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여자이야기'라는 주제를 말하면 일하는 여성이라든가 세련되고 멋진- 이상적인 어떤 형태를 그려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실제하기보다, 이상에 가까운 쪽이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삶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있겠느냔 말이다. 이 책의 '여자들'은 실제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더 환상같이 느껴지는 우리네 여인들의 삶이다. 정녕, 책 한권으로는 모자를 법한 기구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 흙으로 빚은 자서전이라는, 책의 주제가 이렇게 내용과 잘 어울리기도 힘들듯 허다. 삶의 얼룩마냥 초연함마저 느껴지는 사진들은 애잔함과 굴곡이 그대로 느껴져 가슴이 져며오고- 결국 지나고 나면 모두 옛일인 것을, 허망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니 순간 모든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허나, 또한 삶의 희망도 동시에 느껴지니 그것이 바로 '삶'이란 것의 정체가 아닐까. 할머니들의 구수한 사투리가 그대로 녹아든 탓에 흙냄새 물씬 풍기는 정감도 있지만 글에 집중도가 좀 떨어지는 면도 있다. 게다가, 이건 온통 가슴에 시커멓게 멍이 들어버린 이야기들이다보니 애잔함에 읽는 속도가 더뎌지기도 하고... 그저 살아가며 휴식같은 몇 페이지를 읽으며, 달래며, 그리 즐겨야 할 책이다. 청년실업이 얼마고, 장기불황이 어쩌고 해도 결국 우리는 많은 혜택을 받고- 전쟁이 뭔지, 삶에 희망이 없는 비참함이 무엇인지, 억압받고 체념을 먼저 배운 이들의 욕심없음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한채- 그리 자라온 탓에 배부른 투정만을 할 뿐이니 이런 책 한권이 전해줄 수 있는 아련함이란 결코 작은 것이 아닐터이다. 어찌 그리 모질게 일하고, 치이고 살다가 결국 자식들에게 인정받기는 커녕 버림받기까지 하는 우리네 '여자이야기'가 아닌가. 마치, 지금의 우리가 살아갈 발판을 위해 대신 십자가라도 짊어질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듯이...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정말 혜택받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이렇게 하고 싶은대로 마음가는 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시대가 또 있었던가 말이다. 최소한 전쟁이라는 단어가 다른 나라 말이고 역사에나 등장할법한, 소설속의 이야기일 따름이니- 기실 북한의 핵무기니 휴전선이 어쩌고 해도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프리터족'같은 새로운 문화마저 생겨날 지경이니.... 우리는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굶주림만을 알고 있을뿐 이미 받은 것의 풍족함은 돌아보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니,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머리속을 지나가는 바람창고에 잠시나마 흙냄새를 풍겨보길 바란다. 이미 찌들어 버린 머리속을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도록. |
|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수첩에 사 읽고 싶은 책으로 메모해 두고 이제서야 읽었다. 눈물맛이 나는 우리나라 여인사라고 할까. 읽는 내내 목에서 가슴으로 뭔가가 뭉쳐지는 느낌이 들었고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못내 가난하고 힘들고 고생스러운 이야기가 '더 더'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정작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것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발랄(?)하였기 때문이다. 구수한 사투리를 직접 구술하여 책을 펴낸 효과는 커서 마치 할머니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잔혹하고 무정한 삶을 이야기하면서 글 쓴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할머니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 담았기에 울림이 더욱 컸다. 박완서 선생님이 후기에서 썼듯이 '여인 잔혹사'라고 해도 무방하리만치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았지만 원망이나 미움보다 차라리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어찌 그리 가슴 아픈지. 그리고 애닳고 눈물겨운지. 남자도 여자도 다 읽어 보았으면 싶은 이야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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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살아 온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생긴 것 만큼이나 다 다르면서도 늙음의 주름처럼 또 그렇게 닮은 이야기들. 오로지 어디 이씨, 어디 김씨,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려 보지 못하고 살아 온 우리 어머니들의 삶은 언젠가 꼭 한 번 마음을 다해 불러 보고픈 노래처럼 절절하고 폭폭하다. 