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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으로 남의 나라말을 배우고, 그 나라 역사를 책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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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멋진 사람이 다 있지!!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1권을 읽고 난 내게 남는 건 커다란 느낌표 하나다.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기에, 575쪽이라는 꽤나 많은 분량임에도 시작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책,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느껴지는 이 뿌듯함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호머 헐버트"라는 사람을 아는가? 이 책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는 그가 쓴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의 번역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인 1905년에 씌여진 책이라는데 그 번역본이 처음으로 나온 모양이다. "우리 학계는 이 책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니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 이유에는 [한국사]가 영문으로 되어 있고 1000쪽이 넘는 대작이라서 한글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1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p6) 몰랐었다. 육영공원의 교사로 초빙되어 우리 나라에 처음 발을 디뎠다는 이 이방인의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다. 을사조약 이후 고종에게 헤이그 특사 파견을 요청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우리 나라를 무척 사랑했으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 "나는 웨스터 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는 묘비명이 그의 묘에 서 있으며, 광복 후 정부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병사했고, 그래서 양화진 외국인 묘에 묻혔다는 이야기 정도.. 그나마 그런 단편적인 지식들도 얼마전에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주워들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가 우리 나라의 역사를 글로 썼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 "내한 초기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말과 글을 우리 한국인들처럼 구사했을 뿐 아니라,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매료되어 그 스스로 한글학자가 되었다."(p4)는 사실 또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정말, 뭐 이렇게 멋진 사람이 다 있담!! 그가 이야기하는 [한국사]가 무척 드라마틱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호머 헐버트"라는 사람이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생을 살다가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1권에서는 고조선에서 임진왜란 시기까지의 역사를 크게 6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한글판 번역본의 제목을 "- 드라마가 되다"로 한 이유는 아마도,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면이 있기 때문이리라...이 책은 우리에겐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의 역사를 이방인의 눈으로 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그런 기회를 주는 책이랄까.. 이야기의 서술은 비교적 간단하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옛날 이야기를 듣듯 그렇게 물 흘러가듯 고대사로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 역사이야기니만큼 그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내용보다도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905년 당시, 친한파였던 미국인에겐 우리 역사가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관점의 문제이리라... 놀라운 것은, 미국인인 그가 어떻게 한국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이렇게 상세히 글로 풀어냈을까 하는 점이다. 이 땅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글 곳곳에서 글쓴이의 생각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 역사교과서에서는 고려말의 개혁군주로 다루고 있는 공민왕과 신돈에 대해서 글쓴이는 매우 부정적이다. "공민왕 스스로 왕조가 뒤엎어질 날을 앞당겼다."(p390)거나 "약삭빠른 신돈은 대궐로 돌아왔고 이때부터 왕을 손아귀에 쥐고 마음대로 흔들었다."(p378)는 등의 표현을 보자면... 글쓴이가 참조할 수 있었던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역사인식이리라. 그에 반해 이성계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측면의 서술이 많다. "그러나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의 훌륭한 업적을 찬양하는 기록은 새 왕조의 영웅 만들기의 방편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이성계에 관한 기록은 반드시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감안하고 받아들여야 한다."(p405)는 조언을 곁들일만큼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 서술하듯이 조선이 그렇게 무기력하기만 한 민족은 아니었다."(p559)는 등의 기술을 통해 그는 이 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100여년 전의 미국인이 이미 알았던 "우리의" 역사를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아 부끄러웠고, 이 땅을 그렇게나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방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자료가 100여년이나 묻혀 있었다는 것은 안타깝기도 했다. 처음에 적지않은 분량 때문에 읽기가 망설여졌지만, 지금은 2권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물론 헐버트라는 글쓴이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결심도 함께다. "글"도 "글쓴이"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책. 정말 한편의 드라마 같은 책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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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그는 과연 누구인가? 익숙함만큼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단순히 구한말에 잠시 스쳐지나간 이방인인줄 알았다. 그리고 이방인에 비친 우리의 옛모습이 어떠했을까하는 호기심 정도에서 책을 들었다. 그런데 일단 놀랐다. 그의 종적을 쫓아본 적이 없어 아리송했던 홀버트, 역사 교과서에 한 두번 등장하며 몇 군데 짧막하게 소개되던 홀버트! 그는 우리의 방대한 역사를 집중 탐구하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그 누구보다 종횡무진했던 또다른 우리였던 것이다. 그가 집필했던 대작 <한국사>가 리베르를 통해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늦게나마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의 역사 문화를 사랑했던 그를 알게되고 만나게 되어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책과 마주하면서,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왕조중심의 역사에 치우쳤던 기족의 틀을 깰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새왕조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문물을 정비하는 과정을 숱하게 외우고, 그 속의 상관관계를 파헤쳤다만 헐버트는 다른 눈으로 우리의 역사 체계를 세우고 있었다. 일단 내용이 차지하는 분량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고 호기심을 가득 채우며 설레게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역사가 어떤 모습이었을까? 목차를 보면서 이렇게 흥분하기도 또 난생 처음인 듯하다. 점점 시들어가는 한 나라의 국운을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그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자주적이고 굳건하게 묘사하고 있어, 괜시리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특히 4대문명 외로 부각되고 있는 제5대 문명인 요하문명이 새롭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시점에서 고조선의 역사, 우리의 뿌리를 밝히고 있는 부분에서 괜한 자부심이 용솟음치기도 하였다. 또한 기존에 중요시되지 않았던 역사의 또다른 면모가 시시각각 생동감있게 다가오면서 생소한 역사, 낯선 역사에 더욱 흥미를 불어일으켰다.
