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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16.. 화.
믿고 읽는 모악시인선의 다섯 번째 시집은 박형권 시인의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이다. 제목부터 길고 어려운 시집 같지만, 내용은 가덕도와 마산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본 많은 물고기들과의 만남, 그리고 거기에 얽힌 부모님, 친척들과의 인연들이 잘 나와있다. 물고기의 이름들이 가덕도에서 부르는 사투리로 나와있어서 더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넘치며, 현대판 [자산어보]라고 가히 부를만 하다. 전에 다른 시집에서 <털난 꼬막>이란 시를 읽었었는데, 그 한 편에 나는 이 시인에게 반했었다. 그리고 모악시인선이라서 볼 것도 없이 믿고 구입해 두었던 시집이다. 1961년생인 시인은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배를 타고, 낚시도 하며 수많은 물고기들과 조우를 했다. 그 시절 물고기들과의 만남을 더듬으며 빚어내는 빛나는 시어들은 손택수 시인의 말처럼 "해발은 다시 시작한다. 지구(地球)가 아닌 해구(海球)의 역사를." 멋지게 쓰고 있다.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달이 뜨지 않는 그믐밤이면 바다는 스스로 밝다 파도에 뛰어든 뿌연 인광이 항구의 앙가슴처럼 스스스 무너진다 아직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순결한 밤일수록 더욱 빛난다 빛도 바다의 일부분인 것을 어부들은 안다 가덕도 사람들은 어두운 밤바다의 인광을 '시거리'라고 부른다 인도에서 흑조(黑潮)를 타고 온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다의 인광은 바다의 말일 것이다 사실은 야광충이 내는 빛이지만 나는 여전히 말이 빛을 내는 거라고 믿는다 누구나 한번은 어휘가 많은 인생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말의 고향인 인도로 한번 놀러가고 싶었다 그 그믐밤 아버지는 나를 저어 탕수구미로 낚시를 갔다 칠흑 같은 바다가 노의 궤적을 그렸다 몰고씨이를 꿰고 바다에 넣자 바다가 몰고씨이의 궤적을 그렸다 그런 밤은 붕장어의 밤이다 섬광 같은 신호가 왔다 바다 밑이 외등을 켰다 꿈틀거리는 빛의 반란! 바다는 살아있는 빛을 모국어로 썼다 모두 몸으로 뒤채는 언어였다 그 사이 이 행성의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가덕도의 밤은 육지에서 꺼졌고 이제 시거리로 말하지 않는다 밥 묵었나? 하고 이웃을 빛나게 하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말의 시대는 내가 시거리를 처음 본 순간부터 떠나가고 있었다 가덕도 탕수구미의 황홀한 말씀이시여…… 상향!
*몰고씨이 : 갯지렁이의 가덕도 말 --- 14p. - 15p.
예전에는 창원에 속했던 가덕도가 지금은 부산시에 편입되어 있으며, 거제도와 잇는 거가대교로 인해서 육지와의 교통이 아주 편해진 섬이다. 이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은 어두운 밤바다에서 빛나는 인광을 가덕도 말로 '시거리'라는 것을 알려주며, 실은 인광이 바다의 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다가 하는 말, 바다는 "살아있는 빛을 모국어로" 쓰는데, 이제는 바다의 말을 들을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 사이 이 행성의 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가덕도의 밤은 육지에서 꺼졌"을까. 아마도 현대문명의 발달로 인해서 너무 밝아진 조명 때문에 바다는 더이상 "시거리로 말하지 않는"것은 아닐까. "밥 묵었나?" 하고 물으며 이웃끼리 정답게 나누던 말도 사라진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시인은 "상향!"이라는 제문에 쓰이는 언어로 과거를 애도하고 있다.
