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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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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주 오래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과학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의 기원은 구전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전문화내의 의술은 종교 및 마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단순 치료행위 이상의 행위인 굿,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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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주 오래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변의 자연환경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과학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지식이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학의 기원은 구전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전문화내의 의술은 종교 및 마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단순 치료행위 이상의 행위인 굿, 점, 정화, 노래, 주문 같은 제식(祭式)활동을 요구 했습니다. 아직도 오지의 원주민들은 육체의 질병 치료과정이 사악한 영을 환자의 몸에서 쫒아내는 의식과 함께 합니다.


또한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실용적 관점, 이론적 관점,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관점 등 3가지로 크게 대별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전한 과학적 지식은 실용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으며, 그리스, 중세유럽으로 이어집니다. 기원전 3천 년경에 이집트인들은 10진법의 성격을 지닌 숫자체계를 발전시켰으며, 10의 제곱이 거듭될 때마다(1, 10, 100 등) 상이한 상징을 사용했습니다.

 



 

두 편의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로 유명한 호메로스에 대해선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미미하다고 합니다. 호메로스에 의하면 신들은 인간사에 밀접하게 개입하여 승리와 패배, 불행과 운명을 결정합니다. 《오디세이》에는 신들이 개입한 사례가 다양하게 등장하지요. 그리스 철학은 기원전 6세기 초에 처음으로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혹자가 주장하듯이 철학이 신화를 대체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철학자들의 세계는 만물이 각자의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한 세계였습니다. 이렇듯 질서 있는 세계를 지칭하기 위해 그리스인들이 즐겨 사용한 용어가 바로 〈코스모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의 각기 다른 원자론이 차세대 철학자들의 학구열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에 이르러서 학문의 꽃이 피어났지요. 플라톤은 신성한 장인 조물주(Demiurge)는 일정한 관념이나 설계에 따라 우주를 만들었으니, 우주와 그 안의 만물은 모두 영원한 관념, 즉 형상에 대한 복제물이며, 재료에서의 한계로 인해 불완전한 복제물에 머문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울러 두 가지 영역을 이야기 했는데, 하나는 형상 내지 관념의 영역으로 만물에 대한 완전한 관념으로 구성된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질료의 영역으로 형상이나 관념에 대한 불완전한 복제물로 구성된 영역이라고 했습니다.

 

초기 그리스 철학을 현대과학의 눈으로 살피다보면, 도처에서 친숙한 내용과 만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모습과 배열, 우주의 기원, 우주를 구성하는 기초원소 등에 대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연구는, 현대 천체물리학, 우주론, 입자물리학에서 여전히 연구되고 있는 문제를 연상시킵니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이 출발점으로 정할만한 곳은 단 한 지점밖에 없습니다. 〈기원(Origin)〉이 그 곳 입니다. 그들이 창조한 자연개념은 지금껏 과학연구와 과학신조의 토대요, 근현대 과학이 상정한 자연개념의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탐사하고 이해하기 위한 방법과 원리를 고안했지요. 형상과 질료, 자연본성, 잠재태와 현실태 등의 네 원인이 그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세하고도 영향력 있는 이론이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위로는 하늘로부터 아래로는 지구와 지상의 모든 거주자에 이르기까지 자연현상의 거대한 영역을 빠짐없이 아우른 것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 천문학의 주된 관심사는 별을 관찰하여 지도로 표시하는 역법(曆法), 태양과 달의 운동 등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달력이 없는 조건에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역법에서 큰 난점은 태양력이 태음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했지요. 태양이 황도대를 일주하는 동안 달은 12번의 일주를 완결하고도 조금 더 움직입니다. 29일이나 30일을 한 달로 계산해서 총 12달로 구성되는 일 년은 11일 정도 짧기 때문에 태양력의 일년주기와 태음력의 절기들은 서로 맞아 떨어질 수 없게 됩니다. 일년주기에 절기들의 보조를 맞추려면 한 달이 더 필요할 것인즉, 이 부가적인 한 달을 삽입하기 위해 여러 체계가 개발되었습니다. 역법상의 이런 노력은 메톤(Meton: 기원전 425년경에 활동)이 제안한 메톤 주기에서 절정에 도달했지요. 메톤주기는 19년이 235개월에 가깝다는 이해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19년을 주기로 계산하면 12년은 12개월을 가진 해요, 7년은 13개월을 가진 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메톤의 역법은 민간용보다는 천문학용으로 제안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여러 세기 동안 천문학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 의학에 관한 증거는 산만합니다. 그리스의 치료관행을 전하는 이야기도 그 대부분은 믿을만한 것이 못되지요. 그나마 기원전 5세기 이전에 대해서는 문학 자료를 참조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명백히 의학적이라 할 수 있는 저작들이 등장하는 것은 5세기 이후인데,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고전고대와 헬레니즘 시대 의학의 이론과 실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는 옛 치료전통 외에도 새롭고도 한층 세속적이며 더욱 전문적인 의학전통이 성장했습니다. 이 새로운 의학전통은 당시 철학의 발전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코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기원전 460년경 ~ 370년경)에 의해 대변됩니다.

