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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1984년 개봉) <이상 다음에서 요약해옴>
터미네이터 4- 미래전쟁의 시작 (2009년 개봉) 21세기초 스카이넷은 스스로 진화하여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핵공격으로 인류를 멸망시킨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날을 심판의 날이라 한다. 그 뒤를 이어 기계들과의 전쟁은 시작이 되고 스카이넷은 인간을 완전히 파괴 시키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만들었다. 인간저항군들은 자신들을 구해줄 지도자가 올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이었다.
살인자로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인 마커스(샘 워싱턴)을 찾아온 세레나 코건 박사(헬레나 본햄 카터).그리고 은밀하게 시신을 기증할것을 제의 한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존 코너는 스카이넷의 연구기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지하기지를 살펴보다가 인간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터미네이터를 만드는 일과 연관 되어있음을 알아내게 된다. 하지만 동료들은 스카이넷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모두 죽고 혼자만이 살아 돌아온다.
그리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실험중이던 한 사람(?) 또는 터미네이터(?)가 탈출을 하다. 마커스,바로 코너박사가 연구중이었던 바로 그자다.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채 저항군중의 한명인 카일 리스(안톤 옐친)을 만나 위험에서 벗어 나지만 카일 리스는 스카이넷의 인간사냥 기계에 붙들려 가고 만다.
혼자남은 마커스는 저항군 비행사 블레어(문 블러드 굿)의 불시착을 돕게 되고 같이 인간저항군의 본부로 가게되고 코너와 만나게 된다. 존 코너는 마커스를 인간이라기보다는 기계로 인식 하고 그를 심문하던중 카일리스의 행방을 알게 되고 그를 구하러 가려 하지만 저항군 중앙에서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포로들을 구하는것은 불가능하다고 허락을 하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명령을 거부하고 마커스와 손을 잡고 스카이넷에 잠입을 한다. 그리고 시그널로 기계들을 이기고자 했던 중앙의 계획은 오히려 자신들을 노출시키는 결과가 되어 스카이넷의 공격으로 자멸하고 만다.
가까스로 카일리스와 포로들을 구출하고 탈출을 하지만 존 코너는 심장에 중상을 입어 손을 쓸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마커스가 자신의 심장을 주기로 한다. 스카이넷의 본거지는 폭발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난것은 아니다. 언제 끝나려는지... 5편을 제작중이라하니 앞으로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다음편에서는 크리스찬 베일이 출연치 않는다고 한것 같은데 그러면 3,4,5편 연속으로 존 코너 역이 바뀌게 되는군요.3편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애드워드 펄롱이 계속 출연을 했으면 더 근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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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를 빼놓고 영화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까. 아마 그럴 수가 없을 거다. 그만큼 할리우드 영화들의 시장 지배력이 어마어마하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보통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의 작품성에 대해 굳이 평가절하를 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이야기의 완성도에 있어서 후한 평가를 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 문제는 시리즈 영화일수록 더 냉혹한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시거니 위버가 주연한 <에일리언> 시리즈는 그녀와 에일리언을 함께 없애 버렸다가도 다시 부활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전작의 후광마저 훼손시켜 버리지 않았던가. 오늘 이야기할 터미네이터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기계들이 지배하는 미래세계에서 기계(터미네이터)와 싸우는 저항군의 지도자 존 코너는 현재로 카일 리스를 보내 자신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지키게 한다. 그런 미래의 어떤 행동이 현재와 미래의 풀리지 않는 순환적인 고리들을 만들어 내게 되고, 스카이넷으로 대표되는 기계 역시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보내 맞싸우게 한다는 게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주된 줄거리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2편 <터미네이터:심판의 날(1991)>은 SF영화와 이후 만들어질 그 계통의 시리즈 영화들의 미래를 ‘터미네이션’한 수작이었다. 와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이야기의 완성도와 영화의 디테일 등에 있어서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계속되는 한, 엄청난 부담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을 3편은 그렇게 찬란했던 전작의 후광을 업고 제작되었지만, 플롯이나 새로운 캐릭터 개발에 있어 완전히 침몰해 버리고 말았다. 유일하게 꼽을만한 점이라면 여성 터미네이터의 등장 정도? 게다가 오리지널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어 영화판을 떠나 정치계로 떠나 버렸다. 여담이지만, 슈왈제네거가 이끄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요즘 재정파산에 직면해 있다고 하는데, 마치 그가 주연한 T3의 악몽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작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은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이어 나가면서도, 다시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는 각오로 시작되었다. 