얼룩감씨이를 그리워함
큰아버지는 논에서 고개를 숙이는 나락을 보며 성북리 연못에 가서 민물 새우를 잡아 손수 만든 미끼 통에 담고 집에 와서는 우물을 퍼 손발을 씼고 저녁 드셨다 새우가 미끼 통에서 튀는지 밥 드시는 내내 톡톡 소리가 났다 달과 별들은 그때쯤 나와 부스스 기지개를 켜고 대통에 구운 콩을 담는 걸 구경하였다 늘 닦고 매만지는 장대를 메고 사립문을 나가면 달과 별이 따라 나갔다 왜 나는 안 데리고 가느냐고 일곱 살 나는 고래고래 울고 그날은 누룽영 포인트로 길을 잡으셨다 그때는 여전히 돌아서는 모퉁이마다 전설이 있고 달로 묏등을 지나면 해치이불이 등잔덩이만 했다 새바지를 지나면 파도가 들치고 누룽영에 닿으면 마파람이 불어 바다는 그때부터 팔뚝만한 감씨이가 덥석 물고 늘어지는 예감으로 빛났다 감씨이가 안 오는 날에는 도깨비가 찾아와 구운 콩 갈라먹자고 보채고 한줌 쥐어주면 오도독 오도독 맛있게 먹었다 먹은 값 하는 것인지 곧 초릿대가 바다로 빨려들고 은비늘 찬란한 밤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그 즈음 나는 큰아버지 기다리며 마루 끝에 앉아 오도독 오도독 구운 콩을 먹는다 콩 다 먹고 꾸벅꾸벅 졸면 어흠, 대문으로 들어서는 얼룩감씨이! 모를 거야 당신은, 못 봤을 거야 당신은 남극 크릴새우를 밑밥으로 쓰는 당신은 들은 적 없을 거야 등짝에 얼룩무늬가 그려진 붙박이 감씨이를 가야겠네 바람 부는 밤에 내 유년이 졸고 있는 해초(海草)속으로
* 감씨이 = 감성돔 --- 20p. - 21p.
아름다운 전래동화 한 편을 읽은 듯 하다. 밤낚시를 나가는 큰아버지가 얼룩감성돔을 잡아올 때를 기다리며, 구운 콩을 "오도독 오도독" 소리를 내며 씹어먹다가 조는 소년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구운 콩을 담는 것을 달과 별이 구경하고, 돌아서는 모퉁이마다 전설이 있고, 감성돔이 안오는 날에는 도깨비가 찾아와서 구운 콩을 갈라먹자고 하는 가덕도의 밤은 생생하고 아득한 전설 그 자체이다. 구운 콩을 도깨비에게 나누어 준 덕으로 큰아버지가 감성돔을 낚은 것일까. "먹은 값을 한 것인지"라는 말 속에 도깨비가 마치 은혜를 갚기라도 한 것처럼 구수한 정감이 넘쳐난다. 시인의 "유년이 졸고 있는 해초(海草)속으로" 나도 들어가고 싶은 밤이다.
봉암 꼬시락
마산 봉암의 꼬시락은 변강쇠의 가운데 발가락을 닮았지요 대가리는 커다랗고 몸통은 길쭉한 게 볼품은 없었지만 그 맛은 생긴 그대로 발기에 특효지요 칼등으로 대가리를 톡톡 쳐서 회로 먹으면 고소하지요 그렇게 생긴 것들은 대개 오르가슴에 유익헤서 봉암에 즐비한 횟집들로 선남선녀가 줄지어 찾아들어 서로 건드려보며 사이좋게 놀았지요 이슥해지면 무성한 소문을 향해 스며들었는데 어디에서 산란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단지 서로가 서로를 꼬셔버렸다고 주체할 수 없었다고 변명처럼 전설처럼 전해져 올 뿐 창원공단과, 자유를 수출하는 수출자유지역이 생기기 전에 나는 아버지와 낚시를 갔지요 봉암으로 봉알을 달랑거리며 낚시를 갔지요 아버지는 큰 걸로 나는 작은 걸로 골라서 낚는 사이 20세기는 지나가버리고 마침내 푸르른 내 시력이 희미해졌지요 썰물처럼 밀려난 마산 앞바다의 꼬시락 한 마리를 최후로 알현하고 시신을 수습했지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름다운 청춘들을 내돌리는 사이 다들 잘 먹고 다들 잘 산다고 믿고 있는 사이 우리를 일으켜 세울 왁자한 명상 하나가 사라졌지요 이제 무슨 맛으로 당신을 꼬시나요 마산 사람은 마산 안에서 사라지고 지금 나는 발기부전 중인데 이상하여라, 꼬시락 잘근잘근 씹어보고 싶네요
* 꼬시락 = 두줄망둑 --- 46p. - 47p.
