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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들어 이슬람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다는 느낌이다. 처음 [벼랑위에 선 미국]을 읽으면서 미국중심의 이슬람 보기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고, [나쁜 나라들]에 나오는 그네들을 보면서는 때로는 왜곡을, 때로는 타자의 무관심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를 읽고 나서는 이슬람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슬람은 서구세계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인지, 아니면 왜 그렇게 서구로부터 공격 당하고 왜곡 되는지가 궁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책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는 그러한 문제들에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궁굼증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책을 찾아 나도 순례를 해야될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때, 나는 방송에서, 신문에서 처음 호메이니를 보았다. 검은도포 차림으로 수염을 날리면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던 그를 보고, 그 당시에는 어디선가 보았던 낡은 영상, 저자는 책에서 호메이니의 일대기를 다룬다. 그저 보통의 위인전처럼 그의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란 이슬람혁명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의 투쟁을, 사상을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히 책은 이란의 역사에 -그것이 바로 이슬람 시아파의 역사이지만 -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이슬람, 특히 시아파에 대해선 어느정도 지식을 얻은 느낌이다. 저자의 이슬람과 이란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그저 감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란은 자신들을 아랍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서는 페르시아제국을 운영했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한다. 아랍의 침입으로 약 850여년간 지속되던 이민족의 지배를 받던 이란은 1520년 사파비조에 의해 통일국가를 건설하며 시아파를 국교로 삼았다고 한다. 18세기 초반, 아프칸 반란으로 사파비조는 종말을 고하고, 세기후반 카자르조가 다시 이란을 통일, 수도를 테헤란으로 옮겼고, 이후 부정부패 및 성직자와의 갈등으로 정국이 혼란하던 중 1921년 레자 칸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한후 1925년 팔레비조를 탄생시켜, 1979년 이슬람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이란을 통치했다고 한다. 1902년 호메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호메이니는 열여섯살이던 1918년 어머니의 사망으로 고아가 되자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최고의 성직자인 하에리가 운영하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이라크로 가며, 그곳에서 공부하다 스승인 하에리와 함께 콤으로 돌아온다. 이후 콤은 호메이니의 근거지가 되며, 시아파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센터이자 중요한 순례지로 변해간다. 1942년 순수한 이슬람, 또는 초기의 이슬람으로의 복귀운동인 와하비즘이 점차 정치운동으로 발전하여 사우디 가문과 전략적 동맹을 맺자, 호메이니는 비밀의 폭로라는 책에서 이슬람법에 정통한 이슬람법학자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무슬림이 봉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콤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그후 신학교에서 토론과 논쟁을 통한 비판적 사고의식을 제시하며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호메이니는 1961년 종교지도자 보루제르디 사망시 대중적 명성을 얻었고, 1963년 팔레비조의 레자 샤가 백색혁명을 단행하자 다양한 조직을 결합시켜 이슬람 사회의 연합이란 단체를 설립하여 기존 성직자들에 대한 비판과 종교문제에 대한 공개투쟁을 선언한다. 왕정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자 레자 샤는 호메이니를 체포하고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열달후 호메이니는 석방되었으나, 이란인들의 기억속에서 그를 지우기 위해 레자 샤는 1964년 11월 호메이니를 국외로 추방한다. 터키에서 1년, 이라크 나자프에서 13년을 보내게 된다. 1970년대 들어 이란 국내에서는 게릴라활동과 함께 반정부활동이 격화되었고, 팔레비조의 억압은 더 강화 되었다. 그럴수록 이란인들의 호메이니에 대한 지지도 한층 단단해지기 시작하였다. 1978년 샤는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검은 금요일의 학살로 알려진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9월8일 계엄령 선포에 항의하는 테헤란 시민들을 탱크와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무차별 학살, 2000여명이 사망했다. 샤는 호메이니를 이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파리로 보내니, 이때 그의 나이는 76세 이었다. 계속되는 반샤 시위와, 더 이상 무력진압으로 막을수 없음을 느낀 레자 샤는 1979년 1월 이란을 빠져 나온다. 2월1일 호메이니는 테헤란 공항에 도착한다. 그때부터 2월11일 까지를 여명의 10일 이라고 부른단다. 호메이니가 귀국하여 다양한 혁명세력을 규합, 이슬람혁명을 성공시킨 10일 이었다고 한다. 이슬람혁명 이후 모든 권력은 호메이니에 집중되었다. 호메이니의 뜻에 따라 이슬람혁명수비대가 창설되고, 이슬람혁명위원회가, 이슬람혁명재판소가 설립 되었다. 또한 공화국의 성격을 둘러싼 투쟁에서 호메이니의 이슬람공화국파는 민주공화국을 주장하는 반호메이니파인 자유주의세력과 좌파세력을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물리치고, 이슬람공화국 헌법을 탄생 시킨다. 이에 호메이니는 국가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부여 받은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그후 1979년 11월 일어난 미국대사관 점거사태는 444일간 지속되었으며, 호메이니는 이를 이란 국내정치에 활용하면서 반대파를 제거하는 제2의 혁명으로 삼았고, 이라크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 내부의 자유주의세력과 좌파세력들을 완전히 몰락시켰다. 