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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두번의 도서관나들이... 상호대차한 도서를 받고 이어서 그곳에서 잠깐 책 구경을 나섭니다. 주로 찾는 곳은 그림동화가 있는 곳.
책 등을 살펴보며 새로운 책이나 눈에 띄는 책을 뽑아서 읽습니다. 사랑스런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들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책을 찾아나서기도 합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그림동화를 보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아이들 틈에서 뽑아서 읽는 재미가 동심으로 이끕니다.
이번에 시선을 고정시키게 했던 책 '당산 할매와 나'의 책등을 보면서 그동안 힘들거나 우울하거나 슬플때는 마음속에 자리잡은 고향, 나의 태어난 곳의 부분부분을 끌어내어 위안을 삼았던 그것을 떠올렸습니다. 손을 가져가 책장에서 빼어 앞 표지를 보는 순간 '와~ 멋진 풍경이구나' 비바람 맞고, 모진 풍랑 다 헤치고 꿋꿋하게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이많은 나무와 밀짚모자 눌러쓰고 그 나무 아래에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사람.
휘리릭 속 구경을 하고 바로 빌려왔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었습니다.
책 속에서 나의 어린시절을 맛보았습니다. '아~~ 행복해'
그리고 곧바로 컴앞에 앉아 우리시골 당산나무를 찾기위해 검색을 해 보니 있었습니다. 고향사진을 보고 주인장의 허락도 없이 그냥 가지고 오기에 양해를 바랍니다.
출처 : 마동욱의 고향이야기 http://blog.ohmynews.com/biccal/250565 ![]() 고향에 있는 당산나무는 800여년이 훨씬 넘은 느티나무였어요. 이제사 얼마나 오래된 당산나무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적에는 뒤로 보이는 정자는 없었고 나머지는 변함이 없네요. 두런두런 앉아계시는 분 중에는 제가 아제라 부르면서 인사를 드렸던 어르신도 보입니다.
국민학교때 외갓집에 놀러가면 친구들이랑 저 밑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소꿉놀이도 했었지요. 그러다가 동네 언니들이 이 나무에 뱀도 살았고, 그 뱀이 못나오도록 동네어른들이 시멘트로 구멍을 막았노라고...(사진의 반대편에는 시멘트로 메꾼 흔적이 크게 남아있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땐 그말을 진짜로 믿고 무서워했던 적도 있었네요. 요즘 아이들이라면 "~~~ 에이, 거짓말, 나무가 상처난 곳에 물이 차이고 죽을까봐 시멘트로 발라놓은거잖아요." 하고 응수하겠지만... 그때는 무조건 진짜로 들었답니다.ㅋㅋ
책에서처럼 우리는 당산나무를 사람처럼 여겼으며 그 밑에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휴식을 취해보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없을거에요.
아이랑 여름방학이면 들르는 고향, 지금은 논이 되어 있는... 내가 살았던 곳의 위치를 알려주고 그곳에 앉아서 아이에게 들려주었죠. "방문을 열면 이렇게 바다가 보였단다. 엄마가 들려주었던 노래하고 똑같은 장면이지?"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었던 그곳.
![]() 엄마의 당산나무 이야기를 많은 들었던 아이는 이 책을 반납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제 옆에 있습니다. 아직 안 읽은 줄 알았는데... 책이 집에 들어온 날 읽었다고 하네요. 왠지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책... 소장해야할 책입니다.
