 저술한 여덟개의 논문식 자료는 왕조의 상징인 궁궐의 침탈과정을 명명백백 서술하고 있다. 간혹 겹치지만 이는 독자로 하여금 깊이있는 이해가 되도록 돕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 권력은 과거 나라의 상징이자 근원이었던 궁궐과 그 비슷한 맥락을 하는 역사의례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미래 우리의 역사보고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물어보고 싶다.  가끔은 정말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나하는 시름이 이어질 때가 있다. 치욕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현재 우리의 정신세계는 우리 고유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b*******e 2012.04.14. 신고 공감 11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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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덕수궁 담장 곁을 지나면...
"책장을 덮고 덕수궁 담장 곁을 지나면..." 내용보기
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친 조선 궁궐의 수난사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낱낱이 파헤친 인문적 건축서.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제목이 내뿜는 약간의 최루성이 얼핏 거슬릴 법하나,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비감함은 실로 절절하다.   일본인을 상대하는 기생집으로 팔려간 전각,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원으로 뜯겨 간 임금의 침소, 해협을 건너가 일제 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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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친 조선 궁궐의 수난사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낱낱이 파헤친 인문적 건축서.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제목이 내뿜는 약간의 최루성이 얼핏 거슬릴 법하나,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비감함은 실로 절절하다.

 

일본인을 상대하는 기생집으로 팔려간 전각,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원으로 뜯겨 간 임금의 침소,

해협을 건너가 일제 고관대작의 사택이 된 전각 등,

생각지도 못했던, 한 세기 전 우리 궁궐의 믿기 힘든 수난사.

 

책장을 덮고 덕수궁 주변을 걸어본다.

중화전을 뒤로 품은 정동극장 앞길,

그리고 미국대사관저를 지나 신문로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일제에 의한 국권 피탈 100년을 맞는 올해,

이 책을 접하는 마음은 더할 수 없이 비감하다.

 

.......


여러 저자의 광범위하고 심도 깊은 분석을 통해,

19~20세기 한국 궁궐 건축의 절절한 수난과 변천,

근대 건축의 도입 과정 등이 상세하게 소개된다.

 

한국 근대기 왕조사에 관심을 둔 인문-역사서 독자는 물론,

당시 건축사에 대해 알고픈 건축 분야 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듯.



n*******0 2010.04.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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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도 침탈당했었구나.
"궁궐도 침탈당했었구나." 내용보기
서울엔 궁궐이 많다. 궁궐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공간이 도처에 널렸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 와~ 서울 아들은 역사 디게 잘하겠다" 싶었다. 지방에서는 책으로만 사진으로만 봐야 하는 것들을 이렇게 가까이 접하고 직접 보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뜻에서 궁궐들을 구경나섰다. 궁궐도 많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그 때는 아는 게 없었다.) 동생과 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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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궁궐이 많다. 궁궐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공간이 도처에 널렸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 와~ 서울 아들은 역사 디게 잘하겠다" 싶었다.

지방에서는 책으로만 사진으로만 봐야 하는 것들을 이렇게 가까이 접하고 직접 보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뜻에서 궁궐들을 구경나섰다. 궁궐도 많다.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그 때는 아는 게 없었다.)

동생과 경복궁에 갔다. 광화문을 지나 들어간 경복궁. 앗, 휑하구나. 마당이 원래 이렇게 넓게 시작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 안의 궁궐 또한 공간 배치 참 널찍하구나.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이 다 없애 버린 것이었다. 자기네들 기준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전각만 놔두고 몇천칸이 넘는 전각들을 다 옮기고 헐어버려서 남은 것은 채 1000칸이 되지 못하니 .... 책을 읽다가 이런, 욕이 절로 나온다.

 

전시회를 보기 위해 갔던 덕수궁의 석조전을 일본이 우리나라 궁궐 내에 멋대로 지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고종이 즉위하고 지은 것이라니. 아, 놔 무식이 제대로 뒤통수를 때린다.