유엔의 중재에 따라 휴전에 동의한 호메이니는 자신의 결정을 독배를 드는 심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호메이니는 이슬람혁명이 성공한 이래 이슬람공화국 이라는 종교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실험을 계속해서 하여 왔다. 1989년 그가 사망했을 때 이란국민들이 보여준 그에 대한 애도는 이슬람공화국이 단지 반미, 반독재의 모래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호메이니 사후 이란의 정치는 많이 변하였다. 그렇지만 보수파와 개혁파의 권력투쟁도, 갈등도 이슬람공화국이라는 체제내 에서의 갈등 이라고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호메이니를 광신적인 독재자로 묘사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란인들 에게는 언제나 그들 곁에 머무르며, 왕정을 종식시키고 이슬람의 가치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이슬람혁명을 성공시킨 최고의 지도자로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완고한 노인네처럼 보이는 그에게 이슬람의 가치와 윤리는 지고의 선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석유자원의 확보, 소련에 대한 방어망구축, 이스라엘의 생존 이 세가지의 기본토대 위에서 수립된다고 한다. 소련의 몰락후 그 자리에 이슬람에 대한 위기가 들어갔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에따라 세계는 미국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보게되고 그들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적과 아군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한면을 – 다른 한면은 이슬람의 다수파라는 아랍지역의 수니파다 – 알게 해주었다는 생각이다. 검은 금요일의 학살로 이란 왕정은 그 종말을 고하였다. 그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그때 우리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어디서 무었을 하고 있었을까? 호메이니를 읽으면서 문득 이 생각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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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존경하는 지도자가 있다.
내가 이란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단어들은, 석유, 중동, 전쟁, 이슬람 등이다. 이는 이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슬람혁명의 아버지 호메니이”라는 책은, 그 제목부터가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저자가 이란의 한국인 첫 유학생이라는 말에 더더욱 책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책 속에서 만난 호메이니. 그에 대한 얘기와 사진을 통해서 받은 느낌은, 참으로 이란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지도자구나 라는 것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민족을 향한 뜨거운 열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분명한 확신 등이 그에게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유, 자주, 이슬람 공화국의 이슬람 혁명 구호를 외치며 사람들을 이슬람과 신 아래 모으고, 반대세력들과 대처하고, 서방세력에 대하여 강력히 대항하고, 이슬람의 전통과 문화를 되찾아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의 강렬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끌려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우리는 통일, 힘, 투쟁의 준비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외국침략자에게 희생된 것이다. 제국주의자들과 전제적이고 사욕에 넘친 지배자들이 이슬람의 영역을 분할했다. 무슬림의 통일과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자들이 장악한 억압정부를 타도하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정의로운 이슬람 정부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란 현대사의 중심이었던 호메이니. 그가 없는 이란의 앞으로의 향방이 주목되는 시점에서,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는 이란과의 무역을 위해, 이슬람에 대한 연구를 위해, 그리고 이란을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란과 이슬람을 위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그를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의 강력한 지도력이 부러운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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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리뷰어 클럽에서 뽑혀서 읽게 된 책이다. 솔직히 난 이 책을 읽기 이전에는 이슬람은 교과서 지문에서 봤던 아주 얕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란에 대해서도 걸핏하면 전쟁을 하는 나라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의 첫 장을 펴는 순간부터 내 생각은 한 쪽으로 치우쳐진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특히 그런 시각이 미국에 의해 은연 중에 학습되었다는 걸 아는 순간은 흠짓 놀라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이제는 생활패턴에서부터 문화적인 요소까지 아주 뼛속 깊이 관련이 있다. 마치 미국이 없으면 안 될 꺼 같다고 생각하는 극친미파도 있으니 말이다. 이란에서 이 호메이니란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이란은 지금 우리와 같이 미국의 우방으로 편히 살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메이니가 존재함으로 인해서 이란의 민족적 정신과 평등이 제대로 확립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호메이니는 지도자로서 정말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한 번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을 정도였다. 다행히 이 책의 구성에 딱딱한 글만 실린 것이 아니라 호메이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진이 함께 실려 있어 호메이니를 실제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개 이런 류의 책은 지루하기 쉬운데, 이런 구성 때문에 이 책은 덜 지루하고 쉽게 읽혀진 거 같다!!
