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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여는 글에서 현대물리학의 양대 산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핵심 개념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며,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논리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두 이론의 핵심 개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p.11)고 적고 있습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과 관련해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서 이 책의 ‘변별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자는 “이 책이 제시한 여러 설명 방법을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책에서 사용하지 않는 독창적인 설명 방법을 보여주겠다는 것인데, 과문한 탓도 있으려니 싶지만 아닌게 아니라 그의 설명 방법은 관습적인 해석을 넘나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것들 1부는 양자 이론에 관련된 설명입니다. 양자이론은 특히나 과학 기술 분야에서 보여준 놀라운 성과와 달리 개념적 이해나 설명은 별 진척이 없는 듯 합니다. 고전적인 코펜하겐 해석을 비롯하여 붐의 존재론, 다중 세계론, 양상 해석, 그리고 장회익의 서울해석까지 다양한 해석 들이 제각기 입지를 주장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양자 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고 한 파인만의 ‘절망’은 아직도 유효한 모양일까요 이 책의 설명 역시 대개의 교과서가 그렇듯 원자의 구조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장 양자적 행동의 특성인 불확실성, 즉 확률적 행태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중첩된 상태의 양자적 효과는 간섭성으로 관측할 수 있지만, 실제 양자의 중첩 자체를 관측할 수는 없습니다. 관측을 통해 ‘간섭성’이 깨지기 때문이지요. 이를 다소 수학적인 표현으로 측정을 통해 상태함수가 고유함수 중 어느 하나로 붕괴 또는 환원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결흐트러짐(decoherence)’에 관한 대안적 설명으로 다중 우주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중 우주론에 따르면 중첩 상태의 양자는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중 슬릿, 한 개의 광자가 동시에 두 개의 실틈을 통과하면서 스스로와 간섭한다고 상상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실틈을 통과하는 광자가 다른 실틈을 통과하는 또 다른 광자와 간섭하는 그림이 더 합리적이다. 여러분이라면 다른 어떤 광자라고 답하겠는가? 당연히 이웃한 우주의 광자일 것이다. p.53 이중 슬릿 실험에서 어느 광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슬릿에 측정 장치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쪽의 슬리에서 광자가 측정되는 순간 광자의 중첩 상태는 깨지게 됩니다. 다중 우주론에 따르면 이렇게 측정되지 않을 때 양자가 중첩되어 있다는 것은 1번 슬릿으로 통과할 양자의 세계와 2번 슬릿으로 통과할 양자의 세계,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눈에 띄게 독창적인(제가 충분히 과문하다는 전제 하에...) 설명은 양자적 특성을 논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불확정성 원리는 태양에서 1,500만도라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도 핵융합이 일어나는 이유와 원자의 크기가 원자핵보다 10만 배나 더 큰, 비어 있는 공간인 이유를 설명합니다. 특히 원자의 이 비어 있는 공간과 중력의 상호 작용에 의해 별이 백색 왜성에서 중성자별로 진화되어 가는 과정의 설명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더 나아가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빈 공간’의 존재는 부정되며 에너지가 무에서 출현할 수 있다는 결론도 새삼 주목할 만합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재구성해 보면 입자의 에너지와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의 양을 동시에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특정한 빈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주목한다면 그 공간의 에너지 내용에 커다란 불확실성이 존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에너지가 무에서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p.74 전통적으로 빈 공간이라는 진공을 전제하고 원자가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론이 물리학의 관점이었습니다. 전자기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서 공간에 퍼져 있는 ‘장’을 상정할 때도 사실 그 근원은 전하나 입자였습니다. 그런데 불확정성원리에 이르면 그 어떤 근원을 전제할 필요 없이 진공 자체가 “전자들이 갑자기 생겨났다가 순식간에 다시 사라지곤 하는 부글거리는 미립자들의 늪지대”라는 것입니다. 이 ‘미립자들의 늪지대’를 고대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렐스가 주창했던 ‘에테르’의 현대적 버전이라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요? 고대 원자론과 마찬가지로 직관하는 수준에서 이론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왠지 고대 형이상학이 다시 현대물리학으로 반복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양자가 관측되기 전까지 미결정 상태라는 특징은 얽힘, 혹은 비국소성이라는 또 하나의 기묘한 특성으로 이어집니다. 양자의 비국소성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공간 이동과 비국소성을 제쳐두더라도 얽힘이 야기하는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그것이 전체 우주에서 가지는 의미이다. 과거 한때 우주의 모든 입자는 동일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왜냐고? 