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영화 <프리잭>의 원작이다. 프리잭을 연상하며 이 작품을 읽었는데 바로 이런 것이 원작따로의 전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영화는 원작의 작은 소재, 인간이 영원불멸이기를 바라는 것만을 부각시켰을 뿐 원작 속에서 주인공인 한 소시민이 겪는 고통은 하나도 표현하지 않고 심지어 주인공을 마치 영웅인 냥 포장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원작보다 영화가 더 좋아 보이니 참 내 생각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어떤 면에서 보면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와 비슷하다. 인간이 불사의 몸을, 아니 정신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다는 공통의 소재를 표현한 점에서는... 그것을 신들의 사회에서는 종교적으로 표현하고 이용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과학적으로,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제목이 그래서 불사판매 주식회사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인간의 운명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하다. 주인공은 변함없이 1958년에나 2110년에나 소시민이고 여전히 틀에 박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면서 두 번의 주어진 죽음에서조차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아무리 인간이 불멸하는 존재가 된다 해도 운명은 주어진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역시 모든 것은 덧없는 인간의 욕심일 뿐인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원하던 작품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세클리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다면 지금은 절판된 고려원에서 예전에 나온 세계 SF 걸작선에 <생활의 대가 Cost of Living>, 코믹 SF 걸작선에 <한 주제를 위한 세 개의 변주곡 Triplication>가 실려있었고 지금 읽을 수 있는 작품은 플레이보이 SF 걸작선 I에 수록된 <내가 이렇게 해 주면 느낌이 오니?>가 있다. |
| 평범한 말단 요트 설계사 토마스 블레인은 뉴욕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러나 다시 깨어난 곳은 152년 후의 뉴욕...... 육체와 영혼을 팔고 사는 건물 안이었다. 2110년의 뉴욕은 헬리콥터 택시가 날아다니고, 로봇과 기계가 거친 일을 다 처리해주는 환상의 도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150년 전 블레인이 떠나온 시대와 다를 게 없었다. 가난한 자는 육체를 팔아 내세(來世)를 사고, 내세를 사고도 돈이 남는 자들은 가난한 자의 육체를 사들여 현세의 쾌락을 연장시킨다. 지하도엔 그러한 영생의 임상실험과 상용화 과정에서 실패한 좀비들이 소외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길거리엔 자살부스로 향하는 가난한 자들이 줄지어 있기도 하다. 부자들의 쾌락용인 '인간 사냥꾼' 노릇까지 마다할 수 없었던 블레인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낙천적인 기질로 그곳에 적응해 가며 옛날의 생활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152년 전의 교통사고 당시 상대편 차량의 청년이 좀비가 되어 끝까지 자신을 찾아오자 육체를 그에게 넘겨준 다음,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현세의 삶을 접고 내세로 향한다. 개개인의 단편적인 추억 말고도, 비슷한 연배에서 비슷한 체험으로 비롯된 비슷한 코드같은 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우리 시대의 유년은 ---굳이 책에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계림문고 판 셜록홈즈(당시 표기법은 '셔얼록 호움즈'였다)와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당시 표기로는 '아르세느 루팡'), 그리고 출판사 이름을 잊어버린 아동용 SF시리즈가 접수해 버렸던 것 이다. 영원히 어린 날의 짧은 기억으로 묻어 둘 수 밖에 없는가 했었다. 그런데 막강한 피플파워, 아니 파퓰레이션 파워(population power)라 불러야 옳을 듯 하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이 땅에 태어났던 엄청난 숫자의 아이들은 이제 강력한 소비자 층으로 군림해 추억을 되돌려 줄 것을 상업자본에게 명령하고 있다. 추억의 불량식품이 부활하고, 그 시대를 다룬 청춘 영화가 나오고, 홈즈와 뤼팽이 되돌아 왔다. 하지만 <불사판매주식회사>, <양서인간>, <비글호의 모험> 등은 정말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떠나 버린 듯 감감 소식이 없었다. 허나 이제 그들까지도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두 세 시간 만에 이 책을 후딱,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읽으면서 20년도 더 묵혀진 나의 유년도 되살아오고 있었다. 등장인물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다음 줄거리가 떠올랐다. 게다가 이젠 완역판을 읽으니 그 옛날 아동판과 달리 야한 장면도 원래 곳곳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기대하지는 마시라, ㅋㅋ). 아동판에서는 오빠로 설정된 등장인물이 이번엔 남편으로 되어있어 대충 짐작했지만 뒤로 가니 역시나 그런 장면이 잠깐 나온다. 마치 60년대 영화 <졸업>에서 주인공 남자(더스틴 호프만)과 각각 관계를 갖는 모녀가 우리나라 상영판에서는 윤리 문제로 이모/조카딸로 번역된 것과 흡사한 셈이다. 