이미 터미네이터하면 떠올리게 되는 미래로부터 온 (악인지 선인지 헷갈리게 하는) 기계 전사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빠지게 되면서, 영화는 기존의 이야기 틀만 가진 채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아마 이런 점에서 카일 리스 같이 1편에만 등장하는 인물과 존 코너의 연관성, 그리고 새로 등장해서 저항군의 지도자 존 코너만큼이나 중요한 배역으로 나오는 마커스 라이트와 틴에이저 카일 리스의 등장은 시리즈에 참신성을 불어 넣어 주면서도, 속편 제작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번 4편의 연출을 맡은 맥지 감독에 의하면 크리스찬 베일과 샘 워싱턴의 배역을 두고 막판까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존 코너 역은 크리스찬 베일에게 돌아갔지만, 그만큼 막상막하의 카리스마를 가진 두 주연급 배우들의 캐스팅이 새로운 터미네이터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미래의 스카이넷은 인간을 절멸시키기 위해, 미래 저항군의 지도자가 될 존 코너의 싹을 없애고자 1984년 이래 부단하게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왔다. 우리는 이미 지난 세 번의 시리즈를 통해 스카이넷의 노력이 부질없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식으로 절멸을 시도할지 궁금했다. 지난 세 편의 시리즈가 과거 시점이었다면, 이번 4탄은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2003년 사형수 마커스 라이트는 의료용 연구를 위해 사이버다인에서 일하는 세레나 코건(헬레나 본햄 카터 분)에게 자신의 신체를 기증한다. 1년 뒤, 스카이넷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저지멘트 데이를 맞아 인류는 전멸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다시 시간은 흘러 2018년, 인류 저항군의 지도자가 된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 분)는 스카이넷 공격을 맡게 된다. 한편, 스카이넷은 인간 포로들을 잡아 살아 있는 세포로 새로운 터미네이터 제작에 나선다. 이때 홀연히 다시 나타난 마커스는 도보로 LA까지 여행길에 나선다. 핵잠수함에 탑승한 저항군 지도부는 스카이넷을 파괴할 강력한 공격을 도모하고, 스카이넷 측은 지도부를 소탕할 암살 목록을 만든다. 이런 뒤죽박죽한 플롯 가운데, 마커스는 LA에 도착해서 과거로 돌아가 존 코너의 아버지가 될 카일 리스를 구형 터미네이터의 공격에서 구해낸다. 우여곡절 끝에 마커스와 카일은 격추된 조종사 블레어 윌리엄스(문 블러드굿 분)를 구해내지만, 마커스가 자석 지뢰에 당하면서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커스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는 인간의 조직을 가진 사이보그였다! 블레어의 도움으로, 그를 신뢰하지 않는 저항군으로부터 도주한 마커스는 스카이넷에 포로로 잡혀간 카일을 구하기 위해 스카이넷 기지에 침투한다. 하지만, 마커스의 숨겨진 임무에 대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확실히 이번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은 많은 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우선 그동안 시리즈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었던 터미네이터 슈왈제네거가 더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조 아이콘을 제외하고, 이제는 그들만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맥지 감독의 스릴 넘치는 연출과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저항군 리더 역할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준 샘 워싱턴의 연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울러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종류의 터미네이터 역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새로운 끝의 시작’이라는 모순형용적인 표현이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만큼 어울리는 영화도 없을 것 같다. 모든 영화의 시리즈들이 그렇듯, 터미네이터 시리즈 역시 언젠가는 끝날 운명을 가지고 있지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순환되는 구조는 새로운 시리즈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거의 재앙 같았던 3탄의 악몽은 <미래전쟁의 시작>으로 다시 성공적으로 부활한 느낌이 들었다. 기계문명의 발전이 언제나 인간에게 유익하리라는 종래의 유토피아적 기대에,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작은 반란의 깃발을 올린다.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던 <아이, 로봇>에서도 그랬지만,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는 모더니즘 철학으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모더니즘이라, 두 시간 남짓 즐길 영화에도 이런 철학적 논제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보여 주었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마커스 라이트라는 존재를 통해 정점에 달한다. 자기희생과 헌신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던가! 그럼 역추론으로 반인간 반기계였던 마커스가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오프닝의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로 귓전을 때리는 “쿠쿵쿠쿵 쿵!!!”하는 터미네이터 주제음악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혹자는 영화에서 음악이 70%는 먹고 들어간다고 허풍을 떤 적이 있었는데, 확실히 3D 기술로 발전한 영상미학 못지않게 여전히 음향 또한 영화 팬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여전히 오리지널 시리즈의 슈왈제네거에 대한 향수를 지울 수가 없긴 했지만, 오락영화로서는 역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근 1년 만에 리뷰를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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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3disc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했지만..
