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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비바악티바 개념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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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에 대학원에서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대한 강의들을 듣고 있다. 두 강의 모두 근대 고전적 자유주의를 먼저 언급해야만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읽기 전 준비 작업으로 벌린의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개념을 먼저 짚었고, 이 책과 마찬가지로 책세상에서 나온 비바악티바 개념사(예나 지금이나 책세상 문고본 사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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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에 대학원에서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대한 강의들을 듣고 있다. 두 강의 모두 근대 고전적 자유주의를 먼저 언급해야만 민주주의, 공화주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읽기 전 준비 작업으로 벌린의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개념을 먼저 짚었고, 이 책과 마찬가지로 책세상에서 나온 비바악티바 개념사(예나 지금이나 책세상 문고본 사랑한다!!) 시리즈였던 "공화주의": http://blog.yes24.com/document/10665794  도 읽었다. "자유: 비바악티바 개념사 16"은 도서정가제 시행 바로 전인가 재고 물량 풀렸을 땐가, 도서전 갔을 땐가 사두면 언젠가 읽겠지 싶어 저렴하게 구입해두고는 손을 못대고 있다가, 강의 시간마다 자유주의 문제에 부딪쳐서 드디어 꺼내 읽었다. 왜 이제 읽었나 싶을 만큼 자유주의에 관한 논의들 핵심을 잘 정리한 책이라 책장 넘어가는 줄 모르게 술술 읽었다. 공부를 위해 여러 부분을 길게 옮겨둔다.

 

현대에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간 관계를 설정할 때, 둘을 반대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적 덕성을 조건으로 삼는 공화주의라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맥락으로 이해하면 괜찮겠다고 나름 정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민적 덕성을 담보하지 않고는 지금과 같은 대의 민주주의를 통한 결정 과정에서 포퓰리즘으로 흐를 위험이 있고, 숙의 민주주의 과정에서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나쁜 결정을 내릴 위험이 있다. 지금은 고대 그리스는 아니므로 특정한 자유인들이 아니라, '모든 아동, 청소년'에게 어려서부터 시민적 덕성을 키울 수 있도록 시민교육+시민으로서 참여할 공간과 경험을 마련해야 한다.

"아렌트로부터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교훈은 오히려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화주의적 견해와 자유주의적 견해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스키너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유주의적 자유가 공화주의적 제도 및 그것을 유지하는 시민적 덕성의 뒷받침 아래서 안전하게 향유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즉 공화주의적 자유와 자유주의적 자유는 양자택일의 관계라기보다 전자가 후자의 전제 조건이 되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87쪽.

 

그러나 작년에 참여한 "학생의 시민주체화 방안 연구", 올해 수행 중인 지역학생의회와 경기도청소년교육의회에 관한 연구들을 수행하면서 공부하다보면 '참정권'에 있어서 '나이'는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추석 연휴 때 영드 "퍼레이즈 엔드"에서 당대에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서 인상 깊었다. 여성운동가들이 그렇게 싸워서 '기혼? 30세 이상 여성들은 투표권을 갖는다'는 결과를 얻어낸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나온 여주는 자신도 30세가 되어 이제야 투표권이 있다며 자조한다. "시민의 확장": http://blog.yes24.com/document/9659610 등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현재 나라마다 나이 기준이 천차 만별이라 투표권이나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나이 기준이 꽤나 '자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에서 교육감을 선출하고 있는데, 교육정책의 직접적 관계자인 청소년이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더불어 교육과 관계가 없고 관심이 없는 연령층이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문제가 있다. 

"자유의 이상은 자기 지배권 혹은 자율성을 핵심으로 하며, 역사적으로 자유를 요구한 운동이나 혁명은 대체로 민주주의를 결과하거나 적어도 추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정의상 개인의 자유와 양립 가능한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뿐이다. 자유로운 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정치적 결정이나 권력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면, 그것은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의 의견과 판단이 개입될 때뿐이므로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필수적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민주주의'는 일견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의 역사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여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자유롭도록 태어났다고 가정되는 그 '개인'을 특정한 범위로 한정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는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반민주주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즉 서구 역사에서 '개인'이 일정한 수준의 교양과 재산을 갖춘 백인 남성을 배타적으로 지칭하던 동안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는 민주주의와 무관했으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억압했다." 142-143쪽.