그 어느 역사서보다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것이 이방인 헐버트에 의해 쓰여진 우리의 역사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특히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사라져버린 아니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가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의미있다. 이방인이니만큼 때론 좀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조망하고, 때론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듬듯 쓴 우리의 역사, 헐버트의 눈으로 읽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끊임없는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2권은 먼저 서점 나들이를 통해 엿보았다. 역시 압도적으로 흥미를 불어일으킨다. 무엇보다 임진왜란 이후,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의 높은 비중이 남다르게 느껴지면서 호기심을 부채질하였다. 또한 긴박했던 18세기 말의 모습을 그 어떤 역사서보다 생생하게 담고 있을리란 기대감에 들뜨게 된다. 신선한 충격이 잊혀지지 전에 서둘러 만나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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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헐버트 박사 記念事業會長’ 金東珍씨가 執筆한 ‘大韓帝國 滅亡史’를 檢索하면서 이 著書를 認知하였다. 01-1. 出刊辭와 譯者의 序文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웬만한 국내 史學者의 歷史書보다 탁월하다. 읽는 내내 感動하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었다. 01-2. 이렇게 豐富한 史料가 왜 正史에 編入되고 反映되지 않았는지 불만이다. 意識있는 史學者들이라면 지금이라도 편입해야 한다. 02. 全體的으론 매우 만족하는데...우리 역사에서 무수히 나오는 사건 이름이 전부 漢字語이다. 그런데 상당 부분을 國文으로 표기하니 얼른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음은 상당히 아쉽다. 02-1. 譯者가 모르지는 않았을 터...주요 사건이름은 倂記라도 하든지...脚註라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02-2. 예시하면, 전주 목사의 배역(248쪽 副題와 地名 ☞ 背逆) 02-3. ‘거발(26쪽 上段 ☞ 擧發)...아사달(27쪽 中段 ☞ 阿斯達) - 국어사전에는 漢字語라며 한자로 버젓이 표기가 돼 있음에도 ‘순수 한글로는 아사달’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02-4. 이 경우 말고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참 많았다...
03. 14쪽 下段~15쪽 上段에 한국인 寄贈者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 이유를 읽고서 이해를 했다. 旣存의 史料에는 없는 민감한 그래서 자신의 身邊에 危害가 닥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03-1. 그 한국인...아니 우리의 선조께서 崇高한 결심과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의 決行과 執念 덕에 이렇게 格調높은 역사서를 편안하게 涉獵할 수 있음에 무한히 敬拜하지 않을 수 없다.
