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장이 별로 깔끔하지 못하다. 인물들도 필요에 따라 등장했다가 어느 샌가 사라진다. 그들의 성격마저도 평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을 보는 눈이 시원찮은 내게도 서툴러 보이는 소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서현우는 글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김현희 KAL 858기 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이고, 이 소설도 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국가권력의 자해공갈을 의심하고 있다.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실종된 대한한공 KE858기 사건의 진범은 '북한공작원' 김현희가 아니며, 어떤 '배후'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냐고 추궁한다. 그래서인지 예상 밖으로 김현희에 대한 언급은 미미하고, 폭파 진범으로 설정된 안기부(現 국가정보원) 해외공작팀 '해모수'의 행적을 뒤쫓는 형식으
로 소설은 진행된다.
애초에 논픽션으로 다룰 만한 소재를 픽션의 형태로 가공처리 해 내놓았을 때에는 필시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듯하다. 과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혹을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을 것이고,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배후'를 섣부르게 적시하여 명예훼손의 죄를 저지를 수도 없었을 터이다. 거기다 저자는 '가짜범인(?)' 김현희나 진범 해모수에게나 모두 연민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부당한 권력의 집권에 조력한 셈이 되었지만 나름대로는 국가를 위하고자 했다는 확신범(確信犯)의 이미지로, 게다가 임무를 완수한 뒤에도 세계 각국 첩보전의 표적이 되고 조국에게도 버림받는 비참한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소설 전반에 걸쳐 독자들의 증오 대상이 될 만큼 구체화된 악인(惡人)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소설가보다 진상조사위원장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했던 것이 아닐까. 가짜든 진짜든 그들 모두를 동정함으로써,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살고 있을 그들의 고백성사를 이끌어 내려는...... 물론 그들에 대해 단죄를 해야 함이 마땅한 정의(正義)겠지만 정의에 앞서 진실이 더욱 갈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라도 되듯, 책의 머리말이 들어갈 자리에는 김현희의 정체에 의문을 던지는 사진이 실려있다. 평론가들의 덕담이 들어갈 자리엔 <87년 김현희 KAL기 사건 전면 재조사에 관한 청원서>, 그리고 115명 희생자 명단이 길게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작가의 감회와 포부가 마땅히 있어야 할 후기(後記)조차 재수사를 촉구하는 저자의 말이 무슨 선언문 비슷할 만큼 삼엄하게 쓰여있을 정도다. 소설 안에서나 밖에서나 일체의 여유를 느끼기 어렵다.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침묵으로 견딜 수밖에 없던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이 그랬듯이.
언제부터인가 국가권력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정부 의견과 시민단체 의견이 갈라질 때, 후자를 보다 신뢰하게 되는 걸 단순한 반발심이나 편견으로만 치부할 수 없으리라. 더구나, 권력 자체가 정당성에 기초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의혹의 수위가 몇 배 높아질 수밖에 없다. 7,80년대 있었던 의혹 사건들이 이제 와서 대부분 국가의 잘못으로 판정나거나, 뭔가 찜찜한 여운을 남긴 채 유야무야 덮어지려 하는 것을 보라.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가 그랬고, 수지 김 사건, 허원근 일병 사건이 그랬다. 비슷한 종류의 의혹이 생길 때마다 안타깝게도 슬픈 예감은 ―내가 사는 이 국가가 무언가 꺼림칙한 일을 획책하여 연명(延命)하고 있을 지 모른다는― 틀린 적이 없다.
이제 또 하나의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 파괴력은 메가톤급이다. 하지만 이것이 설령 과거 권력의 조작으로 들통나더라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경악하진 않을 듯싶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그 정도(!)의 충격에는 끄떡도 없는 강심장을 가져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과거와 명랑하게 작별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씁쓸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