아무튼 난 이 책을 읽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과 쉽게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이 책의 저자가 의도한 바는 대충 달성했다고 본다. ^^
그리고 또 하나 놀란 사실은 우리 언론이나 정부에선 이란과의 상호교섭성 정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별로 없어서 정말 무지하게 몰랐는데 이란과의 교역이 4위정도에 든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의 무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삶이 한 나라의 역사가 되고 그 나라의 운명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라 경이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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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여러가지 종교가 있으나, 이슬람교 만큼 말도 많고 사고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종교라는 생각 밖에 없다. 음식에서 부터 의식주 모든것을 이슬람의 교리에 따라야 하고, 자신들의 신에 충실하게 받들며 살아가는 세계 3대 종교중의 하나.....그렇지만 기독교와 불교와는 달리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적들과 대항하는 초현실적인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이란도 이슬람 국가이며, 미국과의 여러가지 분쟁을 통하여 부각된 지도자일것이다. 이처럼 세계와, 아랍국가와의 많은 분쟁속에서 이란은 어떻게 국가를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이 호메이니라고 생각하며, 이슬람 종교와 국가의 혁명에 기여한 호메이니에 대하여 알아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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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곧 프랑스다-샤를 드골- 이책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를
다 읽고 나서 이 명언이 생각났다 이면적인 그 명언의 파생된이유같은것이 아니라 이란=호메이니.
공식으로 이해하면서 떠올랐던
사고의 단편일뿐 관계짓기를 하려고 인용한건 아니였다. 최근에 이책과 함께 일주일 먼저 온 책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를 읽고있는 가운데 이책의 리뷰단이 되어서 읽게 되면서
내가 아는 이슬람에 대한 무지를 깨우기 위해서 먼저 온 책이 있음에도 이책을 잡고 읽어야했다. 추천의 글을 보고 머릿글을 읽어가다
두책을 잠시 나란히 둔적이 있었다. 책표지를 물끄러미 잠깐보다가 책들의 저자와 옮긴이가 같은 사람이라는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 리뷰어할때도 몰랐는데
이렇게 보게 되니 더 연결된 리뷰가 나올것 같아서 기대를 했다.그러면서 먼저온책에 대한 리뷰를 미룬것에 대한 미안함도 덜하게 된것같구. 추천의 글: 호세인 바쉬리예(시라쿠스 대학교 교수)
청녕의 시절에 만난 유달승교수에 대한 이란대학의 교수에게서
이란을 알리는것에 이사람 유달승교수에 대한 신뢰가 무한 빛나보였다 책표지 안쪽 날개부분에 저자의 이름옆에 나란히 이란,중동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신뢰감도 거기에서 더 믿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머리말: 이제 우리의 시각으로 이란을 보자
저자의 머리말에서 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한 개인의 삶은 그 사회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호메이니의 삶을 통해 이란 현대사를 살펴보고 이란에 대한 우리의 독자적인 시각을 갖기위한것.p16 들어가며: 호메이니의 눈빛, 이란 첫 한국유학생을 끌다
유달승교수가 이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된 시기 자신의 처음을 이야기 해준다 호메이니에 대한 자신의 첫인상으로부터 받은 강력한 끌림이 있었고 그때부터 갖게된 호메이니와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그때부터 현재의 자신의 이야기를 잠시 들려준다. *이란에 대한 상식: 이란은 아랍이 아니다 책을 처음 받고 흝어봤을때 중간마다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본문의 내용과 달리 챕터마다 팁으로 조금씩 알려주는데 여기에서는 이란이 어디에 있고 인종과 종교에 관한 짧은 소개된다 이란인과 사업할때 반드시 주의할것.