 

그렇게 드넓던 덕수궁 자리들은 일제도 그러했지만 광복 후에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잘려 나가고 잘려 나갔다. 그것은 문화재에 대한 그리고 문화에 대한 우리의 자각이 부족해서 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의 잘못된 인식과 자각으로 문화재들이 우리의 손에 잘못 파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런 문화재의 파괴역사는 읽혀져야 하고 대중의 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숫하게 지나친 길 뒤편에, 드높이 솟은 빌딩 뒤편의 그늘진 곳에서 궁궐들은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궁궐을 받아 들이고 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서야 이것이 원래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들의 상처를 몰랐다는 것. 그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나 먼 길을 가야 이 궁궐들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궁궐들의 복원된 모습을 내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궁궐들을 다시 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h****t 2011.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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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8명과 함께한 우리나라 근대 건축사 여행은 즐거운 시간.
"이들 8명과 함께한 우리나라 근대 건축사 여행은 즐거운 시간." 내용보기
우리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은 온전히 보존이 되었을까? 이 책은 근세를 거치며 무지막지할 정도로 훼손된 우리 궁궐과 여러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식민 지배자가 일본이었기에 그들에 의한 파괴가 대부분. 저들은 물리적으로도 그리 했지만 과거 자신들 보다 선진 문화를 지녔던 나라였기에 열등감 때문인지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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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은 온전히 보존이 되었을까이 책은 근세를 거치며 무지막지할 정도로 훼손된 우리 궁궐과 여러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식민 지배자가 일본이었기에 그들에 의한 파괴가 대부분저들은 물리적으로도 그리 했지만 과거 자신들 보다 선진 문화를 지녔던 나라였기에 열등감 때문인지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왜곡하며 소멸시키길 원했다사라지고 변형되고 비틀어진 건축물들이 그 생생한 증거특히 경복궁을 무대로 수차례나 계속된 조선물산 공진회와 박람회는 전형적인 수법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다만 글쓰기 보다는 전문적으로 건축을 전공한 이들이다 보니 약간은 기계적이고 딱딱한 문장들이 읽기에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그래도 이들 8명과 함께한 우리나라 근대 건축사 여행은 즐거운 시간.

r****l 2021.05.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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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과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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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이들 8명이 모여서 책을 썼다. 과연 어떤 책을 썼을까? 아름다운 건축에 관한 것? 높은 건물을 짓는 법? 용적률을 최대한 높이는 법? 물론 그들은 건축에 관한 책을 썼지만, 단순히 건축에 한정된 책이 아니다. 삶이 담겨있고, 역사가 담겨져 있고, 전통을 담아낸 멋진 책을 한권 만들어냈다. 제목은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이다. 건축가들이 궁궐과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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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이들 8명이 모여서 책을 썼다. 과연 어떤 책을 썼을까? 아름다운 건축에 관한 것? 높은 건물을 짓는 법? 용적률을 최대한 높이는 법? 물론 그들은 건축에 관한 책을 썼지만, 단순히 건축에 한정된 책이 아니다. 삶이 담겨있고, 역사가 담겨져 있고, 전통을 담아낸 멋진 책을 한권 만들어냈다.

제목은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이다. 건축가들이 궁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궁궐이 담고 있는 이야기, 특히나 궁궐의 생성과 고난, 그리고 해체와 복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마치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하듯 궁궐의 인생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궁궐은 단순히 왕들이 살던 집이 아니다. 조선의 정신을 담고 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다. 하지만, 궁궐의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다. 현재 서울에는 5개의 궁궐이 있다. 하지만, 경희궁은 제대로 복원 되지 못했다. 복원은커녕 역사박물관으로 궁궐터를 눌러놨다. 그리고 나머지 궁궐은 매년 복원공사 중이다.

그럼 궁궐은 언제 훼손이 되었기에 지금 계속 복원중일까?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뜯겨서 팔리고 공원화 사업의 희생양이 되었다. 창경궁 같은 경우는 창경원으로 이름까지 뺏겼고, 창덕궁의 후원은 비원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경운궁은 덕수궁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해방이후에 복원되고 복구되지 못하고 훼손은 계속 진행되었다. 전통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은 후에야 그것들을 그리워하고 다시 찾고 원상복구 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번 훼손된 것들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재원, 재물들을 가지고 복원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전통문화가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전통문화와 문화재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 그냥 단순히 나무니까, 돌이니까. 하지만 그냥 단순한 게 아니다. 전통문화는 그자체로 우리의 얼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얼을 지키고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혹은 무심코 지났던 건축물 두 개가 등장을 한다. 고종황제가 평양에 이궁으로 지었던 풍경궁과 현재 조선호텔 뒤에 가려져 감춰져 있는 원구단이다. 평양에 있는 풍경궁은 볼 수 없지만, 원구단은 시청역에 내리면 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조선호텔에 딸려있는 전통식 건축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원구단은 황제로 등극한 고종이 조선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낸 건축물이다. 하지만, 어딜 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없다.

이렇듯 무심히 지나치는 문화재들은 수 없이 많이 있다. 관심 받지 못하고, 보호 받지 못한 채 세월에 묻혀 버리는 문화재는 우리의 정신을 버리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 있는 모든 문화재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지나칠 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정도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b****e 2011.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