추가된 장면이 몇 장면 없다는 사실을 듣고 또 아쉬움이 들었다..
터미네이터 골수팬들은 미래전쟁의 시작에 대해서 호의적인 평을 내리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재미있게 본 영화다.
3편으로 말아먹은 시리즈의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만든 영화 ^^
아바타의 샘 워딩턴의 연기도 주목해 볼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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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시리즈영화는 사실 할리우드블록버스터 영화라는 ‘낙인’烙印이 찍혀있고 (교양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편견'을 가질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여가를 즐기기위해 영화관에서 팝콘들고 시간때우려는 그런 오락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누가 의미를 찾고 누가 감동을 받을까? 사실 의미없는 것들로 가득한 '쓰레기장'에서 의미있고 특별한 ‘귀중품’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 사실 이 영화에 흐르는 메시지 또는 교훈을 발견했을 때는 말이다. 색다른 감정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낀 그런 경이감속에 이 글을 쓴다. 이제야 그걸 '재발견'한 나의 게으름과 편견을 탓하면서이기도! 기계문명 vs 인간성•휴머니즘
사라 코너 say“기계는 절대 멈추질 않을 것이다. 그건 그(존 코너)를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그를 다치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그에게 소리지르거나 술취해서 때리지도 않을 것이다 너무 바빠서 같이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죽어서까지라도 그를 보호할 것이다” 사라 코너 say "미지의 미래가 우리앞에 펼쳐진다. 난 처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본다.만일 기계가 '생명'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면 우리(인간)도 그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 코너 say “무엇이 우릴 인간이게 하는가? 프로그램할수도 없고 칩속에도 심을 수 없는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의 힘이다 우리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그것이다.” (What is it that makes us human? It's not something you can program. You can't put it into a chip. It's the strength of the human heart. The difference between us and machines.)터미네이터4 Terminator 4 : Salvation 』
(나에게는) 사라 코너가 『터미네이터2』에서 언급한 건 약간은 반어反語적으로 들린다. 자기 아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띤 터미네이터를 그의 '아버지'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인데 이 말의 의도를 검토해보면 오히려 기계를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차적인 표면적인 말그대로 보면 기계가 합목적적으로 즉 임무가 목적이라서 그 목적을 어떠한 경우에도 수행하는 철저함을 가진다는 것이다. 칭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다시 본다면 획일성•정형성•단순반복•합리성•무미건조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기계는 말 그대로 단순반복 작업을 수행한다. 불평하지도 않는다. 밥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지겹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합리성대로 일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누가 칭찬을 하건 욕을 하건 그대로 계속 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 수주대토守株待兎. 그러나 인간은 불평하고 기분에 따라 작업량이 다르고 술을 먹어서 비정상이 되거나 일탈된 행위를 벌인다. 요컨대 불규칙적이고 합목적적이 아니며 감성적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느끼는 동물이기에 주어진 임무를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게 기계가 가지지 못한 인간의 ‘창의성’이기도 하고 ‘창조성’이기도 하다. 이것은 감성感性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예술藝術을 만들어내는 원천이고 우리의 가슴이자 심장(心臟,heart)의 작용이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와 현대문명의 상관성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과학ㆍ기술이 만들어낸 현대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흐르는 것같다. 획일적·정형적 합리성이 가져올 자멸적自滅的인 기계문명를 그려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실로 '디스토피아'distopia(고도문명의 어두운 미래)적 세계관이 되버린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지금의 현대문명이 형성된 것은 근대부터이다. 