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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변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불편하게 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있을 성 싶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런 경험과 그 불편함의 근원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이 책은 이러한 현상을 동조, 쏠림, 집단편향성의 세가지 개념으로 분석하고 들여다 본다. 그리고 이견이 사라진 사회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이견이 왜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지 과학적으로 논증한다. 많은 실험사례를 제시하기도 하고 역사적인 경험을 들이밀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다만 정치와 관련해서 뿐만 아니라 언론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조용히 강요하여 점차로 스며드는 획일화의 암묵적인 풍조가 사람을 호소할 곳 없이 답답하게 만든다. 이전의 정부가 이와 달리 개방과 자유, 그리고 권위에 구애받지 않는 기탄없는 의견제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던 터였으므로 우리가 느끼는 답답함의 정도는 더 심하리라 짐작된다.
광우병 판결, 미네르바판결 등에 가해진 정치권과 언론의 마녀재판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한치도 참아낼 수 없다는 유치한 순혈주의가 너무나 무지하다. 심지어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숨죽이는 듯한 사회의 전반적인 작태는 시대를 30-40년 정도 뒤로 되돌려 놓은 분위기마저 느끼게 한다.
국론분열을 용납하지 않고 전 국민이 총화단결로 민족적 민주주의에 매진해야 한다고 했던 까만 안경과 일본 군가를 유달리 좋아했던 키가 작았던 군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시대가 좋았다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이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답변한다.
잘 기능하는 민주주의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뿐만 아니라 이견을 제기하는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사회적 장치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이견을 제기하는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그 기능을 다 할 수 없다(343쪽).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을 결론을 맺고 있다.
동조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반사회적이며 심지어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떤 면에서 이는 사실이다. 종종 동조는 사회적 연대를 강화시키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연대를 위태롭게 하거나 어느 정도 집단의 평화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적어도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는 동조와 이견의 역할을 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많은 경우 대중의 뜻을 따르는 것은 개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설령 개인의 의견이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들은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좀 더 활발하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같은 노력은 부분적으로는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오히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345쪽).
법치주의에 대하여도 저자는 좀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이 아닌 법에 의한 통치'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법의 지배의 핵심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모호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통치는 법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법을 운용하는 제도들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으며 법은 이들의 해석에 의존한다. 모두가 같은 법복을 입고 있지만, 누가, 어느 정당이 임명한 대법관인가에 따라 판결의 내용은 크게 달라진다(290쪽).
'다른 생각을 하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기초이다. 표현이 자유가 최대한 구현된 사회가 실질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
국론분열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보다 강화된 규제가 필요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정부가 국민을 위하여 바르게 잘 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은 한 번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리고 나찌 독일에서 거의 100%에 가까운 독일국민들이 히틀러를 지지했던 사실을 모르거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이유에 대하여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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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사회과학 시험들을 통해 사람에겐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이러한 현상들이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애쉬의 실험은 여러 개의 선분 중 똑같은 길이의 선분을 찾는 것으로 차이가 명백해서 누구나 맞힐 수 있는 단순한 실험이었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답을 선택할 때 실험 대상자도 이에 동조하여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세리프의 실험도 이와 비슷해서 어두운 곳에서 불빛을 비추면 실험 대상자의 눈엔 불빛이 이동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불빛은 고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때 불빛이 이동한 거리에 대해서 각자의 견해가 달라지는데 이들을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눠 의견을 교환하게 하자 불빛이 이동한 거리에 대한 수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들 실험은 다수의 영향력에 동조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심리학 실험으로 유명한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도 있다. 흔히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독특하게도 이 실험을 실험가의 의지와 관련시킨다. 즉,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신호, 정보의 신호에 반응한 동조 현상으로 설명한다. 이는 다수가 아닌 소수의 영향력 행사로 인한 동조 현상을 드러낸다. 동조, 사회적 쏠림 현상, 집단적 편향성 등은 그 자체로 나쁘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저자도 이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사회운동을 형성하고 공감대를 이루고 사회를 화합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견을 억제하고 배척하게 되면 엄연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어 결국 위험에 처하게 된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러한 사례를 무수히 지켜 볼 수 있다. 