모든 입자가 빅뱅과 함께 탄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입자는 어느 정도 서로 얽혀 있다. p.84 그렇다면 여러 양자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일상의 물체들은 어째서 양자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양자적 행동은 확률 파동이 서로 간섭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수백만 개의 원자로 구성된 환경은 “환경과 얽힌 사태들의 확률 파동이 겹치는 것을 막”게 되어 간섭할 수 없게 만들고 우리는 이렇게 간섭성이 깨지는 방식으로만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논의 과정에서 양자 이론이 적용되는 미시 세계와 그렇지 않은 거시 세계를 나눈 코펜하겐 해석을 ‘패배적’ 이론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양자로부터 거시 세계로 넘어오면서 ‘결흐트러짐’이라는 특성과 아울러 저자가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 설명하는 것은 거시 세계가 보여주는 다양성의 기원입니다. 결흐트러짐이 ‘파동-입자성’의 이중성으로 소급된다면 다양성의 기원은 ‘구별 불가능성(indistinguishability)’이라는 특징이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구별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충돌하는 두 입자가 서로 구별 가능하면(가령 탄소 원자핵과 헬륨 원자핵이라면) 전통적인 충돌 이론으로 충돌에 의한 결과를 예측하고 포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려운 얘기이긴 하지만 충돌하는 두 입자가 서로 구별 불가능하면(가령 같은 헬륨 원자라면) 두 충돌에 의한 효과는 ‘파동의 간섭’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양자의 구별 불가능성이 특정 입자의 위치를 확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불특정 입자의 위치 확률을 정해줄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딱히 저자의 논지가 선명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이런 구별 불가능한 양자를 페르미온과 보존으로 나누고 그 결과 페르미온인 전자에 의해 92개에 이르는 다양한 원소들이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페르미온은 정상적인 파동의 간섭처럼 서로 같은 상태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빼짐으로써 서로 다른 상태의 한 짝만 공존 가능한 파울리의 배타 원리를 따릅니다. 같은 상태의 전자가 한 가지 에너지 상태에 있을 확률이 0이기 때문에 원자는 각 궤도에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허용하는 한 쌍의 전자만 지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원자들의 탄생이 가능하고 이 원자들의 조합으로 인해 이 세계가 풍요로워졌습니다. 보존 입자도 흥미로운 현상을 보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방출된 모든 광자가 새롭게 방출되는 또 다른 광자의 확률을 높인다.”는 군거성입니다. 이런 특성을 애초에 활용한 것이 광자들의 행동을 동조하는 방식인 레이저입니다. 아울러 페르미온인 전자나 헬륨 원자가 초저온에서 보존과 같은 행태를 보이는 초전도 전류와 초유동성도 흥미롭게 읽힙니다. 큰 것들 2부는 ‘큰 것들’이라는 부제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상대성이론이 지시하는 커다란 ‘등가 관계’가 세 가지임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같다는 게 첫 번째고, 에너지와 질량, 혹은 에너지와 운동량이 같다는 것이 두 번째고, 가속도와 중력이 같다는 게 세 번째입니다. 먼저 등장한 것은 시간과 공간의 통념을 바꾼 특수상대성 이론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특수 상대성이론에 의해 시간은 “시계가 측정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결코 불변하는 광속 앞에서 환기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취한 관점 – 구체적으로 얘기해, 우리가 얼마나 빨리 운동하고 있는가 – 의 인위적 산물일 뿐이다. p.136 시간과 공간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제기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지만 여전히 직관적으로 친밀하기는 어렵습니다.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이러한 동시성의 붕괴와 시공간의 통합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인과 관계와 얽혀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적어도 서로 다르게 운동하는 사람이 원인과 결과를 서로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시공간의 통합을 방해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특수 상대성이론의 결과로 더 유명한 것은 단연 에너지와 질량이 같다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E=mc2에는 더 깊은 함의가 숨겨져 있습니다. 질량은 운동량으로 설명되고 따라서 에너지와 운동량도 동전의 양면 관계인 동등성을 갖습니다. 밀어붙이기 어렵다는 것은 질량이 크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물체의 질량은 정확히 이런 특성으로 정의된다. p.144 밀어붙이는 정도는 운동량으로 표현됩니다. 동일한 정지 질량의 물체가 속도에 따라 물체에 가하는 힘이 다름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종종 이러한 ‘충격력’을 물체의 정지 무게와 혼동하곤 합니다. 에너지가 곧 질량이므로 운동하는 만큼의 양은 곧 운동에너지로도 설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음과 같은 주장은 저에게는 ‘과격’하고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소리 에너지든 빛 에너지든 전기 에너지든 전부 무게가 나간다. 당신이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생각해 낸다 해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당신이 커피포트를 데운다면 거기에 열에너지를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열에너지에는 무게가 있다. 결과적으로 한 잔의 커피는 차가울 때보다 뜨거울 때 무게가 조금 더 나간다. p.145 그리하여 정지질량이 0이어서 결코 정지할 수 없는 햇빛의 광자들이 이런 에너지-무게를 지니고 혜성의 꼬리에 복사압을 가하고 아름다운 꼬리를 만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서로 등속 운동하는 기준틀에서만 허용되는 한정된 이론인 만큼 서로 가속되는 틀에 대한 일반상대성이론으로의 발전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개념을 떠올린 아인슈타인의 비범함은 역사상 단 한 명의 천재에게 허용된 깨달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아마도 한 명의 개인이 전체 과학계에 기여한 가장 커다란 공헌일 것”(p.156)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개념은 중력과 가속도를 구분할 수 없다는 등가 원리입니다. 