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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이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1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봐도 색채감을 잘 살린 영화 셋 중 하나다. 그림에 취한 신선을 의미하는 취화선. 장승업의 일대기가 날 것 그대로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단원과 혜원이 있다면, 자신도 오원이라며 글도 모르는 그가 꿈꾸는 예술 세계가 화가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는 색채감으로 화선지와 스크린에 동시에 살아난다.
1850년대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를 위험에서 구해준 김선비와의 우연이 그림을 선보이는 인연이 된다. 세도정치가 끝날 줄 모르는 시대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선비와 그림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말하고 초월하려 했던 장승업의 이야기가 한 자리에서 만난다. 사회와 개인, 개인 저마다의 굴곡진 삶을 서사적 서정성으로 감독의 철학이 반영되어 곳곳에서 드러난다. 과연 사람은 무엇인가, 시대와 개인의 관계는 어떻게 흐를 수밖에 없는가,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만남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장승업에게 예술이 무엇이고, 화인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며 오원이라는 호를 지어준 김선비는 장승업에게 뜻밖이자 엄청난 행운이다. 그저 청계천 변에서 끝났을 지도 모를 인생이 역관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가교가 되어준다. 이 시기에 그림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고, 첫사랑도 느낀다. 첫사랑 소운의 결혼과 그녀가 병으로 죽어가며 청한 그림 한 장. 그 그림은 사랑이자 이별이다. 신분의 굴레와 여러가지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청년의 모습이 안타까움 자체로 되어 표출된다.
장승업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난다. 몰락 양반 집안의 딸인 기생 매향의 생황연주에 끌리며 시작된 만남은 매향이 승업의 그림에 제발을 적으며 예술과 사랑의 하모니를 들려준다. 첫사랑이 마음의 아련함이라면, 시대속에서 만난 매향의 인연은 장승업의 인식이 변화하는 축이 된다. 이 시기가 조선 후기 무렵에 격렬하게 진행된 천주교 탄압시기과 겹쳐 천주교 신자인 매향과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 장승업 스스로 생각하는 시대상이 생기고, 그것이 생활과 예술에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무것도 모르고 배운 것도 없는 어린 장승업이 만난 김선비와의 만남, 짧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한 이응헌의 집에서의 생활, 그림만 그릴 줄 아는 사람에서 세상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매향과의 만남이 순차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가 술에 취해서밖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던 이유, 조선의 끝자락에서 부딪친 생활이 그의 그림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사실적이면서도 토속적인 아름다움으로 그려냈다. 누군가 한국영화 중에서 한국을 잘 표현한 작품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꼭 이 작품 이야기를 한다. 인물, 시간과 공간의 배경, 영상미까지 쏠림없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 영화의 한 컷, 오원 장승업이 조선의 사계절을 담기 위해 방안에서 고뇌하다 종이만 계속해서 찢는다. 그러다 말을 타고 떠나는 길에 조선의 춘하추동이 화면에 나타나는데 그 순간, 놀란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장면을 짧은 시간안에 화가가 화폭에 담듯, 촬영감독이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오원 장승업 자체를 보여주는 인물로 배우 최민식 씨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누군가가 할 수도 있지만, 장승업이 세상에 대해 그림에 대해 사람에 대해 느낀 희로애락의 감정선들은 완벽하게 살아 총천연색으로 나타난다. 그 많은 동선중에서 자신의 붓소리만 들리는 예술인의 최고경지를 온 몸으로 표현한 화가의 표정과 모습은 가장 극대화된 무아지경을 보여준다.
임권택 감독님이 김훈 작가의 <화장>을 영화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글의 문체를 이 감독님이라면 그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기대한다. 디지털 화면에 조명과 후광효과가 가득한 스크린에서 보여줄 것만 제대로 보여주는 영상미학이 조선의 <취화선> 속에서 그려졌다면, 과연 현대 중년 가장의 현실은 어떤 방식으로 말할 것인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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