이 책에선 이러한 사례들로 미국의 연방 판사들의 판결 사례를 통해 이러한 동조와 쏠림, 집단적 편향을 분석하고 있는데 공정하고 일관된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되는 판사들에게서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특성이 발견된다는 건 충격적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정치성향이 보수와 진보/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누어지는데 판사들의 성향을 그들이 임명한 대통령의 정당에 따라 나누고 이들의 판결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리고 판사들의 혼합비율에 따라 어떻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세 명의 판사로 이루어진 재판부는 세 명 모두 공화당(또는 민주당), 2명이 공화당이고 1명이 민주당 또는 그 반대의 경우 등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데 놀라운 건 공화당 2명에 민주당 1명일 때 소수인 민주당 판사는 공화당 판사들의 의견에 편향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더욱이 세 명 모두 민주당 또는 공화당일 경우 판결은 극단적으로 나뉘기도 한다고 한다. 하나의 동일한 법에서 이렇듯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는 다양성의 수용이 실제로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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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은 좀더 열린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자신에게 이견에 대하여 얼마나 관대했나는 질문을 해보면 쉽게 이견에 대해 관대하고 잘 수용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이견의 필요성을 알고 또 느끼면서도 자신의 의견에 대한 강한 반박이 들어오면 거부감과 함께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더욱... 타인이 보기에는 전혀 다를수도 있지만 스스로 제 자신을 평가해 보면 이견에 대해 관대하다고 생각하고 주변 친구들의 말을 들어봐도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고 하기에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은 가볍습니다. 이 책은 하버드 법대 교수이자 넛지의 공동저자 이기도 한 선스타인이 쓴 책으로 동조, 쏠림, 집단편향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왜 사람들이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는가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이견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책속 내용중 미국 대법원 판사들의 쏠림 현상과 이견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 판사들도 정치적 편향, 또는 쏠림 현상에 따라 판결이 오락가락 했다고 합니다. 합리적인 판결을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군요... 저는 저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고집스러운 옳지 못한 생각으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견이 제시되면 조금 당황스럽고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일단 상대의 의견을 듣고 맞다고 생각되면 수용하고 아니다 생각하면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설득 하기도 하고 설득 당하기도 합니다. 저의 경험으로 봤을때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대화를 통해 더욱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게 되더군요. 물론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다수의 의견은 동조를 생산하고 소수의 의견은 혁신을 생산하기에 사람들의 생각의 자유까지 억압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3M인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일정기간 안에 회사내에서 이견을 제시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르는 제도가 문득 떠오르는데 이견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아 실천으로 이어진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조와 쏠림 현상은 자체만으로 나쁜게 아니라 이러한 것들로 인해 잘못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사회에 이견이 필요한 이유는 보다 열린 사회, 보다 진실된 사회 그리고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데 이러한 집단 생활 속에서 이견은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하지만 사회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아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가 하면 심하면 왕따를 시키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특징이기도 한 혈연, 학연, 지연등에서도 정보의 쏠림현상을 쉽지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견은 언론의 자유라는 큰 틀이 있어야만 자연스러울 수 있는데 지금 우리 정부는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심하게는 직장에서 쫓아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점점 후퇴해 가는 사회에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화가 나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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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이 질문이 책의 제목이다.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기 위해서 예를 들어보자.
사례 1
기업이사회 21세기 초반 많은 미국회사들이 부정부패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 이 실패에 대한 처방으로 기업 조직을 엄격하게 통제하기보다는진지한 토론을 장려하고 회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히 고위 간부들에게 거리낌 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집단을 기업 내에 두라고 충고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기업의 중역들이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때 지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조용히 상급자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부작용이 발생되며 이는 기업의 실적에 따라 이득을 보는 주주들에게 심각한 문제라 할 수있다.
투자자 어떤 투자클럽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어떤 클럽이 낮은 수익을 낼까? 최악의 수익을 내는 클럽은 기본적으로 사교적이었다. 반대로 최상의 수익을 올리는 클럽은 그런 사교적 관계를 제한하고 수익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교적인 관계는 서로 충분한 토론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관계에 치중하게 된다. 즉 투자클럽내에서 이견의 부재는 현저하게 낮은 수익을 낳았다.
백안관 1961년 케네디는 쿠바를 침공하였으나 이 침공은 현실적으로 완전실패한 작전이었으나 계획단계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후에 만약 단 한명이라도 이견을 제시하는 관료가 있었다면 케네디는 이 계획을 취소하였을 것이다라고 당시 술레진저보좌관은 증언하였다.
결국 서로 다른 이견이 장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견이 잘 드러나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다양한 이견이 드러내야 하고 그 결과가 어떤지를 분석한다.