내가 자란 만큼, 작품도 자라나 보다...... SF는 내 어린 시절 어른들이 생각하듯, 외계인과 지구인이 최첨단 무기를 들고 피의 잔치를 벌이는 허황된 것이 아니다. 그건 미래에 대한 탐구라기보다 당대 현실을 대조시켜 극명하게 문제점을 보여 주기도 하는 사회비판인 것이다. 이 <불사판매주식회사>를 보라.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쓰여졌고, 지금으로부터 108년 뒤를 배경으로 하는 데도 이 세 공간 속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언론과 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조작, 왜곡하고 있으며 자신의 양을 백 마리로 채우기 위해 가난한 이웃의 한 마리 양을 도적질하는 세상이다. 쾌락의 끝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냥하는(작품 속 실제 행위이기도 하지만,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리라)데 까지 나아가는 것도 말이다. 앞으로 매년 10권 이상 SF시리즈를 발간할 예정이라니 나의 가슴은 더욱 뛴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나이 먹으며 흐려져가는 지금의 자신과 그 책을 이부자리에 엎드려 읽던 20여 년 전의 자신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
| 한 출판사에서 작품성 있는 SF 소설들을 출간한다는 광고를 보고 어떤 책들이 있나 살펴보는데 유독 눈에 띄는 책 제목이 있었다. 불사판매주식회사.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죽음을 통해 미래의 세상에 새 몸을 입고 태어난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인생과 죽음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인데 자칫 진부해 보이는 소재이지만 작가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는데 이 소설의 세계관도 그에 견주어 전혀 부족함이 없다. 상상력만큼이나 소설의 짜임새도 나무랄 데가 없는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는 아니지만 맥이 풀리지 않게 적당한 긴장과 궁금증을 유지하면서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구성력 덕에 한번 잡으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손을 뗄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래된 작품이어서인지, 혹은 작가가 내용 전개에 중점을 두어서인지 문장이 건조하고 투박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번역까지 직역체의 어색한 문장들이 많아서 다른 소설에 비해 읽는 맛이 심심하다. 이 소설에서 나는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의 한계를 보았다. 사후 세계의 발견과 그것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류에게 육체의 죽음을 뛰어 넘은 존재로의 진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후 세계를 보장 받은 부자와 그에게 고용된 사냥꾼들이 벌이는 무의미한 살육전이 보여주는 것처럼, 무자비한 버서커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애도하기 보다 희생자의 수로 버서커의 무능력함을 비웃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자신의 육체를 파는 대신 사후 세계와 가족들의 생계를 보장 받는 것을 허용하는 법이 보여주듯이 새로운 과학의 발견과 발명은 생명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끔찍한 세상을 불러왔다. 인류사의 많은 발견과 발명이 그러하였듯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희생당하여 인류 전체가 아닌 소수만이 과학의 시혜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혜택 받은 소수와 버림받은 다수의 갈등, 그리고 소수에 편입하려는 다수의 애처로운 몸부림. 인류가 극복하여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천박한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서 멸망으로 치닫는 인류가 진정 죽음을 극복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주인공의 마지막을 통하여 진정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고 정의와 소신에 비추어 바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이다. 비단 죽음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여도 인류를 옥죄는 굴레를 타파할 용기와 결단이 없이는 인간 사회의 진보는 아득히 먼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책을 다시 읽어 보면 이렇게 뻔한 해석 외에 작가의 또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죽음과 별개로 작가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도 글 속에 다룬 듯한데 다음 번에는 그러한 면에 초점을 맞추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어두운 미래를 그린 소설을 읽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가 드리우는 그림자라는 점을 유념한다면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짚어 보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