 


연금술은 그리스 문명에 기원을 두며 아마도 헬레니즘 영향하의 이집트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곧이어 그리스어 원전이 아랍어로 번역되면서 이슬람 세계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연금술 전통을 가꿀 수 있었습니다. 아랍어로 직접 작성된 뛰어난 연금술 작품으로는, 게버(자비르 이븐 하이안: 9~10세기에 활동)의 것으로 알려진 일련의 논고들과 무하마드 이븐 자카리아 알라지(925년경 죽음)의 《비밀의 서(書)》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연금술 작품들은 12세기 중반부터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서구에도 강력한 연금술 전통이 형성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은 프톨레마이오스 이래로 설정된 천문학의 목표와 원리를 변함없이 유지했습니다. 비슷한 연속성은 점성술, 연금술, 해부학, 생리학, 의학, 자연사 등 다른 분과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근대 초 과학은 16~17세기에 출현할 때 과거와의 복잡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형이상학과 방법론은 여러 중요한 측면에서 근본적 혁신을 이룩했지만, 그것들 역시 중세과학이 남긴 무수한 편린들을 엮기에 바빴지요. 그 편린들은 불변적인채로 편입될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상황에 맞게 개조되어 엮일 때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중세과학의 성과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고 해서 16~17세기의 성과를 헐뜯거나 위축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전자가 후자를 형성했다는 것, 따라서 중세과학의 성과는 근현대 과학의 선조로 중재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근현대 과학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려 한다면, 근현대 과학을 형성한 고대와 중세의 기나긴 역정(歷程)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책은 과학사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위스콘신대학 데이비드 린드버그 교수의 대표작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으면 미래 또한 내다 볼 수 있지요. 인문학적 사고로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 질 수 있지만, 너무 부드러운 음식만을 찾다보면 치아가 물러진다 합니다. 특히 초등~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는 아이들이 과학 인접과목에 대해 물어 볼 때, 외계어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선 곁에 두시고 가끔 들여다보심 좋겠습니다.

 

 

 

 



이달의 사락 s******5 2012.01.17. 신고 공감 5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데이비드 C. 린드버그의 「서양과학의 기원들」
"데이비드 C. 린드버그의 「서양과학의 기원들」" 내용보기
: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David Charles Lindberg, The Beginning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 Context, 600 BC to AD 1450“역사가의 본업은 과거를 이해하는 일이지, 과거에 등급을 매기는 일은 아니다(571p).”그 시대의 눈으로,나는 중세 미술을 이야기할 때 대성당
"데이비드 C. 린드버그의 「서양과학의 기원들」" 내용보기

: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David Charles Lindberg, The Beginning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 Context, 600 BC to AD 1450

“역사가의 본업은 과거를 이해하는 일이지, 과거에 등급을 매기는 일은 아니다(571p).”

