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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읽기의 혁명2 -신문 '읽기의 혁명'은 곧 '혁명 읽기'-
"신문읽기의 혁명2 -신문 '읽기의 혁명'은 곧 '혁명 읽기'-" 내용보기
나의 책읽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혹은 인문관련 서적에서 사회비판적 서적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회를 바르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감이 오고 있을 정도로 더딘 과정이기도 했다.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안내를 받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었는데 이 책도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사회비판적 서적을 읽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던 이유에는
"신문읽기의 혁명2 -신문 '읽기의 혁명'은 곧 '혁명 읽기'-" 내용보기
 

나의 책읽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혹은 인문관련 서적에서 사회비판적 서적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회를 바르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감이 오고 있을 정도로 더딘 과정이기도 했다.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안내를 받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었는데 이 책도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사회비판적 서적을 읽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던 이유에는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진실을 왜곡하고 현상을 주관적으로 잣대 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로인해 신문보기를 즐겨하는 나로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보수신문의 하나를 구독하면서 정기구독이 끝나갈 무렵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간지는 그대로 대신에 주간지는 진보적인 매체로 따로 구독하게 되면서 나의 신문읽기가 그동안 얼마나 편향되어 있던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늘어갔고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모르고 있어 죄가 되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알아가면서 부딪히는 좌절감이 커 갈수록 앎에 대한 목마름은 더해가듯이 이제는 더욱 잘 알아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희망도 싹 틔울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책읽기는 그 결실과도 같았다.


이 책은 1권에 이어 신문읽기의 혁명이라는 고갱이를 담고 있다. 신문읽기는 이해가 잘 될 터이지만 혁명이라니? 민주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민주시민으로써 신문읽기의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여정은 과히 혁명의 과정이라 불리 울 만큼 어렵고, 어렵지만 그 길을 통해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민혁명으로 되찾은 민주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는 세상을 바르고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창 그 언론의 주권을 되찾는 신문읽기의 혁명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 이유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보수언론에서 주창하듯 잃어버린 10년은 과연 옳은 표현일까? 오히려 노무현 정권은 보수언론의 편집논리에 발맞추어 나아갔음을 관련 정책으로 제시하고 진보정권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통해 그 논리마저 진실이 아님을 지적한다. 노무현 정권은 보수언론과의 감정적 대치를 보이기는 했지만 실상은 그들의 논리와 같았음을 지적하면서 집권 후반기 국론 분열은 오히려 감정적 대치의 결과였음을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지지자들 그리고 개혁적 성향의 네티즌의 정파적 신문읽기에 그 원인이 있었음을 꼬집는다. 정파적 신문읽기는 이후 이명박 정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오고 있고 정책을 보지 않고 정치적 성향 혹은 정치적 인물에 대한 평가로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을 불러오고 말았다. 더 큰 분열의 조짐은 그 결과물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정파적 신문읽기의 ‘함정’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신문읽기의 혁명 그 첫 번째 방법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구체적인 의문이 생긴다. 책은 차례대로 그 과정을 짚어주고 있기 때문에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목요연하다. ‘경제면 넘어 경제 읽기’에서는 정치사회면 기사와 경제기사를 분리시키는 편집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 삶을 틀 지우는 경제를 정치와 별개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신문읽기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보수언론의 편집논리가 숨겨져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문의 탄생과정에서 알 수 있다시피 성공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광고할 매체를 찾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신문은 자본가들의 논리를 반영하는 통로가 되어 왕과 귀족을 압박할 수 있었다. 물론 노동자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본가들을 압박하고자 하였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그들의 민중언론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이 행한 조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민중언론을 약화하고자 하는 방안은 신문구독료 인하와 신문광고를 통한 통제였다. 몇 년 전부터 대기업 삼성은 진보신문에 광고를 싣지 않고 있고 얼마 전 주간지 한겨레에서는 진보언론의 미래를 고민하며 진보언론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구독료 인상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라고 지적한 바 있음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이 중산층을 겨냥해 기득권 유지를 위한 기사들을 쓰고 있는 이유는 신문사 자체도 대기업의 하나이고 그들의 고객 또한 중산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파적 신문을 넘어선 품격 있는 신문읽기도 필요하다. 신문의 품격을 판단하는 잣대 진실, 공정, 사랑을 알면 그 해답이 보일 것이다. 진실을 왜곡한 신문은 독이든 사과를 건네는 마녀와 같다. 우리는 매일 아침 건네 오는 신문이라는 사과에 독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마녀’는 일반 독자들이 신문지면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깊숙이 똬리 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특권이나 기득권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때로는 ‘거친 색깔공세’로, 때로는 ‘먹음직스러운 사과’로 민심을 호도하고 있기에 더 그렇다.p.119” 진실을 왜곡하는 신문은 결국 공정을 해친다. 공정을 잃은 신문내용을 보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보수언론의 논리로 변질되어 갈 수 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편협적인 사랑이 아닌 정파를 뛰어넘은 인간애 동시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유의하고 지켜볼 때 신문의 품격은 되살아 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제는 신문을 더욱 깊이 있게 읽을 줄 알 수 있게 해주는 단계로 돌입한다. 신문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파헤치고 우리 모두에게 유의미한 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에서는 세계화, 민중, 이해관계라는 핵심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세계화라는 논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혹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인데 이에 관한 책으로 88만원 세대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있으니 이를 통해 보충해 두어도 좋다. 결국 그들의 자유란 특정계급의 자유일 뿐이라는 설명에 눈이 닿는다. 세계적으로 퇴조하고 있는 이 논리가 대다수 국민의 요구를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보수언론의 논리가 숨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중에 대한 보수언론의 시각은 더욱 파괴적이다. 민중배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논리는 세계 노동자들의 요구를 싣지 않는 것으로도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파업과정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것을 통해 확실시 된다. 이를 읽는 대다수 민중의 시각은 노동자들에게 차갑기만 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민중은 다름 아닌 신문 독자 자신이다. 스스로 민중이면서도 민중이란 말을 낯설게 여기는 현실은 신문의 여론 지배력에서 비롯한다. p.209"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일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이 민중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짚어둔다.


