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의 많은 과학자들은 부족한 연구 자금을 할당받기 위한 필사적인 전투의 일환으로 그들의 결과를 일방적으로 언론에 흘리면서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보조금이나 텔레비전 출연을 통해 잇속을 챙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나쁜 영향만 끼치게 될 것이다. 대중은 아인슈타인에게 무조건적으로 경의를 표하며 화답했지만, 정작 거대 과학은 세계에 핵무기를 선사했다. 성직자로서의 과학자라고 하는 뒤틀린 이미지로 인해 과학은 대중적 존경에서 멀어짐은 물론이고 그 존경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은 종교가 아니며 나아가 종교를 흉내 내서도 안 된다. P.79 - 피터 콜린스(2000). 임상진 역(2003). 아인슈타인과 거대 과학의 탄생. 이제이북스. ---------------------------- 아인슈타인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핵폭탄 제조 계획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은 썩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이는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과 어떤 면에서 배치되는 일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의 이런 행동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한 이가 위대한 극작가인 브레히트다. "아인슈타인이 주장하는 바는 다른 열강들, 특히 러시아에게 핵폭탄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주창하는 '세계정부'는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자가 있는 스탠더드 오일사를 본떠서 착상된 것 같다. 서툰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영원한 중학생의 몸 속에 든 이 뛰어난 두뇌에게는 일반화와 정치에 집착하는 약점이 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노동 신문=""> 1945년 10월 28일 불행하게도 아인슈타인의 서한은 원자폭탄의 서곡이 되었다. 한 과학자의 순진한 정치적 견해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건 순전히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에게 둘러 씌어진 엄청난 아우라때문일 것이다. 피터 콜린스는 이처럼 아인슈타인을 정점으로 과학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사회가 욕구하는 신화화의 형태로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에 어떻게 일반상대성 이론이 받아들여졌는가, 특히 에딩턴의 개기일식 관측과 발표 과정을 차근차근 되짚고 있다. 정치적인 해석은 삼가고 있지만, 어쨌든 피터 콜린스의 견해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이미지 메이킹이 과학과 사회와의 관계에는 부정적임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80쪽이 채 안 되는 이 얇은 책은 특수상대성 이론 100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각종 이벤트의 허와 실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도 든다. 그러나 저자는 별다른 대안을 진전시키고 있지는 않다. 이미지화는 필연적으로 종교화의 위험을 담고 있다. 갈수록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는 과학과 과학 지식이 이 사회와 어떻게 소통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는지, 이것이야말로 '물리의 해'에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닌지 모르겠다. 노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