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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재 한국에서 '급진정통주의'라고 통칭되는 'Radical Orthodoxy'에 관련된 책이다. 저자인 제임스 K.A. 스미스는 현재 칼빈대학의 철학과 교수이다.
저자는 현대 교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대 개신교 복음주의 교회들이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두려움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적이 아닌 동지적 관계로 이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는 세 명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데리다, 리오타르, 푸코)을 소개한다. 데리다, 리오타르, 푸코 모두 자신만의 이론과 시각으로 모더니즘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모더니즘의 대안 이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소개하고, 교회 또한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념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자신이 인간 번영에 대한 성서적 시각과 어긋나는 근대성과 어떻게 공모했는지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p.17
그렇다면 모더니즘은 무엇인가? 모더니즘이란 과학적 지식으로 대표되는 인간지성의 보편성을 근거로 하는 사유체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더니즘은 모든 인간에게는 지성(bon sense)이라는 것이 있고, 이 지성을 통해 인간은 올바른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과학이라는 보편학문으로 성취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은 이러한 모더니즘의 이성에 대한 믿음은 환상이며, 말 그대로 특정한 종류의 '믿음'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데리다는 진리의 문제는 '해석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고, 리오타르는 보편적이며 중립적이라고 보였던 '과학적 사유'는 그 사유를 가능케 하는 '서사'라는 믿음구조를 가진 특수한 체계라는 것을 밝혔으며, 푸코는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지식이 권력과 유착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저자는 이러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모더니즘의 실체를 폭로한다. 즉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며,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과학이 모든 지식의 잣대가 되어 참/거짓을 판단하는 것이 옳으며, 주관적인 주장은 객관적인 지식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던 모더니즘의 명제들의 절대성이 상실된 것이다.
모더니즘의 주장들이 무너진 자리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들이 다시 세워졌다. 절대적 진리란 없으며, 모든 것은 자기 진영의 논리로 무장한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런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교회에 유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진리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던 모더니즘의 주장이 기각됨에 따라 더 이상 기독교 진리를 변증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를 과학의 언어로, 세속의 언어로 번역하지 않아도 둘째, 이러한 정당성을 보증받은 기독교는 자신의 주장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주장 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는 경찰(과학적 이성)의 위협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기초로 교회와 포스트모더니즘를 공생관계로 설정하고, 이러한 관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 새로운 신학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급진정통주의이다. 급진정통주의를 한 마디로 정의 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신학과 교회에 '철저하게' 적용하자는 주장이다. 그래서 '급진'이라고 번역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급진'이란 단어는 그 용례상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어다. 이렇게 보면 급진정통주의가 아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진보적인 생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거로의 회귀를 단행한다.
"급진 정통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가 제안한 지식에 대한 설명을 되살려내려 한다." p.181
이렇게 보자면 급진정통주의는 단어에서 풍기는 것만큼 진보적인 신학운동이 아니다. 또한 그리 개신교적이지도 않다. 왜냐하면 저자는 성육신의 신학적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계시 그 자체 못지 않게 계시가 실현된 역사과 공간을 긍정함에 따라 가톨릭을 포함한 거대 그리스도교 전통을 대부분 인정하기 때문이다.(성례전, icon)
이제 마무리 해 보자. 복잡한 논의를 간단히 설명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 글이 당신을 발심케 하여 직접 읽어 보는 것이다. 이 서평은 단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에만 머무른다.
현재 한국 개신교계에서 급진정통주의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상이 한국 개신교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는 기대가 된다.
비록 이 사상은 내포주의(inclusivism)의 한계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 그리스도교의 하나됨을 위해서는 유용한 주장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복음주의 안에서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이들에게는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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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어찌보면 참 안어울리는 조합이다.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절대신과 절대진리를 믿는 기독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무엇을 알아야하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쉽게 접근하는 책이다. 물론 쉽다고해서 만만한 책은 아니다. 노란색 표지와 캐리커처로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사람의 무장을 해제하게 하지만 만만한 내용의 책은 아니다. 어려운 내용을 자신만이 아는 언어로 풀어놓는 책이 아니라 전혀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풀어서 적은 책이다. 나름 이시대의 교회상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라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