이란인과 아랍인을 동일시하지말것. 이란인은 문화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 아랍인과 동일시하면 거래를 하지 않는단다. 이란인은 인도-유럽어족/아랍인은 셈족이다. 이란인들은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1부 현대 이란의 탄생 -시아파 이슬람 왕조의 탄생 -반외세 저항운동으로서의 담배 불매 운동 -미완으로 끝난 중동 최초의 근대화 혁명 -어린 시절의 호메이니 -시아파의 영혼, 종교도시 ‘콤’ -한 성직자의 청춘 시절 -영국의 지원으로 탄생한 팔레비 왕조 *이란 종교의 두 뿌리: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를 지칭한다. 니체의 실존주의 철학 사상이 고대 이란의 종교 및 고대 중동 문명과 연관성을 가진다는것을 보여준다.p81 2부 민중의 저항과 호메이니의 등장
-수피주의자에서 정치가로 -석유 국유화 운동과 친미 쿠데타 -팔레비의 공포정치 -저항과 투쟁의 시작
한손에는 칼, 또 다른 한 손에는 쿠란 이란 구절은 쿠란을 비롯한 어떠한 종교서적에도 언급한적이 없다.p111 내가 알고 있던 오해의 부분이 여기에서 해소되었다. 나역시 잘 모르고 있던 이슬람에 대한 시선을 가지고 있던게 아닐까. -고조되는 반왕정 투쟁
-추방당하는 호메이니 *이란화된 이슬람교: 시아파 이슬람 3부 망명생활과 혁명의 토대
-터키에서 시작된 망명생활 -‘뱀의 소굴’ 나자프서 세운 이론 -들불처럼 번지는 반정부 투쟁 -미국이 임명한 ‘중동의 헌병’ *이슬람교 이해하기: 이슬람교와 수니파의 기원 4부 이슬람 혁명과 호메이니
-혁명의 불길은 타오르고 -호메이니, 세계의 주목을 받다 -쫓겨나는 샤 -이맘의 귀환 -여명의 10일 -집중되는 권력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탄생 -공화국 헌법과 마르자에 타클리드 *시아파의 특징: 원리주의 강경파의 기원 5부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실험
-미대사관 인질 사건 -이란의 문화혁명 -이란-이라크 전쟁의 시작 -자유주의 세력과 좌파 세력의 몰락 -성직자 대통령 시대 -반격에 나선 이란, 수세에 몰린 이라크 -‘삶의 열매’ 몬타제리와의 결별 -이란과 이라크, 8년 전쟁의 끝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다 전통적인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소련과 수교했고 친소국가였던 시리아가 미국의 군사행동에 동조해 군대를 파견했다 세계정치는 철저히 국익에 따라 이합집산이 나타났다.p259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시아파의 분류: 5이맘파, 7이맘파, 12이맘파 6부 호메이니가 떠난 자리
-이맘의 최후 종교지도자이자 정치가의 마지막인사가 최근에 돌아가신 두분의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던 먼저가신 대통령의 유서에 적힌 말들이 깨달음과 깨우침을 주는 글이였는데 호메이니의 마지막 인사 역시 너무나도 인상적이였다 "나는 곧 신을 만날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길이다. 너의 모든 말과 행동을 지켜 보거라.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 머무르고 싶은 자는 남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는 가도록 해라. 불을 끄거라, 나는 자고 싶구나."p275 -호메이니 이후의 이란
나오며: 2009년 이란 대선과 후폭풍
올해 6월에 있던 이란대선후 이란정국에 관한 가장 따끈한 소식에 대한 이란소식을 접했다 지금 이란이 우리가 작년에 겪었던 광화문촛불집회이상으로 정국이 어수선한데 그것이 부정선거 의혹에 따른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대립으로 이어져가고 있다는것이다. 내가 이란에 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던건.