즉 17,18세기 즈음에 유럽에서 중세부터 이어내려온 전통ㆍ편견ㆍ관습과 기독교신앙을 무지와 구습으로 치부하고 인본주의와 지식에 입각하여 합리적인 세상,사회,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 흐름의 원동력은 인간이성의 길을 따라 과학ㆍ수학ㆍ통계의 발전에 의존하여 종교ㆍ미신ㆍ관습의 속박 내지는 의존하던 것을 벗어버리고자한 사상운동이었던 '계몽주의'啓蒙主義와 기계혁명과 기술발전의 확대에 따라 대량생산ㆍ대량소비로 경제변혁을 유도한 '산업혁명'産業革命이었으며, 이 흐름을 따라 현대문명이 점차 '태동'하기 시작했다.이후 수백년간동안 유럽 세계는 종교와 관습 그리고 농업에 의존한 전통사회의 모습에서 점차 합리성과 상업 그리고 물질에 의존하는 현대사회로 변모하게 된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불합리한 특권을 폐지하고 '신분사회'를 점차 평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 구성하는 '민주사회'로 변모시켰고, 경제적으로는 폐쇄적이고 농업의존적인 봉건경제에서 신대륙발견과 함께 자유무역이 이루어지고 기술발전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로 물질과 자본이 축적되는 '자본주의사회'로 세상을 바꾸었다. 초창기였던 17,18세기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들은--훗날'계몽사상가'로 불리우는-- 과거의 신앙이나 미신, 관습 등을 폐단으로 간주하며 신神에 의존하기보다는 인간이성理性에 입각하여 과학ㆍ지식체계에 따라 사회개혁내지는 사회혁명을 꿈꾸었고 당시 물질적 생산력의 증대나 과학의 놀라운 발전을 찬양하면서 멀지 않아 인간이 누리는 최상의 이상인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진보'進步에 심취한 상태였다. 물론 당시에도 인간본연의 감성을 도외시한 합리성이 이끄는 진보 운동를 낙관적으로만 보지않거나 급진적인 것으로 우려하던 철학자들이 간혹 있었다. 이들 철학자들은 이성 중시의 사고가 진정한 사회의 진보를 가져오는 것에 대한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장자크루소는 합리성을 내포하는 과학이나 학문의 발달은 인간의 사회성,유대감을 깨뜨리게 된다면서 '문명사회'를 우려하였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를 내세우기보다는 공동체속의 인간이 가진 감성感性,감정을 보존할 때 사회의 진정한 진보 즉 도덕의 증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데이빗 흄은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도덕이 반복적인 축적된 심성心性이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선호에 따라 덕과 악덕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도덕의 발전에 지성이나 이성이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이며 감정,감성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계몽사상가'에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이 이끈 변동으로 이후 전세계는 과학·지식체계를 중시하고 생산·소비가 증가하며 교역이 자유화되는 고도문명사회로 이후 급변하게 되었다.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같은 특징지워지는 문명사회로의 변동은 개인적 측면에서, 정신적으로는 무지몽매함에서 합리성과 합목적성으로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에서 풍요로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편의, 편리같은 가치를 누릴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짐짓 이삼백년 간의 변동은 그와같은 +의 측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전쟁이나 환경파괴, 핵核무기의 남용, 신종전염병의 확산과 같은 -의 측면을 동반해왔다는 점을 부인할래야 할 수 없다. 인간은 전통·관습, 계급, 신비주의와 같은 전통사회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합리성, 평등, 개량, 기술과 같은 현대사회의 ‘자유’를 만끽하려고 할 찰나에 인류전체로서 대량학살, 자연파괴, 신종전염병의 빈발 같은 새로운 ‘억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합리성•합목적성과 물질의 풍요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의 발전은 한편으로 생명으로서 인간본성이 소외되었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하였으며, 새로운 병적 위협을 불러들이는 역효과를 만들어냈다. 과학ㆍ지식 위주의 현대문명은 이성理性 중심으로 획일화되었기에 오히려 인간본성을 소외시키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멸성'을 드러낸 것 같다. 21세기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공지능, 산업로봇, 의학로봇, 재택근무와 같은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유행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뭐하러 사러 나가냐”고 반문하면서 “검색부터 해봐”라고 말을 쉽게 내뱉고, 방과후나 퇴근후 PC앞에 모여 아바타로 네트워크게임에 접속해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채팅하면서 ‘가상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정보기술(IT)혁명으로 변신중인 현대문명사회에서 ‘합리화되고’ ‘획일화되어가는’ 풍경인가 보다. 이쯤 되니 조지오웰의 『1984년』이라는 소설에서 등장한 ‘빅브라더’와 같은 존재가, 제레미 벤담이 구상한 실험으로서 범죄를 줄이고자한 ‘파놉티콘’과 같은 제도가, 『터미네이터』영화속에 등장하는 지능적 ‘기계’와 자꾸 대비된다. 