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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조금 재수없는 리뷰가 될지도 모르겠다.
2007년 초반 즈음인가...본사 직속의 어떤 부서로 전배를 간 후에, 처음으로 회사 생활에서 대인관계의 불편함을 느낀적이 있었다. 그 당시, 궁여지책으로 집어들었던 김형경씨의 '천개의 공감'을 읽고 난 후 거짓말처럼...소극적인 마음을 접고...더 도도해지고, 건방져졌으며, 오만해졌다.--;; 문제의 원인을 발견했으니, 이를 해결하고 밝고 맑은 회사생활을 해야 정상적이나... '분명 타인도 비슷한 고민이 있을 것이다'라는 가정하에...이를 멋지게 악용하여, 다른 사람의 비슷하게 겪는 불편함을 은근 즐겼기 때문이다.--;;
다시금 이 작가의 책을 집어든 이유는, 내 이별이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과, 또 뭐 욹어 먹을 것이 없나 살펴보기 위한 천박한 마음으도 약간은 있었음을 밝힌다.
책을 읽으면서...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순간에서 약간은 현명했었음에...슬그머니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감정은...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에서는 이별에 대한 애도,에 대해서만 말하지만...나는 좋고 기쁜 감정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감정이든...일단,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그닥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잘했던 것은, 슬플때는 배가 고플 정도로 울었고, 기쁠 때에는 유난 법석을 떨면서 기뻐했고, 화가 날 때에는 쳐죽일 것 처럼 화냈으며, 마찬가지로...누굴 사랑거나 좋아할 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온힘을 다 짜내서 사랑하고 좋아했다. 미련없이 감정에 충실하고 나면...다시 멀쩡한 상태로 되돌아 오기 쉬웠기 때문이다. (책에는 이렇게 유난 떨라고 나오지는 않는다. 감정을 인정하고, 애도하고, 놓아주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이별이 아니라, 좋아하는 감정을 예를 들어보자. 좋아한다,고 말을 못하면...맘속으로 끙끙 앓게 된다. 그렇게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은 집착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그 집착으로 인한 이별에 대해서...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흔히 자기 비하, 혹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같은 허접한 감정으로 남는다. 생활이 건강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했던 감정을 좋다고 표현하고 행동했던 사람은...훗날 겪는 이별에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게된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자기를 비하할일도, 상대방을 증오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책 이야기를 하면... 많은 종류의 이별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이야기한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이별과 겪어왔던 이별에 대해서...마치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처럼 이런 저런 문학 작품에 빗대어 이야기하는데...어떤 부분은 살짝지루하기도 하고... 잠깐씩 소개된 책이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애도의 process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나름의 내공이 있는 상태에서는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대신에, 문학작품 읽기, 글 쓰기, 밖으로 나가서 좋아하는 것 즐기기, 관계 맺기, 추억의 장소를 찾아다니며 이별을 인정하기(청승떨기가 아님) 등은 여러모로 좋은 행위임을 새삼 느꼈다.(-->자랑은 아닌데, 이런 일들은 내가 열라 잘하는 일들이다.--;;)
처음에, 전반적으로 재수없는 리뷰가 될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다름 아니라, 나에게는... 그닥 새롭게 와 닿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이런 저런 많은 감정의 모험을 겪으며, 나이만 먹은 건 아니기 때문이렸다.--;;
덧붙임. 본의 아니게 은근 잘난척 리뷰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거짓말도 할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겸손의 미덕까지 겸비한 리뷰를 쓸 재주도 없으며, 그만한 그릇도 되지 않는다.--;; 종종 인색한 별 때문에...작가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근사하게 잘난척 하며 또라이 짓을 했던 건... 그 옛날 싸이월드 하나로 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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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내겐 참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름이다. 같은 과 선배님이자, 여성 작가들 속에서도 나름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분.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에서 시작해 '세월'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녀의 글쓰기가 청춘의 처절한 싸움이라 여겨졌었다. 특히 3권에 이르는 장편 '세월'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숨이 멎을듯 전해오는 고통에 식은 땀을 흘리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근 10년 만에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애도 심리 치유 에세이라 명명한 이 책은 사람을 이해하는 폭넓은 시각으로서의 의의가 각별하다. 부시 대통령과 히틀러의 예를 통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이유를 상실과 아픔, 나름의 애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람이나 사물과 이별하는 방식,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 방식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분노하고, 목놓아 울고, 죽음을 생각하고, 빈집에 자신을 유폐시키고, 그러면서 화해하고, 용서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애도하기라고 했다. 나는 이 애도 개념을 작가 김형경이 이해하고, 폭넓은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 혹은 주위의 지인들을 통해 애도하기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작가 스스로도 자살을 꿈꾸며, 스스로 빈집에 자신을 가뒀다고 했다. 