04. 譯者가 誤譯하는 내용도 가끔 보였다. 04-1. 예시하면, 역자는 ’강릉시’라고 번역했다...homer hulbert가 이 한국사를 기록할 당시에는 ‘市’라는 명칭 자체가 없었다...‘江陵府’ 또는 ‘江陵郡’이라고 했어야 했다...53쪽
05. 다른 史書에서는 볼 수 없었던...부족국가 沃沮에 관한 史實을 습득할 수 있어 아주 좋았다...58쪽, 05-1. 이 부족국가 以外 많은 史實을 접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06. ‘高句麗‘란 國名의 뜻(83쪽), ’임금‘이란 낱말의 語源(95쪽)을 습득할 수 있어 참 유익했는데...이런 유익한 내용이 前後로 참 많았다. 06-1. 고구려의 葬禮 習俗...’사람이 죽으면 그 亡者가 생전에 보유하던 재산을 전부 장례 때 다 쓴다(85쪽)’...참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07. 뒤로 갈수록 점점 興味롭고도 有益한 歷史書임을 實感하고 있다. 어떤 韓國史 책이나 資料에서도 볼 수 없는 내용들이 無數히 나오기 때문이다.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로 무수히 나온다. 몇 곳만 언급하면... 07-1. 北燕의 皇帝(馮弘)이 고구려로 망명한 사건 그리고 죽임을 당한 사건...126쪽, 07-2. 고구려의 諜者 道琳에게 籠絡을 당해 죽임을 당한 백제의 蓋鹵王...129쪽, 07-3. ‘나라(國)’라는 語源에 관한 설명...5세기 新羅에서 ‘수레’, ‘역마(역참)’, ‘물물교환’ 등이 실시돼 근대 심지어 현대에서까지 사용하고 있는 제도...132쪽, 07-4. 王으로 登極 前 自然人 이름(고구려 文咨王...羅雲)...133쪽, 07-5. 671년부터 ‘日本’이란 國名을 처음 사용했다...189쪽, 07-6. 弓裔가 세운 후고구려 이전에 唐朝가 세운 ‘後高句麗’라는 , ‘後百濟’라는 국명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192쪽, 07-7. 元曉大師의 子弟 ‘薛聰’이 발명한 ‘吏讀’문자의 개발과정과 효용성이 摘示되었다...194~195쪽, 07-8. 後百濟 甄萱 군대에 쫓기던 景哀王이 동굴에서 자살한 것, 王妃가 慾(强姦)보여진 것...219쪽 07-8-1. 지금까진 景哀王이 견훤 군대에게 살해당 한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07-9. 蒙古軍에 항쟁하는 三別抄의 군대에 관한 언급은 어느 史料 에나 있지만 백성을 괴롭히고, 도망친 珍島 백성들에게 자신 편에 서도록 抑壓하고(326쪽), 江華島로 피난 중인 大臣 夫人을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사건(327쪽) 등은 이 책에서 처음 認知했다. 07-10. 일본을 공격하려고 출격한 麗蒙연합군이 두 차례의 거센 풍랑(가미카제·神風)에 좌절됐는데...日本 입장에선 이 거센 風浪이 自國을 지켜준 신비로운 바람이라 여겨 오랜 기간 간직하고 있다가...太平洋戰爭(1941.12~1945.08) 당시 美軍 戰艦에 自殺特攻隊로 활용한 무모함도 있었다. 07-11. 耽羅國이라 오랜 기간 불리웠지만 ‘濟州島’라는 地名이 耽羅摠管府를 운영하던 蒙古 고려에 讓渡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343쪽,
08. 東西古今을 통해서도 立證됐지만...나라가 무너진 경우가 대부분 外勢보다는 먼저 分裂, 內亂, 反亂, 腐敗 등으로 무너진 것이 이때에도 있었음이 드러났다...百濟가 그렇고(173~175쪽), 高句麗가 그랬고(182쪽), 반쪽 통일을 한 新羅가 또한 그랬다(219±쪽). 08-1. 高麗와 朝鮮王朝가 그러했음은 물론이다.
09. 太祖 王建이 訓要十條에서 다른 가르침도 잘 지키지 않았지만 ...‘나라에 충성을 다하도록 병사들에게 적절하게 대우하라’라고 했음에도 後代 임금들이 이를 지키지 않아 ‘武臣政變’이 일어나도록 해 나라를 混亂에 빠뜨리고 終局에는 滅朝를 재촉하였다...228쪽, 09-1. 이런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그런데 忘却症에 빠진 後孫들 때문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惡循環이 반복되고 있다.
10. 222쪽에 보면 王建을 輔弼한 庾黔弼 장군이 나온다...그런데 ‘유근필‘로 표기돼 있다. 그것도 연달아...著者의 실수라면 譯者가 校訂했어야 했고...譯者의 실수라면 그냥 실수가 아니라 큰 잘못을 저질렀다..甄萱의 後百濟가 멸망하는데 赫赫한 功을 세운 인물이고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10-1. 이런 誤記(誤譯)는 503~504쪽에 나오는 ’송상헌‘도 마찬가지...’宋象賢‘ 분명한데 여러 차례 ’송상헌‘으로 표기된 誤謬가 있었다.
11. 고려왕실에서 ’近親婚‘이 성행했다는 史實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인 줄은 몰랐다...229~231쪽 11-1. 親 여동생과, 親 오빠와, 親 남매끼리....