위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혹자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신문을 보아야 하는가? 이런 논리라고 한다면 곤란하다. 왜곡된 기사를 근절하고 바른 사회의 지평을 열어갈 참 언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자 신문의 갈 길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지배세력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의 혁명으로 많은 이들의 의견이 개진되고 보수언론의 논리가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어려움이 남아 있다.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통로로써의 언론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기득권자들의 논리가 담긴 신문을 대다수 민중의 요구로 채우는 신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노력뿐이라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 공감을 만들어줄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신의 경제생활을 단순히 ‘취업’이나 ‘호구지책’으로 여길 게 아니라 정치생활과 연결 짓는 다리로 신문을 읽으며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 자기를 창조적으로 형성해 갈 때, 그때 신문 ‘읽기의 혁명’은 곧 ‘혁명 읽기’다. 그때 신문읽기는 예술이다. p.280"

k*********0 2009.12.08.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정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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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55세가 돼서야 노나라에서 대사구라는 벼슬자리에 올랐다. 재상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사구가 된지 7일만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명망이 높은 소정묘를 처형했다. 공자의 이같은 가혹한 조치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이 일을 두고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을 힐난했다.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선생께서 정사를 맡으신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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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55세가 돼서야 노나라에서 대사구라는 벼슬자리에 올랐다.

재상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사구가 된지 7일만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명망이 높은 소정묘를 처형했다.

공자의 이같은 가혹한 조치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이 일을 두고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을 힐난했다.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선생께서 정사를 맡으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를 가장 먼저 죽였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까?"

 

"천하에는 도적보다 더 위험한 다섯가지 사람이 있다.

첫째, 아는 것이 많으나 마음이 흉악한 자.

둘재, 행실이 좋지않으면서 고집만 센자.

셋째, 분명히 거짓된 말을 하면서 변론을 잘 하는 자.

넷째, 오로지 추한 것만 기억하고 널리 기록하는 자.

다섯째, 그릇된 일만 따르면서 이를 은덕으로 포장하는 자.

 

"사람으로서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만 해당돼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인데

소정묘는 이 다섯 가지 면모를 다 가지고 있었다.

거처하는 곳에서는 무리를 모아 당파를 이루고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 앞에선 잘난체 했다.

또 패거리의 힘을 믿고 옳은 일인데도 사사건건 반대하고 제멋대로 처신했다.

이런 자는 사람중에서도 간웅이니 제거해야 한다.

소인배들이 당파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걱정스럽다."

 

공자의 대답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인을 두고 하는 말처러 들린다.

우리 정치인들 중 공자가 지적한 다섯 부류의 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같다.

국민들이 이같이 인식하는 것은 패거리 힘을 믿고 옳은 일인데도

사사건건 반대하는 소인배들로 국민들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시가 급하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노인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혈안이 돼 기초연금법안 통과를 무산시킨 여야 국회의원들의 '불효막심 정치'가

소인배 정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서로 '네탓이요'를 외치며 지방선거에서 호재로 써먹으려 하는

이런 '정치 소인배'들을 공자가 봤다면 어떻게 처단했을까.