두줄망둑이라는 물고기를 꼬시락이라고 부르는 가덕도 사람들의 표현이 참 정겹다. 그런데, 이 시는 그 정겨움을 추억하며 한편으로는 사라진 꼬시락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꼬셔버렸다고, 주체할 수 없었다" 는 변명같은 전설이 사라지고, "내 푸르른 시력이 희미해"지는 시점에 "꼬시락 한마리를 / 최후로 알현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니. "다들 잘 먹고 다들 잘 산다고 믿"었지만, 꼬시락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바다가 되어버린 것은 산업화니, 근대화니 하는 미명아래 파괴되고 있는 자연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파괴되는 자연 앞에서 인간 또한 '발기부전'이라는 병을 얻었으니, 시인의 안타까움은 오래전 꼬시락을 잡으러 가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인간은 진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답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선뜻 답하지 못하는 이 난감함에 나도 꼬시락이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뒤포리 국수
뒤포리는 회로 먹는 것도 좋지만 몸 우려낸 국물로 옛날 국수를 감싸 안았을 때가 최고다 밴댕이 소가지로 너른 바다를 주유하다가 뒤포리 국수 한 그릇이면 파도치는 위장을 잠재울 수 있다 멸치보다 약간 크고 납작한 뒤포리는 깡통집 뒤편 뒤포리 국수집에서 펄펄 끓는 뼈 우려내고 눈알 우려내고 빈 소가지 우려내서 국수 국물에 파도 향기가 스며들었다 전라도 청년 감주열이 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역사적 운명 앞에서도 부마항쟁이 있었던 그해 저녁 무렵에도 뒤포리 국물 우려내는 냄새로 모든 역사는 허기를 면했다 내가 최루탄가루를 뒤집어쓰고 간 1980년의 봄에도 주인은 삶아놓은 국수 한 덩이를 잘 우려낸 뒤포리 국물에 담갔다가 건져냈다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담고 매운 고추 한 개 썰어 넣고 다시 뒤포리 국물을 부어 툭 집어던지듯 내놓던 뒤포리 국수 손님을 물로 보나 싶다가도 뒤포리 국물에 고개를 숙였다 다리 밑에서 자던 사람도 와서 먹고 밤새 술을 따른 여자들도 와서 먹고 주인도 배고프면 먹고 항상 위장이 비었다고 생각하는 나도 먹으면서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을 것 같은 뒤포리 소가지에서 마산은 소복소복하게 쌓여 한 덩이가 되어갔다 나는 그날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달라고 했다 듬뿍 뿌려주는 고춧가루로 타오르는 내 속에 마중불을 질렀다
* 뒤포리 = 밴댕이 --- 66p. - 67p.
속이 좁은 사람, 마음이 삐쭉빼쭉한 사람에게 흔히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을 한다. 가덕도에서는 밴댕이를 뒤포리라고 부르며, 뒤포리의 속을 푹 우려낸 국물을 삶은 국수에 부으면 거기서 파도향기가 난다고. 국숫가게 주인이 "툭 집어던지듯 내놓"으면 "손님을 물로 보나 싶다가도 / 뒤포리 국물에 고개를 숙였"다는 뒤포리 국수는 그 맛이 어떨지 가히 상상이 간다. 누구나 먹던 뒤포리 국수, 많은 사람들의 속을 달래주고 풀어주던 뒤포리 국수에 나도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달라고"해서 한 그릇 먹으면 엉킨 속이 확 풀리지는 않을까 생각만으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시간표대로
산기슭에 들어선 갈빗집 말고 카페 말고 마을 앞으로 흐르던 실개천 말고 그 실개천이 바다와 만나던 것 말고 가포 초등학교 옆 무논에서 지절대던 개구리 소리 말인데 그 소리를 들으며 바다로 가면 옛날에 가포 본동에서 살았던 인생 후배 녀석 하나가 땅값이 오르자 무담시 여자에 빠져 부모가 물려준 밭뙈기 몇 평 지키지 못하고 술로 끝장낸 흔하고 지루한 실연이 생각난다 그냥 잠깐 떠오르는 생각일 뿐 농어새끼 가지메기를 만나러가는 내 발걸음을 막지는 못한다 실개천이 그리운 큰아버지 집에 가듯 흐르다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밤바다 조곤조곤 털어놓는 사연 같은 비를 다 받아내고도, 아직도 보고 싶은 밤바다 거기는 가지메기들의 터미널 가지메기로 남느냐 농어가 되느냐 번민하다 대부분 농어로 향한다 토닥토닥 밤비가 어깨를 두드리는 이런 날에는 역시 농어보다 가지메기가 반갑다 곧 매립될 조경수역에 앉아서 나는 미리부터 미래에 만날 가지메기를 회상한다 오늘 한 바구니 낚은 가지메기는 내일이면 반 바구니로 또 내일이면 몇 마리로 마침내 빈 바구니로 터벅터벅 걸어 나올 미래를 돌이켜 본다 땅값이 치솟고 집값이 오를수록 가지메기는 가는 거다 한방에 훅 가는 거다 지금은 좋은 얼굴로 굿바이 하는 거지만 당신을 밤마다 울게 한 개구리 소리처럼 어느 날 문득 그들이 없다 나는 가포 본동 앞바다의 가지메기를 추억하다가 죽은 자식 고추 만지는 시를 쓰게 되는 거다 이미 정해진 시간표대로
* 무담시 = 괜히 --- 68p. - 69p.