12. 王雍(肅宗)이 왕이었던 조카(獻宗)를 내쫓고 登極한 모습을 보 면 朝鮮朝 6대 임금인 조카(端宗)를 내쫓고 등극한 叔父(首陽大君, 世祖)와 흡사한 부분이 너무 많다. 이런 史實은 이 책에서 처음 인지했다...263쪽,
13. 忠惠王의 悖倫행위를 보면 朝鮮朝 燕山君의 패륜행위와 恰似하고 그 끝도 恰似하다. 왜 사람들은 溫故知新을 생각하지 못할까 ..352쪽,
14. 371, 405쪽에서 言及한 李成桂의 業績 眞僞 與否, 379쪽에서 언급한 恭愍王의 親子 여부 등을 보면...이런 記錄도 國王(高宗)의 신임을 받는 외국인(著者)이니까 가능한 것이고, 03번에서 언급한 대로 著者에게 史料(原本)를 건네준 조선인이 몇 번이고 實名을 밝히지 말라고 申申當付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5. 나라가 滅國에 이르는 데는 반드시 내부가 여러모로 부패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以前 王朝도, 이전 王들이 그랬다가 멸망했으니까...恭愍王이 그랬고, 禑王이 그랬다... 15-1. 恭愍王의 경우 觀淫症에다 同性愛까지 즐겨 臣僚는 물론이고 百姓들에게 指彈을 받았으며, 15-2. 무엇보다...辛旽이란 怪異한 승려를 登用하여 이 승려가 온갖 패악질을 했음에도 두둔하기만 하다 終局에는 두둔했던 왕마저 背信하는 그래서 처형당하는 破局을 초래하도록 한 張本人이 됐고 동성애를 즐기다 被殺되는 暗君이 되고 말았다. 15-3. 辛旽의 傲慢不遜하고 眼下無人한 行脚을 보면 다른 역사인물이 겹쳐진다...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朝鮮朝 高宗代 巫堂 眞靈君의 國政壟斷과 悖惡질이 무당을 감싼 왕과 中殿, 帝政러시아 로마노프 王朝 니콜라이 2세 때 역시 무당인 라스푸틴의 국정농단과 온갖 패악질로 인해 많은 국민과 臣僚들에게 원망을 받고 있었음에도 황제 부부가 감싸고돌다 終局에는 역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王朝 멸망으로까지 이어졌다.
16. 411쪽에 (李成桂의 4대 不可論에 반박해 崔瑩이 주장한) 4대 可論 내용...어디까지가 著者의 글이고, 어디까지가 譯者(編輯者)의 글인지 애매하게 돼 있다. 16-1. 411쪽에는 ’당시 歷戰의 猛將이었던 崔瑩이 터무니없이 遼東 정벌론을 내세웠을 리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崔瑩의 4대 可論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16-2. 438, 439쪽에서처럼 중간중간에 ’편집자 註‘라고 한 내용이 상당 부분 보이는데 어디까지가 저자의 글이고 어디까지가 譯者(편집자)의 註釋인지 애매하니(글꼴까지 구분이 안 됨) 편집자 註는 차라리 脚註 형태로 편집을 했더라면 독서하는데 훨씬 도움이 됐을 것이다. 16-3. 이것만 그런 것이 아니고 前述하기도 했지만...譯者(編輯者-馬도경)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할 것이 있어 출판사를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回信이 없다. 26.07.22.수 午前과 午後에...이렇게 불통이 되면 譯書를 不信하게 된다.
17. 441쪽...’李從茂의 對馬島 征伐‘에서 倭寇가“...이곳(朝鮮)에서 ...침범할 생각이 없으니 명나라로 들어갈 길을 내달라...” 라는 요구를 읽으면서...163년 후 발발한 壬辰倭亂(1592.04) 前 豐臣秀吉이 朝鮮에 요구한 ’征明假道‘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8. 446~448쪽에서 譯者는 訓民正音을 ’한글‘이라고 번역했다. 호머 헐버트의 原書가 언제 완성됐기에 ’한글‘이라고 번역했는지 의아하다. 이 책 이곳저곳에 무수히 나온다. 18-1. 헐버트 박사가 한국사를 탈고한 것이 1905년으로 알고 있는데...이때는 한글이란 용어가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450쪽...端宗이 협박에 못 이겨 叔父인 首陽大君에게 國璽를 넘기는 과정을 보면 450여 년 후 高宗이 伊藤博文과 親日勢力(臣僚)들의 脅迫에 乙巳勒約을 締結하고 終局에는 國權마저 피탈되는 모습이 겹쳐진다. 19-1. 개인이든 國家이든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탱할 없는 史實을 보여준 悲劇이다.