이견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로는 사회적 동조, 사회적 쏠림현상, 집단적 편향성이 그 원인인데 이 원인은 사람들, 특히 개인의 신념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와 진술을 통해 전달된 정보와 둘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보편적 열망 이 동조와 사회적 쏠림현상 그리고 집단편향성의 영향력 내지 압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은 동조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무임승차자들이며 어떤 집단이나 조직이든 성공하고 싶다면, 이견제시의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동조의 원인으로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사람들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때'도 집단의 의견에 자기를 맞춘다는 실험을 보여준다. 이것은 집단의 압력과 평판에 대한 두려움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얼마전 교육방송의 실험에서도 세명 중 틀린 답을 두명이 강력하게 주장하면 자기가 옮다고 생각함에도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바 있는것을 생각하면 실재하는 현상이라 본다. 결국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소수는 다수의 잘못된 결정을 되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실험을 통해 '행동하는 양심'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게 만든다.
이외에 사회적 쏠림현상은 어떻게 나타나고 그 폐혜는 어떤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집단은 공동체구성원의 서로 다른 계급적, 사회적, 가치지향적, 기타 여러가지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집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집단은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의견의 평균을 넘어서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극단주의의 태동의 원인이고 이것을 풀어 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집단사고가 어떻게 형성되고 그 결과가 어떤지 커다란 제목만 옮겨보고자 한다. 과정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유추해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집단 사고 과정
* 선행조건
1. 집단의 응집력이 높다. 2. 집단이 외부 의견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3. 집단의 지도자가 매우 지시적이다. 4. 집단이 대안을 평가할 수 있는 체계적 절차를 가지고 있지 않다. 5. 스트레스가 높거나 외부 위협에 직면해 있다.
* 집단 사고의 증후
1. 집단이 취약하지 않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2. 집단의 도덕성을 맹신하고 있다. 3. 집단 결정을 합리화 한다. 4. 상대편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다. 5. 반대자에게 직접적인 동조 압력을 가한다. 6. 구성원들이 이견을 제시하는 것을 자제한다. 7. 만장일치의 착각에 빠져 있다. 8. 반대 정보를 차단하는 구성원이 존재한다.
* 결과 : 조잡한 의사결정
1. 집단의 목료를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2. 모든 대안들을 적절하게 조사하지 않는다. 3. 선택된 대안의 위험성을 완벽하게 검토하지 않는다. 4. 관련 정보들을 적절하게 탐색하지 않는다. 5. 편파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평가한다. 6. 긴급시의 대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이상의 내용들을 볼 때 동조, 쏠림, 집단편향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저자는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어떤 입장도 차별받지 말아야 하며 공적으로 의견이 표출될 수 있는 광장같은것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특히 강조한다.
저자의 활동반경과 국적으로 인해 미국헌법이 바로 이러한 이견을 충분히 표출될수 있도록 제정되었으며 그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특히 미국사법제도상 판사들이 정당의 추천을 받아서 임명되기에 정파적 판결이 많을수 있는 것도 지적하는바 그 해결도 이견이 충분히 표출될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여론이 판사의 정파적 견해를 제어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적이다.
결론적으로 사회에 왜 이견이 필요한가를 정리하면 '동조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사회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박탈'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쏠림 현상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야기하며 나아가 개인이나 조직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논의에서 얻을 결론은 자명하다고 한다.
"조직이나 국가는 이견을 환영하고 개방성을 응원할 때 가장 번영할 확률이 높다' 는 것이다.
이것을 만들기 위한 조건으로 표현의 자유와 공개적인 이견주장은 자유 시장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며 경제적 번영의 초석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시장에서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행동이 모두 위의 이견을 통해서 발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쏠림 현상이나 정당화되지 않은 극단주의를 견제하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결국 저자의 마지막 강조는 아래와 같다.
' 설령 개인의 의견이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들은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좀 더 활발하게 이견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같은 노력은 부분적으로는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오히려 사회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발전을 위하여 이견을 장려하고 보호하는 것이 이견의 필요성이라는 점을 매우 논리적으로 구체적인 사실과 실험으로 증명한 이 책의 일독을 주저없이 권한다.
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알 선스타인/ 후마니타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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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갖거나 여러가지 의견을 조율하다보면 대부분 한쪽으로 큰 방향이 새워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수의 반대론자가 있기 마련인데, 지켜보는 사람과 큰 방향을 세운 사람들에겐 조금 짜증나고 답답한 상황이다. 저 소수자의 이견이 없다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될 터이고 시간과 비용을 줄 일 수 있을태니까 말이다.
이렇듯 여러사람이 토론을 해서 얻어낸 반대없는 큰 의견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여러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있고, 반대가 없다는건 그 만큼 훌룡하고 뛰어난 의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은 함정이며 이견이 없는 의견은 큰 실책을 동반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왜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며, 마음에들지 않더라도 이견이 다양하게, 그리고 자신있게 나올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지 설명한다. 다양한 이론적 배경과 사례는 이견이라는 장애물이이 왜 계속 존재해야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며, 장애물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설명한다.