애도하기의 요체는 슬픔하기에 있다. 하지만 그 슬픔을 치유하고, 이겨내기 위해 홀로 분투하는 것보다 지인이나 다른 사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가 김형경은 아버지의 죽음, 외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상실의 순간을 경험했고, 시간이 흐른 후(애도 개념을 배운 이후)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애도의 시간을 필요로 했음을 알게 된다. 사실 난 김형경 작가의 근원적인 상실, 아픔, 고통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아물고, 다져졌을테지만 '세월'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부분이 바로 그녀의 아픔이다. 다행인 것은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안정을 되찾았으며, 자신의 아팠던 과거를 애도하며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13살 근원적인 폭력의 힘에 상처받았던 그 시절을 애도하며 그때를 이해하고, 그 아픔을 이겨나갈 수 있는 나름의 힘을 얻었다. 20여 년을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의 사건은 악몽처럼 되살아나곤 했었다. 세상 모든 교사들을 불신했고, 심지어 학교 선후배, 직장 선후배와 같은 기본적인 관계 맺음을 거부하기도 했었다. 여전히 치유하기엔 그 상처가 크지만 김형경이 써내려간 다양한 애도하기를 통해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슬픔, 아픔, 이별, 상실에 대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많은 분들에게 이 책을 조용히 건네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들에겐 다양한 아픔이 존재하고, 다양하게 애도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래서 애도하기는 좋은 이별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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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너무나 할 얘기들이 많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많은 상실과 이별의 아픔들에 대해서, 하지만 지금도 솔직히 말하는 것이 두렵다. 아직도 이별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럽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김형경 작가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별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이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이별도 사랑만큼 오래된 일이고 삶의 중요한 요소일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랑에 서툴듯 이별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예 이별이라는 경험을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으며, 슬픔이나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은 감정을 다스릴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는 이별을 삶의 경험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패배의 경험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 역시도 이별을 수치스럽고 드러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 나의 생각을 바꿔준 책이기도 하며, 이별과 상실의 아픔도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이별의 대상도, 상실의 아픔도 모두 다를 것이다. 이별의 대상이 부모나 형제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다른 추상적인 것이나 사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두 번의 이별을 겪었다. 내 20대의 모든 청춘을 다 바쳐서 사랑했던 한 사람-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도 결국 끝이났다. 그 이별 후 나는 '사랑' 자체를 부정했으며, 자기비하, 증오심, 다른 대상에 대한 집착, 자폐적 성향까지 보였던 것 같다.
그 일례로 어느 순간부터 미친듯이 책을 사기 시작했다. 카드값이 한 달에 책값으로만 100만원 이상 나왔었다. 그 당시에도 나는 내 자신에게 의문을 가졌었다. 내가 이전에도 이렇게 책을 많이 샀던가? 대답은 '아니다'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잠시 뿐 - 나는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으니까, 책을 사랑하니까 - 이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집착에 가까운 소비행태를 버리지 못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 문득 수집 취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지나다닐 공간만 겨우 남겨둔 채 화분으로 집 안을 가득 채우는 사람, 시계만을 집 안 가득 모으는 사람 등등 기이할 정도로 집착한다. 사물들은 멋대로 떠나버리는 대상보다 더 쉽게, 더 잘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133Page
그러고 보니, 그렇게 미친듯이 책을 샀던 시기가 '2007년 경'부터였다. 내가 이별을 경험하고 얼마 안 되서 였다.
그리고 그 당시 내 일기장에 써 있던 한 구절은 그때의 내 심리상태를 잘 대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나를 배신할 수 있지만, 책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손만 뻗으면 언제든 내 곁에 머물러 있다."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었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고, 또 표현함으로써 나약한 내면의 세계와 마주보는 것도 두려웠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잠자리에 들 때 소리죽여 우는 것 뿐이었다.
「이별 후에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 당사자에게 필요하고 정당한 반응이다.」28Page
그때의 그 집착과도 같았던 내 행태는 이별과 상실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비록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책을 샀지만,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내 내면에서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상처들이 아물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군상, 그들의 감정 표출, 또 눈물 흘릴만큼 슬픈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그걸 구실로 울었던 기억도 난다.
