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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며서 느꼈는데, 가스통 르루의 [노랑방의 비밀]이 밀실추리물에 있어서 얼마나 뛰어났으며, 대단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책 띠지엔 '고전추리소설의 관습적 요소들을 가지고 놀랍도록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추천사를 넣었는데, 동의한다 (단, 뭐 '그렇게 놀라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거 빼고 ^^;;)
자, 여기는 1950년대 영국 옥스포드 근교의 마을. 마을끝의 길에 자리잡은 제임스의 집에선 숲으로 향하는 정면의 길에 마주보고있는, 왼쪽의 존 단리, 오른쪽의 헨리 화이트의 집이 보인다. 이 세 명은 친구이다. 최근년에 존 단리의 집 다락방에선 안으로 문과 창문이 잠긴채 온통 칼에 찔린, 칼을 들고 쓰러져 죽은 단리부인의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로 아무도 없는 다락방에 누군가 걸어다닌다는 등 유령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야기가 마을에 퍼졌다. 한편, 유명한 작가인 헨리의 아버지 화이트씨는 자동차사고로 아내를 잃고...
단리의 집 2,3층에 세를 들어서는 무서워 다들 나가버리는 마당에, 래티머 부부 (앨리스/패트릭)이 들어오고 그들을 환영하는 모임에서, 심령술사이자 영매임을 자처하는 이 부부에 의해 죽은 화이트부인이 메세지를 전달하면서 존의 엄마이자 빅터의 아내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 아닌지하는 의심이 제기된다.
화이트부자가 계속해서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화이트씨가 공격을 당하고 헨리는 사라지게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다시 저승에서 복수를 다짐한다는 단리부인을 끌어들이기 위한 심령모임에서 다시 살인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드루반장이 등장하여 심리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나 부질없는 노력으로 안타까운 가운데, 이 모든 것이 실제가 아닌 추리소설가인 화자, 로널드 바우어스이자 필명 존 카터가 트위터박사의 도전을 받아 추리소설을 쓰고 그 범인을 밝혀내게 하는 설정으로 밝혀진다.
...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더없이 기발하고 더없이 악랄한 범인들의 가면을 벗겨냈네. 불가사의한 사건들도 여럿 해결했지. 그런데 범죄 분야에서 내가 결코 해내지못한게 한가지 있네....추리소설 쓰는 것. 그러니까 수수께끼의 짜임, 구성을 말하는거네....
믿기어렵군요...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건 쉽습니다. 모든 어려움은 그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찾아내는데 있죠...
자네와 공동으로 소설을 한편 쓰고싶네. 배경, 인물, 이야기는 자네가 맡게. 유령, 밀실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놀라운 이야기는 말이야....최대한의 미스터리를 집어넣는거야. 해답에는 신경을 쓰지말고. 해답은 내가 쓸테니까!
...하지만 불가능해요. 작가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알아야 소설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는 것에는 신경쓰지않아도 된다면 저야 물론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박사님이 해답을 찾아내지 못할거예요....p.239~241
요 정도야, 추천사에서 '놀랍도록'이라고 까지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 다음의 써프라이즈는 읽는 분들의 느낄 즐거움의 몫.
이 또한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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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알테르가 21세기에 쓴 이 추리소설 <네 번째 문>은 그야말로 서양의 딕슨 카, 애거서 크리스티에서부터 동양의 요코미조 세이시,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같은 계열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본격 추리소설의 흐름을 멋지게 계승한 보기드문 명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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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네번째 문>이다. 나는 숫자 4가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이 표지는 다른 책들보다 애착이 같다. 왜냐하면 예전에 설문조사로 <네번째 문>표지 투표에서 이 표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반전을 좋아하지만 반전의 반전을 더욱 더 좋아하는 나다. 바로 이 책이 반전의 반전 책이다.
밀실에서의 살인 사건 책에는 분명히 범인이 있을 터 .. 나름대도 열심히 추리를 했지만.. 나는 결국 마지막까지 범인을 지목 하지 못했다.