이슬람법의 이름으로 우리나라 법중에 간통죄와 같은 이유로 광장에서 시민들 있는가운데 공개처형을 하는 모습을 웹뉴스에서 보면서 이나라의 법시행이 과격하다고 생각했던게 전부였다. 현대의 이란에 대한 과격한 시각이 전부였던 내게
이란의 현대사와 호메이니를 읽는 시간은 안개속에서 길을 걷던 내게 길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었던 불빛으로 다가왔다 앎을 추구한다면 대한민국의 현대의 어딘가 맛닿아있는부분들도 어디선가 느껴지는것같아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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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뉴스나 신문의 국제정치란을 통해서 너무나 자주 접하게 되는 이란, 미국 못지않게 자주 들어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안타깝게도 나같은 이슬람 무지인들에게는 그렇게 친근한 나라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에 대해서도 부끄럽지만 정말 무지했던 차라, 언제든, 이란, 이슬람 문화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은 있었으면 좋겠다..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란의 국부 호메이니의 일생을 통해 돌아본 이란의 현대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1979년 1월에 일어난 이란혁명에서부터 현정권의 상황까지 알기 쉽게 설명되어져 있다. 무엇보다 언제나 미국의 시각에서만 봐오던 이란을 '우리의'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생각의 전환을 가져와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악의 축'일 수 밖에 없는 이란과 반미전선의 최전선에 서있는 이란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석유,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하여 우리나라와도 친교를 하면 얻는 이익이 많을 것이라는 작가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페르시아 문화의 발상지인 이란에 대해 알게되고, 중동에 무지했던 내가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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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혁명을 통해 근대적인 ‘이슬람 공화국’을 건설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호메이니의 삶을 따라가면서 격동적이었던 이란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책이다. 실제로 이란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던 저자는, 서구 중심의 이란이해나 평가에서 벗어나, 우리의 입장에서 이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학술적으로도 의미 있는 책을 써냈다.
책은 물론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쓰였으니 만큼 근현대사 위주이긴 하지만, 과거 없는 현대 이란인이 있을 수는 없는 법. 현재의 이란 지역에 존재했던 과거의 여러 왕조들의 성격과 영향들, 그리고 이슬람교 내부의 분화에 관해서도 함께 설명되어 있어서 이란이라는 나라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2. 감상평 。。。。。。。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거의 철저하게 ‘미국의 시각’으로만 봐왔던 것이 사실이다(11). 중동지방의 석유를 지배하려는 미국으로서는 자신의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있는 이란이 못마땅하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이제 딱 하나의 카드, 전쟁만 남았다) 그들을 비난하고, 낙인찍고, 압박해왔는데, 그런 시각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식되어 왔던 것이다.
호메이니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시각이 적용되어 왔다. 이슬람교 성직자로서,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물론 ‘이슬람공화국’이라는 정체政體는 서양의 공화정, 혹은 공화국과는 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을 수립한 혁명의 영웅이라는 이란 내부의 주류적 견해는 거의 알 바가 없었고, 강력한 반미주의자이자 독재자, 혹은 종교를 최우선에 두는 시대착오적인 인물 정도의 견해가 그나마 조금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식이 아니었을까.
이란 작가들이 쓴 책들이 우리나라에 직접 소개되는 일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직접 청춘의 한 시간을 그 땅에서 보냈던 한국 저자가 호메이니와 이란에 관한 책을 썼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호메이니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나 미화 대신, 제3자의 입장에서 그의 행적과 업적, 또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의 한계와 실정(예컨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과 처형) 등을 아우르며 책 한 권에 담아내고 있다.
꽤 재미있게 읽었고, 동양사와 서양사 사이에 주목받지 못했던 중앙아시아와 중동지방의 역사를 좀 더 알고 싶다는 궁금증이 생긴다.