조지 오웰이나 제레미 벤담이 지적했듯이 미래사회가 ‘인간’들이 자유나 의지를 잃고 ‘억압자’나 ‘통제자’의 독재속에 헤어나지 못하게 되리라는 ‘디스토피아’적 예언과, 『터미네이터』영화에서 하이테크문명의 정점에 이르게 된 싯점에 지능을 갖춘 ‘컴퓨터’가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억압하고 말살하게 된다는 ‘어두운 미래’가 상상속에서 '오버랩'된다. 그렇다고 해도 당장 '기계문명'이 자아낼 디스토피아가 (상상은 될지언정) 우리의 피부에 와닿을정도로 실감되는 건 아닌 것같다.『터미네이터4 』에서는 컴퓨터네트워크가 자각력이 생겨 인류가 자신을 파괴할 것을 예상하고 인류에 대한 핵공격을 감행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현대기술수준에서는 컴퓨터가 '자각력'이 생길 정도로 자율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사람이 사전에 프로그래밍programming한 '연산'이나 '제어'에 한해 수행할 정도로 '제한'적으로 알려져있다. 지능면에서도 컴퓨터가 사람을 이긴 사례는 없는 것같다. 예를 들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소설『뇌腦』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컴퓨터와 체스기사 즉 인간의 대국에서 인간이 이겼다는 가정처럼, 뉴스에 따르면 인간이 IBM이나 'Deep Fritz', 'Deep Junior', 'X3D 프리츠'같은 실물컴퓨터, 체스프로그램과의 대결에서도 결코 진 적이 없다고 알려져있다.(출처:네이버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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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날아온 살인로봇". 이 짧은 영화적 모티브는 20년이 넘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근간이다. 1편에서도, 2편에서도 그리고 사생아 취급받는 3편에서도 역시 미래에서 날아온 신형 터미네이터들이 나와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형식미를 갖춘다. 1984년에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저예산으로 만든 터미네이터는 "테크 누와르 TechNoir"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SF영화의 새로운 미학을 부여했고 수많은 아류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어둡고 심각한 로보틱 SF라고 말할 수 있는 테크 누와르라는 표현은 1편에서 나오는 무도장의 이름을 딴것이다.) T4라는 이름을 달고 2009년에 나온 이 영화는 이제는 미래에서 날아온 바로 그 로봇의 탄생을 그리면서 새로운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이어가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감독은 전세계 터미네이터 팬들에게 T4가 바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적자이며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것을 인정받고자 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TechNoir : T1과 T2에 열광한 터미네이터 팬들은 카일 리스의 회상장면으로 짧게 나왔던 미래세계의 모습을 보고 흥분했다. 폐허가 된 도시, 기계들과의 치열한 전쟁, 생존자들을 찾기위해 돌아다니는 살인 터미네이터들. 팬들은 시리즈가 계속 이어져서 그런 미래의 세계를 보고 싶어했다. 카메룬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속편인) T2를 끝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래서 다른 감독이 터미네이터를 만든다면 T1, T2의 "미래에서 날아온 살인로봇"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미래 세계의 모습을 담은 새로운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이어가야 했을테다. 그것이 제대로된 흐름이었다. 하지만 T3를 만든 제작진은 모험을 하지 않고 아놀드가 더 늙기 전에 카메룬의 T1과 T2를 한번 더 울궈먹기로 했다. 나이든 로봇 아놀드는 "I'll be back!"을 외치고 선글라스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터미네이터의 정통성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애처롭기만 하다. T3는 나쁘지않은 한편의 SF 오락영화였을지는 몰라도 테크 누와르를 계승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적자는 될 수 없었다. 팬들 역시 늙은 아놀드의 힘에 부친 연기를 보면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완전 종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T4, 시리즈의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한 눈물나는 노력들: 멕지감독은 스스로 터미네이터 세대이자 광팬이다. T4 제작 아이디어를 들고 한창 아바타를 만들고 있던 카메룬 감독을 찾아가 T4 제작허가(?)를 받기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무심하던 카메룬 감독은 끝내 멕지의 의지에 손을 들고 격려라는 큰 상?과 함께 부상으로는 아바타를 찍고 있던 샘 워딩턴이라는 신인배우까지 안겨준다. 시리즈의 정통성을 이어가기 위한 멕지감독의 노력에 T4는 사실 T1과 T2의 헌정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T1과 T2의 패러디가 무수히 나온다.
