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타협, 유연함, 다양성, 균형의 공존 시대
"타협, 유연함, 다양성, 균형의 공존 시대" 내용보기
들어가면서: 중세, 교회가 지배한 기독교 세계? (지배자 중심의 역사관) 교회가 지배한 중세 시대 이면에는 이교적 민속 문화가 자라잡고 있다. 중세 농민들에게 숲의 성령과 대지의 지모신은 일상생활의 병이나 상처를 치유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이교로 간주되는 다신교적 신앙은 중세에 깊이 침투해 있었다. 남프랑스를 중심으로 12-13세기 이후 유포된 멜뤼진(Melusine
"타협, 유연함, 다양성, 균형의 공존 시대" 내용보기

들어가면서: 중세, 교회가 지배한 기독교 세계? (지배자 중심의 역사관)

교회가 지배한 중세 시대 이면에는 이교적 민속 문화가 자라잡고 있다. 중세 농민들에게 숲의 성령과 대지의 지모신은 일상생활의 병이나 상처를 치유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이교로 간주되는 다신교적 신앙은 중세에 깊이 침투해 있었다. 남프랑스를 중심으로 12-13세기 이후 유포된 멜뤼진(Melusine) 설화나 알자스 지방에서 알려진 성스러운 개(Saint Guinefort)의 전승처럼 반인반수의 초자연적 존재나 동물의 화신이 토지 개간, 자손 번창, 순산, 아이의 병 치유 등과 같은 사람들의 소망에 응답하는 존재로 숭경 받았다. 또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카니발 등의 축제에 거인이나 야인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그들이 교회라는 종교적 의식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세 농민은 기독교 신자이면서 동시에 전통문화 파수꾼으로서 자율성주체성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들은 마을이라는 특정 공동체 삶에 뿌리를 둔 미신적 실천과 신앙을 가진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를 단순히 기독교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의 얄팍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교회는 민중들이 가진 독특한 민속 문화와의 갈등과 타협이라는 과정을 거쳐 민중 기독교를 만든 것이다. “최상층 없이 최하층도 없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이다. 다시 말해 민중 없이 교회 없다. 이처럼 교회는 뜬 구름 위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라는 현실 위에 있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세속 위에 서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민중(세속) 기독교인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사제(교회)와 광대(민중)()(기기)’이다. 때로는 사제의 강압적 통제가 먹힐 때도 있었지만 광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 과정에서 사제는 단순히 강압적이지만 않았다. 암흑기라고 말하는 중세 교회는 (자의든 타의든) 타협할 줄 아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사제와 광대가 공존할 수 있던 때가 바로 중세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근대에 데카르트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는 헤겔의 철학에서 그 절정에 도달했지만, 이런 경향은 보편적 이성 이외의 감정, 육체, 개체들의 소중함을 무시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또한 1,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계몽에서 시작한 낭만은 허무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이 바로 중세다.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철학, 역사, 경제, 정치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보여준 중세의 다양성은 배제와 혐오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다!

 

1. 소리로 연결된 세계

 

도시와 상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신분 계층의 탄생과 이단의 번성은 교회가 통제해야할 대상이었다. 중세에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목소리, 설교, , 나팔)였다. 시장에서는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직종 고유의 울림과 억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회 축제에는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음유시인들이 시를 낭송했으며, 도시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수난제와 예수의 탄생 축하 등 다양한 주제의 연극이 몸짓과 함께 대사로 전달되었다. 설교는 그 당시 강력한 전달 수단이었다. 기존의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맞춘 주일 설교나 성인들을 기리는 성인 축일설교 방식이 아닌 대중설교가 등장했다. 대중설교의 특징은 신분별(직업에 따른 죄)에 맞춘 예화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예화는 주인공의 자리에 성인이 아닌 민중으로 대체시켰다. 예화는 민중들의 삶이 담긴(천박한) 이야기였으며,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교회의 통제 영역 중에 하나가 결혼과 성규범이다. 책에서 지적하듯이 중세 말까지도 농민층에서는 교회의 결혼과 성규범이 제대로 침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농촌 마을은 수치심의 문화였다. 다시 말해 농촌 사회라는 공동체의 중요성에서 나오는 이웃과의 친밀성, 긴밀한 상호성이, 즉 이웃의 시선이 개인의 행동의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죄의식보다 더 피부로 와 닿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수치심이다. 한 예로 교회는 근친상간을 죄로 금했지만 농촌 사람들은 근친상간은 죄의 문제 이전에 수치스러움 정도로 생각했다. 이처럼 중세는 교회의 정통교리, 바른 규율을 위한 통제와 비교적 통제 영역에서 자유로운 농촌 마을에서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는 자율성과의 긴장의 공존(또는 혼돈) 시대라 할 수 있다.