 

책 내용으로 돌아와 저자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짚는다. 둘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주고 받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발달을 위해서는 사유재산과 합리적 이성을 가진 개인이 필요하다. 당대 사상가들이 자유주의 논의를 발전시킨 이유는 자본주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는 그 개인이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부딪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혼란을 불러오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유 재산을 보호해주려고 경제적 자유를 부여하다 보면 빈부격차가 커지고, 경제적 생존권 등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들이 정치적 참여를 통해 제도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자유에 관한 스미스의 사유는 이러한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적 맥락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자유에 대한 관심의 초점을 경제적인 것으로 옮겨놓았고, 이후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사적 자율성' 혹은 '경제적 자유'가 ('공적 자율성' 혹은 '정치적 자유'와 대비되면서) 자유주의의 한 핵심으로 자리 잡는 계기를 제공했다.

스미스 역시 로크의 '자기소유권self-ownership' 관념, 곧 각 개인이 자기 자신과 또 자신의 재능 및 재산에 대한 주권을 가진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발상에 가장 적합한 경제 형태는 자본주의였다. 스미스에게 있어 자본주의는 자립적이면서 상호 이익을 위해 자유롭게 계약하고 그 계약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유주의적 개인들의 경제 질서였다." 47쪽.

 

"신자유주의: 19세기 후반에 기존의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자유주의의 새로운 경향을 일컫는다. 심각한 부의 불균형과 사회적 양극화 등 자본주의가 초래한 문제점들과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고, 그럼으로써 20세기 복지국가주의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레이거니즘,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중반 이래의 신자유주의는 19세기 후반의 이 신자유주의에 다시 도전하며 등장한 자유주의를 말한다." 55쪽.

올해 안 그래도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손 닿는 곳에 꺼내두었던 이유 중 하나는 푸코의 신자유주의 통치성 이론을 공부하다보면, '신자유주의에 실질적인 자유가 있는가??(기만 같다)'라는 문제에 부딪치곤 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영어로는 다르게 부르는 '신자유주의'가 두 종류임이 드러났다. 첫번째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는 고전적(근대 공리주의적) 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개념으로서, 밀보다 30년 늦게 태어난 그린이 논의를 시작했다. 자유란 소극적으로 단순히 ~로부터(이를테면 억압)의 자유로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원하는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보다 적극적 자유를 지향한다. 이러한 생각은 후에 케인즈의 복지국가로 이어졌다.

푸코가 비판하기 시작했고 우리 시대에 통용하고 있는 두번째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하이에크가 주창했으며 레이거니즘, 대처리즘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mb 정권 당시 '민영화'처럼 되도록 규제를 없애고 경제적 행위 과정과 결과를 시장(기업-소비자)에 맡겼던 시장지상주의적 맥락의 '자유'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편할 듯하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하는 듯한 이 신자유주의 맥락에서는 개인을 합리적 경제인(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상정한다. 자신에게 손해되는 행위를 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받았다(그러나 2008년 미국발 경제공황 당시 그러힌 믿음이 허구임이 밝혀졌다고 관련 서적들에서 읽었다).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에 속한 인간은 자기 신체와 노동력을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24시간 끊임없이 '노오력'하며 스펙을 쌓도록 내몰린다. 푸코가 독일식 질서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는 해석도 있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위와 같은 두번째 신자유주의 전반에 대해 태동기부터 이미 비판적이었던 듯하다(더 자세한 내용은 심세광, "

어떻게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푸코로 읽는 권력, 신자유주의, 통치성, 메르스": "http://blog.yes24.com/document/8255929 참고 바람). 푸코 말년 강의록들을 읽다보면 신자유주의 통치성 비판을 찾아볼 수 있고, 앞으로도 찾아보고자 한다. 

 

 

"그린이 제시하는 이와 같은 새로운 자유주의는 자유의 개념에 대한 재규정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자유가 단순히 구속이나 강제로부터의 자유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행하거나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하거나 즐기는 어떤 것을 행하거나 즐길 적극적인 힘 또는 능력"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의 자유 개념은 세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첫째는 자유가 단순한 제약의 부재가 아니라 어떤 것을 할 힘 또는 능력과 관련된다는 점(1)이고, 둘째는 자유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2)이며, 셋째는 자유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향유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3)이다." 58쪽.