다음에 고향에 들르면 꼭 동네 당산나무 밑에서 아이에게 엄마가 이곳에서 놀았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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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할매를 읽는 동안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라 슬며시 눈가에 눈물이 고였어요. 여느 시골마을처럼 내 고향에도 마을 한 가운데 당산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지요. 고향의 그 당산나무도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 적부터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온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당산 할매의 겉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차츰 패이더니 급기야는 영양제를 긴급 수혈해야 했지요. 동네 할머니들께선 매일 아침 당산나무 아래 모여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어요. 그래도 당산 할매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어요. 시커먼 속살을 거의 다 파내고 시멘트로 덧칠을 한 상태에서도 당산 할매는 생명줄을 놓지 않았어요. 오히려 곁에서 지켜보던 우리 할매가 직장암을 선고받고 시름시름 앓다가 먼저 돌아가셨지요. 당신께선 죽을병인 줄도 모르고 오로지 당산 할매를 걱정하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지요.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이후 할머닌 마치 당산 할매가 다른 세상으로 함께 떠날 동반자인 것처럼 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셨어요. 당산 할매가 쓰러지지 않는 한 당신도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버티셨지요. 현대 의학에서는 연로하신 몸이니 아마도 반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는데 의학적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할머닌 당산 할매와 함께 2년도 더 넘게 버티셨어요. 그건 순전히 당산 할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속살이 휑하니 파인 상태에서도 당산 할매는 한쪽으로 새순을 틔웠거든요.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짚단으로 몸을 감싸고 추위를 견딘 당산 할매의 몸에선 봄날을 알리는 새순이 돋아났어요. 그것이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몸 속 에너지를 분출해낸 것인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당산 할매의 정기를 받았음인지 우리 할매도 그해 겨울을 나고 다음 겨울 때까지 살아계셨답니다. 할머닌 당산 나무가 내려다보이는 마을 뒷산에 묻히셨어요. 아마도 돌아가신 후에도 당산 할매와 대화하셨을 거예요. 당산 할매는 할머니가 묻힌 묘소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면 곧바로 보였거든요. 제 기억으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5년 정도 마을 회관 옆에 당산 할매가 서 계셨던 것 같아요. 그 동안은 저도 당산 할매를 보면서 항상 할머니를 떠올렸어요. 결혼 후 도시로 떠나왔지만 명절 때 친정에 들를 때마다 난 당산 할매를 보면서 살아계실 적 할머니를 떠올리곤 했지요. 그리고 할머니 산소로 올라가서도 당산 할매를 내려다보면서 ‘우리 할머닌 돌아가셨어도 외롭진 않았겠구나.’하고 생각하곤 했어요. 이젠 당산 할매도 우리 할머니 곁으로 떠나셨어요. 아마 두 분은 분명히 저 세상 어딘가에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실 거예요. 두 해 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저는 저와 함께 이 동네로 이사 온 할매 나무를 만났답니다. 근처 어느 동네에선가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데 걸림돌이었던 이 나무는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우리 마을 아파트 단지 어귀로 이사를 왔어요. 자칫 잘려나갈 위기에 처했던 할매 나무를 동네 어르신들의 만류로 억대의 비용을 들여 이곳으로 옮겨 심은 거래요. 사람이 살겠다고 어찌 당산 할매를 함부로 잘라낼 수 있느냐는 동네 어르신들의 마음속에는 나무를 그냥 나무로만 여기지 않는 애틋함이 깃들어 있었던 거지요. 이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저는 한 달음에 달려갔어요. 할매를 보는 순간 어찌나 반갑던 지요. 책 속 주인공처럼 저도 그 자리에 못이 박혀 버렸어요. 이젠 떠나신 지 십년도 넘어 점점 흐릿해지던 우리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거든요. 그날 밤 저는 가족 몰래 혼자서 그 당산 할매에게 다가갔어요. 낮엔 지나는 사람이 많아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지 못했거든요. 당산 할매와 저 이렇게 단둘만 남은 것을 확인한 저는 당산 할매를 어루만지며 이야기했지요. ‘할매 어디 있다가 이제 왔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로 시작해서 저는 한참 동안 할매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누군가 그런 저의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도 실성한 여자가 아닌가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에겐 당산 할매가 그냥 한 그루 나무가 아니라 고향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던 그 할매처럼 느껴지는 걸 어쩌겠어요. 이처럼 누군가에겐 그저 스쳐 지나는 나무 한그루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 친구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특히 저처럼 나무 한 그루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는 더욱 그럴 거예요. 시골에서 자란 어른이라면 아마 저처럼 대부분 이런 당산 할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사내아이들은 그 나무에 올라가서 장난치고 놀았겠지요. 