 

2. 이중 잣대? VS 유연성 

 

이러한 공존은 매춘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보면 좀 더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매춘을 필요악으로 생각했다. 마치 아름다운 궁전이 있다면 궁전에서 나오는 더러운 오물을 버리는 하수도를 매춘으로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중세에는 공창제가 있었다. 일종의 합법적인 매춘장소다. 이렇게 느슨한 세속 성 풍속에 대해 교회는 탄력적으로 대응했다. 매춘을 근절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갱생으로, 매춘 여성들에게 결혼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공익적 기능을 인정한 것이다. 교회는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의 매춘을 단순간음으로 관용 가능한 위반으로 생각했다. 이는 정신을 강조하는 플라톤 철학에서 육체를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등장 속에 자연적 욕망의 중요성에 따른 상대적 균형의 입장에서 나온 태도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 이후 창부들은 사회적 규제 대상이 되어 그들을 인반 도시민과 구별하기 위한 복장과 장식품 규정(붉은 베일, 노란색 마크, 흰 두건 및 망토 등)을 가시적 표지로서 적용받았다. 이러한 태도는 종교개혁 때에 절정을 이룬다. 한마디로 매춘여성은 근절 대상이 된 것이다. 근절의 선포는 매춘 여성과 연관된 사람들을 어둠의 비밀, 침묵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했다.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신비한(?) 존재를 만든 것이다. 초기 중세에 보여 준 탄력적 유연성은 이중 잣대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편한 공존과 긴장이 끝나고 명백히 존재하는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중 잣대는 이중 태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3. 문학,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다!

 

대놓고(?)이야기 할 수 없다면 소설을 통해 이야기 하리라! 저자는 죄수마차를 탄 기사 랜슬릿을 통해 사회 현실을 분석한다. 쾌락과 억압이라는 긴장을 궁정식 사랑(기사와 왕의 부인과의 사랑)으로 분출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욕망의 억제 에로티시즘이다. 이 소설에서 욕망은 절제아래 있다. 결국 중세 시대 새롭게 부상한 기사라는 계급의 탄생과 새로운 계급에 대한 교육의 방법으로 소설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욕망의 장려보다 기사로서의 절제 교육에 무게 중심이 있기는 하지만 젊은 기사 안에 있는 혹은 어떤 형태로든 이뤄질 수 없는 사랑과 욕망을 가진 자들의 현실 대변과 절제라는 종교적 혹은 교육적 목적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4. 이름에 담긴 성과 속의 균형 미학

중세 초에는 게르만식 이름 짓기에 영향을 받아 가족의 이름을 그대로 받거나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예를 들어안세가리우스() + 인갈테우스() -> 안셀길디스()와 인그리스마(), 디트프레두스() + 발트구디스() -> 라건테우스(아들)와 바트가우두스(아들) 이런 식이다. 초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문화전통이 하나로 통일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부와 모의 조상에게서 이름을 차별 없이 따오는 양계제의 특징이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계제는 부계 우위(혹은 별명)의 수직적 양계제로 전환하는 양상도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주로 귀족층에서 나타났는데, 그들에게 이름은 민족적, 신분적, 혈통적 우월 의식에서 나온 연대였다. 이들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이름으로 똘똘 뭉쳤던 것이다.

 

그러나 13세기 후반부터 중세 말까지는 여성의 경우를 제외하고 세례명과 성으로 된 두 이름체계가 정착하는 시기였다. 세례명은 성인의 이름이 높은 빈도수를 차지했다. 남성은 장, 피에르, 기욤, 로베르 등이었고, 여성은 질롱, 알리즈, 마틸드 등이었다. 친족 중심의 이름 짓기는 가문 이익이라는 목적아래 자연적 혈통의 강조가 담겨져 있다. 반면 세례명은 영적 친족이라는 관점에서 혈통적 대 잇기를 철폐하고 친자 관계의 평등과 형제애의 강조가 담겨진 것이다. 중세는 이 두 가지 이름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성과 속의 균형을 이뤘던 것이다.