우선 T4의 스토리는 미래의 모습을 다루는 것으로서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영리하게 따랐다. 관객이 원하는 시리즈의 흐름을 T3는 가벼이 보았지만 T4는 이를 계승했다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땄다. 이제부터 영화는 패러디의 잔치를 벌인다. 영화 초반, 부서진 헬기에서 존 코너의 발목을 잡으며 끈질기게 괴롭히는 상체만 남은 T-600은 영화 T1의 마지막에 사라 코너의 발목을 부여잡은 상체만 남은 T-800의 화신이다. 관객이 웃으면서 묘한 향수를 느끼게하는 영리한 장면이다. 영화 마지막에 스카이넷 기지에서 T-800과 존 코너가 서로 싸우는 장면은 T1과 T2의 마지막 격투 장면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교묘히 편집만 했다고 해도될 정도로 똑같다. 어두운 공장에서 끈질기게 쫓아오고, 위장목소리로 상대방을 현혹하고, 쇠꼬챙이로 몸통을 찔러대는 뼈대만 남은 T-800은 과연 진짜 터미네이터다! 용광로에 몸이 녹고 차가운 연기에 다시 몸이 굳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되살아나는 터미네이터 역시 진짜 터미네이터다! 팬들이 궁금해하던 T-800의 모습도 T1에 출연했던 젊고 싱싱한 아놀드의 얼굴모습을 CG로 재현하여 똑같이 보여준다. (T2나 T3의 늙은 아놀드가 아니다!) 이쯤되면 팬들은 이제 됐다면서 니가 과연 "적자"라면서 T4에게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T시리즈라면 빠지지 않는 트럭 추격신도 나왔고, 카일 리스가 "Come with me if you wanna live", 존 코너는 "I'll be back"이라고 하며 시리즈 명대사들 답습하는 것도 역시 빠지지 않았다. 이도 모자라서 존 코너가 모터 터미네이터를 유인하기 위해 틀은 노래는 건스엔로지스의 You Could Be Mine이다. (T2의 OST에 있는 곡으로 유명하다.) 또한 기계가 자기를 희생해서 인간을 살리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엔딩과 독백까지 T2의 엔딩을 따랐다.
정통성은 부여 받았다. 이제 다음 시리즈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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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 감독 : 맥지 출연 : 크리스찬 베일, 샘 워싱턴, 안톤 옐친 등 등급 : 15세 관람가 작성 : 2010.01.28. “우리는 진정한 구원을 꿈꿔도 되는 것인가? 이미 예정되어진 미래 속에서,” ‘애인님과 함께 본 영화’라는 것으로, 다른 긴말은 생략하고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2003년, 롱뷰 주 교도소’라는 설명과 함께 사형을 앞둔 한 남자에게 어떤 도움을 요구하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키스를 대가로 자신의 시체를 어떤 연구에 기증하는데 서명하게 되는군요. 그렇게 결국 전 세계로 핵폭탄이 터져버렸다는 앞선 이야기까지의 설명은 잠시, 인류의 적인 ‘스카이넷’의 연구기지 중 하나를 폭격하는 저항군의 모습으로 본론으로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요. 가까스로 임무를 성공하게 되었지만 ‘존 코너’를 제외하고는 몰살당하게 됩니다. 아무튼,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장에 또 다른 남자가 깨어나 이야기의 바통을 나눠받게 되는 것은 잠시, 답을 알 수 없는 폐허나 다름없는 광활한 여정의 길을 걷던 그가 ‘카일 리스’라는 소년을 만나게 되는군요. 한편, 역시나 당시대 기계들의 제거 대상 1호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될 ‘카일 리스’를 찾기 위해. 그리고 미래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 코너의 이야기가 교차되는데요. 그런 그저 순조롭기만 하던 그들의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마주하게 되었음에, 미래전쟁은 그들만이 가진 끔찍한 진실을 통해 과거를 위한 미래로의 일정에 진지한 물음표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사실, ‘이때까지의 터미네이터는 모두 잊어라!’를 즉흥 감상으로 적어볼까 싶었습니다. 앞선 세편의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새로운 연대기의 시작이라 말할 수 있는 네 번째 이야기에서도 미래저항군의 지도자가 될 존 코너의 존재성은 그리 부각되지 못했다고 받아들여 볼 수 있었는데요. 오히려 인간과 기계에 대한 진지한 생각의 시간을 안겨준 하게 ‘마커스’가 주인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앞서 이야기들과의 연관성을 가지게 하기위한 노력의 흔적을 접할 수 있어 즐거웠는데요. T-800과 카일 리스, 그리고 존 코너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긴박한 상황을 통해 ‘아직은 때가 이니야! 