추리소설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끝을 몰라서 이다. 생각하고 읽어도 다르다. 난 이 맛에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네번째 문>도 범인이 너무 궁금하여 끝까지 읽었다.
읽다가 당황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3부 <막간> 편이 였다.
첫문장은 휴유 ! 다 끝냈다!
이 말은 존 카터라는 필명을로 알려진 추리소설작가가 한말이다. 처음엔 '뭐야? 범인은 찾지도 않고...뭘 끝내? '라고 생각했다.
읽다가 갑자기 작가가 등장하다니? 하지만 <네번째 문>의 저자 폴 아테르가 아니였다. 나는 두 이름을 번갈아 보며 존 카터는 이 이야기의 추리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 카터작가가 범인을 생각하지 않고 소설을 쓰면, 트위스트 박사가 범인을 찾는 이야기이다.
아 !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5부까지 있다.
나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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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문은 단순한 밀실살인이 아니다. 밀실살인과 심리학을 적절히 섞어놓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반전에 반전 그리고 이제는 끝이구나 했을때 독자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나온다. 폴 알테르는 존 딕슨카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의 밀실살인과 폴 아테르만의 심리학을 가미한책이 네 번째문인 것이다. 이야기는 영국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난다. 단리 부인은 문과 창문이 안에서 잠긴 다락방에서 잔인하게 죽을시체로 발견된다. 이사건을 경찰은 단리 부인의 자살로 결론낸다. 단리씨는 부인의 사망으로 모든걸 잃게된다. 자신의 사업도 부도가나고 정신도 온전치 못하다.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돈다. 단리씨의 다락방에 불빛이 새어나오 발자국 소리가 나는 기괴한 일들이 발생하면서 단리씨집은 귀신 붙은 집이라는 소문이나고 세입자들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오래버티지 못한다. 런던에서 래티머 부부가 단리씨의 집에 새로입주하는데 그들부부는 유령이 두렵지 않고 친근하다고 말한다. 이무렵 헨리 화이트에게 불행이 닥친다. 부모님이 파티에서 돌아오던중 화이트씨의 실수로 부인이 사망을하게되고 헨리는 절망에빠진다. 래티머 부인은 영매가되어 누군가를 가리키며 복수를 말하고 실신했을때 단리부인을 만났다고 말한다. 이일을 계기로 단리씨의집은 ‘귀신이 나오는’집으로 소문이 나고 래티머부부는 유명해지고 영국각지에서 그들 부부에게 상담을 요청하게된다. 이 무렵 화이트씨는 괴한의 습격으로 위독한상태이고 아들인 헨리는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무는 기괴한 살인과 사고들이 발생하지만 사건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을은 언제또다른 살인이 벌어질지 알수 없는 상황으로 범인의 행방을 찾을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누군가 의심이 가는 인물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글은 중반을 넘어서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가없다. 계속되는 사건들속에 언제쯤이면 범인 나올까 싶을때 뜬금없이 막간이라면서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 트위스트박사와 로널드 바우어스다 로널드 바우어스는 추리소설작가로 필명은 존 카터 그는 트위스트 박사의 요청으로 추리소설을 쓴다는 설정이다. 그가쓴 글이 앞서설명한 글이다. 이때부터 트위스트박사는 존 카터가 쓴 추리소설을 추리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는 독자를 편하게 놔주질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또다른 반전을들고 나온다.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기전까지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수가없다. 폴 알테르는 이글을 탈고하면서 무슨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는 독자들의 혼란을 생각하며 웃음지었을 것 같다. 네 번째문은 밀실살인의 트릭중 하나다. 후디니의 마술과 밀실살인이 만나 다시만나기 힘든 최고의 밀실추리소설이 탄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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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을 읽고 나서는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지 항상 고민된다. 제대로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을 하기에는 스포일러가 되어버리겠고, 그것을 제외하고 이야기하자니 많이 허전하고.. 아직 글 솜씨가 많은 부족한 나에게 있어 그 타협점을 찾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끄적여 본다 ㅡ.