저자는 “등가원리에 따르면 중력은 다른 힘들과 다르다. 중력은 사실 힘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과문하기 짝이 없는 저로서는 표준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과격한’ 주장입니다. 중력은 기실 차를 타고 원운동을 할 때 받는 원심력과 같은 관성력이라는 것입니다. 레이먼드 치아오와 아킬레서 스펠리오토풀로스 두 물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중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힘이 아니다. 지구는 휜 시공간에서 가능한 ‘가장 곧은’ 경로를 따라 운동할 뿐이다.”p.167 천체에 의해 휘어진 공간에서 최단 거리를 따라 운동하는 것, 그것이 곧 중력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왜 최단 거리를 운동하느냐고 자연에게 물어봐도 대답해 주지 않겠죠. 기껏해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자연에 내제된 특성이라는 정도에서 더 진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자가 중력을 원심력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도 인상 깊지만 비관성틀에서의 물리적 상황을 관성틀의 물리적 상황으로부터 추론하는 장면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낙하하는 사람이 지면 위에 있는 친구를 관찰하는 상황입니다. 친구가 당신과 관련하여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친구의 시간은 느려질 것이다. 하지만 잠깐, 당신 친구는 중력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에 대해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중력이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는! p.172 중력은 공간을 휘게 만드는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논의는 이제 중력파의 존재 예측, 일반상대성이론의 비선형성, 블랙홀과 시간여행을 거쳐 이제 우주론에 이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전체적으로 휘어 있어야 하고 초기 아인슈타인의 바람과 달리 휜 시공간인 우주는 운동해야만 합니다. 운동하는 우주는 공간, 시간, 에너지, 물질 이 모든 것이 탄생한 태초의 시점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빅뱅이라고 부르죠. 빅뱅의 시점은 다양한 결과를 산출하는데, 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137억년 미만의 별들만을 보면서 밤하늘을 어둡게 보고 있으며, 이 우주에는 ‘빅뱅의 잔광’이자 ‘창조의 저녁놀’이 사방으로 깔려 있다는 것 등등이 그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우아하고 대단히 시적인 표현도 시선을 붙잡는군요. 우주 배경복사는 가장 오래 된 창조의 ‘화석’이다. p.193 빅뱅 이론이 도래하는 결과는 발전하는 관측 결과와 결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둠물질(암흑물질)과 어둠에너지(암흑에너지)가 존재해야 함을 예측해 주기도 합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의 융합 우주가 한 개의 점으로 수축되면 그 물질들이 한없이 압축되어 그 어느 때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실제로 이 과정에는 한계는 없다. 우주가 팽창을 시작한 시점에, 다시 말해 우주 탄생의 순간에 우주는 무한대의 밀도에, 무한대로 뜨거웠다. 물리학자들은 무언가가 무한대로 비상하는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부른다.p.203 블랙홀이 바로 특이점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또 빅뱅도 특이점입니다. 문제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부피가 0이 되는 특이점의 물리 현상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원자보다 더 작았던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서로 양립하지 못하는 양자이론과 융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궁극의 이론이 다분히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과 마주하고 있음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개 깊숙한 곳에 과학계의 최고 난제들을 해명해 주는 답이 도사리고 있다.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주는 왜 137억 년 전에 빅뱅으로 탄생했는가? 만약 있다면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존재했는가? 우리가 아주 작은 것을 다루는 이론과 아주 큰 것을 다루는 이론을 융합하는 데 성공하면 이들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한 발 더 나아가 궁극의 질문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없음에서 있음이 창조되었을까? p.206 요즘 융합이 대세라고 하죠. 어떤 융합도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융합이라는 위용과 품격에 범접하지 못할 듯합니다. 이 궁극의 이론을 향한 관심과 열망은 물리학을 ‘쫌’ 배워본 학생이라면 가져볼 만한 포부일 것입니다. 다행히도 매년 이런 학생들이 물리학과의 문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지적 열망의 다른 이름은 지적 허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는 지적 허영과 야망은 권장하고 싶다 못해 지극히 존경하고 싶은 덕목이 아닐까요. 물리학에 대한 작은 흠모 정도로 물리교사를 시작한 저로서는 이 책을 통해 접한 사연들이 놀랍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아직 많이 모른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저의 수업을 들은 누군가 이 궁극의 최전선에서 우주와 있음의 존재에 대해 해명하게 될 날이 올까요 가져볼 만한 욕심이긴 하지만, 교사로서 좀 더 현세적인 욕심은 이런 책들을 통해 학원과 문제풀이에 찌들은 학생들의 지적 열의와 야망이 되살아나길 바라는 것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