애도는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질이며, 상처 입은 곳으로 돌아가 그때 충분히 슬퍼하며 울지 못한 울음을 다시 우는 작업이라고 한다. 36Page
「"애도는 새로운 자기 체험이 생겨날 수 있게 한다. 충격 받은 사람의 삶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새로운 자기와 세계에 대한 체험을 이루게 하는감정이다."
독일 심리학자 베레나 카스트의 책 <애도>의 한 구절이다.」37Page
또한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상실과 이별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무뎌졌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아마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 중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망각"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잊어버리고, 그 빈 공간에는 반드시 새로운 것들로 채워질테니까...
그렇게 내 생애 첫 번째 이별을 경험한 후,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두 번 다시 사랑같은 건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새로운 사랑이 나에게 찾아왔고 여자로서 적은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만나는 순간부터 '마지막 사람' '마지막 사랑'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이 사랑마저도 나에게 큰 상처만을 남긴 체 사라졌다. 작년 말쯤이였다. 한 번의 이별경험을 잘 치뤄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한 동생이 찾아와서 요즘 무슨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마 몇 번이고 그 동생이 나에게 찾아와서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때도 이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두려웠고 수치스러웠다.
'왜 내가 하는 사랑은 다 이렇게 끝나는가'에 대한 피해의식이 굉장히 컸었다. 동생의 집요한(?)물음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언니, 그렇게 피하려 하지말고 마음의 문을 열고 좀 털어놔봐요." 이 한마디에 나는 술술술...내뱉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동생은 진지하게 내 얘기에 귀기울여 주며,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그렇게 바람나서 나를 떠나버린 사람인데, 내 가슴에 이렇게 커다란 구멍을 낸 사람인데 나는 바보같이 그 사람이 보고싶고 그립다."
부끄러워서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했을 때 조차, 그 동생은 이해해 주었고, 상실의 고통을 함께 해주었다.
"언니, 다 그래."
그날 저녁 동생과의 얘기는 분명 많은 힘이 되었다.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혼자 끙끙 앓고 잠들 때마다 수없이 베갯잇을 적셨던 날들은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고립되려 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동생들과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내 가슴속에서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 사람과 함께 행복해 했던 과거의 내 자신도 떠나보냈다.
「가장 중요한 일은 떠난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는 일이다.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면 실연당했다는 사실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실연은 하나의 관계가 끝난 것일 뿐, 존재 전체가 거절당하는 일이 아니다. 죽은 부모가 소가 되어 돌아왔다고 잠시 믿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조차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한다.」68Page
다른 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통과하는 것뿐이다. - 헬렌 켈러
「실연,이혼,질병 등의 상황에서 우리는 의외로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 보기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치심은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타인은 우리를 판단하거나 평가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긴다. 그것은 나의 특별한 경험일 뿐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었을 즈음, 학교 선배오빠와 통화할 일이 생겼다. (한 때 같이 고시공부를 했었는데, 그때 당시 고시생으로서 느꼈던 절박함과 외로움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며 함께 나누었던 선배오빠다.)
이런 저런 세상사(청년실업,최저임금 etc)에 대해서 얘기하던 중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래도 너는 시집가면 되잖아. 남친한테 시집이나 가."
"오빠, 나 헤어졌어."
".... 왜 헤어졌는데" 대충 '나의 사정'얘기를 하니,
"네 사랑은 죄다 바람으로 끝나냐?"
"ㅎㅎ"
쓴웃음 반, 약간은 자조적인 웃음으로 화답했던 것 같다. 아직도 완전하게 치유됐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단지 김형경 작가님의 책을 통해서 이별이든, 실연이든, 어떤 유형의 상처든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쩌면 반복적으로 겪어야 할 삶의 일부이며, 한 과정이라는 것...그것만으로도 지금 나는 홀가분하다.
ps : 그래도 개인적으로 다행인 것은 내 상실에 대한 상처가 폭력과 원 나잇 스탠드와 같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이나 약물중독, 자기학대, 공격성으로 확대되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이 책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독서를 통한 자폐적 성향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은 어느 정도 극복을 통해 (일요일은 청년부 예배에도 참석하고, 각종 동호회 활동도 하고 있다.)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독서를 하려고 노력한다.