책 한 권도 모자라고, 듣느니 그 시간들도 모자라고, 그 사연에 웃고 우는 우리의 감정마저 거덜이 날 정도로 삶은 탄탄한 이야기를 갖춰 읽는이로 하여금 헤어나 올 수 없게 만든다. 그 시절 누구는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마는, 어쩜 저리 힘겹게 입 한 번 제대로 못 열어 보고들 사셨는지. 사내는 끝없이 무능하던지, 한없이 바람을 피우던지, 징그럽게 노름을 해대던지, 무심하게 무뚝뚝하던지.... 또 그네들의 어머니는 어떤가. 같은 여자로서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들이 서로를 규정 짓는 위치 하나로 위 아래로 갈려 또 얼마나 모질게들 구는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그 구수한 입담과 모든 것을 얼싸 안는 특유의 넉넉함 때문에 그 모짐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혀 나간다. 지독한 시어미, 표독스런 시누이, 장대 같은 시동생들에 말 한 마디 없는 시아버지, 도대체 왜 이러고 사는지 답을 주지 않고 겉으로 도는 남편. 줄줄이 등 한 번 빈 적없이 채워나가는 새끼들. 그 삶의 폭폭함에도 할머니들은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서 말을 한다. 이미 죽고 없는 시어미를 흉보다가도 "다들 그렇게 힘들었어..."하는 한 마디로 봄 눈 녹듯 녹는 허물들은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삭혀 온 할머니들 나름의 사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서방 얼굴 한 번 못보고 열 다섯에 시집 와서 애 하나 낳고 3년만에 죽은 남편, 서방 잡아 먹은 년 구박하며 눈을 부라렸던 시어미. 정말 이런 삶이 있을까 싶게 구구절절하다. 사랑해 주시던 친정 부모님과 15년 살고, 남편과 3년을 살고, 유복자로 낳은 자식 스무해 살고 먼저 보내고, 악다구니 쓰며 살아온 시어미랑은 40년이 넘게 살고... 참으로 누가 말 해 줄 수 없는 사연들이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의 사람에 대한 정은 책이 주는 그 까칠한 느낌만큼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런 책이 쓰여지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조선 팔도 구비구비마다 널렸을꺼라 생각하니 한 숨 나오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끌어 안고 웃음으로 지내시는 그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 참말 차간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읽는 내내 착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던 책, 눈으로 활자를 쫒아서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던 그 사투리들을 소리내어 읽으며 쿡쿡거렸던 즐거움이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남는 오늘이다. [인상깊은구절] 강원도 안평 마을 이씨 할머니 -임이 그리워 죽어진 사람 생오리거리 묻어주고 길속에다 묻으란 말야 길녘에다 배가 고파 죽은 사람 창고문 밖에다 묻어 놓고 돈이 그리워 죽은 사람 은행소 문턱에 묻어주구 나 겉은 놈 죽어지면 뒷동산 양지끝 꽃나무 밑에다 묻었다가 진달래꽃이 지면 파내서 철쭉꽃 밑에다 묻어줘요. |
| 난 이상하게도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한다. 하나같이 굳은 등에 새카맣게 그을려 주름이 자글자글한데다 짦은 머리에 마치 고목을 연상시키게 바짝 마른 거친 손이 어쩌면 다들 그렇게 똑같은지. 그들에게 꽃다운 처녀시절, 새댁 시절이 있었을텐데 웃음마저 흔치 않은 그들에겐 가벼운 육체마저 큰 짐처럼 느껴진다.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여자 이야기는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어린 새끼들과 무능력한 남편이나 시집 식구를 위해 허리 한 번 필 생각 못하고 물 한 모금 떠마실 여유도 없이 움직이다가 노년에는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그야말로 파파할머니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역사가 아닌가? 불편하고 비위생적인 것을 못 참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을 닮으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다면 여자들이 분개하겠지만 우리가 책임져야 할 어른들로 느낀다면 남녀 공동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그녀들은 남녀모두의 어머니이니까... |
|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어머니로 한 평생을 살아온 그네들의 주름 가득한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작디 작아 보이는 키, 한없이 굽어 보이는 허리. 그럼에도 웃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 ‘기막힌 여인 잔혹사’라고 박완서 님은 이야기하셨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체 결혼했고, 고달픈 시집살이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체념하면서 살아온 그들의 모습은 행복도, 만족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웃을 수 있는 것은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1920,30년대 태어나 우리 나라의 가장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가던 모든 이들의 삶이 담기어 있었다. 