『네 번째 문』은 ‘프랑스의 존 딕슨 카’라 불리는 「폴 알테르」의 1987년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장 우수한 추리소설에 주어진다는 ‘코냑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상당히 인정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뭐, ‘그 정도쯤이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워낙 많은 상이 있고, 내가 모르는 상들도 세상에는 널려있으니까 ㅡ. (코냑 상이라는 것도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친숙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나름 검증되었다고 생각되는 일본의 ‘2003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1위를 획득했다는 사실에서는 그 기대감도 달라질 것이다 ㅡ.
책을 다 읽고 돌아보니 정말 많은 흔적들이 보인다. 물론 난, 책을 읽는 동안에는 논리적으로 정리하기 힘들었다. ^^;; 그리고 마지막에 보이는 또 다른 이야기-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얼핏 생각해보면 알 수도 있는 것이고, 어쩌면 너무 흔한 것일 수도 있다. 지나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이야기에 흠뻑 빠져 다른 생각을 못했기에-끝까지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많지 않은 분량이기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결말이 그렇게 흔하게 생각되지도 식상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래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지금에 와서 만나도 그 재미는 여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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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 특정인물이 주도하여 사건을 해결하여 마지막에 시원스런 결말을 제시하는 구조를 기대하는 독자인 나에게는 네 번째 문은 뭔가 가지고 있으면서 쉽게 내놓지 않는 고집을 가진 탐정 같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미궁에 빠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추적해 뭔가를 파헤치고 싶은 독자 본연의 욕망이 살아나, 끝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읽게 되었다. 한적한 영국의 옥스퍼드라는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아주 기묘한 “밀실” 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그 마을에는 오랜 세월 동안 기괴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온몸이 칼에 찔리고 양손의 정맥이 잘린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자신의 집 꼭대기 복도 끝 네 번째 방의 문이 안으로 잠긴 채였다. 이 사건은 자살로 결론지어지고, 큰 충격을 받은 남편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 후 세놓은 2,3층의 세입자들이 원인 모를 공포에 살지 못하고 떠나버리는데, 그 집에 의문의 부부가 세를 들어 살게 되면서 네 번째 방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의문의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오누이 간의 평범한 연애코치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웃집의 평범한 자살사건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네 번째 문은 원인은 없는 예기치 못한 사건의 결과들만 계속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도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는 구조이지만,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네 번째 문에서 작가는 중간중간 내가 홀릴 만큼 조금의 단서를 주었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덥석 그 단서를 물어, 이미 탐정이라도 된 듯 혼자서 나만의 추리를 펼쳐나가는 동안 또 다른 사건과 인물들의 또 다른 행적으로 앞서 흘려준 단서는 이미 잊어버리고 또 다른 단서를 덥석 물게 된다. 살인사건, 영혼과의 소통을 통한 심령술, 사건의 주를 이루는 미스터리함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고, 범인이 누군지 쫓기 시작하면서부터 뒷장을 빨리 넘겨보고 싶어 조급해지게 되었다. 아마도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한다며,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 다음 페이지를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읽기 시작하기 바란다. 중간중간 작가가 던지는 그 단서에 홀리지 말고, 자신만의 추리를 완성해 보시길 바란다.(가능하다면^^;)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이 책의 마지막 반전(내 나름대로)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네 번째문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주 조용한 “밀실”에서 사그락 한장씩 넘겨가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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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 이야기 중 자주 나오면서도 가장 흥미있는 이야기는 밀실 살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수수께끼가 주어지고 그 퍼즐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밀실살인이 주가 되는 추리소설이다. 