그런데 타임머신은 어디있어!!’를 외치고 있던 저를 발견할 수 있었다보니, 으흠. 그저 제작과 관련된 모든 분들께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볼 뿐입니다.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이번 작품을 어떤 기분으로 만나보셨을까나요? 아놀드 주지사님이 없는 터미네이터는 이미 ‘터미네이티드’ 되어있다구요? 시종일관 게임 화면을 보는 듯한 기분에 공략집을 실시간 영상으로 보는 줄 알았다구요? ‘사라코너 연대기’의 세 번째 이야기나 빨리 만들라구요? 개인적으로는 ‘구원’을 의미하는 부제목에 왜 ‘미래전쟁의 시작’이라 번역을 달아두었나 심각하게 고민 했는데요. 작품 자체로는 의미전달이 되었을지 몰라도, 있을까가 더 의심스러운 철학성에 대해서만큼은 ‘구원’의 의미를 알고 이 작품을 만나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뭐. 그래도 오락영화라는 기분으로 만나기 좋은 작품 이었다보니 진지하게 접근 하는 것은 이번 작품의 소설판을 만나보고 나서 이야기해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해보는군요. 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분이 아놀드 주지사님이 아니라면 뉘시냐구요? 저도 그동안 CG라고 말은 들어왔다지만 실제 작품을 통해 만나보면서는 단순 CG가 아니라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서 조사해보니 ‘로랜드 킥킹거’라는 분이 특수 분장으로 출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이야기에서는 떠 어떻게 처리를 하겠다는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시리즈가 아닐 수 없군요. 아무튼, 열심히 일해 피곤한 저의 몸과 마음에 나름의 ‘구원’을 선물해 보고 싶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하는데요. 출근길에 보니까 신종인플루엔자 접종을 시작했다고 안내를 하고 있었으니, 으흠! 아직은 겨울이니 다들 감기 조심합니닷!!
TEXT No.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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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는 엄청나게 성공한 프랜차이즈 영화다.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그 시작부
터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첫 번째와 두 번째 영화가 중요한 역
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매력적인 영화는 시리즈가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다.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에 대
해서 사람들은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들이 모두 완전히 엉
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그림자가 너무 길게 뻗어있을 뿐이다. 그래서 터미네이터는
가장 마음을 열고 볼 필요가 있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잘 만든 전작의 후속작들은 잘해도 본전이다.
그것도 터미네이터처럼 너무나도 잘 만든 2편의 전작과 엉망이었던 3편을 갖고 있
음에도 터미네이터는 단지 제목만으로도 욕을 먹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터미네이터 살베이션은 '미래 전쟁의 시작'이라는 싼티
나는 제목에서부터 비난을 안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사실 제목을 제외하고
는 영화자체는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엇인가 화려한 기계와의 전쟁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에 비해서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에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 잘 만든
sf의 모습을 보여준다.
적어도 전작들과의 연결점들을 잘 만들어 갔다는 것만으로 이작품은 충분히 잘 만
들어진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전작들의 메세지를 어느 정도는 지키려한 것도 장점
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차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작품이니 다
음 편에서는 제대로 화끈한 기계와의 전쟁을 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터미네이터
의 팬들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