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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평안해 보인다.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세상의 어떤 풍파와 고난에도 아랑곳없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띤 그 평안은 어디서 왔을까. 필요했다. 그리고 얻고 싶었다. 그 평안을.
19세기의 잔느 귀용이라고 불렸던 저자 한나 휘톨 스미스. 1832년 출생이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태어나기 한 세기도 훨씬 전에 이렇게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경외하며 살아간 신앙의 선배가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평탄치 않았던 한나의 삶. 첫딸을 기관지염으로 잃고 남편의 사역 실패와 사고로 큰 시련에 빠진 그녀였지만 1869년 경건 캠프 모임에서 ‘성령세례’를 체험한 한나는 이후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하여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 1:33)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하나님이 누구냐고. 수많은 신들 중 하나가 아니냐고. 하나님은 신들의 신이시며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시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있는 사실 그대로 적힌 그분의 말씀, 즉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내적으로 보여 지는 것들이 아니라 기록된 것을 믿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순탄치만은 않은 삶이었다.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 무너진 적도 있었고, 마음이 완악해진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괴로움에 회개를 했지만 자꾸만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내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생각의 중심에 조금씩 드는 생각은 ‘내가 이렇게 엇나가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실까?’였다. 혹시 내가 너무 괘씸하게 여겨지심으로 나를 모른다 하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그것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낙망하는 마음을 주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아니라 그 반대인 악의 세력이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계략이라는 사실이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위로를 받으리니 (이사야66:13) 두 어린아이의 엄마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잉잉거리면서 “엄마, 안아 주세요.”하며 달려와 품에 안긴다. 토닥토닥 해주면서 울지 말라고 위로하면 이내 기분이 좋아져 다시 놀이에 집중을 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한나는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얻고 그 이름으로 인하여 승리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정말 좋은 친구와 며칠 혹은 몇 시간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데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놀랍고도 신나지 않는가?! 여호와 이레 채우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 참된 평안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위로함을 받자. 우리의 영혼이 방황하게 되는 이유인 의심을 내려놓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옛사람 된 모습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책의 표지에 나온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만 보면 언뜻 가톨릭 서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 미사포를 쓴 것 같은 모습 때문인지. 내용은 참 담백하다. 화려한 맛의 쿠키가 아닌 담백한 크래커 같은 느낌이랄까? 눈으로 주르르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내 안의 것을 내려놓다보면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듯 평안함이 들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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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
언제 부턴가 나의 주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것이 '믿음'이라고 해야 할 지, 내가 힘들고 어려워 할 때 나에게 힘을 주고, 힘이되어주시는 하나님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때는 찬양소리에도 눈물을 흘리곤 한다. 퇴근길 CD에서 들려지는 찬양 노래에 길가에 차를 대고 펑펑 울어 버린적도 있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우연을 가장하여 들려주는 이노래 한곡을 통해서도 주님의 나의 지친 마음을 어루 만져주시고 보담아 주신다. 정말 언제나 참위로주시는 하나님...