특히 이 책은 프랑스 작가의 1987년 코냑상 수상작을 번역한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코냑 상은 가장 우수한 미스터리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게 된다. 번역 또한 술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되어 있었다. 번역한 책 중에는 번역이 난해하게 되어 있어 읽기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1950년 한 저택 꼭대기 층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살로 종결되고, 세입자들이 줄줄이 줄행랑을 치는 귀신들린 집으로 수문난 그 집에 래티머 부부가 입주하며, 의문의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추리를 하는 과정에서 책 곳곳에 숨어 있는 힌트들로 내 나름의 추리를 해 나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재미 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도 재미가 있었지만, 마지막에 범인의 광기 어린 모습은 약간 소름돋기도 하는 또다른 재미도 있었다. 또한 다 끝난 줄 알았던 중에 마지막의 반전은 약간은 의외이면서도, 여운을 갖게 했다. 요즘은 만화로 된 추리물들이 많아 이렇게 소설로 된 추리물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만화가 아닌 소설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추리물을 좋아하고, 그 동안 만화로 된 추리물에 약간의 염증을 느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소설이 주는 색다른 맛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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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문 폴 알테르/시공사/313p./2009년 오래간만에 정통추리소설을 읽었다. 역시 추리소설은 단숨에 읽어 제켜야 제 맛이다. 잘 쓴 추리소설은 형태를 알 수 없는 온갖 모양을 하나하나 맞추어 어느 순간 잘 짜인 선명한 그림이 드러나는 퍼즐과 같다. 덕분에 무디고 녹슨 머리를 회전하느라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다른 직장인보다 퇴근이 비교적 빠른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 첫 등장인물 제임스처럼 책이나 읽다 자려고 일찌감치 침대로 올라왔다. 그리고 자정 무렵이 돼서야 요 며칠 감기기운으로 뻑뻑하고 충혈 된 눈과 독서로 인해 점점 심해지는 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1/5 뒷부분을 남겨두고 책을 덮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과 광기, 원한이 사무친 영혼들이 절규하는 복잡한 스토리를 한 밤중에 읽어댄 탓인지 약간 악몽에 시달리다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이 깔린 복도 끝, 희미한 오렌지색 불빛을 뿜어내며 살짝 열려진 ‘네 번째 방’의 유혹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근무 중 약간의 틈을 타 얼른 나머지를 읽어버렸다.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에 살짝 비꼬는 유머가 일품인 작가의 글 솜씨는 단번에 독자를 끌어당긴다. 연극의 무대처럼 캄캄한 어둠을 밝히는 조명이 살그머니 켜지고 숨죽인 관중들이 바라보는 긴장감 속에 어여쁜 18살의 처녀가 오빠의 방문을 노크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안락한 방에서 연애상담을 하고 있는 오누이의 천연덕스러운 대화, 이들의 따뜻하고 유쾌한 대화는 앞으로 펼쳐질 연쇄적인 살인 사건의 등장을 한층 더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영국의 옥스퍼드 근처의 한적한 작은 마을, 마을 끝 외진 곳에 세 채의 집이 있다. 동생의 연애상담을 해 주고 있는 제임스와 제임스의 절친한 친구, 헨리와 존의 집이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된다. 이 조용한 시골마을의 여느 집처럼 사랑하는 젊은 부부, 장난기 많은 아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던 존의 가정에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아름답고 상냥한 아내가 어느 날 그 집의 꼭대기 층 복도 끝 네 번째 방에서 방문이 안으로 모두 잠긴 채 온 몸이 칼에 찔리고 양손의 정맥이 끊겨 죽은 모습으로 발견된다. 모든 방문은 안으로 잠겨있고 살인자의 어떤 흔적도 없기에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마무리되고 그 사건으로 남편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에 휩싸인다. 그 후 2,3층을 임대한 세입자들은 원인모를 공포에 시달리다 몇 달도 채 살지 못한 채 떠나버렸고 그 후 그 집은 ‘폭풍의 언덕’으로 불리며 무시무시한 폐허가 되어간다. 어느 날 의문의 부부가 나타나 그 집에 세 들어 살게 되면서 네 번째 다락방과 그 주변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소설은 살인, 미스터리, 심령술 등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요소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렇게 잔혹하지는 않다. 