참, 책은 이슬람교의 신을 ‘알라’라고 번역하는 대신 ‘하나님’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뭐 종교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비교종교학자들이 보기에는 두 이름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사실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상당히 ‘종교감수성’이 떨어지는 인식이다.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한국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이다. 최근 한국이슬람교 중앙회 같은 곳에서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고, 아마도 이 책의 저자나 출판사도 그런 견해를 그대로 수용한 것 같은데, 점잖은 일 같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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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 대한 개인적인 기념품이 있다. 비오던 거리에서 돈일줄 알고 주웠던 종이가 이란 화폐였던 것이다. 돈은 돈이나 대한민국에서는 쓸 수 없는, 말 그대로 '기념품'인 것이다. 알아보니 1986년에 발행된 2,000 Rials이다. 한곳에는 모스크를 배경으로 수십명의 남자들이 서 있는데, 총이 세자루, 깃발이 두개. 가운데 남자는 호메이니의 초상이 들려있는데, 아마 혁명수비대로 추정된다. 다른곳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Mecca)에 있는 카바(Ka'bah)의 모습이다. 현재는 혁명수비대 대신에 호메이니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란은 아랍이 아니나 아랍과 동일시 되는 기저에는 이슬람이 있다. 이란과 아랍의 이슬람에도 다름이 있으니 소수파인 시아파와 다수파인 수니파가 그것이다.
새삼 고등학교때의 세계사 수업이 생각났다. 90점 이상은 얻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80점대에서 놀았으니... 그렇게 자신했던 과목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자만하거나 잊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암튼 아메리카 합중국 조지 W 부시의 말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깡패국가', '불량국가', '폭정의 전초기지', '악의 축'... 그런데... 한국은 이란의 4대 교역국, 이란은 한국의 4대 원유공급국. 두바이 수출 물량의 약 40%가 이란으로 재수출되고 있는 상황. 한국 해외 건설 수주의 50%가 중동이며 그 중동지역의 50%가 이란. 한국 가전 제품, 정보통신 제품, 자동차 등은 이란 시장 점유율 1위. 2008년 한국과 이란의 교역 규모, 약 129억 달러. 확실히 아메리카 합중국의 이란 정책은 근본적으로 실리주의와 현실주의에 입각해 추진되고 있다. '중동의 헌병'이라 불릴 정도로 팔레비 왕조와 각별한 사이였다가 틀어진 1979년 이슬람 혁명이후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1980년 9월 22일 이라크가 이란을 선제공격하자, 이를 비난하는 UN안보리의 모든 조치에 반대했고 오히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이라크를 삭제하고 무기를 지원했으니 말이다. 1965년 마르크스주의와 이슬람이 결합한 노동자와 학생 중심의 반샤 운동의 게릴라 조직, '민중을 위한 전사'라는 뜻의 '무자헤딘 할크' 1997년 아메리카 합중국 국무부에 의해 테러 단체로 규정되었으나 2004년 명단에서 제외되더니 현재는 아메리카 합중국 군대의 지원을 받아 대이란 특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대한민국은? 아메리카 합중국의 이익이 결코 대한민국의 이익과 같을 수 없을텐데 서구 중심, 특히 아메리카 합중국의 시각으로만 국제 정세를 받아들이고 있다. 굳이 국제관계에서 '국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할텐데... 암튼 이란에 대해서, 한 사람을 통해 그 나라를 알 수 있는 입문서로 읽는다면 충분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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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이니.
어린 시절의 티비 뉴스에서 보던 중동의 어느 나라의 괴팍하고 공격적인 성격의 소유
자로 석유를 무기로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 국수주의 노인이라 생각을 햇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간간히 듣는 중동 소식에서 그의 이름이 언제나 거론되며 두려운
대상으로 까지 생각했고 그의 서거소식을 들었을땐 이젠 전세계가 평온하게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되었다.
그의 사후에도 중동하면 언제나 떠올랐던 것은 호메이니와 후세인.
중동인들은 석유를 무기로 전세계를 움직이려는 사람들로 생각했던 기억......
서양인들 시각과 일본인들 시각에서 맞추워진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중동과 서북아
시아의역사는 언제나 배제되는 느낌의 공부를 하게되며 또 다른 호기심을 갖게
되었지만 접할수있는 기회가 없어 늘 문밖의 이방인들로만 생각했다.
90년대 중동 전쟁과 21세기초의 이라크 전쟁을 보며 다시금 중동이라는 지역이 왜
미국과 서방세계의 표적이 되어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지 더욱 궁금하게되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자기변명식의 말자랑에 더이상 속지않는 진실을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기전까진 이란의 정치적 지도자로 행동하는 종교인으로만 알았다.
