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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른봄이었습니다.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님, 김경일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 같은 성직자 분들을 중심으로 세 번 걷고 한 번 절하며 해창 갯벌에서 광화문으로 출발할 때 소식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감동 깊게 시(「자벌레의 길」)로써 알려주었던 시인. 이전에도 환경 판에서 시인의 이름을 종종 보며 지리산의 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때서야 머릿속에 확실하게 심어두었습니다. 생명 운동 판에서도 필요한 분이지만 문학적으로도 일가를 이룬 시인이라고 말입니다.
6년째 지리산 곳곳의 버려진 빈집들과 절방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시인은 중고 오토바이 한 대와 노트북 한 대가 전 재산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머리를 깎았다가 신군부에 의해 하산당하기도 했고,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지리산으로 훌쩍 떠났던 시인은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거침이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침이 없는 삶은 이번 시집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으로 말이지요.
물론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삶의 도저한 외로움이야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버거움에 '밤마다 / 이 산 저 산 / 울음의 그네를 타'(「동행」)거나, '밤새 너무 울어서 두 눈이 먼 사람'(「부엉이」)이 되기도 합니다.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벽에 부딪혀 '안면 몰수하고 / 가던 길 그대로 가고 싶'(「내 이름을 지우다」)을 때도 있고, '저 빗속에 / 알몸으로'(「천둥 번개가 부른다」) 나서기도 하며, '너는 또 누구냐 / 묻고 묻다가'(「거울 속의 부처」), '피 흘리는 / 한 마리의 짐승 / 아직 어린 외눈의 산짐승'(「無蓮」)이라며 상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내 '인드라망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인드라망」)는 깨달음에 다다릅니다. 그리하여 '이제서야 나는 한 잎의 토란'(「토란」)이기도 하고, '세상의 모든 집 / 옛 애인의 집'(「옛 애인의 집」)이 됩니다. 그야말로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지요. 실상 시집은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기까지 그리고 도달한 후의 여러 변주가 활달한 화음을 내고 있습니다. 경계 없는 생명의 경지라고 할 만한데 그에 값하는 시 한 편과 그의 면모를 잘 볼 수 있는 '自序'를 옮겨 봅니다.
自序
지리산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철 잘 놀았다.
詩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했던가.
6년 만에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
그동안 원 없이 걸었다.
낙동강 1,300리,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를 하고
백두대간과 새만금을 들락거렸다.
그마저 지겨우면 오토바이를 타고 꽃의 속도,
단풍의 속도로 전국을 일주했다.
돌아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간지옥이자
백척간두 진일보였다.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
나는 여전히 안면몰수, 후안무치의 산짐승이다.
잡초를 기른다
잡초들을 뽑으려고 / 밀짚모자 쓰고 나섰다가 / 그대로 둔다 / 하나같이 어여쁘지 않은 게 없다 //
텃밭에 / 열무를 심어놓으니 / 비름풀이니 애기똥풀 / 더 무성하다 //
어허라, / 저희들도 무슨 뜻이 있으리니 / 차라리 잡초를 기른다 //
뒷집 할머니가 혀를 차며 / 열무를 뽑아다 물김치를 담가와도 / 나는 멋적게 웃으며 / 잡초를 바라본다 //
열무 아닌 / 애기똥풀꽃을 찾아 / 먼 길 달려온 / 나비 한 마리 생각한다//
이건 맛이 없어, / 저건 독초야 / 솎아내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잡초는 저희들끼리 / 열렬히 몸을 섞어 / 제아무리 뽑아내도 다시 자란다 //
저리도 무성한 풀들 / 설사 / 금지된 사랑이면 또 어떤가 //
지금껏 잡초라 믿어왔던 생각들도 / 더 이상 뽑아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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