 

 

아무튼 그린식의 첫번째 신자유주의 개념에 따르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중 어느 쪽으로 따르느냐에 따라 '자유'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이 달라진다. 예전에 시흥시민주시민아카데미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할 때 '최소한의 의식주와 생존을 영위할 경제적 조건은 갖추어져야 진정한 자유'라는 의견을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개념을 따르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러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푸코 관심자라 다소 길지만 기록을 위해 옮겨둔다. 신자유주의 통치성 이론(호모에코노미쿠스와 자유)에 관한 내용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사상과 실천의 전개를 근대적 통치 기술modern art of government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고, 바로 그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제도를 '규율로서의 자유'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전형적 사례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가 대표적인데, 그에 따르면 '개인을 자유롭게 하기'는 근대 국가의 통치 전략이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는 다름 아닌 자유를 '통해' 통치한다. 인간을 자유로운 행위 주체로 규정함으로써 그리고 자유는 이성과 연결시킴으로써 이제 근대 권력은 새로운 방식으로 통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성적 주체인 개인은 자신의 본성이자 권리로 선언된 자유에 걸맞은 방식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조정하며, 나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 한편 자유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근대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비이성적이거나 부도덕하다고 간주되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일정한 사회적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데,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결국 권력의 지배가 용이한 인간, 사회 질서에 순응적이고 기존 메커니즘의 재생산에 적합한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 감옥, 병원, 공장, 학교 등을 국가 정책으로 마련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향상시키려 시도한 것은, 벌린이 비판한 것처럼 자유 개념에 대한 혼동이나 착각 탓이 아니라, 권력의 의도적인 전략에 따른 것이 된다. 즉 자유주의적 근대 권력은 한편으로 그러한 일련의 규율적 집합들을 고안하고 보급함으로써,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를 '이성적인 자기 지배' 같은 식으로 특정하게 정의함으로써 지배 질서를 유지, 재생산해왔다는 것이다. 푸코는 이런 맥락에서 자유주의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관한 어떤 실질적인 원리가 아니며, 오히려 통치에 대한 특정한 에토스ethos를 나타낸다고 본다. 자유를 통한 통치는, 너무 과하게 행해지는 통치가 지닌 위험-즉 가족이나 시장, 사회 등과 같이 국가를 구성하는 단위들의 자율적인 작동과 책임성을 왜곡 또는 파괴할 위험-과 너무 과소하게 행해지는 통치가 지닌 위험-즉 생산성, 질서 및 그 밖에 국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확립하는 데 실패할 위험-을 동시에 피하기 위한 근대적 기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이제 자유주의의 중요성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를 모든 인간의 권리로서 규정, 옹호했다는 점이 아니라, 최초로 통치의 기술을 자유의 실천과 체계적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찾아져야 한다." 114-116쪽.

 

판옵티콘 하면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떠올리는데, 이 책에서는 바우만의 논의를 설명하기 위해 판옵티콘이 등장한다. 그는 자유를 위한 권력 관계에서 한쪽이 자유로우면 다른 한쪽은 부자유에 빠질 수 밖에 없어서, 자신이 자유롭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듯한 양상이 펼쳐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명제가 실제 우리 현실을 설명하는 듯해 씁쓸하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로서 파악되는 자유는 지배의 다른 이름이며, 지배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자유는 다른 누군가의 억업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를 무화해야 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자유란 폭력에 다름 아니다. 내가 최대한 자유롭기 위해서는 타인을 제치고 사회 관계망 내의 정점에 올라야 한다. 자유를 행사한다는 것은 결국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며, 부자유는 타인에 비해 열등한 사회적 위치를 반영한다. 요컨대 이러한 관점에서는 자유가 인간의 본성이나 불가침의 권리라기보다 오히려 사회 질서의 안정화 및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요소 중 하나로 간주된다. 자유와 구속, 지배와 종속은 서로 연결된 관계의 양쪽 끝이며, 인간들은 각각 그러한 관계의 어느 지점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좀 더 유리한 자리를 점하거나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의 자유'란 없으며, 이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112쪽.

