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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죠? 뭐가 현실인가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현실인가요? 여기 있는 내가 현실이에요?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 거죠?
-자네가 믿고 싶어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이 소설의 주요테마를 매김질하는 결정적인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다. 현대인의 정서를 이야기하고 싶어 못견뎌하는 신예작가의 환각과 허구의 세계를 현실화하는 작업,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듯하다. 인간의 기억장치를 매개로 일상인 줄 알았던 일이 사건으로 비화되는 기괴하고 엽기적인 과거사가 현실의 목을 죄어온다. 환각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현실과 구분이 잘 되질 않는다.
책표지의 그로테스트한 여인의 모습은 잘 보면 까칠한 수염도 나있고 외관이 넓고 둔탁한 형상으로 보아 남자임이 분명하다. 이름 또한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닥터 팽" 그는 주인공인 나, 김종수의 정신담당의이다. 검은색 홈드레스차림으로 나타나서 세일러문의 코스프레도 보여주고 반지의 제왕의 흰수염 간달프로도 변신하는 지극히 호머섹슈얼에 가까운 이미지에 성도착증까지 보이는 문제적 허구의 인물이다.
주인공 나, 김종수는 여고에서 세계사를 가르키는 교사이다. 어린시절 잔혹한 가족 비극사를 제법 현실적으로 꾸며댄 환각속에 사는 현대인의 본보기로도 보인다. 그의 말과 행동은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사실인지 구분이 안된다.
주인공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들과 엮인 대부분의 상황사건들은 뇌속에 잠재되어 있던 정서의 부재, 결핍, 혼돈, 분노가 만들어 낸 총체적 환각종합선물세트라고 생각하면 적합하지 않을까?
정수연, 여고생으로 S대 진학을 준비하는 모범생이다. 과도한 학구열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묘사하려고 했을까? 수연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과거에 저지른 주인공의 행적보다 작가는 시간차가 다소 가까운 부분에 치중하고 싶었던게다.
작가는 뭔가 들려주고 싶어하고 뭔가 말하고 싶어한다. 시간적 공간적 개념을 넘어선 비약의 단계로 허구와 현실의 지점을 뭉개버리는 과감함도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자꾸 헷갈린다. 사이코패스격의 영화를 종종 봐서인지 글을 읽으면서도 스스로 만들어낸 영상에 빠지기도 한다.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의 모티브를 모방한 듯 불탄 검은 집의 연탄창고, 시멘트벽의 불쑥 튀어 나온 비정상적인 형상, 그 안에 들어 있는 오래된 과거의 시체 두 구.
이 소설에 인간사의 기본바탕인 희로애락의 기특한 이야기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현대인이 찾고 싶어하는 기억들, 그게 허구의 기억인지,환각의 세계인지 구분 자체가 묘연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억속에서 버리고 싶은 부분,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 돌이키면 비수로 가슴을 찢기는 통증을 일으킬 것만 같은 부분, 그게 모두 진실이라는 거다.
환각과 허구로 이루어진 스토리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방식이 돋보인다. 그래서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고 기억속의 남아있을 허구와 환각을 정리해보는 일종의 자가 정신분석도 체험해보았다.
그렇다면.....당신도 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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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문학상은 처음 들어본 거라 손이 갔다. 표지에 써 있는 당신의 기억은 안전합니까 라는 물음에 나도 사실 건망증이 심한 터라.. 게다가 표지의 그림이 넘 이상해서.. 읽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림 만큼이나 처음엔 내용이 잘 연결이 안되면서 잘 읽히지 않는다. 조금씩 나아가다보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앞에는 이름도 독특한 닥터팽이 나오면서 이게 조금씩 허구라는 게 짐작이 되고 주인공의 행보와 성격과 현 상황이 아하 그렇군 하면서 아귀가 들어 맞는다. 딱히 재밌다고는 말 못하겠다. 완전 몽환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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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괜찮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할 권리 정도는 주어지지 않던가. 설령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 해도 그 정도 자유는 누리고 살아가야 마땅하다 싶은 게 또 세상살이며, 척박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고 온전한 진실을 왜곡할 수 밖에 없는 이의 어쩔 수 없는 발버둥은 또 오죽할까. [오즈의 닥터]는 벗어나고 싶은 기억과 재구성하고 싶은 기억을 한데 모아 환각처럼 들려주는 독특한 설정과 구성의 소설이다. 주인공은 크게 셋. 이전에는 사립여고 세계사 교사였으나 지금은 정체가 불분명한 김종수, 그의 정신과 치료 담당 의사 닥터팽, 김종수의 제자이자 그를 마녀사냥이라는 덫에 가두었던 미성년자 정수연이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마치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을 향해 달려가는 퍼즐 맞추기 놀이의 최후처럼 목표가 분명하지만, 기어이 맞추고야 만 퍼즐 조각의 끝에서 우린 시원함보다 찝찝함을 느낀다.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각일까.