여자 아이들은 그 나무 아래에서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했을 거구요. 한 여름 일터에서 돌아온 아줌마 아저씨들은 그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했겠지요.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나무 아래 마련된 정자에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을 거구요. 명절이면 동네 분들 모두가 그 아래 모여 마을의 안녕을 비는 행사를 치르기도 했지요. 그러니 당산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에요. 어떤 때는 아이들의 벗이고, 어떤 때는 어른들의 쉼터이고, 또 어떤 때는 저 높은 곳에서 지긋한 눈길로 지켜보는 수호신인 거지요. 한 마디로 ‘당산 할매’인 거지요. 할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할머니의 눈길처럼 온화하고, 할머니의 마음처럼 인자하니까요.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할머니의 품이 그리웠나 봐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 당산 할매를 보곤 ‘그 자리에 못이 박혀버렸으니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주인공처럼 그런 할머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는 지도 몰라요.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사는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바로 따뜻하고 온화한 온정일 테니까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답니다. 자연스레 책속 그림에 저의 어린 시절 모습이 겹쳐지더군요. 할머니가 당산 할매의 그늘에 앉아있고 내가 그 곁에서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그러니 이 이야기는 나의 할머니가 당산 할매와 함께 들려준 옛 이야기로 들리는 군요. 따뜻한 할머니의 품에서 듣는 소중한 인생 이야기로 들리는 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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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당산 할매는 변산공동체가 있는 구름뫼 마을에 있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마을 어른들 얘기로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도 나무 위에 올라가 놀았다고 하니 몇 백 년은 되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워낙 커 이제는 더 크지 않는 나무. 우람한 허리와 가슴과 팔로 많은 가지를 품고 있는 당산 할매는 정말 바라보기만 해도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새소리와 온갖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뿐더러 여전히 당당한 모습을 지닌 덕분이다. 변산공동체에서 감을 따고 당산 할매 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땀을 훔치며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는데 그 밑에서 바라본 당산 할매는 온 세상을 다 품은 듯했다. 시원한 나뭇잎 소리는 바다 소리였다.
이 책은, 윤구병 선생님이 당산 할매와 나눈 교감의 글과 이담 선생님의 철필로 하나하나 긁어내어 만든 그림이 어울려 깊은 감동을 주는 그림책이다. 윤구병 선생님은 충북대학교 교수 노릇을 하다 귀농하기로 작정하고 여러 곳을 물색하다 정착하니 바로 변산이었다. 당산 할매 손길이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해 봄에 구름뫼에 터를 잡고 농사짓는 틈틈이 당산 할매를 찾았다. 절집에서 배운 대로 큰절 세 번을 올리면 마음이 편했다. 당산 할매에 의지하는 마음은 날이 가고 달이 지나고 해가 갈수록 커졌다. 큰 바윗돌을 옮겨 장독대를 쌓다가 바윗돌을 잘못 내려놓아 가운뎃손가락 끝이 끼어 풍선처럼 터져나갔을 때도 약을 쓰지 않았다. 당산 할매가 말없이 일러준 지혜를 실천한 덕에 나중에 보니 상처는 아물고 죽은 손톱도 새로 돋았다.
내게도 ‘나의 나무’가 있다. 고향 텃밭 둑에 있던 아름드리 감나무. 어려서 동무들 서너 명이 감나무 둘레를 빙 둘러 함께 손을 잡아야 겨우 잡을 수 있을 만큼 컸던 나무는 내 첫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 나무 밑에서 엄마 젖을 먹었고 부모님이 새참을 먹을 때 밥을 먹으며 놀았다. 동무들과 나무 위를 오르며 놀기도 했던 나무는 열 가마 이상의 열매를 맺어 가난한 우리 식구를 풍성하게 해 준 나무이기도 하다. 내 두 번째 나누는 딸아이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처가에 심은 감나무이다. 딸아이 키보다 작은 묘목을 사다 심었는데 딸아이 키는 진즉에 넘어섰고 이제 지붕보다 높이 올라 해마다 몇 가마의 열매를 맺는다. 딸아이 나무라고 심었지만 내 나무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변산공동체를 다니며 본 당산 할매도 내 가슴에 깊이 자리 잡았다.
당산 할매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마음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들려주던 화자는 그림책 끝 부분에서 당산 할매를 떠난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당산 할매를 찾아 큰절을 올리면 온갖 힘든 것 날아가 버렸을 텐데 이제 그 당산 할매에게 다시 못 뵐지도 모른다고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왜 그랬을까. 글쓴이는 일흔이 가까워지면서 아래로 아래로 더 아래로 흘러 더 내려갈 곳 없는 맨 밑바닥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넌지시 등을 떠미는 당산 할매의 손길도 한몫을 했단다. 세상을 품은 듯 큰 당산 할매와 나누던 교감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기에 우리의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몇 번의 방문과 이 년 동안 보름 간격으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왁스 페인트 기법으로 작업한 그림도 감동을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