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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를 위한 문학> 9강. 나카가미 겐지 <열아홉 살의 지도>
나카가미 겐지 소설이 엄청 어렵다는 얘길 어디선가 주워들어서 이 책을 읽을 때도 걱정스러웠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그런데 해설은 좀 많이 닭살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해설에서 작품에 대해 좀 닭살 돋게 띄워 주는 건 별 차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 단편집엔 <맨 처음 생긴 일>, <열아홉 살의 지도>, <달팽이>, <보타락> 네 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맨 처음 생긴 일>은 `나`, 켄지란 시골아이가 주인공으로 슈, 조선인인 백하와 철이란 아이들과 산속에 어른들 몰래 그들만의 `비밀` 기지를 만드는데 열중한다. 아이들은 숲에서 놀면서 별 이유없이 근처 오두막에 홀로 사는 `린사부로(후리가나는 안 달려 맞는 발음인지는 모르겠다. 한자로 輪三郞이라 적혀 있었다.)`를 적대시하고 린사부로가 쫓아오면 대나무창으로 눈을 찌르겠다는 둥 좀 험악한 말을 장난삼아 늘어놓곤 했다. 처음엔 그냥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흔히 하는 좀 심한 장난 정도로 여겼었는데 소설 끝에서 주인공 소년이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면서 그 활로로 린사부로의 집이 통째로 불타고 린사부로가 불에 놀라 날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숲에 불을 지르자고 할 땐 상당히 놀랐었다. 중간까진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비밀기지를 만들면서 쑥덕거리는 모습에 어릴 적에 대한 어렴풋한 그리움을 느끼면서,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었는데 주인공 아이의 가족 이야기가 점차 비중을 많이 차지하면서 어쩌면 아이의 밝음은 과장된 밝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이들이 기지를 만들려는 <비밀> 계획은 린사부로가 사는 오두막을 보고 상상력이 발동한 것이기도 했지만, 주인공 `나`에겐 또 하나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는 `나`에게 하나 있는 형 켄이치가 예전 소년 시절에 종전 직후 타버린 집을 대신해 마을의 불량소년들을 모아 새로 지은 집이었다. 지금은 새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머니와 `나`에게서 떨어져서 사는 형은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전쟁에서 돌아와 바로 죽어 엄마와 누나, 아기였던 `나`를 위해 가장으로서 새집을 지었었다. 어린 형이 지었던 집을 상상하면 `나`는 이상하게 흥분하곤 했다. 그런 두근거림을 마음에 품고, 아이들은 재료를 모으고, 비밀기지를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형은 지금은 가족들에게서 떨어져나와 홀로 양계장같이 너저분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종종 `나`는 형에게 놀러 가곤 했는데 형의 전기 배터리 사러 가자는 권유를 비밀기지에 갈 생각에 학교에 가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거절한다. 역시 소설 전체를 다 읽었을 때 이 부분은 형에게 닥칠 비극을 암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현실에서 그 정도 일로 비극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소설에선 그런 장면들이 하나하나 쌓아 뒤에 독자들이 수긍할만한 결말을 예비해야 한다. 그게 소설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비밀기지도 만들고, 멱도 감으면서 아이들답게 즐겁게 논다. 아이들의 작업장에 형이 강아지를 안고 왔을 때도 `나`는 뭘 만드냐고 묻는 형에게 자신들의 비밀을 밝히지 않는다. 술에 취해서 온 형이 밤에 `나`에게 물었을 때도 결국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이는 술 마시고 온 형은 싫다고 말하면서 달려간다.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비극의 분위기는 조금씩 쌓이고 결국 형은 술을 마시고 어머니, 새 아버지, `나`가 사는 집에 와서 과도를 다다미 위에 꽂으면서 가족들에게 거기 앉아서 얘기하자고 하나 가족들은 그를 무시한다. 비밀기지는 완성되나 결국 나는 그 초라함에 실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형은 목을 매달고 자살한다. 그렇게 아이의 밝은 유년시절은 지나가고 아이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 적에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흥미롭게도 조선인인 백하란 아이의 이야기도 조연인데도 꽤 들어 있었다. 백하군은 자신은 조선인이 싫다고 하지만 결국 비밀기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양철 판을 빼오진 못한다. 아마도 조선인의 민족의식-내셔널리즘?-이 강한 부분의 간접적 묘사가 아닐까. <열아홉 살의 지도>는 처음부분에선 주인공이 지도에 가위표시를 하면서 뭔가 스릴러 분위기를 풍겨서 이건 혹시 스릴러물인가 생각하며 읽었는데 알고보니 주인공은 예비교에 다니며 신문배달을 하는, 청년이 되는 길목에 갓 들어선 학생이었다. 그 가새표도 신문배달을 하면서 좀 마음에 안 드는 집을 표시한 걸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치우는지 공상하고, 공중전화로 장난전화를 하거나 화단을 망가뜨리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주인공은 답답한 마음을 풀 곳을 찾는다. <달팽이>의 주인공 청년은 유치원생 아이가 있는 여자 미츠코의 집에 기둥서방 비슷하게 산다. 청년이 하는 일은 데루아키란 미츠코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여인을 그녀의 일터에 데려다 주는 게 다였다. 종종 그녀의 집엔 전남편이 와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미츠코는 주인공에게 자신이 오빠 되는 사람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누이인 자신을 내버려두고 자기들만 잘사는 것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다가 청년이 데루아키를 갈대숲에 데리고 갔다가 데루아키가 잘못해서 갈대에 눈이 찔려 병원에 가고, 그 길로 미츠코와의 관계는 끝이 나는데 주인공 청년은 미츠코가 불행한 이유는 그녀의 오빠 잘못이라며 오빠의 집에 쳐들어가 칼로 찌른다. <보타락>은 <맨 처음 생긴 일>의 주인공이 서른 살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제 청년인 켄지는 학교에 다니는 척 하면서 가족에게 돈을 타내고 아무 하는 일 없이 산다. 그의 누이는 도박사인지 야쿠자인지 험한 일을 하는 한국인의 처가 되었다. 켄지는 형의 일을 곱씹는다.
전체적으로 이 단편집은 자신의 힘으론 풀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에 괴로워하며 사는 소년과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종종 조선인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나와 작가가 생전에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는 어떤 글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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