소정묘꼴이 났을 지도 모른다.

돌아앉아 제몫만 챙기고 진실 앞에 눈먼 정치건달들 언제 안보나.

 

h*****k 2014.03.22.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신문 읽기 (레벨 1-1.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되어야 한다)
"신문 읽기 (레벨 1-1.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되어야 한다)" 내용보기
이 책 ‘신문읽기의 혁명 2’는 정파적 신문읽기를 벗어나 독자가 자신의 삶이기도 한 경제생활과 정치를 연관 지어 신문을 읽어가기를 제안한다.  창조적 주권자로 신문읽기를 제안한다(7쪽).   기존의 신문 편집 체제 속에서 편집자가 편집한 표제와 段에 따라 읽지 말라는 것이다.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신문읽기의 혁명 1, 280쪽).   신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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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읽기의 혁명 2’ 정파적 신문읽기를 벗어나 독자가 자신의 삶이기도 경제생활과 정치를 연관 지어 신문을 읽어가기를 제안한다.  창조적 주권자로 신문읽기를 제안한다(7).

 

기존의 신문 편집 체제 속에서 편집자가 편집한 표제와 段에 따라 읽지 말라는 것이다.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신문읽기의 혁명 1, 280).

 

신문읽기의 혁명 시리즈 1,2 주제는 동일하다 생각한다.  결국은 독자가 스스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측면에선 동일한 신문읽기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신문읽기의 혁명 2’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땔래야 없는 관계를 들어가면서 주체적 콘텐츠 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대한 삼성그룹의 광고 전면중단은 마치 19세기의 유럽 상공인들이 민중언론에 광고를 주지 않음으로써 닫게 역사적 사례를 실감나게 준다(54).

 

신문광고의 정치경제학, 58

 

경제면의 광고지면까지 정치경제와 연결해 읽을 , 경제면과 정치면을 이어서 읽을 , 경제면을 넘어 경제를 읽을 , 우리는 정파적 신문읽기를 벗어나는 첫걸음을 있다(89).

 

2009 7 컨닝은 했지만 부정행위가 아니라고 회자된 미디어 악법 통해 조중동을 포함한 신문은 방송에 진출할 있는 길을 열었다.  늦어도 2009 1월까진 방송채널사업자를 선정 하겠다고 했던 정부는 2010 6 지방선거전까진 불가능해 보인다.  자칫 방송채널 선정에서 탈락한 메이저 신문이 나올 경우 정부를 향해 어떤 콘텐츠를 쏟아낼지 지방선거가 지나 연말쯤 어떤 논조로 콘텐츠를 생산할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아니면 이미 YTN, KBS, MBC 소위 낙하산 인사로 장악된 가운데 不可近 不可遠 관계가 방송채널을 추가로 허가할지도 궁금하다.

 

신문과 방송 겸영에 대한 보도와 종부세 보도에서 독자가 잊지 말아야 신문 읽기의 교훈은 단연 이해관계다.  어느 신문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누구의 이익을 전체 국익으로 호도하는가를 탐색할 , 신문을 읽는 눈을 갖출 있다(228).

 

책에서 신문 깊이 읽기의 지층으로 세계화-민중-이해관계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독자) 시대적 과제를 알고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축을 염두에 두고 신문지면을 입체적으로 읽어야 우리가 살아가는 정치경제 체제가 선택의 문제라는 진실을 비로소 있기 때문이다(270).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개개인의 자기주도 학습 필수.  궁극적으로 블로그를 통한 독자들의 주체적 언론생활은 기존 언론과 정당을 중심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직접정치의 요소를 강화해가는 핵심적 토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없는 직업언론 달리 직접언론 꽃필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민주공화국의 정신을 구현하는 직접정치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갈 있다.  그것이 바로 주권혁명이다.  기존의 직업 언론인 직업 정치인들이 외면하는 문제를 발굴해내고 그것을 여론화하며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가는 직접 언론은 인류의 오랜 이상인 민중의 자기통치 이뤄지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경제 체제의 고갱이다(273).

 

(뱀다리) 신문 광고지면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것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부동산 광고, 고급차 광고들이 조중동과 기타 신문에는 자주 보인다(광고주는 정확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자주 등장 것은 주로 책에 관한 광고가 많이 보인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자사 이기주의적 콘텐츠는 없는 걸까.  궁금해진다.  책에 등장한 사례의 대부분이 조중동 위주로 편향되어있어 자칫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b******6 2010.03.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