모든 것은 김종수의 현실과 환각이라는 양면에서 움직인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의 죽음에 얽힌 기억들을 정신과 의사 닥터팽에게 쏟아붓는 주인공.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는 세상이지만 보이는 것만 옳다고 믿자니 폐해가 너무나 크고, 반대로 하자니 현실과 환각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엄연히 말해, 환각은 거짓이 아니다. 허구나 환상은 상상이나 공상 속에 자리하는 거짓이지만, 환각이란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분명한 진실이다. 환각과 환상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환각은 진실이 아니란 점에서 환상과 닮았지만, 당사자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는 환상과 다를 바 없는 거짓이지만, 당사자에게만은 진실이다. 주인공 김종수는 자신의 겪은 가족의 죽음이나 마녀 사냥의 희생자가 된 일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환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왜곡된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연탄광에서 발견된 생물학적 아버지와 호적상 아버지의 시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진실은 그저 우리의 상상 속에서나 기능한다. 이 소설 진짜 대단히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기억은 도대체 얼마나 왜곡되고, 사라지며, 저장되는 걸까? 과연 내가 기억하는, 진실이라 믿는 모든 현실을 진짜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믿는 현실이란 지금 이 순간조차도 거짓인 게 아닐까. 만약 우리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환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거라면 21세기 현재, 우리를 힘들게 하는 요인들은 과연 무엇일까? 81년생의 작가가 던지는 신종 사회문제들과 각종 개인문제들을 한 번쯤 더듬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존재는 반갑다. 괴기한 모습을 한 닥터팽은 단지 김종수의 의식 속에만 등장하는 환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실보다 거짓에 익숙한 사람들. 현실보다 환각에서 더욱 행복한 사람들. 우린 언제나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뚱아리조차 시멘트와 함께 굳어버려 진실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세상. 활활 타오를 때는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던 연탄광이 모두의 비극적 공간이 되어버리는 사실. 이 모든 것이 21세기 현대사회의 병마를 의미하는 거라면, 우리가 원하는 진실은 과연 언제 모두의 세상으로 도래하게 될까.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여전히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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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팽, 당신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각일까. 겉표지의 그림처럼 닥터 팽의 요상스런 복장과 모습은 더욱 이상한 환상세계로 빠져 들게 만드는것 같다. 며칠전에 본 영화 <셔터 아일랜드>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그 영화 역시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환상인지 조금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는데 이 소설 역시나 닥터 팽과 나누는 김종수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그가 즐겨 먹는 비타민제를 먹고 난 후의 환각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에게 목이 부러져 죽은 누나나 폐가 썩어 죽은 엄마가 있기는 있었던 것일까. 닥터 팽과 나누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뒤죽박죽된 진실 속에서 어떤 것이 진실일지 궁금하다. 그래서였을까 앞부분은 별 흥미를 끌지 못하다가 소설을 읽어나가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닥터 팽’ 만의 마력이 숨어 있는 소설이다. 앞부분은 약에 의한 환각이나 김종수,세계사 선생이었던 그가 어디까지 진실인지 숨겨진다. 하지만 뒷부분에서 서서히 들어나는 진실,닥터 팽이라는 정신과의사조차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지 허구의 인물인지 의심스럽다. 김종수 그가 살던 집이 불로 완전히 폐허가 되고 그의 집에 있던 연탄광에서는 사라졌던 소녀 ’수연’ 이 발견되고 연탄광이 이상하게 생겼다는 의심을 품은 형사들에 의해 들어난 사체 두구, 그들은 김종수라는 인물의 생물학적 법적 아버지였다. 과연 그들을 죽여 사체를 은폐한것은 누구일까. 김종수란 인물이 그동안 만나서 자신안에 있는 환각,사실들을 토로했던 정신과 의사 닥터 팽은 존재하는 인물일까 그가 그려낸 인물일까. 소설은 사실과 환각 사이를 오가며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닥터 팽,그는 현실이 만들어낸 인물일 수도 있고 김종수란 인물이 환각속에서 만들어 내어 자신의 환각을 정당화 시키려 만든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소설은 재밌다는 것이다. 