일반인이 보기에 굉장히 많은 학문적 성과를 올리고, 그 부분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놓치고 못보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며, 집단에서 누군가 그 부분을 발견하더라도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 되지 않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게 된다. 하나 하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위험은 스타워즈에만 있는게 아니다. 그 위험은 보이지 않다가 보이는 순간 집단에 크나큰 피해와 악영향을 끼친다.
저자는 넛지라는 전작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사회와 집단 그리고 개인에게서 취약한 부분과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놓치는 특성을 논리적으로 잘설명하는데 탁월 한 것 같다. 넛지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행동경제학등을 통해 개인을 바라본책이라면, 이 책은 집단안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행동심리학과 법학을 통해 바라본 책이라 볼 수 있다. 전작인 넛지에 비해 저자의 전공인 법학적 요소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 책이고 소재이기에 넛지에 비해 더 전문적이고 다양한 사례가 눈에 띈다.
우리 마음안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 볼테르가 한말이다. 부싯돌을 부딪치고 불꽃을 내는 과정은 불편하고 왠지 위험해보여서 하기 꺼려진다. 하지만 그 불은 더 나은 결과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밝혀주기에 꼭 필요한 불이다. 그 불을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고 필요성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은 어렵지 않게 해답을 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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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물음을 제목으로 다는 책의 저자들은 결론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다. 그것도 사회학과 관련된 것이 많아서 증명의 과정은 과학적이고 실험적이다. 따라서 어떤 주제의 책을 선택하느냐가 책 읽기 성공의 열쇠다.
언론에 등장하는 많은 인터뷰 시민들은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라는 푸념을 많이 한다. 국회의원들의 싸움에서부터 동네 주민들의 민원성 시위까지, 이런 언론을 접하는 많은 시민들은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원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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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에는 나름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있다. 한 사회의 지배 담론은 시대의 가치관과 인식과 실천의 문법, 그리고 사회적 제도의 틀까지 규정한다. 지배 담론은 일종의 안경처럼 세계와 자아를 바라보는 관점이 되고, 일종의 집단 무의식처럼 사회분위기의 냉온열 온도를 조절한다. 한 사회의 뿌리깊은 지배 담론은 비가시적이고 무의식적이다. 누구나 지배담론의 문법으로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말의 문법을 이방인에게 설명할 수 없다. 비유하자면 어항 속의 물고기가 투명한 어항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다. 지배담론을 드러내는 경우가 충돌과 분쟁이 일어날 때다. 이견은 변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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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심화되면 플라톤이 말한것처럼 전제주의로 변질될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우리는 우리와 사고방식 행동이 나와 같지 않으면 이상한 편견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일명 동조와 쏠림현상으로 우리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명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지만 조금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면 근처의 사람들도 하늘을 쳐다본다는 이야기다. 동조와 쏠림은 나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거기에 부합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현상학적인 문제가 더욱 더 큰 문제인 것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편견에 빠질수가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도 그러하다. 소수의 사람들덕분에 어찌보면 현재의 언론의 자유도 지켜지고 발전이 된것이다. 물론 시간장소 공간의 선택적 제한을 받을수는 있다. 그럼에도 광장에서와 같은 일반인들이 누리는 장소에서의 제한은 신중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소수의 사람들의 의견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항상 점진적으로 진화발전을 하고 있다.
다수의 동조된 사람들보다는 이견을 제시한 소수가 있기 때문에 사고의 입체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책속의 내용은 미국의 실정법과 국내문제등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한번쯤 고찰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수의 의견은 동조를 생산하고 소수의 의견이 혁신을 생산한다. 사람들의 생각의 자유까지 억압하는 것은 결코 옳은 현상은 아닐것이다. 모두다 같은 생각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하여 소수의 의견에 대하여 생각과 앞으로의 발전된 사회에서의 행복한 소수자의 인권의 보호까지도 우리는 많은 관심을 가져야 우리의 미래는 분명히 희망차게 다가올것이다.
행복한 미래를 상상해보면 소수자의 이익을 한번 대변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과 나의 생각에 점검을 다시 한번 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 책이다.