다소 극우적인면도 있어 이란국민을 단결된 행동으로 이끄는데 탁월한 지도자이라
고만 알고있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그 이상의 존재로 서양인들이 왜 그를 두려워하여 거부하였
는지 알게되었다.
인도의 간디와는 전혀 다른 행동인으로 우리의 김구 선생과도 다른 성격의 소유자
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그 망의 카리스마로 종교와도 일치를
시키며 이란을 그들만의 자주적,민주적 국가로 거듭나게한 장본인이다.
부유하지 않고 평탄하지 않는 삶에서도 글하지않고 자신만의 목표와 신념으로 신앙
생활과 정치적 이념을 자신의 삶에 녹이며 살아온 그의 일대기에 다시금 그를 느끼
고 위대한 지도자였고, 위대한 지도자이고,영원한 이란의 위대한 지도자이라는 것
에 고개를 숙이게 하였다.
물론 이 한권의 책으로 이란과 중동의 역사,위대한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를 다
알 수 있다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미국과 서방 세계의 시각에서
알고 있던 편협한 그들만의 혁명과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호메이니 그는 부활한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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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젊은 시절 TV에 나온 호메이니의 강렬한 눈빛에 반해 이란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 되고, 이란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 분이다.
그가 깊이 알리고자 하는 부분은 서방의 눈에 의해 왜곡된 이란에 대한 시각과 오해, 조작된 진실의 이면을 살피고, '미국의 눈'이 아닌 '우리의 눈'으로 이란 바로보기를 시도한 책이다.
난 다행히 얼마전 이란을 다녀왔고, 이란에서 만난 20여명의 사람들과 그 가정을 방문하여 느낀 마음과 함께 '이란 바로보기'에 첨언하고자 한다.
물론, 다녀오기 전 이 책을 읽었었으면 하는 생각이 앞선다.
우선 우리가 생각하고 배웠던 것 만큼 이란은 '광신'의 나라도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느낌 이었다. '광신'은 영국과 미국의 언어 였고, 멀리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부터 중남미, 아시아, 일본, 한국에서 이뤄졌던 '문화를 파괴'하고, 기독교를 앞세워 '광신자', '미개인'으로 그들의 문화를 말살하던 당위성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기회가 되었고, 같은 방법으로 아니 더욱 가혹한 방법으로 중동에 행했던 미국의 반 인륜적이고, 자국의 국민이 아닌 정치와 금권의 안영을 위해 만들어진 현대의 갈등을 제대로 보는 시각을 일깨워 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메이니를 통해 본 이란의 현대사'라는 부제가 있기는 하지만, 고대로 부터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이란의 역사를 훑어준 배려는 이란이란 나라와 함께 맞물린 아랍 국가들과 서구 열강의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아파, 수니파의 태생적 갈등과 그 사이에서 '정치적 욕구 충족'을 위한 미,영,소의 줄다리기가 만든 끝없는 갈등, 그 운영의 에너지로 작용한, 선택된 석유 이야기...
이란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 중동, 그리고 이란에서의 반미, 반 서구화의 주장은 "앞으로 나아갈 길은 오직 하나(미국화)이며, 반드시 그것 만이 정답이라고 배워온 소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것은 좋은 것'으로 세되 받았고, 교육의 단 한 순간도 그 것을 전제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이 땅에서 이해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왜 그렇게 위험하고, 이상한 나라로 출장을 가는지?'에 대한 외부적인 의문과 내적인 갈등을 안고 그곳을 갔으며, 그들을 만나고 느끼기 전 까지는 이란이란 나라에 대한 진정한 의문과 이해가 전무했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서구화, 미국화'가 유일한 길이며 목표라는 정부와 교육기관과 언론의 반복된 주장은 끝없이 피폐해지는 현실의 삶을 디디고 서 있으면서도 의심하지 못할 일이 되어버린 나날을 아무런 질문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란을 다녀온 후 '뭔가' 알아야 겠고, 말해야 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 바로 그 답답한 마음을 이 책이 1/3 쯤은 풀어준 것 같다.
우선 표면화된 정치 쟁점을 떠나,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왜곡을 보자.