유별나게 고생했던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불과 나의 조부모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너무도 보편적인 이야기. 너무 낡아 찢어질까 두려운 책장을 넘기는 것 마냥, 나는 그렇게 그들의 삶을 훔쳐보았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처럼, 하지만 그들은 단지 조금 더 먼저 그들의 삶을 시작했을 뿐, 나와 같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것일까. 급격한 사회의 변화, 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 빠르고도 더딘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화를 겪지 않은 듯 했다.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 갇히어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 마냥, 처음부터 지금의 쪼글쪼글한 피부를 가진 할머니의 모습으로 살았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익숙치 않은 지명을 가진 그 어느 곳에선가 여전히 민속촌에나 있을 법한 아궁이로 밥을 지으며 사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아이 낳지 못하는 집의 작은 며느리가 되어버린 이, 남들이 미쳤다 이야기하는 적을 알 수 없는 또 한 명의 여인과 함께 서서히 늙어버린 한 여인 그리고 열 하나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등을 바쳐야만 했던 사람. 그 기구한 삶을 어떤 말로 설명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힘들어야만 했던 것일까. 어린 나이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린 그 억척스러움. 이제는 그들의 피부 하나 가득 남아있는 주름만이 그 모든 것을 증명해 보일 뿐. 그 누구도 보상해주지 못할 그들의 삶에 나의 몸은 떨렸다. 구수한 사투리로 내뱉는 문장 하나하나마다 그들의 한은 서려 있었다. 외롭고 괴로울 때마다 부르곤 했다는 노래 가사들 속에 그들이 지녔을 모든 감정들이 맺혀 있었다. 그들 아닌 어느 누구도 불러서는 안 될 노래, 그들 아닌 어느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을 듯한 가사의 노래. 그 노래만으로도 책 한권은 가득 차고 말았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시대에는 당연히 그랬다는 말로 이해되곤 했던 눈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중장년층에게는 한없는 향수를 불러 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여자의 삶은 당연히 이래야 하는 거라며 요즘 여성들은 이기적이라고 비웃는 이도 있을까 두렵다. 이 책은 지난 날을 그리워하고 그 때로 돌아가기 위한 책이 결코 아니다. 지금껏 침묵해야만 했던 이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다소 늦었지만 지금까지 아팠다고 신음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우린 그들의 아픔을 공유해야만 한다. 우린 그들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가능케 했던 여성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가능케 한 우리 자신의 울음 소리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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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은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기거나 아니면 이름 석자를 온 세상에 알린 사람들의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는 식의 성공기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남성보다 더 유명해진 당찬 여성들에 대한 보고서는 더욱 아니다. 시골에 가면 볼수 있는 우리 할머니, 희끗한 머리카락에 힘줄이 불뚝불뚝 두드러져 보이는 거친 손으로 오십년 육십년 손에서 호미를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 바로 우리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름도 제대로 들어 본 적 없는 두메 산골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자신이 민며느리인 줄도 모르고 낯선 집에 끌려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이씨 할머니, 전라도 금산댁 할머니는 징용으로 끌려 간 남편이 죽어서 돌아온다. 그 후 친정 오라비 손에 이끌려 친정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후처 자리로 다시 시집을 가서 본처 대신 아들, 딸을 낳고 친 자식들게 작은 어머니 소리를 들으며 아직도 본처 할머니와 함께 한 동네에서 살고 있다.
모두 여섯 할머니 이야기가 그 분들 입말 그대로 옮겨져 있다. 구수한 사투리를 그대로 입속으로 따라서 읽다보면 어느덧 쪽진 머리에 몸빼 바지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굽은 허리가 더 굽어지게 지게를 진 할머니가 옆에 있는 듯하다. 어찌 그렇게 고생에 고생일까 어찌 우리 할머니들, 아니 우리 어머니들은 세상살이가 녹록하지 않았을까? 할머님들 중에 시인 한 분이 계신다.