그의 엽기적이며 변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모습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실소를 자아내게 하다가도 ’살인자 김종수’ 를 생각하면 불운했던 어린시절의 응어리가 만들어낸 정신병이라 불쌍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수연’ 또한 오늘날의 학교와 학생을 들여다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현실인지 환각인지 구분하지 못하며 사는 ’현재’ 를 보는 듯 하여 씁쓸하면서도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작가를 처음 접했는데 글을 풀어가는 능력이 놀랍다. 이 소설을 계기로 작가를 주목하게 된 작품이다. -내게 와서 상당한 건 누구였나? 자네가 말한 건 누구의 기억이지? 아니,누가란 것도 없이 그저 거짓말에 불과했나? -당신은 미쳤어.... -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죠? 뭐가 현실인가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은 현실인가요? 여기 있는 내가 현실이에요?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거죠? -자네가 믿고 싶어 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지. 자네가 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 그게 바로 진실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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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닥터 -이룸-
1회 자음과 모음 문학상 수상작인 오즈이 닥터.. 표지부터가 시선을 끈다.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의상과 한손에 고양이를 들고 있는 표지에 시선이 오래 머물러 있었다.
악어떼가 나왔다로 데뷔후 자음과 모음 문학상 수상 화려한 데뷔 성공적으로 치른 안보윤 작가는 가장 현실성이 없고, 가장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그런 인물을 상상하다보니 닥터팽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진실인지.. 읽어 내려가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법원이 지정해준 이상한 옷 차림의 닥터팽을 처음 만난것은 지하철이다, 성추행 피해자 학생 수연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환상인지 허구성이 드러난다 읽어내려가면서 궁금증이 많아진다고 할까? 그렇게 날 강한 흡입력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종수가 태어나기전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그는 외아들이다. 환상과 현실을 구분해낼 줄 아는 나의 닥퍼팽.. 도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죠? 뭐가 현실이에요... 대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인거죠?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였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어떤것을 말하려고 했는지 나도 모르게 이 책의 매력에 빠졌다. 읽으면서 멍하니 잠시 멈추고 생각한적도 많았고, 실제와 진실을 오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식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를 다시 만나 보았다. 오즈의 닥터 한번에서 끝내는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더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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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오즈의 닥터>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그저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사실과 우리나라 현대소설이며 20대의 파릇파릇한 여작가 안보윤의 장편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 읽게 된 책이다. 이렇다 저렇다 아무생각 없이 읽어내려간 <오즈의 닥터>는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혼란속으로 빠뜨렸다. 도대체 어느것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림의 연속에다 어느때는 완전 반전을 거듭하기도 해서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듬과 동시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즈의 닥터>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3명이다 . 닥터팽, 고2여학생 수연, 김종수란 인물이 번갈아가며 그들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33세 김종수라는 인물이다. 처음엔 너무도 멀쩡해 보이던 그는 갈수록 과간의 인물로 반전하여 다가온다. 세계사 선생님으로 처음에 소개된 김종수라는 인물을 파헤쳐보면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약물중독자인지 정신병자인지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이야기 내내 들려주던 자신의 가족이야기는 모조리 허구이며,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살짝 맛이 간 놈 즈음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수연의 커닝사건을 그대로 믿었던 나는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수연의 말의 사실성에 무게를 싣게 되었다. 