이책이 내눈에 띄었던것은 '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과 기도하고 있는 표지의 그림때문이었다. 나도 저런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수 있을까? 이책은 총 1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장마다 하나의 소주제를 달아 놓아서 그내용만으로 묵상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70의 넘은 나이에 적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않을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충만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책 마지막에 있는 한나휘톨스미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서.. 편안하고 넉넉한 그의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은 후반전이 저렇게 편안하게 보이는것일까? 나의 인생후반전도 저렇게 편안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주님을 찬양하면서 살아갈수 있을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는 그녀의 신앙은 나의 마음에 간직했으면 좋겠다. 늘 나에게 힘이되신 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목: 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 저자: 하나 휘톨 스미스 출판사: 하늘산책 출판일: 2009년 190월 28일 초판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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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길이 우주공간의 구석구석까지 닿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한나 휘톨 스미스는 ‘19세기의 잔느 귀용’ 이라 불릴 만큼 특별한 신앙인 이었다. 절대적인 위로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이 책 전반에 이어진다. 삶의 위로가 한계가 있음을 알기에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위로를 청하고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모두 1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원한 위로와 평안의 하나님을 만난다. 이 책은 저자가 70세인 황혼 무렵에 집필되었다고 한다. 한나 휘톨 스미스가 소개하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본다. 제1장 이 책을 쓴 이유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 험난하고 분요한 이 세상을 그나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격을 불문하고 하나님께서는 의뢰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시는 법이 없다. 기도의 모습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오만함이라거나 자기주장이 아닌, 창조주 앞에 선 기도하는 사람의 겸손함을 목격하듯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뢰함에는 언제나 위로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함, 그리고 위로하심,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곧바로 주님께 아뢰지 못하고 사람을 더 의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모르는 내 안의 깊은 것, 이를 통찰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에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얼굴을 돌려 하나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치유하신다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위로’가 아닐까.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 3~4] 하나님께서 받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위기의 순간에 직면하면 바로 입술로 부르는 언어가 ‘하나님’ 또는 ‘주여’ 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찾는 하나님께 대한 여러 가지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그대로 이면서, 결코 소리를 발하여 주님을 찾은 적도, 주님을 의뢰하지 않고서 주님이 내 기도를 외면하신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녀의 부르짖음을 그냥 지나쳐가실 분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어둡고 가난한 곳도 마다하지 않고 자녀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입으로 시인하고 그 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실 일에 대한 기대와 소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나의 참 위로가 되신 하나님> 이 책은 저자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앙하고 열정으로 섬겼는지 그리고 저자의 특별한 신앙이라는 말을 확인시키는 흔적들이 발견된다. 책에 표현된 데로 저자는 성경 말씀을 기록하여 평생에 동행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었다. 낙심의 또 다른 고통스러운 특징은 전염성이다. 낙심하는 것만큼 쉽게 전염되는 것도 없다. [ p. 245 ] 낙심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불신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하니 낙심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졌다면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불순물이 형성되었다는 의미가 분명하다. 불신, 좌절, 낙심, 의심, 불평 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은 좋은 습관들이기에 있다. 이 책에 기대하는 바가 큰 것은 중간 중간 소개되는 성경구절이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전반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여러 측면이 소개된다. 말씀이 토대가 되고, 삶이 터전이 되어, 드넓은 영적 광야에서 때론 지치고 낙심된 일들로 번민이 커져서 시달릴 때 많지만, 그래도 주님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될 이야기들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라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섭리가 먼저 작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수많은 고비마다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나의 마음이 감사와 불만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감사 vs 불만 중 나는 어느 쪽을 선택했는가....... 생활의 열매를 ‘감사’로 하나님께 드리길 원한다. 갈 바를 잃고 방황하는 양들에 대한 음성,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신앙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한나 휘톨 스미스를 통한 메시지로 또 한 번 자신의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 사랑, 위로, 죄사함, 자유, 목자 되심 등등 위대하신 그 분의 능력을 다시 깨닫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나의 참 위로되신 주님을 고백하며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귀한 체험들이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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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의 참 위로자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곳에서 위로를 얻으려 한다. 다른 사람, 다른 물건, 다른 장소.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부터 위로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다른 것이 주는 위로는 참 위로가 아니다. 혹 그것들이 위로를 주더로다 그것은 가짜인 까닭에 위로를 받는 것처럼 느낀다. 그것도 잠시 잠깐 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위로를 주시고, 참 평안을 주신다. 