 

양자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중세 초에는 가문의 이익만을 고려하여 가문 전략으로서 고대로마 양자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입양아의 권리를 더 고려하는 현대의 입양제가 강조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교회가 있었다. 교회는 현세 상속권을 강조하는, 그래서 사후 구원에 관심을 떨어뜨리는 기존의 양자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양자의 의미를 세례로 연결시킴으로써 자연 친족 가족에서 영적 친족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편적 형제애(박애)를 강조하는 양자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중세는 이러한 전환으로의 과도기 시대였다.

 

나오면서: 중세의 다양성을 꿈꾸며

 

도시 사회의 시작, 다양한 신분과 직업의 등장으로 교회는 새로운 통제(직업별 죄악들)가 필요했다. 대외적으로는 십자군 원정으로, 내부적으로는 대중 설교와 고해성사를 통해서 민중들을 교회 권력 아래 두려 했다.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모든 신자는 1년에 1회 이상 고해 성사를 의무로 채택했다. 이것은 죄를 인식하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동시에 개개인을 교회 권력아래 통제하려는 은밀한 유혹이기도 했다. 물론 통제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양자제도의 예). 하지만 통제는 결국 교회 권력의 절대화라는 강력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들은 저항했다. 그들이 얼마나 고해성사의 의무를 지켰는지, 또한 지켰다고 해서 얼마나 제대로 고해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도적 교회보다 민중 문화가 더 오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통제와 저항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타협이 공존하는 시대, 이것이 바로 중세이며 중세는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다양성의 시대였다. 혐오와 배제, 가나안 성도가 넘쳐나는 시대, 여전히 교회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 속에 중세가 보여준 긴장의 공존이 그립다. 누군가는 이러한 타협을 이중 잣대, 혹은 상대주의라고 욕하며 공존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도모(도 아니면 모)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제시한 울타리는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전함을 줄지 모르지만 여전히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절망감을 준다. 이중 잣대가 없어졌지만 배제와 포용이라는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중세의 다양성은 왜 사라졌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근대를 지나 탈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성의 기회를 다시 찾은 건 아닐까? 위기가 곧 기회이다. 따라서 포스트 모던은 배척해야할 적이 아니다. 오히려 환영해서 맞이해야할 반가운 친구다. 물론 어떤 식으로 환영해야 할 것인지는 숙제이지만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y******7 2018.10.1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유희수 - 사제와 광대
"유희수 - 사제와 광대" 내용보기
중세 민중문화의 에로스와 타나토스에 대해 어렵지 않고 비교적 재미있게 기술해 놓은 인문서. 많은 통계와 예화를 든 덕분에 접근이 용이한 편이다. '문명의 개화'를 받지 못한 '야만인'이었던 유럽(특히 프랑스)인들이 기독교의 세례를 받으면서 어떻게 변화해갔는가, 그리고 기독교가 '야만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민중문화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유희수 - 사제와 광대" 내용보기

 

  중세 민중문화의 에로스와 타나토스에 대해 어렵지 않고 비교적 재미있게 기술해 놓은 인문서. 많은 통계와 예화를 든 덕분에 접근이 용이한 편이다. '문명의 개화'를 받지 못한 '야만인'이었던 유럽(특히 프랑스)인들이 기독교의 세례를 받으면서 어떻게 변화해갔는가, 그리고 기독교가 '야만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민중문화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매매춘에 대한 기독교의 유연한 대응은 꽤 인상적이었고, 유럽인들의 민속적 장례문화는 묘하게 우리네 전통문화와의 유사성을 느낄 만큼 친근했다. 중세 영문학을 조금이나마 배운 덕에 '궁정식 사랑'의 뒷사정에 대한 대목에서는 좀더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연옥'이 기독교 교리 안에서 생성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흠잡을 것이라면 <사제와 광대>라는 제목을 붙인 것 치고는 '광대'에서 연상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는 것 정도(여기서 '광대'는 '민중'의 메타포로 쓰인 모양이지만, 무리하게 끌어온 듯한 인상이 있다). 어쨌거나 [유럽=기독교]라는 편견을 깨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u****e 2010.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