20. 472쪽...男女가 內外하도록 하고, 473쪽...服飾에서도 身分差別(區別)하도록 한 모습에 나라가 점점 퇴보하는 한 장면을 봤다.
21. 448쪽...文宗의 短命, 474쪽...仁宗의 短命이 儒敎(性理學)의 형식에 너무 執着해서 생긴 일이라는 史實에 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22. 485쪽...1575년, 仁順王后 逝去 이후부터 백성들에게도 喪服을 착용하도록 한 조치...가뜩이나 고달픈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굴레를 씌웠다는 지배층의 强要가 조선사회를 또 후퇴시켰다.
23. 503~504쪽, 왜군이 침략하니 東萊府使 宋象賢처럼 결연히 맞서 抗戰 장수(관료)은 별로 없고 李珏이나 李鎰처럼 싸울 생각보단 도망치거나, 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기에 連敗를 하였으며 짧은 시간에 都城까지 함락되는 烏合之卒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23-1. 509~510쪽, 왜군을 상대해서 전투를 하기보다 도망하기 급급한 朝鮮軍 將帥들을 보면 無防備 상태로 黨派싸움에만 혈안이 된 爲政者들 모습과 많이 겹친다.
24. 譯者는 번역하면서 語法도 틀리게 하였는데 여러 곳이었다...例示하면, 516쪽 副題 ’한양에 남은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키다‘라고 했다. ’...봉기하다‘라고 했어야 했다. ’蜂起‘라는 말 속에 ’(벌떼처럼) 일으키다’의 뜻이 있는데 거듭 표현했기 때문이다.
25. 527쪽, 일본군이 都城을 점령한 다음 바로 北進하지 않고 얼마간 머물렀다는 내용을 보면...庚寅事變(6·25사변) 때 北傀軍이 서울을 점령한 다음 바로 南進하지 않고 3일 동안 머물렀던 사건과 겹친다...양쪽 모두 朝鮮軍과 국군(연합군)이 防禦線을 構築할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25-1. 한편으론...壬辰倭亂 때 日本軍은 釜山浦(남쪽지방)에서부터 진격을 하여 임금이 있는 漢陽까지 시간이 걸렸고, 결과적으로 패전으로 이어졌던 바...시간이 흘러 조선말, 일본군이 再次 조선을 침략할 때는 都城과 가까운 江華島와 濟物浦로 진격하였고 얼마 후 漢陽까지 점령하여 임금과 관료들을 바로 볼모로 하고 劫迫하는 작전을 편 그래서 終局에는 倂呑까지 한 면은....日本의 입장에서 300여년 전(임진왜란)의 실패를 교훈삼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26. (이후에도 계속 나오지만) 520, 521, 523, 530쪽에 익히 널리 알려진 일본군 將帥 이름이 여럿 나오는데 표기가 일본어 발음으로 했다. 과연 原著者의 原文에도 이렇게 표기했는지 의문이다. 앞서 記述한 내용에서도 그렇지만 역자가 恣意的으로 오늘날 표기 방식으로 바꿔 변경한 履歷이 있기 때문이다. 26-1. 그런데 명나라 將帥를 포함 사람들에게는 전부 한자어 표기를 했다. 일관성도 없고 矛盾이고 번역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27. 546, 549쪽...왕과 함께 피란 중이던 領議政 柳成龍이 백성들에 本意아니게 거짓말하는 장면도 나오고, 王에 대한 背信感에 백성들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王에게 먹일 ...어렵게 구한 食糧을 약탈했겠는가...하는 생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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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을 찾은 많은 외국인들이 미개하고 게으르다는 눈길로 조선을 보고 있을때
하지만 우선 저자의 역사관은
자신이 살아가는 그 당시의 눈으로 천년 전 역사를 갈음하는 방식은 현재의 우리도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이니까요.
특히 그 자체의 역사서가 모두 소실되어 다른 나라의 사서에 많이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고대사에 대한 서술은 좀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해보입니다. '성정이 거칠고 사나왔고 도둑이 들끓었던, 중국대륙의 호의를 무시하고 불필요한 도발과 정복 전쟁을 일삼았던' 고구려에 대한 서술과 '관대하고 공정한 나라라서 국가 발달 과정에서 무력을 거의 쓸 필요가 없었다..'는 신라에 대한 서술은 마치 소설과도 같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건국한 이후로도 마한이 계속 존속했다는 점이나 ,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내용들도 충분히 있습니다만,
위에서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했는데요. 역자 서문에 있듯이 이방인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소설처럼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