또한 사실과 진실은 다를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염두에 두고 많은 생각과 검토를 하는 것이 나의 인생에 발전적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생각의 다변화와 발전적 사고를 원하는 분들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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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회 집단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집단 내에서 의사를 결정함에 있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나면 여기에 이견을 내기란 쉽지가 않다. 대체로 집단의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자신의 의견을 뚜렷이 나타내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은 집단의 의사 결정을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이견을 내는 것은 집단 전체에는 결과적으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비난과 위협을 받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 현상에 대해 동조와 사회적 쏠림현상, 집단 편향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동조란 집단의 구성원이 집단의 압력을 받아들여 자신의 의견을 바꾸는 것이다. 쏠림현상은 다른 구성원들의 특정 행위에 따르는 현상이다. 집단 편향성은 집단이 의사결정을 내릴 경우 독립적으로 할 때보다 극단적인 결정을 하게 되는 경향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집단 구성원간의 친밀도나 금전적인 보상 등에 따라 다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설명하는데 몇 가지 실험결과가 이용된다. 주로 심리학에서 이용되는 이 실험들은 익히 알고 있어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솔로몬 애쉬의 동조실험과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실험이 그 예시이다. 쏠림현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각각 두 개의 흰색 공과 한 개의 빨간색 공, 한 개의 흰색 공과 두 개의 빨간색 공을 넣은 두 개의 항아리를 이용한 실험을 토대로 쓰여 있다. 이 실험에서 실험 대상자는 항아리에서 한 개의 공을 꺼내 공의 색깔을 보고 어떤 항아리인지 맞추는 것이다. 이 실험에 금전적 보상이나 다른 실험 참가자의 정보를 보며줌으로써 쏠림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실험으로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견에 대한 현상을 똑같이 비교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사회에서는 사형, 전쟁 등 정치적 사안을 비롯한 가치판단의 문제들이 제기된다. 또한 기업이라고 본다면 통계자료 등 정확한 정보를 요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항아리 실험에서는 한 개의 공으로는 정보로 이용하기에 다소 부족하며 가치판단의 문제도 아니다. 항아리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불완전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조건에 따라 쏠림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설명한 이러한 현상이 실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미국의 정부, 그리고 판사들의 행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 정부와 정치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이해하기에 수월할 것 같다. 이견을 제시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족과 같은 친목 단체에서는 이견의 제시가 오히려 유대감을 약화시켜 안 좋은 결과를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성숙해질 수 있다. 사회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구성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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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류중 한사람만 반대할 경우에도 그 생각을 억누르는 것은 정당치 않다. 어떤 생각을 억압하는 것은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의 후세들까지 강도질하는 것이다. 억압한 생각이 옳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진리를 찾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도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된다. 사람들은 주변사람이나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공유하는 생각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을 보인다. 독자적인 생각에 자신이 없을수록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위에 맹목적인 신뢰를 가지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한 얘기다.
# 이 책은 하버드 법대 교수이자 넛지의 공동저자인 선스타인이 쓴 자유론의 현대적 해석 특히 미국의 법적 측면을 중심으로 본 책이다. 저자는 개인이 남에게 동조하고 사회적 쏠림현상과 집단편향성으로 인해 의견이 획일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흔히들 집단적 의사결정의 잘못된 예를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침공을 들곤 한다. 왜 당시 미국의 최고 엘리트 그룹인 케네디와 그 보좌진들이 그렇게 어이없는 결정을 했을까? 그들은 서로 친밀한 관계로 엮여있어서 반론을 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사이가 너무 친하면 이견을 내기 조심스러워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종교나 정치집단 등 끈끈한 정서에 의존하는 집단은 이견을 질식시키고 개인이 가진 정보와 신념의 공개를 최소화시키는 사회적 압력이 행사된다. 광신도들의 자살로 끝난 wako 사건에서 보듯 극단적인 단체나 열광적 신흥종교를 일으키기 위한 좋은 방법은 회원을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격리시 집단구성원은 다른 집단의 정보 및 관점을 신뢰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세계역사에서 민주적 선거와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사회가 기근을 경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국민과 언론감시를 받는 민주주의 정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합리적 수단을 강구해서 7년기근을 막는 요셉이 되려하기 때문이다. 침묵은 사회가 얻어야 할 정보를 뺏어 사회를 잘못된 방향과 결정으로 이끌 수 있다. 개인의 의견이 사회의 지배적 의견과 다르더라도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얘기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회전체 이익에 도움이 되므로 제도와 사회분위기가 이를 응원해야 하겠다. 법이나 정치에 관계되신 분들은 필독서가 될 듯하다. 전문번역가가 아니어서 부드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으나 주석을 잘 달아 놓은 점이 돋보인다. 다만, 표지가 청소년도서처럼 디자인되서 책 내용과는 거리가 있는 점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