한나 휘톨 스미스는 19세기의 잔느 귀용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 잔느 귀용은 꽤 알려져 있지만 한나 휘톨 스미스는 별로 알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나는 평생 두 권의 책밖에 쓰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비밀'이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책의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훌륭한 사람은 그 업적만으로도 유명해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알려지는데 책과 같이 눈에 띄는 성과물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없기에 그녀의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에 이해가 간다. 어쨌든 그녀는 비록 두 권의 책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그 책들을 통해서 상당히 깊은 여운을 준다. - 그 내용의 신학적 당위성은 차치하고 봤을 때 한나는 '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이라는 책을 통해 신자의 마음 상태를 지적한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마음의 자세를 질타한다. 하나님이 계신데 왜 다른 것으로부터 위로를 찾는지, 하나님이 계심에도 왜 불안해하고, 불만스러워 하는지 지적한다. 신자의 잘못된 행동과 상태를 거침없이 질타하고, 바른 자세를 갖도록 독려한다. 그녀가 주는 질책, 도전과 위안은 신자의 눈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기에 충분하다. 앞에서 인간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였다. 왜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위안을 찾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없다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교만이다. 우리의 풍요는 오직 하나님만으로 가능하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쉼터이다. 오직 하나남만이 우리의 불만과 불안을 잠재우실 수 있다. 하나님께 기대는 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다. 결코 무기력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적극적인 표현이다. 오히려 자랑이고, 참된 행동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원이 하나님께 있기에 우리는 그분으로부터만 모든 것을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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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휘톨 스미스의 고전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 퀘이커 가정에서 태어났고, 자라면서 종교에 열심을 갖던 중에 플리머스 형제단의 영향으로 회심을 경험합니다. 감리교 부흥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그녀는 신앙을 정립합니다. 그리고 그는 사역자로 서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영향이 케직 사경회에도 미쳤습니다. 19세기의 잔느 귀용이라 불리는 한나 휘톨 스미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실제적인 가르침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타 출판사에서 발행한 저자의 <그리스도인이 체험하는 삶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참 은혜로웠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지 2주 남짓, 이제 <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입니다. 평생 2권의 책을 저술했다는데 그 두 권을 2주 사이로 모두 읽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여성이라서 더 안나 휘톨 스미스에게 끌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건 대단한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배경이 그렇고 신앙의 성숙과 영향을 받은 분들이 그렇고 더 나아가 영향을 끼친 일들이 그러합니다. 저도 이렇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역들 가운데서 지금보다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역의 방향이 깊어졌으면 좋겠고 선한 영향력을 발했으면 합니다.
책은 총 17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나의 위로되신 하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떤 상활속에서도 절대적인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제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장은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고, 2장은 ‘그의 이름’에 대해, 3장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 4장은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 5장은 아버지, 6장은 여호와, 7장은 선하신 하나님, 8장은 주님은 나의 쉴 터, 9장은 풍요와 결핍, 10장은 자기 점검, 11장은 견고함, 12장은 방황하는 자를 위한 말씀, 13장은 낙심, 14장은 믿음의 외침, 15장은 감사 vs 불만, 16장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가기, 17장은 ‘충분하신 하나님’입니다.
책의 주제들을 살펴보면 한나 스미스는 삼위이신 하나님과 그분을 향한 성도들의 믿음과 신앙이 어떠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체험하는 삶의 비밀>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체험하는 새로운 삶, 그리스도인이 겪는 신앙의 난제들, 그리스도인이 맺는 삶의 열매들을 말하면서, 삶, 연약함, 맡김, 비결, 헌신, 믿음, 의지, 환경, 성장, 봉사, 인도, 유혹, 실패, 의심, 닮음, 내어드림, 연합, 승리, 내적 능력, 시련 극복, 이분법, 임재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신앙의 보편적인 문제와 삶을 살며 부딪치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것, 그리고 그녀의 설명이 논리적이면서도 실제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도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 할 수 없다”는 그녀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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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잔느 귀용이라 불렷던 한나 휘톨의 참기도의 제목 '나는 하나님께 행복한 기독교인이 되는 비밀을 알려달라고 기도했다" "어떤 상황도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수 없다. 환경을 만드신 하나님은 분명히 환경을 통제하실수 있으시며,황무지에 조차 그분을 신뢰하는 이들을 위해 식탁을 마련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정말 한나 휘톨 스미스 처럼 말을 하고 싶답니다. " 나느 내 작은 인생에서 행복했고 만족했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것이며 우리가 찾는 모든 것 그 이상이 그분안에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그분만으로 나는 충분합니다" 나의 삶에 이런 기도를 하고 싶어요. 한나 휘톨 스미스는 이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와 풍성한 은혜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녀의 삶은 정말 힘든 삶이 었다고 합니다. 첫딸 엘리노어를 5살때 기관지염으로 하나님게 돌려보내고 . 남편의 사역과 실패와 사고로 아주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주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일반 사람이나 평범하게 주님을 믿은 사람들이라면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만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믿지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갈것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많았을것이다. 하지만 한나 휘톨 스미스는 그 힘든 역경속에서도 자신으 고통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진실한 약속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참다운 평안을 얻었답니다. 내가 정말 하나휘톨처럼 상황이 된다면 모든것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안에서 값진 은혜를 알아갈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생각을 하신분이란겁니다 저도 교회를 다니고 주님을 믿고 살아가지만 세상에서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아!그래 사람들 다 교회 다니던데 교회다니는 사람들보면 나쁜 행동을 더 많이 하던데 하는소리를 들으면 정말 속상해요.