독서는 콜린 윌슨이 그랬던 것처럼,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한 탐구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독서는 편안하지 않은 현실을 피해 숨어드는 내밀한 자폐 공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229Page
그 밖에 이 책에선 문학작품을 통해서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심리,정신분석+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결과를 쉽게 설명해주고있다. 나중에 여기에 등장한 많은 작품들을 읽을 기회가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동안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했던 반감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먼 과거 어느 공간, 어느 시간 속에서 해결되지 못한 아픈 상처와 또 그 상처에 대해서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지나왔기 때문이라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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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별 뿐만 아니라 연인이나 익숙한 사물, 상황과의 이별 등 모든 애도에 대한 심리치료 에세이이다. 이분야 권위자들의 연구 내용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전혀 어렵지 않기에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 있는 사람도 편히 읽을 수 있다.
또, 각 장마다 좋은 시구, 소설 장면이 언급되어 있어 가슴을 친다. 기형도 시인의 <빈집> 중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갖혔네'란 대목이 왜 나를 그리 지배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가족과 사별하거나 연인과 이별하거나, 모든 애도의 상황에 스스로 자신을 마음의 감옥에 가두어 놓고 지금도 그 문고리를 못 찾고 혼자 울고 있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어떤 이별도 '좋은 이별'일 수는 없겠지만,,,
내게는 도움이 되었다. 나의 인성을 변화시킨 내 인생의 중요한 사건을 추려본다면 단연 1위는 17세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일이다. 그 이후 난 아버지 대신할 사람을 구해 의존하려는 나를 채찍질하며 지나치게 독립심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웃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아버지의 부재 자체로 인해 발생한 문제보다 부재 상황에 반응한 내 자신이 엎질러 놓은 문제 수습이 더 버거웠었다. 그 버거움도 이 책을 읽고서야 깨달았으니, 원.
이런 책을 20살 때 만났더라면 정말 내가 조금 더 편히 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쨋거나, 나는 빠져 나온 것 같다. 책들과, 영화와, 좋은 사람들 덕분에.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이제는 내가 돕고 나누고 싶다.
***사족 1 12세 때 어머니와 사별한 내 친구, 아직도 새벽 4시에 삶이 힘들다는 문자보내는 친구에게 이 책을 보내주었다. 이 책 내용에 12세 이전의 사별의 심각성을 언급한 내용이 있는데, 그녀가 평온해지길 빌 뿐이다. 2 뻔한 내용 있을까봐 구입하고 읽지 않았던 책을 이번 어머니 수술 때 가져가서 대기하면서 읽었다. 이 심리 뭘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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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잘 하는 법. 떠나간 이를 온전히 그리워하고, 또 온전히 보내주는 법. 생각해보면 우린 그런 일들에 너무 서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그 수많은 이들을 과연 정성을 다해 해내고 있는 것일까요? 최근까지 심리학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어떤 유행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에 대해, 또한 타인의 심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왜 사람들이 갑자기 심리학이란 다소 어려운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까요. 저는 그것이 혹시 너무 외로워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내 자신이 타인처럼 느끼고, 타인은 그야말로 벽처럼 느끼며 살아가는 세상.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온전히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책은 이별에 대한 작은 배려처럼 보입니다. 커다란 상실을 간직한 채 마냥 헤어 나올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한, 그리곤 그 이별에 영영 빠져버린 이들을 위한 작은 안내서. 저자 역시 많은 이별을 겪고, 그 이별 속에서 아파하고 좌절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러한 친절을 베풀 수 있었겠죠. 살다보면 누구나 이별을 합니다. 연인이건 가족이건 친구건, 아니면 애완동물이던. 우리는 끊임없이 누구를 만나고, 또 보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어쩜 그런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을 제대로 돌아볼 새 없이 해치우는 것은 아닐까요. 때문에 우리는 서툽니다. 이별을 겪고도 그것이 이별인 줄 모르고, 소중한 사랑이 떠난 후에야 소중함을 알죠.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한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그 순간순간 깨우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힘든 일 같습니다. 애도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새롭습니다. 짜여진, 정해진 절차가 아닌 마음에서 진정 우러나오는 마음. 진심을 다해 그리워하고 보내는 마음. 그것이 애도라는 생각을 합니다. 진정한 애도. 과연 그것을 제가 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전 울보입니다. 대책 없는 녀석이죠. 영화를 보다가, 드라마나 책을 보다가, 아니면 음악을 듣다가도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별수 없는 구성원입니다. 될 수 있다면 몰래, 혼자 그렇게 울곤 했습니다. 창피하다고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책을 통해 제가 울보라는 사실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만약 눈물 한 방울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아니 살아가야 한다면…. 