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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55세가 돼서야 노나라에서 대사구라는 벼슬자리에 올랐다. 재상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사구가 된지 7일만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명망이 높은 소정묘를 처형했다. 공자의 이같은 가혹한 조치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이 일을 두고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을 힐난했다.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선생께서 정사를 맡으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를 가장 먼저 죽였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까?" "천하에는 도적보다 더 위험한 다섯가지 사람이 있다. 첫째, 아는 것이 많으나 마음이 흉악한 자. 둘재, 행실이 좋지않으면서 고집만 센자. 셋째, 분명히 거짓된 말을 하면서 변론을 잘 하는 자. 넷째, 오로지 추한 것만 기억하고 널리 기록하는 자. 다섯째, 그릇된 일만 따르면서 이를 은덕으로 포장하는 자. "사람으로서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만 해당돼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인데 소정묘는 이 다섯 가지 면모를 다 가지고 있었다. 거처하는 곳에서는 무리를 모아 당파를 이루고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 앞에선 잘난체 했다. 또 패거리의 힘을 믿고 옳은 일인데도 사사건건 반대하고 제멋대로 처신했다. 이런 자는 사람중에서도 간웅이니 제거해야 한다. 소인배들이 당파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걱정스럽다." 공자의 대답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을 두고 하는 말처러 들린다. 우리 정치인들 중 공자가 지적한 다섯 부류의 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같다. 국민들이 이같이 인식하는 것은 패거리 힘을 믿고 옳은 일인데도 사사건건 반대하는 소인배들로 국민들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하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노인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혈안이 돼 기초연금법안 통과를 무산시킨 여야 국회의원들의 '불효막심 정치'가 소인배 정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서로 '네탓이요'를 외치며 지방선거에서 호재로 써먹으려 하는 이런 '정치 소인배'들을 공자가 봤다면 어떻게 처단했을까. 소정묘꼴이 났을 지도 모른다. 돌아앉아 제몫만 챙기고 진실 앞에 눈먼 정치건달들 언제 안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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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신문읽기의 혁명 2’는 정파적 신문읽기를 벗어나 독자가 자신의 삶이기도 한 경제생활과 정치를 연관 지어 신문을 읽어가기를 제안한다. 창조적 주권자로 신문읽기를 제안한다(7쪽). 기존의 신문 편집 체제 속에서 편집자가 편집한 표제와 段에 따라 읽지 말라는 것이다.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신문읽기의 혁명 1, 280쪽). 신문읽기의 혁명 시리즈 1,2의 주제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독자가 스스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측면에선 동일한 신문읽기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신문읽기의 혁명 2’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들어가면서 주체적 콘텐츠 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대한 삼성그룹의 광고 전면중단은 마치 19세기의 유럽 상공인들이 민중언론에 광고를 주지 않음으로써 문 닫게 한 역사적 사례를 실감나게 해 준다(54쪽).
< 신문광고의 정치경제학, 58쪽 > 경제면의 광고지면까지 정치경제와 연결해 읽을 때, 경제면과 정치면을 이어서 읽을 때, 경제면을 넘어 경제를 읽을 때, 우리는 정파적 신문읽기를 벗어나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89쪽). 2009년 7월 컨닝은 했지만 부정행위가 아니라고 회자된 ‘미디어 악법’을 통해 조중동을 포함한 신문은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늦어도 2009년 1월까진 방송채널사업자를 선정 하겠다고 했던 정부는 2010년 6월 지방선거전까진 불가능해 보인다. 자칫 방송채널 선정에서 탈락한 메이저 신문이 나올 경우 정부를 향해 어떤 콘텐츠를 쏟아낼지 지방선거가 지나 연말쯤 어떤 논조로 콘텐츠를 생산할 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아니면 이미 YTN, KBS, MBC가 소위 낙하산 인사로 장악된 가운데 不可近 不可遠 관계가 될 방송채널을 추가로 허가할지도 궁금하다. 신문과 방송 겸영에 대한 보도와 종부세 보도에서 독자가 잊지 말아야 할 신문 읽기의 교훈은 단연 이해관계다. 어느 신문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누구의 이익을 전체 국익으로 호도하는가를 탐색할 때, 신문을 읽는 눈을 갖출 수 있다(228쪽). 이 책에서 신문 깊이 읽기의 세 지층으로 ‘세계화-민중-이해관계’를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독자)이 시대적 과제를 알고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인 세 축을 염두에 두고 신문지면을 입체적으로 읽어야 우리가 살아가는 정치경제 체제가 선택의 문제라는 진실을 비로소 볼 수 있기 때문이다(270쪽).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개개인의 자기주도 학습은 ‘필수’다. 궁극적으로 블로그를 통한 독자들의 주체적 언론생활은 기존 언론과 정당을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직접정치의 요소를 강화해가는 데 핵심적 토대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언론’과 달리 ‘직접언론’이 꽃필 때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구현하는 ‘직접정치’의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주권혁명이다. 기존의 ‘직업 언론인’과 ‘직업 정치인’들이 외면하는 문제를 발굴해내고 그것을 여론화하며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가는 직접 언론은 인류의 오랜 이상인 ‘민중의 자기통치’가 이뤄지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의 고갱이다(273쪽). (뱀다리) 신문 광고지면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것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부동산 광고, 고급차 광고들이 조중동과 기타 신문에는 자주 보인다(광고주는 정확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자주 등장 것은 주로 책에 관한 광고가 많이 보인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자사 이기주의적 콘텐츠는 없는 걸까. 궁금해진다. 책에 등장한 사례의 대부분이 조중동 위주로 편향되어있어 자칫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