세상에 나가면 교회를 다니고 주님을 믿지만 이상한 곳도 아주 많다. 창밖을 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게 교회 십자가 랍니다. 카페에 가서 보면 가끔 이런 글이 올라옵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 교회 있다면 소개를 해주세요 함 교회를 가고 싶어요. 넘 속상해요
한나 휘톨 스미스는 지금도 고민하며 살고 있는 주변의 기독교인들에게 작지만 진실하고 꾸밈없는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에 이책에 펜을 들었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독교는 언제나 위안으로 가득차 있고 , 신약성경을 이해한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동의할것이란 생각에 하나님으 진실을 알리고자 펜을 들었답고 합니다. 자신이 힘들다고 ,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다른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말라고 하심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의 글이랍니다 . 나의 삶에 후회 안하고 살아갈수 있었던 날들이 얼마나 있엇던가? 다른 사람은 상관없이 나혼자 편하고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게 인간의 삶이란 생각을 합니다.
"내가 주를 처음 만났을때 받았던 축복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영혼을 소생기키는 예수님과 그의 말씀은 어디에 있을까? 그때 누렸던 평온의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그 기억들은 여전히 달콤하지만 지금 내게는 세상이 채워 줄수 없는 아픈 공허감만이 남아있네 이렇게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살아야만 하는가?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도 위대하시나 우리의 영혼은 미약하고 당신에게는 싸늘하기만 하는 데도 헛되이 엄숙한 노래의 음을 맞추며 헛되이 목소리를 높이네 호산나, 입숙의 고통 우리의 경건의 시간도 사그라드네
말로하는 찬양보다 진심이 담겨있는 찬양을 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슬픔의 찬송보다 향상 기쁨의 찬송을 하라고 합니다.
앞으로 나의 삶이 작은 인생에서 행복했고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인생을 살아가지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 다시한번 마음에 담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도든 것이며 내가 찾은 모든것 이고 향상 내가 찾은 모든것이 그분 안에 들어있다고 나의 삶에 하나님을 빼고 살아간다면 ^^ 아주 힘들겠지요" 마음을 울리는 책 정말 소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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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이제 5년째로 접어든 나에게 올 한해는 정말로 치열한 영적 전쟁으로 몸과 영혼이 많이 지쳐 있었다. 그때 이 책 '나의 참 위로 되신 하나님'이란 책의 제목처럼 정말로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싶었다.
겨우 신앙의 걸음마(?)정도를 하면서 신앙의 열매를 나름대로 맺어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산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건 정말로 율법이요, 나의 의지로 주변을 그렇게 정리하며 율법처럼 산다고 스스로 자부했던것 같다. 하지만, 올해 직장에서 어려운 업무를 맡으면서 어려운 일들이 처해질때마다 내가 얼마나 두려움과 근심걱정이 많은 연약한 존재인지 철저히 깨달았다.
또한 그 두려움이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는지, 내안의 깊게 자리하고 있는 나의 자아중에 두려움은 너무나 크고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정말로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아니,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위로하셨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 책, 정말로 감사함을 느낀다. 두려워하는것은 불신앙이요, 연약한 믿음 때문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듣고 깨달았었는데, 그래도 떠나가지 않는 나에게는 정말 지독한 두려움 이었다. 그런 두려움을 물리치는데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참 감사함을 느낀다.
책을 읽는동안 하나님의 위로함이 느껴진다. 하나님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심이 느껴진다.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신다. "내게 맡겨라, 그럼 내가 모든것을 해결해 주마, 네가 하려고 발버둥 치지 마라. 너만 다치고 힘들어 진다. 그러니, 지금 부터라도 항복 하고 내게 맡기라."고 하나님께 계속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 처럼, 아니 그보다 더 큰 사랑으로 말씀을 하시는 느낌을 계속 받아서 참으로 행복했다.