그 시대의 눈으로,

나는 중세 미술을 이야기할 때 대성당에 걸린 제단화로 시작하곤 한다. 멀티미디어의 시각적 스펙터클에 익숙해진 현재의 눈으로 그 당시의 작품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세 미술이 왜 그렇게 어색하고 뻣뻣하게 생겼는지 이해하려면 그 당시 성직자와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중세 종교화는 실제의 물리적 세계를 재한하는 기능이 아닌, 당대 종교 및 정치의 교화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데이비드 C. 린드버그(David Charles Lindberg)의 명저 「서양과학의 기원들」은 과학사의 영역에서 ‘당대의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풀어냈다. 참고문헌을 빼고도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대작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근대의 여명기까지 서구 과학사를 가로지르며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보지 말라고 끊임없이 상기한다.

점성술이 대표적인 예시다. 화성에 탐사로봇을 보내고, 육중한 발사체가 역추진해서 자기 발사대로 되돌아오는 경이로운 우주 탐사의 시대에 점성술사들은 그저 머나먼 한 때에 혹세무민하던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세의 점성술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당시에는 그것을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예로부터 기상 조건은 사냥과 농업에 영향을 미쳤고, 급격한 기후 변화를 예측할 방법이 필요했다. 하늘에 뜬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은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가장 손쉬운 지표였고, 큰 틀에서 그러한 추정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유효하다. 무엇보다도 그것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별의 위치가 계절의 변화와 맞물려 있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연약한 자연 속 한 점에 불과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으리라는 생각이 어찌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류가 점성술을 믿었던 시간에 비하면 그것을 폄하한 시간은 극히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 천체의 운행에 대해 밝혀진 사실들에 기초해서 중세의 점성술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점성술은 심지어 의학과도 연관되었다. 고대 의서들이 활발하게 번역되고, 심화된 주석서가 편찬되고, 의과대학이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은 14세기에도 의학서에는 점성술적 방법론이 버젓이 기재되었다. 특정 병증이 특정 별자리와 관련이 있다거나, 특정 별자리에 맞추어 수술 날짜를 잡는다거나, 심지어 흑사병 같은 대재난이 별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이 제도권 의학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당시로써는 합리적인 사고의 흐름이었다.

중세를 그저 암흑시대로만 이해하려는 태도도 문제다. 물론 기독교 권력이 고대의 눈부신 사상적·과학적 발견들을 교리의 틀 안에서만 재단하려 하면서 자연철학의 발전을 상당 부분 지연시킨 것은 사실이다. 교회 권력은 교리에 복무하는 주제와 결과만을 허용했다. 그러니 당대에만 가능했을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만한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중세가 고대의 모든 성취를 무덤에 처박아 놓았던 것은 아니었다. 번역과 주석 작업은 계속 이어졌고, 고대와 이슬람 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을 기독교 교리와 융합시키려는 시도가 지속되었다. 또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제도권 교육 체계가 기틀을 잡았고, 이를 통해 후진 학자들이 계속 양성되었다. 인문주의의 싹이 피어올랐을 때, 중세의 학문적 기틀 위에서 새로운 과학의 방법론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빠르게 지식이 성숙하고 확산해 나갔다. 중세에 실험과 경험에 의한 새로운 지식의 발견은 미미했지만, 중세가 지식 문화와 인프라를 철저히 예비하지 않았다면 갈릴레오(Galileo Galilei)의 성취는 실제 그것보다 훨씬 더 후대에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중세를 암흑시대로 치환하는 관점은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를 좌장으로 하는 르네상스 예찬론자들에 의해 부풀려진 바가 크다. 그들은 자신들이 중점을 둔 연구 주제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 전 시대를 낮춰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태도가 승자의 역사, 즉 ‘휘그적(Whiggish) 입장’으로 굳어져 왔다. 고대의 전승에 의구심을 품고 그것을 새롭게 실험해 본 르네상스 과학자들이 존경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중세인들이 미개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문화·정치적 맥락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선택했다. 신의 존재와 작용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직접 확인하려 들지 않았을 뿐이다. 가령 우주의 모든 행성이 원운동을 하리라는 믿음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미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멀게는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까지 이어진 오랜 믿음이었다. “우리는 중세 학자들이 중세에 살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근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헐뜯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585).”