또한, 가장 묘한 인물로 묘사되는 변태팽 같은 인물인 닥터팽의 존재가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이 또한 소설을 끝까지 지켜봐서야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오즈의 닥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계속해서 뒤틀어지고, 재배열되고, 반전을 거듭하는 독특한 소설임에는 분명했다. 그래서 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지 싶다. 가장 황당한 건 초반부에 제시된 김종수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모조리 허구라는 사실이다. 그 내용들을 고스란히 믿으며 책을 읽어내려간 나는 후반부의 반전에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의 매력이라면 단연 독특한 구성이리라! 또한, 어두운 유년시절을 지혜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끝내 망가져 가는 한 인물의 이야기로도 지켜볼 수 있었던 책이다. 정확한 결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지막 까지도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어디까지가 환각인지 똑부러지게 설명하지 않아 나 자신이 판단해야 하는 골머리를 살짝 앓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썩 좋아하는 장르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신선한 작품을 만난데에 대한 기쁨은 충분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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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생김새, 나이, 사고방식이 나와 똑같은 또 다른 '내'가 -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심지어 그 사람은 공주일거라며 - 존재할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성장과 함께 종별 다양성등의 이론에 학습되어 가며, 그런 순수한 동화같은 생각은 사라졌지만, 가끔 현실에 치가 떨릴 때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 안보윤도 그런 생각이었을까? 그녀는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희고 검은 네모칸의 반복같은, 매직아이를 해야할것 같은, 바둑판 무늬의 모습이 일어나고 있다. 종수. 그는 세계사 선생님이다. 홍대앞에서 꽤 값이 나가지만 질이 심히 떨어지는 목걸이를 사곤한다. 수연. 우수한 성적의 고등학생. 딱히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여고생이다. 종수. 어릴 적 보험금을 노린 아버지가 뜨거운 물에 빠뜨렸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뜨거운 물에 대한 무한거부증이 생겼다. 수연. 세계사 선생님의 뒤를 밟다가 어느 순간 묶여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종수. 어머니에게 '쪽 팔린다'며 자신을 숨기던 아버지는, 어릴적 자신의 주특기가 점프였다고 말한다. 별안간 그게 뭐 어쨌다고,,, 왕년의 우수한 점프를 꿈꾸던 아버지 놀이기구에서 힘찬 점프를 도약한다. 수연. 상상과 감각의 고통에 시달리며 점점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이 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종수. 변태인지 호모인지 아무튼 성 정체성이 모호한 닥터 팽에게 슬슬 믿음이 떨어지고 있다. 내 말을 믿기는 하는가? 이런 정신병자같은 자에게 상담이랍시고 내 얘기를 술술 풀어내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 까지 하다. 수연. 점점 사지의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 배와 가슴에 닿는 찬 바닥의 기운에 몸이 아찔하다. 종수. 연탄가게 아저씨가 가만히 누워있다. 시멘트를 바른다...
<오즈의 닥터>는 종수, 수연, 닥터 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상의 종수, 현실의 수연, 그 중간을 넘나드는 진실 혹은 거짓일 닥터 팽. 그 해답은 어디에도 없다. '술'이라는 것에 대해 생뚱맞게 논해보자. 건강에도 안좋고, 정신도 살짝 풀어지게 해서 언젠가는 꼭 후회할 짓(?)을 하게 만드는 이 '술'이라는 놈이 어떤 종류의 모임에서든 등장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술'이란 것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 '술'의 파워가 곧, 내 인생의 '닥터 팽'이 아닐까.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든, 숨 막히게 현실을 탈피하고 싶을 때가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뭐 같아서 더러울 수도 있고, 내 자신이 한심할 수도 있고, 머피의 법칙이 나만 따라 다니는 듯 억울할 수도 있고, 모든 악재는 내 어깨위에 올라앉은 듯한 심정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생각한다. '이게 꿈은 아닐까?' '내일 자고 일어나면, 없었던 일인것처럼 내가 원하는 방향데로 무엇이든지 이루어져 있을거야.' 그러나 눈 감고 일어나면 그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종수도 화상에 데여 하반신을 뒤덮은 수포들 마냥, 겹겹이 쌓여있는 -인간 김종수가 있기 까지의 - 순간들을 모조리 마꿀 꿈이 필요했다. 그 수단으로 그는 '닥터 팽'을 만들었다.
