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역설적인 내용과 제목에서 우리네 삶의 일반적인 모습을 본 소설이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왜 가난한 사람이 존재할까? 왜 그들은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걸까를 이해하지 못한채 멸시하고 동정의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살아보니, 아! 김첨지의 속내를 나도 겪었고 아내의 가래 기침소리에 버럭버럭 질러대는 소리에는 자학의 고통이 함께 묻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행운이 없을 것 같은 인생에 그래도 가난한 인력거꾼에게 최고의 운좋은 날인 손님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날은 갑작스런 행운이 어색하고 불안하게 하기까지 하는데 아침에 나가지 말라던 아내의 말이 자꾸 걸리면서도 찾아든 운을 떨치지 못하고 막걸리 한잔 걸치고 사들고간 설렁탕을 먹지 못하는 아내를 보며 김첨지는 감당하기 힘든 불행의 충격이 아무런 느낌도 없는 듯 무감각한 아픔앞에 오늘 왜 운이 좋았는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는게 다 그러리라... 옛말에 화무십일홍이고 달도 차면 기운다 했다. 똑같은 일상 같지만 일상속에 많은 일들은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가 행,불행의 모습인데 그 앞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미국이 9.11 테러이후 변하고 있다 한다. 지극히 개인주의고 삶을 즐겨보자던 사고에서 교회를 많이 찾아 진정한 절규의 기도를 하게 되어 진다고 한다. 스스로가 모든 행복을 만들고 좋은 여건을 만든다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대처할 수 없는 불행이 올때 반성하게 된다. 지난날의 행복에 진정한 감사와 인간의 나약함을 절절히 느낄때 좀 더 나은 질 높은 삶을 앞으로 살아갈 지혜를 얻게 된다고 본다. 김첨지의 생각에는 궁핍한 생활에서 최고의 운은 인력거 손님이 많아 돈을 많이 버는 거였으리라. 그러나 정말 운좋은 일이란건 커다란 이벤트의 형식이 아님을 깨달았듯이 내 주위의 일상에 주어진 현실에 내가 잘 대처하며 탈나지않게 어제보다 조금 아주 조금 눈에 띄지 않게 나아짐도 운좋은 일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소설이다. |
| “인생이란 무엇일까”라는 말처럼 진부해진 말도 없을 것이다. “‘무엇은’ 무엇인가?” 라는 대부분의 물음들은 수많은 문학가와 철학자들 사이에 회자되었기에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그러한 물음을 하고 있느냐는 정도의 관심밖에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다가가야 함을 알고 있었던 현진건. 그의 소설에는 그 문제에 대한 우회적 물음이 담겨져 있다.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운수 좋은 날”이 아닌가 한다. “운수 좋은 날”에는 비극적인 운명과, 비참한 가난의 모습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거울이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고통 섞인 바람이다. 그러한 고통의 상황을 살아내야 하는 그 시대의 인물들의 모습은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으로 나타난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휩쓸려 가는 우리들 존재. 운 좋게도 벌어지는 돈 몇 푼에 그렇게도 좋아하다가 운명의 장난처럼 여겨지는 한 사건으로 인해 그늘져지는 우리들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단 그것은 한 인간의 운명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의 모습이라는 것을 소설은 말한다. 현진건이 살았던 그 암울한 시대나, 지금의 시대는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그 사실을 쉽게도 알 수 있었던 고통의 시대가 더욱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존재, 인생에 대한 물음조차 사라질 정도로 바삐 돌아가는 시대에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우리에게 하나의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 |
| 솔직히 단편이라면 좀 지루한 감도 없진 않지만 이 책은 새로 나온 책이라서인지 책을 읽으면서도 기분이 참 좋았다. 또 '운수좋은 날'은 익히 들어 왔던 책이름이었다.거기다가 현신건의 역사 소설 '무영탑'을 흥미 있게 본 적이 있었다. 그런 만큼 작품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다. 다행히 이 작품은 그러한 나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감동적이면서 여운이 짙은 작품이었다. 특히 반어법을 사용한 제목은 서글프게도 이 책의 내용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읽고 난 뒤에는 그 제목이 다른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이 소설은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가난한 인력거꾼의 하루 생활을 묘사하고 있었다. 인력거꾼 김 첨지의 가난은 정말 처참했다. 굶기가 다반사요, 병든 아내에게 약을 써보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니 그 가난은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이때까지 다만 식민지 조선의 하층민의 삶이 많이 힘들었으리라 어렴풋이 짐작이나 했을 뿐이지, 그 자세한 고통과 수난은 느낄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과연 그 설움과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발로 뛰어 사람을 날라 돈을 벌어야 하는 인력거꾼의 생활은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은 인력거꾼 김첨지가 돈벌이를 위해서 빈사 직전의 아내의 애원도 뿌리치고 일을 하러 나가야만 하는 현실이였다. 가난이 바로 이와 같은 비정함과 냉혹함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주인공에게는 그러한 외면적인 표현과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아내에 대한 동정이 깔려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더욱 슬펐다. 이런 사건을 통해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다만 김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닌 일제하의 가난한 우리 민족 모두의 고통이며 설움이었을 것이었다. 특히나 하층 계급의 인간들에게는 행운의 기적도 있을 수 없다는 듯 이 소설의 내용과 제목은 너무도 서글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이 이야기는 비단 식민지 생활만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오늘날에도 가난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고층 빌딩이며 아름다운 보석가게와 옷가게들이 즐비하지만 또 한 쪽에는 잘 곳 없어 떠도는 많은 실직자들이 있으니 이 또한 이 소설과 다른 것이 뭐가 있을까? 반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도 세상 경험 알지 못하는 내게도 큰 감동과 교훈을 안겨주는 이 소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조선 문학인 다음에야 조선의 당을 든든히 딛고 서야 한다. 현대 문학인 다음에야 현대의 정신을 힘있게 호흡해야 한다.'고 했던 현진건은 진실로 조선혼과 현대 정신을 파악한 큰 작가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