이렇게 특정 시대에 대한 과도한 예찬은 단절론적 역사관으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역사에는 완전한 단절도, 완전한 연속도 없다. 단절과 연속은 복잡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차한다. 그 흐름을 단절/연속으로 보는 것은 해석자의 마음에 달렸다. 예컨대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의학의 꽃이 피었다고 한들, 신에게 길흉화복을 의탁하는 전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의학적 처치와 기복적 신앙은 동시대에 나란히 함께 갔다. 반대로 교회 권력이 모든 것을 장악한 중세에도 의학의 발전은 계속 이어졌고, 그 효용성도 신의 영향력과 함께 인정되었다. 오히려 의학의 발전이 종교적 축복의 현실적 증거 중 하나로 해석되었다. 즉, 독실한 중세인들이 의술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의술과 신의 기적을 함께 믿은 것뿐이다. 역사를 단절 혹은 연속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안일한 총론적 접근보다 세부 분과별 차별적인 양상을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대 연구는 당대의 목적에 기여할 뿐이다. 중세의 동물학은 동물의 습성과 행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시도되지 않았다. 각 동물의 행동과 외모가 인간 사회에 시사하는 바를 우화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독자에게 교훈과 즐거움을 주는 데 일조하려 했다. 고슴도치는 신중함을, 두루미는 정중함을, 수사자는 성부(聖父)를 상징했다. 당대의 식물이 약초로서 의학적 필요성에 의해 정밀한 경험적 연구의 대상이 된 것과 달리, 동물은 일부 가축이나 사냥 대상을 제외하고 실용적 의미로 다가오는 바가 적었기에 우화적 대상으로서 가치가 더 컸을 뿐이다. 이러한 중세적 접근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 미미하다고 하더라도 동물을 오직 경제발전에의 유용성 여부로만 평가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아름다운 접근 방법론이 아니었을까?

교회 권력이 중세 과학 발전을 가로막을 원흉이라고 보는 관점에도 약간의 포용이 필요하다. 교회는 자연철학을 억압하지 않았다. 전체 자연철학의 분과 중에서 교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지원했으며, 그것이 아무런 지원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교리에 어긋나는 지식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강령을 발표할 정도로 강력하게 억압했지만, 애초에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식인들의 양성소였던 수도원과 여기서 파생된 학교와 도서관이 있었기에 읽고 쓰는 능력이 전반적으로 배양되었고, 각종 문헌의 습득, 소장, 번역 기능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세에 위대한 창조자는 드물었지만, 보존과 전수의 기능은 발전했고, 이 학문적 문화와 제도가 근대 과학혁명의 기틀이 될 수 있었다.


저자는 넓은 범위의 과학 개념 안에서 분과별로, 시대별로, 그리고 지역별로 빈틈없이 접근하며 역사적 변동과 함께 동시대적 차이는 물론, 서로 다른 지역 간의 상호작용까지 촘촘하게 짚어 냈다. 그가 접근한 과학의 범주가 현재의 제도적 의미에서 축소된 자연과학 개념에 머무르지 않았던 까닭에 우리는 고대 이집트 신화로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경유하여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까지 이어지는 지식의 계보학을 촘촘히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플라톤은 과학적 실천의 근본 원리인 이상화와 환원주의의 선구자로서 자세히 묘사되는데, 그를 다룬 장은 어지간한 철학 개론서보다 훨씬 명쾌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타고난 이야기꾼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저자가 과학을 열쇳말 삼아 고대와 중세를 다룬 그간의 연구를 집대성해 보여주었듯, 모든 시대의 선구자들은 주어진 제약 아래 나름의 열매를 맺어왔다. 인류가 몇 차례 위기 속에서도 멸절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온 이상, 진보의 과정 중에 허투루 무시해 버릴만한 값어치 없는 성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밟아 온 모든 과정이 쌓이고 쌓여 오늘을 만들었고, 그 복잡한 과정을 이해하려면 일단 그 시대를 닮으려는 세심한 눈과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은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유용한 사업이기 때문이다(112p).”


YES마니아 : 플래티넘 s*****s 2024.11.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