전 솔직히 자신이 없거든요. 그렇게 억세게, 강한 척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어쩜 끝없이 애도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 과정을 온전히 소중히 진행할 수 있다면, 보다 더 큰 시련이나 아픔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게 모든 것이 쉬우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히틀러의 독수리 요새 이야기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히틀러라는 인물은 주로 전쟁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해왔거든요. 히틀러 개인을 찬찬히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안전한 공간. 산속으로 수평으로 굴을 뚫고 들어가, 산 한가운데서 수직으로 백 미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단단한 돌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독수리 요새. 그는 그토록 견고한 요새를 짓고 그 안에서 평온함과 안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으로부터의 안정을 원했던 것일까요. 소중했던 그 무엇과 이별한다는 것. 결코 쉽지도, 단 칼에 이뤄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막거나 피할 수 없습니다. 그 예정되어 있는 아픔을 이젠 보다 담담히, 아름답게 맞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폭넓은 공감의 이해를 넓히려 한 저자의 생각은 어느 정도 성실한 결과를 주는 것 같습니다. 보다 많은 이별을 향한 무섭지만, 피할 수 없는 길에, 위안이 됩니다. 그동안 저를 떠나간 모든 것들에 대해 그리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시 만날 모든 것들에 미리 인사를 전합니다. 더불어 그 사이 떠나간 내 청춘에게도 안부를…. 함께 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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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점철된 인생에서, 이별은 예상가능하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비현실적인 일처럼 문득 다가오기도 한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아마 그렇게 다가오는 이별의 순간일 것이다. 그 어려운 ‘이별의 순간’엔 오히려 담담해하면서도, 이별의 예감만으로도 그 저릿함에 가슴이 떨려오는 증상을 겪는 사람도 있고, 상실이라는 현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슬픔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긴 기간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며, 냉정함을 가장하여 아픈 이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상실을 겪어내며, 사람들은 그저 살아간다. 그의 상실이 그 인생에 어떤 모습으로 영향을 끼치는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무심한 시간은 흐른다.
특히 성장기에 상실을 경험하고 그 상실감이 보살펴지지 못해 나타나는 왜곡된 정서는 성격의 일부로 굳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 시기의 상실이 문제가 되는 건, 아이들이 그 경험을 이해하거나 애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인이 되어 심각한 어떤 문제와 맞딱뜨리는 핵심에는, 늘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한 과거의 상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책, <좋은 이별>은 그런 <서툰 이별>로 치유되지 못한 앙금을 안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에세이이다. 만남의 찬가와 사랑의 달콤함, 혹은 이별의 쓰라림에 익숙한 사람들, 그래서 이별을 단지 상실의 개념으로만 인식하온 일반인들에게, 이별 이후의 과정, 상실의 다음 단계인 애도의 과정이야말로 치유와 성장의 핵심이고 이별의 완성임을 전방위로 설명해 주는 책이다. 좋은 이별이란, 무언가의 상실로 오는 슬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상실 이후 일련의 애도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자아성장의 밑거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잘 슬퍼하고 잘 떠나보내는 애도의 체험은, 새로운 질서와 체험을 부여하여 남은 삶에 정서적 성장과 발달의 도구가 된다는 얘기다.
쓰거나 읽거나 말하거나 하는 자기 표현법은 애도에 큰 도움이 된다. 작가는 간접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행위로 독서를 꼽는다. 작가 자신에게 독서가 훌륭한 애도 방식이었다며, 독서를 통해 억압해둔 내면의 감정들과 접촉가능 했다고 한다. 독서 역시 애도의 한 가지 과정인 것이다. 이 책의 소제목들은 모두가 어떤 책의 한 구절이며, 김형경 작가는 문학작품 속에서 그 작가의 삶의 애도를 읽어낸다. 작가는 자신도 애도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독서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며, 이 외에도 다각적인 애도의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용서하지 않을 자유, 용서 할 수 있는 용기
애도의 과정을 돕는 여러 가지 팁 중에서 이 단락이 눈에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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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갓 넘었을 때, 서른 갓 넘은 분으로부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을 들어 봤냐는 물음을 받았다. 얼핏 들은 것 같다고 답했더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특히 이 나이가 되니까 더 절절해진다 했다. 하여 한번 들어보았으나 당시에는 깊은 감흥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서른을 넘기고 들어보니 나 또한 절절해진다. 첫 소절과 마지막 소절 사이에 족히 책 한 권 분량의 삶이 녹아 있었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형경의 <좋은 이별>을 덮자 ‘서른 즈음에’의 노래가 귓가를 울렸다. 그래, 우리는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었어. 잘 돌보지 못해 죽어버린 화분과도, 창 너머 스러지는 노을과도 손을 흔들고 있었군. 그러고 보니 세상은 이별투성이였다. 이별투성이인 세상에서 시종 희희낙락하는 사람들도 이별을 피해갈 순 없다. 작게는 소소한 만남과, 크게는 삶과 죽음을 경계로 이별하며 살고 있다. 다만 그들은 좋은 이별을 하기 때문이다.