농어의 새끼인 가지메기는 과거 추억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이제는 없어질 자연의 상징이다. "오늘 한 바구니 낚은 가지메기는 내일이면 반 바구니로 / 또 내일이면 몇 마리로 마침내 빈 바구니로"될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허기진 미래가 연상되며 마음까지 허해진다. "땅값이 치솟고 집값이 오를수록 가지메기는 가는 거다 / 한방에 훅 가는" 가지메기를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은 자식 고추 만지는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고향의 풍경, 아름다운 자연, 추억의 물고기들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진다. 더구나 이게 "이미 정해진 시간표대로"라는 게 더 안타깝다.
덕석도다리
그해 초봄 대한민국의 남쪽 거제도에 백설기 같은 눈이 내렸다 거제의 동편 두모에도 내려 내 청춘의 날개진지에서 전투식량으로 이틀을 때우고 분대벙커로 돌아올 때 동백 꽃잎은 뱃사람의 첫 키스처럼 허기졌다 전방 백마부대에서 하사로 근무하던 나는 중대 전체가 갑자기 최후방으로 이동하는 괴상한 전략이 이해되지 않았다 군대에 말뚝 박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므로 육개월 남은 군대생활 까라면 까기로 했다 내 유년이 뛰노는 가덕도가 희미하게 보이고 내 앞에서는 언제라도 옷을 내릴 수 있는 애인이 사는 마산도 헤엄쳐서 건너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분대벙커에서 내려다보이는 선착장에서 낚시꾼 몇이 펄펄 내리는 초봄을 낚아 올렸다 동백 꽃잎이 무수히 쏟아지는 그 소모전에서는 누구에게나 순국할 기회가 주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나는 낚시꾼이 낚아 올리는 조국의 한때를 불심검문하러 갔다 한 지점에서 끝없이 낚여 올라오는 덕석도다리! 한 낚시꾼이 말했다 날씨가 추우면 도다리 떼가 덕석만한 크기로 모여든다고 도다리의 생존전략이라는 거다 팽팽한 핏줄 같은 청춘이 그리워 두모에 놀라 갔는데 덕석도다리를 만나지 못했다 아미 고무신 바꿔 신은 열애처럼 바다는 생존전략을 잃어버렸으니까 동백 따라 꽃 피는 덕석도다리 그때는 가난한 것들끼리 모여 영하로 떨어진 체온을 비비며 서로를 살렸다 죄지은 놈 잡아오라 했는데 가난한 놈 잡아들인 시대의 허구 속에서도 서로 호 호 부는 것이 다시 모이자는 은유였었다 --- 76p. - 77p.