앞서 말했듯, 저자 안보윤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현실과 이상의 허물어진 경계가 아닌, 상처받은 마음을 도닥여주는, '그래도 괜찮아~'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목소리를 들은 느낌이다. 일벌레가 되어 개미같이 일하다가 조직에게 뭇매질당한 내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현실이 어쩌면 내가 닥터 팽에게 고백하고 있는 가상 속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기 때문이다. 허구여도 상관없다. 감쪽같이 허물어질 진실이어도 상관없다. 잠시 잠깐 고해성사를 통해 평안을 되찾듯, 삐뚤어진듯한 종수의 닥터팽을 잠깐 만나보는게 이런 부질없는 삶에서 우리가 살아나갈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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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팽, 대체 너는 누구냐. 표지 그림에 있는 인물이 진정 닥터 팽이라면(김종수가 묘사한 그대로의 모습이므로 닥터 팽이 맞을 것이다) 김종수, 이 책의 화자인 '나'가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닥터 팽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닥터 팽은 흡사 애니메이션에서 금방 튀어나온 모습이라 모든 것이 김종수의 환각이라 단정짓게 된다. 어쩌면 나도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닥터 팽의 존재를 김종수의 머릿속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로 단정짓고 모른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나 또한 이 닥터 팽과 한 번이라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슬며시 짜증이 난다. 뒤죽박죽, 얽혀 있는 이야기들 중 어떤 것들이 진실일까, 생각하면 나의 머릿속까지 복잡해지는 것이다. 수연에 의해 그의 삶의 한 귀퉁이가, 아니 남아있는 삶이 모두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을 땐 어리석게도 착한 그를 괴롭히는 수연을 짜증스럽게 바라보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이것조차 명확하지 않은 기억속의 한 부분이라니. 이렇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명쾌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조차도 내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혹시 나도 닥터 팽의 손아귀에 꼼짝없이 걸려든 것일까.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 방금 본 선명한 기억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 내가 본 것이 맞는지, 무엇을 보긴 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게 된다. 나의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가끔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본 것이 환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그 기억이 맞다며 누가 말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보는 것이 모두 환각이라며 김종수의 모습이 우리 모습과 흡사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절대,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모두 현실일테니까.
연탄광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 그의 기억속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어떻게 연탄광에서 발견될 수 있었는지는 오로지 김종수, 본인만이 알고 있을 터, 그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환각이라 주장한다면 무엇으로 두 사람의 죽음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살인, 감금 등의 범죄를 저지른 김종수를 단죄하고 싶다면 기억의 존재부터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기억의 문을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증거만으로 사건을 밝혀내고 그를 가둬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허나 그가 주장하는 말들 중 그 중에 진실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 땐 우리가 맞다고 주장하며 믿어버린 것들이 오히려 환각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닥터 팽, 그래 닥터 팽이라면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닥터 팽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일테니까. 닥터 팽에게만은 모든 것을 보여주며 진실만을 말했을테니까. 하지만 이 닥터 팽은 또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사람들 안에 있는 닥터 팽의 모습은 모두 다를텐데 김종수가 말해주지 않는 한 그가 만났다고 주장하는 닥터 팽은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책 속의 모든 것이 허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환각이 아닌 허상 말이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김종수, 그의 삶이 너무 슬프게 느껴진다. '행복'이라는 것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아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삶에 애착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행복', 그래 행복한 기억 한 가지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삶을 꾸며내고 환각속에 빠져 살진 않았을 것이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환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절규할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다. 환각속에 빠져 이것이 현실이라고 느끼며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리라. 어차피 우리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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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인것 같은데 홈드레스를 입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억울한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닥터팽에게 정신 상담을 받는 그 남자.
나는 계속 그의 말을 믿었고, 그를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할말을 잃었다.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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