| 이 책을 나는 초등학교때 읽었다. 비록 그때 내가 읽었던 것이 허접한 일본어 중역 다이제스트판이었다는것을 최근에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은 과학이 너무 발달한 나머지 영혼과 육체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고 부유한 자들은 현세에서의 풍요와 불멸의 영혼까지 소유하는 극단적 계층분리의 사회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래로 오게된 한 사나이가 좌충우돌 겪게 되는 모험담이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가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1959년에 쓰여진 이 작품이 훨씬 창의적이며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미래에 죽음에 관한 연구가 결실을 맺어 사람이 죽으면 죽음에 대한 충격을 받게 되며, 그 충격으로 인해 영혼은 3가지 상태로 변한다는것을 알게 된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소멸하거나, 선천적 재능으로 충격을 견디고 내세로 가거나, 아니면 충격을 이기긴 하나 온전치 못한 영혼, 즉 유령이 되는 경우이다. 죽음의 충격을 견디는 사람은 극히 희박해서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영혼수술을 한다. 이 수술을 받고 나면 평범한 사람도 죽음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이를 내세보험이라고 하며 이 시술을 하는 회사가 불사판매주식회사다. 내세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규명되자 사회는 급변한다. 가난한사람은 내세보험을 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부자에게 팔고 죽음을 맞이한다. 부자들을 가난한 사람의 육체를 사서 죽지않고 계속 현세를 살아간다. 때론 이러한 삶에 지친 부자들은 거리에서 아무이유없이 사람들을 마구죽이다가(이런 존재를 바서커라고 한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스릴과 짜릿한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어차피 죽어도 내세로 가기 때문에 죽음이 더이상 죽음이 아닌것이다.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사회는 누구가 꿈꿔봤음직한 죽음없는 사회지만 그 결과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만일 불멸의 삶이 약속된다면, 죽음이라는 제어장치가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타락과 폭주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공포가 실은 더 큰 공포를 막기위해 서로를 지켜주는 안전장치가 아닐까? 내세보험을 들게된 주인공을 보자. "그는 지나가는 트럭 바퀴 밑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모습을 명랑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람? 실제로는 아무것도 그를 해치지 못한다. 그는 이제 버서커가 되어 즐겁게 군중들을 베어나갈 수도 있다. 왜 못해? 기껏해야 경찰들이 죽일 수 있는 건 육체뿐인 걸 그 기분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그는 과학적 내세의 발견 이전에 사람들이 무엇과 더불어 살았는지 깨달았다. 그는 모든 행동에 미묘한 무게를 주고 모든 순간에 배어들어 있던 무겁고, 몽롱하고, 끊임없고, 무의식적인 죽음의 공포를 생각했다. 오래된 적수 죽음, 그 그림자는 소름끼치는 촌충처럼 마음의 회랑을 기어오고, 그 유령은 밤낮을 떠돌고,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고, 문 뒤에 도사리고 있고, 모든 연회에 보이지 않는 손님이었고, 모든 경치에서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으나 언제나 곁에 있고,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 그렇다. 죽음의 공포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아도 수면 아래에서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은 늘 조급하고, 불안하고, 나아가 불행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속에 그려지는 죽음에서 해방은 인류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불완전해서 죽음이나, 한계나, 운명과 같은 제약의 도움이 없이는 성숙도 없기 때문이다. 좀비와 유령, 그리고 영혼여행 등 기발한 아이디어와 긴박한 스토리, 그리고 죽음과 인간성의 문제를 다시한번 생각케 해주는 소설 "불사판매주식회사".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추천해주고싶은 소설이다. |
| 잃어버린세계에 이어서 아동 축양본으로 읽은 책의 완역본을 다시 보게된 책이다. 음..당연하겠지만 아동축약본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성적인 부분이 많이 생략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래봤자 별것있는 것도 아니지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육신과 기억을 넘는''영혼''이라는 부분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존재하며, 내세까지 인위적으로 보장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밌고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약간은 빛이 바랜 위트가 보여서 씁쓸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어쩔수 없이 낡은 느낌이 나는 위트는 좀..묘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말단 요트설계사는 어딜가도 말단 요트설계사란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