제목만 보고 덕석도에 있는 다리를 말하는 건가 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라 날씨가 추울 때 "도다리 떼가 덕석만한 크기로 모여든다고" 덕석도다리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덕석이라면 추울 때 소 잔등을 덮어주는 멍석을 일컬음인데, 도다리 떼가 모여 드는 게 덕석만하다니 가히 장관일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도다리의 생존전략이라니... 그들도 살기 위해서 체온을 합하기 위해 모여든 걸까. 이제는 바다가 생존전략을 잃어버려서 덕석도다리도 볼 수 없다니, 덕석도다리도 이제 시인에겐 추억 속의 장면으로 남게 되나보다. "죄지은 놈 잡아오라 했는데 가난한 놈 잡아들인 / 시대의 허구"를 살아온 없는 자들의 비애를 영하의 추위 만큼이나 마음까지 추웠던 시대에 "체온을 비비며 / 서로를 살렸"던 그들의 삶을 그리워하는 시인. 결국 서로 체온을 나누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만이 없는 자들의 생존전략임을 덕석도다리도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주꾸미가 부러웠다
주꾸미를 낚으려면 소라껍데기가 필요해 소라껍데기를 줄에 매달고 바다에 던져놓기만 하면 돼 열 살인 내가 소쿠리섬에 갔을 때 아버지는 전세살이를 청산하고 집을 지었지 집 지은 기념으로 낚시를 갔는데 진해 소쿠리섬에는 무주택자가 많았어 선풍기도 찬장도 장롱도 없는 소라껍데기에 주꾸미가 들어왔지 곧 죽을 줄도 모르고 주꾸미들이 집에 환장해 있었어 집이라고 들어와 발 뻗고 누우려 하는 놈들을 아버지는 낚아 올리자마자 우물우물 씹어먹었어 낚시꾼들은 언제나 자신의 비법을 아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주꾸미를 산채로 먹는 법을 배우지 말았어야 했어 나중에 나도 아들에게 가르치려다가 원시인으로 낙인 직혔지 그런데 나는 쉰여섯이 된 이 나이에도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생각해봐 물 속 미역 숲 속의 소라껍데기 집을 집 때문에 완전히 갔군,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내 몸을 잡아 잡수신다 해도 한 번 들어가서 살고 싶어지지 진해 남동쪽 소쿠리섬 바다의 물살 좋고 물빛 좋은 곳에는 여전히 쓸 만한 빈집이 굴러다니고 있을까 그 근처에 조카 하나가 살고 있는데 소라껍데기 몇 개 주워놓아라 하면 안 될까 소쿠리만한 지붕 아래에서 밥 갈라 묵는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었어 --- 86p. - 87p.
주꾸미가 부럽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하며 시를 소리내어 읽었는데, 끝에서 목이 메어 다 읽지 못했다. 빈 소라껍데기를 좋다고 들어앉는 주꾸미를 아버지는 산채로 씹어 드셨고, 그걸 배운 시인도 아들에게 가르치려 했지만 원시인 소리를 들었다는 말에서는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쉰 여섯이 되었어도 집이 없어서 누가 "내 몸을 잡아 잡수신다 해도 / 한 번 들어가서 살고 싶어지"는 집 한 채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 짠해진다. "소쿠리만한 지붕 아래에서 밥 갈라 묵는 /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싶었" 던 시인의 소박한 소망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게 영 서글프다. 주꾸미도 집이 있는데, 그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살아보고 싶은건데, 이 땅에 참 많은 집이 지어지고 있는데, 어쨰서 그저 살기 위한 집에 매긴 값이 그렇게도 비싼지... 돈 없는 설움, 집 없는 설움에 주꾸미를 부러워하는 가난한 시인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다.
더 많은 좋은 시들이 있어서 선별하는데 애를 먹었다. 한편 한편이 가보지 않은 가덕도에 대한 그리움으로 쌓이고, 본 적 없는 물고기들에 대한 상상으로 즐거웠고, 겪어보지 못한 어린 시절에 대한 따뜻하고 정겨운 추억 덕분에 푸근했다. 하지만 이제는 문명의 발달로 인해서 사라진 물고기들이 많고, 없어진 정경들이 많다는 것에 안타깝고 속상했다. 어종들이 줄어들고, 바다가 생존전략을 잃어가고,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겉보기에는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룬 도시와 어촌의 모습이 정말 괜찮은걸까. 우리는 진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먹거리에 비상이 걸린 지 이미 오래고, 바다도 몰래 버린 쓰레기와 폐기물에 몸살을 앓고 있기에 "정해진 시간표대로" 가고 있는 시대의 흐름이 슬프고, "죽은 자식 고추만지는" 격의 시를 쓰는 시인의 쓸쓸함이 안타깝다. 처음 시집을 읽을 때는 시집의 제목이며 표제작의 제목인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이라는 말이 도대체 뭔소릴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시거리의 뜻을 알게 되고, 시를 다 읽고 나니, 제문의 끝에 쓰는 "상향"이라는 말을 왜 시에 썼는지 이해가 갔다. 흘러간 과거이며 다시 못볼 추억의 장면들과 어종들에게 올리는 마지막 인사가 아닐까. 마지막 인사임을 알기에 시집을 다 읽고 바라보는 제목은 가슴이 아프다.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아름다운 자연과 태고의 바다와 수많은 물고기들과 눈물나는 추억들...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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