표지에 실린 우창헌의 ‘에메랄드의 저녁’이란 그림이 책속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별에 앞서, 아니면 이별 후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면 보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떠나보낼 수도, 내 삶의 안정을 찾을 수도, 이별 또한 생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용운님의 시처럼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고 떠날 때는 다시 만날 것을 믿'는 듯한 느낌이랄까? 다시 만난다는 의미는 꼭 연인으로서가 아니어도 좋다는, 그저 상대의 체취(존재감)로 안온을 찾을 수 있는, 결국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만이 잘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차라리 서로에게 스미고 싶었던 무모함, 과연 우리는 오늘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까. 두 삶이 교차하는 지점은 사랑인 동시에 이별인 것을. 적당한 거리에서 까맣게 잊은 듯이 널 기억할래. 그래, 우리 헤어질 때는 더 격정적으로!
어렸을 적, 돌아가시지도 않은 할머니의 죽음을 걱정했었다. 연세가 많았으니까. 허나 할머니와의 이별보다 형과의 이별이 더 빨랐다. 이별은 이렇게 예기치 않게 오는 거라는 것을 배우기엔 어렸고, 이렇게 힘든 줄도 몰랐다. 어렴풋이나마 상대나 나를 위해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가는 게 헤어짐의 연속인데, 그 헤어짐에 익숙해질 필요는 없지만 낯설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아직 서툴게 이별하는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김형경 작가가 펜을 들었다. 이별 앞에 놓인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와 치유과정을 읽다보면, 결국은 강물처럼 상처를 흐르게 하는 것이 ‘또 하루 멀어져’가는 좋은 이별의 처세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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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만남과 이별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순간순간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이 삶이다. 물론, 사람마다 어떠한 일이나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별은 무겁고, 또 어떤 이별은 가볍다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신에게 비춰 남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고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 또한 문제겠다. 이 책 <좋은 이별>에서는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 김형경씨는 다방면의 풍부한 독서경험과 다년간의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이별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양상, 그리고 극복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별의 아픔에 어찌할바를 모를 이가 주변에 있다면, 아니 자신이 그런 상황속에 있다면 읽어봄이 마땅하겠다.
잘 이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은 지금에 와서도 잘 이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자신을 소중히 하고,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해 정당하게 생각한다면 적어도 나름의 위안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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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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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점에 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지나 제목 때문에 손이 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리고 표지에 혹은 제목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덥석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오랜만에 그런 책을 만난 것 같다. 누구나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랑과 반대되는 단어는 무얼까? 아마도 이별이 아닐까? 그렇다. 이별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이별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별은 죽음 다음으로 슬픈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게 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거나 생기기 마련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슬픔이 마음을 휘저어 놓을 때가 있다. 바로 이별을 했을 때가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가도 이별이 다가옴을 느끼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방어자세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을 말이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그런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심리적인 분석으로 풀어놓은 것이었다. 「좋은 이별」이라는 제목이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표지도 참 마음에 들어서 이 책에 더욱 궁금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기 싫은 것이 헤어짐과 이별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이별과 애도로 말미암아 마음에 상처나 상실감 혹은 우울증 등 많은 현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헤어짐 혹은 이별은 언젠가는 찾아오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별을 충분히 느끼고 슬퍼할 일은 슬퍼하고 애도라는 것에 대한 진정함을 느껴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 눈길이 가는 점은 심리학적인 분석으로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별은 때론 잔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받아들이고 느낀다면 오히려 자신을 더욱 성숙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별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이별이라는 아픔과 고통도 느껴봐야 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죽음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릴 때 자신에게 일어난 슬픔이나 충격적인 이별 혹은 죽음에 대한 상실감은 평생 간다는 점과 몸도 자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정으로 몸이나 생각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단지 이별에 대한 심리적인 분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즉,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별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고 노력하며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이별과 아픔과 슬픔을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이 책은 첫 장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별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언급하기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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