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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배경에 공포와 슬픔을 담은 듯한, 커다랗고 퀭한 눈의 핏기 없는 소녀의 얼굴을 그린 책의 표지는 마치 공포영화의 포스터를 연상케 하여 책을 드는 내 손길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책을 펼치자 가스실에서 고통과 공포에 질린 책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검은 배경은 그 어느 그림보다도 아우슈비츠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암흑만이 존재할 뿐 어떠한 희망이나 기쁨도 존재하지 않던, 시간의 흐름조차 멈춰 버렸을 가스실의 그 절망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듯하다. 책의 그림들의 색은 온통 검은 색과 회색뿐이다. 물론 흑백이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단순히 선의 색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 자체가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그 느낌이 더 강조된다. 인물들의 표정도, 그들이 입고 있는 옷 등 모든 것이, 있어서는 안 되었던 아우슈비츠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단지 민족이 다르다는 것이 그 많은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것이 갓난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죽어야만 했던 대학살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어떤 아름다운 명분으로도, 또 어떤 치밀한 논리로도 그들의 죽음을 설명하거나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학살이고, 그것은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잔인무도한 범죄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역사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남의 일이고, 과거의 일이기만 한 것인가? 2차 대전 중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행해진 생체 실험의 기억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동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인종 청소 또는 민족 청소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에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던가? 또 테러와 그 테러에 맞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죽어간 사람들은 과연 몇몇인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던 세시아와 카직은 유고 내전에서 1993년 국가반역죄로 처형당한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책의 마지막에 1945년 8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실을 두 줄로 언급하고 있다.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아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해 궁금하다. 원자폭탄의 투하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최소한 일본 정부는 그 부당성을 주장하고 자신이 피해자라는 주장을 내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과 난징 대학살 등 2차 대전 중에 주변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 자신의 범죄에 대한 반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후에 다시는 증오라는 이름의 범죄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넓혀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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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크로시 글,그림/이승재 역 | 문학세계사 | 95쪽 | 448g | 2003년 05월 06일 | 정가 : 8,000원
첫페이지에서부터 사람 잡는 이 문장들은 할말이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연필로 그린 듯 보이는 그림들은 언듯 보기에는 꽤나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림 안의 인물들의 쾡한 눈과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배경이 축약되어 있어 인물들이 강조되고 동작 하나하나가 강렬하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두 마른 모습에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정적인 수용소 장면이 바로 떠오른다. 분명 컬러 화면이면서도 흑백으로 보이고, 사진이 아니라 영상임에도 정지된 듯한 느낌. 힘들다. 누구나 들어봤지만, 누구에게나 생생하지는 않은 경험을 이 만화는 생생하게 전달한다. 흑백의 그림이라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끔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