그 두려움 외에도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많은 책이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우리의 모든 부족함과 필요를 채울 수 있다. 그 분을 진정 믿기만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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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표지가 참 애잔하다. 19세기의 잔느귀용이라 불렸다는 이 책의 저자 한나 휘톨 스미스도 잔느귀용처럼 가정이 그리 이분들의 글은 닮은 꼴이 있다. 깊은 묵상의 결과로 나온 글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삶에서는 여전히 곤궁하고 마음에 평안이 없 해 본 '하나님이 왜 나는 위로를 해 주시지 않는 것일까?' 의심이 든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며 우리가 찾는 것 그 이상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나를 위로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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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내와 2010연 기도제목을 생각하면서 어떤 말씀이 내게 필요한 가 의논했다. 이때 아내는 불쑥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b)" 말씀을 추천했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아내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아내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당신은 은근히 세상 잔재미를 즐겨요.’ 순간 나는 ‘아니 이 사람이~’하다가 말이 막혔다. 정확히 말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끼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서 나에게 경고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얼마동안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접했다. 저자는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처럼 내게 말한다. ‘하나님의 참 위로를 얻고 싶거든 세상과 단절하라.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라.’ 나의 삶이 온전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가능함을 깊이 새긴다.
저자의 삶이 인간적으로 볼 때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어린 자녀를 먼저 주님 곁으로 보내는 아픔,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고 싶었지만 더디기만 하는 자신으로 인해 가슴 아팠던 사연들, 남편의 여러 가지 사업 실패와 비참한(?) 죽음 등 한 여인이 겪어야 할 것들을 다 겪었으면서도 담담히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수 없이 연단 받은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어머니였음을 쉽게 느끼게 해 준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어떤 철학자가 기독교를 ‘불편한 종교’ 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에 젖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이런 얘기를 한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어떻게 우리가 끊임없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던 첫 번째의 기쁨과 감격, 그리고 그 뜨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를 자신의 경험과 진실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섬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는 총 17장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위로의 하나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위로를 받으리니”(이사야 66:13)
크리스챤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의 ‘특성’, ‘성품’ 등 그를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무엇을 통해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을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가장 완벽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구석구석 이것을 강조한다. 신앙이란 신뢰 곧 믿음 이다. 그것은 신앙의 첫 출발이자 끝이다. 하나님은 “믿어라, 그러면 느껴질 것이다.” 말씀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느끼고 나면 믿을께요.’ 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뒤집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이제 우리 마음을 부싯돌처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안과 밖에서 끊임없는 문제들이 우리를 흔들기 때문이다. 이때도 우리는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시편 기자처럼 고백하라.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때 그가 주시는 평안과 위로를 누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동시에 어머니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온전히 신뢰하고 맡길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다섯 가지(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치드케누, 여호와 삼마)로 표현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선하시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계속해서 만나기 위해서는 나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온전히 과거의 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버리도록 연단하시고 흔드시는 것이다. 더 좋은 것, 온전한 것을 주기 위해 나의 것을 버려야 한다. 그는 반석되신 예수님위에 우리의 인생을 둘 것을 강조한다.
왜 우리는 만족을 모르면 끊임없이 방황하는가? 저자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들려준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편62:5~7) 우리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충분하다. 그 이외의 것은 그에 따라 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장 잘 아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살 때 결핍이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할 때 우리는 변화되어가고 이 시대 영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8:18)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것이 더 나아가기 위한 갈등인가 아니면 뒤로 돌아가기위한 갈등인가 하는 것은 오직 믿음을 소유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일 뿐이다. 거룩한 순례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유용하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벗어 버리고 나의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당시에는 이것이 어리석어 보여도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이 시대 참 위로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한나 위톨 스미스의 나의 참 위로되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추천한다. 오늘도 하나님의 참 위로를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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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까지도 자신을 배신하는 온갖 더러운 꼴을 다 보고 살면서도 신앙심을 버리지 않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