 

강의 시간 발제를 위해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을 읽는 머리 쉴 겸 동시에 이 책을 읽어나갔던 지라, "인정투쟁" 반대편에서 진보 진영이 아래와 같은 주장을 했구나 싶어 흥미로웠다. 호네트는 근대 공리주의자들이 투쟁 동기를 '이해관계' 차원으로 한정시켰기 때문에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진보 진영은 아래에서 오히려 재분배의 정치가 인정의 정치에 종속되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소비의 세계가 개인적 자유의 핵심 영역으로 부각되고 자유의 실현이 소비의 실천과 연결되면서 뒤따르는 문제는 생산 및 재분배 과정에서의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전통적인 관심이 점차 약화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소비의 세계를 주도하는 상징과 차이에 대한 관심이 사회(민주)주의적 상상력을 대체하고, 전통적인 사회 투쟁이 상징 경쟁을 둘러싼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 투쟁에 그리고 '재분배의 정치politics of redistribution'가 '인정의 정치politics of recognition'에 종속되는 현실의 경향에 대해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136쪽.

 

마지막으로 강의 시간에도 'liberty'와 'freedom'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책에서 문득 '성경'을 끄집어내어 'liberty' 어원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소오름 돋았다. 기독교인으로서 '진리가 너희(예수를 믿어 말씀 안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를 지칭)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구절에 익숙하고 의미를 체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어원에 담긴 의미 또한 이해가 되었다.

 

익숙하지만 파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자유'라는 맥락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소중한 문고본 책자를 읽으면서, 최근 가지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8.10.02.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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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이름의 지배, 혹은 통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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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쉬운 말인 것 같은데 막상 한 권의 책으로 읽으니 오히려 정의가 더 헷갈리게 된다. 이 책은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자유의 정치사상의 역사, 자유들에 대한 정의(소극적 자유 vs 적극적 자유 등), 그리고 본격적인 자유의 영역과 자유의 우선순위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자유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가 근대에 와서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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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쉬운 말인 것 같은데 막상 한 권의 책으로 읽으니 오히려 정의가 더 헷갈리게 된다. 이 책은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자유의 정치사상의 역사, 자유들에 대한 정의(소극적 자유 vs 적극적 자유 등), 그리고 본격적인 자유의 영역과 자유의 우선순위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자유와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가 근대에 와서 로크, 밀 등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근대적 자유로 발전시켜 온다. 밀의 자유론은 시민적 자유, 사회적 자유이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고, 그렇지 않은 자유는 옹호될 수 없으며, 사회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우한 이웃을 외면하는 것을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개인의 자유에 최대 가치를 부여하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하이에크의 자유론이 현재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한다.

 

 자유의 논쟁으로, 소극적 자유 대 적극적 자유의 논쟁이 있다. 소극적 자유는 타인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나의 뜻으로 할 수 있는 자유이고, 적극적 자유는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소극적 자유는 ~로 부터의 자유이고, 적극적 자유는 ~할 자유이다. 적극적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한 예로는 나치즘을 들 수 있고, 그래서 적극적 자유를 배타적으로 강조해서는 안되고, 소극적인 자유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해해도 안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 다른 논쟁으로 공화주의적 자유와 자유주의적 자유를 들 수 있다. 공화주의적 자유는 자유로운 정치 공동체의 시민이 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근대적 자유인 자유주의적 자유는 시민적 자유로 언론,출판,집회의 자유와 자의적인 구금으로 부터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을 들 수 있다. 이 둘의 관계는 공화주의적 자유가 이루어진 후에 자유주의적 자유가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의 하나가 자유는 통치 수단이라는 것이다. 즉 개인에게 자유를 준 것 처럼 여겨지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로 노동자들을 토지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서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자유롭게 일하는 임금 노동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의 통치기술이며 지배의 전략으로 사용해 왔다는 내용도 있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개인의 자유의 핵심이며, 자유의 실현이 소비의 실천으로 연결되면서 뒤따르는 문제는 생산 및 분배의 과정에서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전통적인 관심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소비에 몰두하는 개인이, 공적 영역, 공동의 운명에 참여하는 힘이 빠지게 되고, 소비 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사회 통제가 쉬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자유, 생각보다는 복잡한 내용이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지배를 당하고, 통치를 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말하고 있는 자유가 경제적으로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자유, 소비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 본다. 아울러 내가 생각하는 자유가 남을 수단으로 삼지는 않는지 경계하고, 나는 정말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된다. 정말 나는 자유롭게 살고 있나? 아님 자본의 노예로 살고 있나 

z******g 2011.09.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