문장은 담백하고 유머가 담겼으며 등장인물들은 그리 냉혹하지 않다.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머리는 복잡하지만 그것은 아무 때고 무시무시한 공포의 칼을 휘둘러대는 사이코패스 같은 광기나 한 밤중 귀가길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막연한 공포감은 아니다. 살인자의 행동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동정심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선량한 캐릭터라고나 할까? 한 군데 나름 충격을 받은 장면이 있기는 한데 그것은 새댁이 잡고 있었던 ‘그 차가운 손!’ 이다. 남편의 손인 줄 알고 내내 잡고 있었던 그 차가운 손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 작가는 흥미로운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을 통해 여기저기 그럴듯한 단서를 뿌려놓았다. 작가가 흘린 그 단서들을 붙잡고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고문이었다. 마지막 문단까지 반전을 놓지 않는 작가의 솜씨와 추리소설다운 산뜻한 결말까지 꽤 괜찮았다. 또 롤랑 라쿠르브의 <후디니와 그의 전설>에 등장하는 시대적인 마법사, ‘후디니’의 이야기도 메인 요리 속의 또 다른 요리를 맛보듯 색다른 맛이었다. 복잡하고 정성스레 만들어진 정통 프랑스 요리를 맛있게 먹고 냅킨으로 입가를 훔치는 포만감과 우아한 느낌을 선물해준 잘생긴 작가에게 감사를 보낸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 않는 것은 음식을 먹으면서 소화를 시키지 않는 것만큼이나 바보짓이다.” ---2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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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 보이는 영국의 한 마을, 하지만 그 마을에 있는 단리씨 집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난 집이다. 화자로 등장하는 제임스의 친구이기도 한 존의 어머니가 어릴 적 다락 방에서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 후 그의 아버지는 약간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그의 집은 그 뒤 계속 이상한 소문이 돌아 세를 줘도 사람들이 얼마 살지 못하고 나가곤 했다. 그런 것 빼고는 별 다른 일없는 곳에서 이번에는 헨리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아버지만 살고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그리고 단리씨네에 이상한 부부가 세를 들게 되면서 마을은 사건에 휩싸이게 된다.
단순하고 간단한 밀실 트릭을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그와 더불어 안락의자 탐정에서 발전한 형태인 1950년대 경찰의 어설픈 프로파일링이라고 해야할까, 심리학적 수사를 접목시켜 신선함으로 마지막의 반전에 양념을 더한 기발한 작품이다. 안쪽에서 잠긴 문에 대한 트릭, 그 안에서 일어난 범죄와 피해자만 남겨진 상황의 반복, 여기에 눈 쌓인 집에서 일어난 또 한번의 살인사건. 범인의 발자국은 어디에도 찍혀있지 않은 상황은 그야말로 집안 전체를 밀실로 만들고 여기에 동시에 두 군데 사람이 모습을 나타낸다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까지 마술같은 일들이 트릭으로 펼쳐진 채 독자들을 유혹한다.
처음부터 범인은 눈에 보였다. 아주 익숙한 트릭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추리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런데도 작품은 의외로 재미있다. 경찰이 정신 차릴 수 없을만큼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영매라는 존재가 주는 약간 오컬트적 사이비 냄새를 풍기는 으스스함, 여기에 후디니의 마술에 대한 이야기까지 접목되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모든 것이 오히려 나중에 전하는 반전을 위한 거대한 포석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작가의 치밀함에 놀라게 된다.
익숙함이 신선함으로 바뀌어 사로잡는다. 이야기의 전반부의 트릭도 재미를 주지만 후반부의 트릭은 놀라움 그 자체다. 프랑스의 존 딕슨 카라는 말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작풍이 프랑스식 신본격 추리소설의 새지평을 연 것은 아닌가 싶어 좋았다. 정말 프랑스적인 새로운 작품의 탄생이라고 말하게 되는 작품이다. 볼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본격 추리소설하면 보통 일본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일본 추리작품들이 많이 나와 있고 탄탄하다. 하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질리게 된다. 이런 때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신본격 추리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 작품이 작품적으로 만족감을 준다면 그건 더 좋은 일이고. 이 작품은 작가가 창조한 탐정 닥터 트위스트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 작가, 폴 알테르의 작품이 더 많이 출판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닥터 트위스트 시리즈도 더 많이 출판되기를 바란다. 좀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익숙한 고전 추리소설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심리적 트릭을 구사한 세련된 탄탄한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