서구화된 사회에서 그런 시각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것은 상당부분 날조된 진실이다. 내가 만나고 각각 2시간 이상 인터뷰를 한 이란의 여성들은 히잡속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당당하게 스스로를 이야기 했으며, 나름의 철학에 바탕한 행동을 했고, 히잡을 쓰고 검은 옷 겉으로 전자기타를 매고 도심을 활보하고, 주말이면 스포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라크 전쟁 당시 이슬람 가치 수호를 위하여 여성들이 결성하고 자원한 민병대에 대한 소개도 있다.
이처럼 미국 대사관 사건 때도, 올해 6월 총선에 대한 불편함의 강한 표현 때도 여성은 집안에 짱박힌 소외된 사람들이 아니라 현장의 최전방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 이었다.
오늘날 '베일(히잡) 논쟁은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 했는가의 문제 보다는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한다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차원에서' 그 담론의 생명을 얻고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뭐라고 하더라고, 단 한 순간도 미국은 이란의 '민주'를 원한적이 없고, 그것을 지원한 적도 없다. 그래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슬람을 기초로' 미국과 '다른' '민주'를 쟁취하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은 뜨겁게 끓어 오르고 있고, 서방 언론이 '무슬림의 파괴성'이라 왜곡하는 실질적인 핵심은 서방이 흔히 침략의 핑계로 삼는 바로 '자주, 민주'에 대한 열망이다.
미국과 CIA에 의해 만들어 졌고, 호메이니와 이란 국민들에 의해 독재의 날을 마치고 미국으로 추방된, '사바크 무함마드 레자 샤'는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현실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근대 국가에서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이란에 도입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민주'는 단 한 순간도 정치의 목표가 되지 못했음을 반증하며, '민주,자주,이슬람의 원칙'을 외쳤던 호메이니가 그토록 강하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까 한다.
바로 이것이 진실이다.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란 말이 이슬람 사회와 코란을 통털어 그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단지 미국이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미국의 개들이 통치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엄선한 정치 선전일 뿐이다.
'미국의 자본 시스템에 영입된 형님으로 모시는 자본주의'를 원한 것이지 단 한 순간도 '민주'를 미국은 진심으로 원한적이 없다. 어슬프게 '민주'를 앞세워 직접 전쟁 또는 교사하는 형태를 띌뿐.
그래서 이란은 '이슬람'이라는 서방세계와 '다른 가치'에 기반한 '민주'를 지금도 외치고 있므며,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기름 한 방울에 피 한방울'의 역사는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이다. 십자군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핵심'은 '무슬림'과 '크리스천'의 문제, 갈등구조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젊은 이란 사람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미국화 되고 있었다.
엄청나게 차가 막히는 테헤란 거리에서 차창 밖으로 50센트면 최신 영화가 담긴 DVD를 살 수 있다. 이란의 많은 젊은 이들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이란 방송을 보지 않고 위성방송을 통해 서구 문화를 탐닉하고 있다. 미국은 이 거대한 불법 복제의 나라에 아무런 제제도 이슈도 제기하지 않는다. 젊은 이들의 '미국화'에 영화만큼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 독재자가 독재 찬양을 위해 만든 탑이,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후 '자유의 탑'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최근 총선 사태에도 '자유,자주'를 원하는 이란 젊은이들이 이 '자유의 탑' 앞에서 총탄에 쓰러져 갔다.
그 양면의 탑을 뒤로하고, '서울로(한국의 테헤란로의 대칭점)'를 뒤로하고 이란을 떠나오면서 내내 아쉬운 마음은 비행기 안에서 나와 같은 전공을 가진 이란 아저씨와 두병의 와인을 비우며 더욱 큰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세계를 까발리는 인터넷이 있음에도, 우리는 아직 '교육받은' 시각을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아랍'에 이란을 포함 시키고 있으며, 몹쓸 '무슬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 대해 진정한 다가감을 고려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 틈을 서방과 미국의 개들이 지배하는 국가들이 싱겁고도 왜곡된 모습으로 잘도 이용해 먹고 있다.
막힌 생각 한번 쯤 뚫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 보다도 '테헤란로'가 있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서울로'가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한번은 궁금해 볼 만도 하지 않을까?
[이란의 상징, 자유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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