밥을 먹어도 나 혼자요 잠을 자도 나 혼자요
쓸쓸한 초가집이 빈 방안에 이부자리 펼쳐놓고
원앙금침 잔물베개 머리맡에 내려놓고
샛별 같은 놋요강은 발짓 닿음에 들여놓고
앉었으니 우리 낭군 오시나 누웠으니 잠이 오나
졸졸 흐르는 도랑물에 한들한들 버드나무
밑에서 머리만 남실남실
오실려거든 버젓이나 오시지요
버드나무 밑에서 머리만 남실남실하네요
참으로, 시대를 잘못 태어나 샛별같은 글솜씨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묻힌건가 아니면, 혹독한 세상살이에 허리 펼 날 없었던 우리 할머니, 독한 시집살이만큼 지독스럽게 외로웠던 그 시대 우리 어머니들이 모두 시인이었던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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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보니,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고, 우리 어머니 연배와 같은 분들이나 아니면 더 이전의 모든 분들은 결코 자신의 인생을 사신 게 아니셨던 것 같다. 등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지만 자기 배 채우려기 보다는 오히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뙤약볕에서 일하신 분들이셨다. 아이를 몸에 품고서도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 종일 품을 팔아야 했고, 저물기까지 논과 밭으로 휘젓고 다녀야만 했는데, 급기야 논두렁에서 아이를 낳곤 하셨던 분들이셨다. 혹여 남편이 이웃집 아내와 바람이라도 나는 날이면 불난 집에 부채질 할 수 없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다 뒷정리나 고작 수습하던 분들이 아니셨던가. 더욱이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 밑에서는 따뜻한 물에 손 한 번 담그지도 못한 형편이 아니었던가. 그런 인생의 질곡을 담고 있는 책이 아마도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여자이야기》<디새집>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한평생 모진 생을 사신 여섯 분의 할머니가 소개돼 있다. 결혼하면서 허약해진 남편 대신 바깥일을 도맡아 하던 강원도 워래골 김씨 성을 가진 할머니, 전라북도 위도에서 태어나 남의 집 애보기 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결혼한 뒤로, 단 하루도 시어머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살기가 폭폭했다는 깊은금마을에 사는 심씨, 1921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데릴사위로 들어온 신랑을 따라 강원도 화천의 시댁으로 들어갔는데, 신혼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과부로 사무친 생을 살아온 강원도 안평마을의 이씨 할머니, 그 외에도 충청도 물한마을에 사는 이씨 할머니라든지, 경상도 구수마을에 사는 이씨 할머니, 그리고 전라도 선정마을에 사는 금산댁 할머니 등의 이야기가 육성 녹음 그대로 실려 있다. 그분 들 중, 내 기억 속에 가장 고이 간직되고 있는 할머니는 금산택 할머니시다. 그 분은 1922년 둔병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 열 일곱 살에 지금 사는 곳으로 시집을 오셨고, 섬에서 살다가 뭍으로 시집을 오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행운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꼬막이 유명한 지금의 마을에서는 '뻘 배'를 타고 바다 일을 해야만 하셨으니 행운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그 뻘 땅에 고역만 찾아 왔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해 입덧을 하실 즈음 남편은 일본군에 강제징집으로 끌려갔고, 그 후로 8년 동안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며 살았다고 하니 인생이 참 억샌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남편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자기 살 길을 찾겠다는 심사로 이웃집 손 씨를 본 마누라로, 자신은 후처로 그렇게 한 울타리에 들어가 50 평생을 사셨다고 하니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작은 어매 금산 댁 할머니에게 '작은'이란 말은 당신 배 아파 낳은 자식을 호적에 올릴 수 없는 아픔과도 같았을 것이고, 언제나 2등일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였으니 누구를 탓할 수 있었겠는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도, 뻘 땅을 파 헤친다해도 평생 한으로 살아온 나날들을 어찌 두무마리 삼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이야기들이 담긴 이 책 속에는 곳곳에 구수한 사투리가 섞여 있고, 쭈글쭈글하지만 웃는 얼굴들이 사진첩처럼 담겨져 있어서 솔솔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재미의 원천은 원색적인 사투리의 묘미에만 있는 게 아니다. 비록 몸은 말이나 소처럼 쇠꼴이 빠지도록 일해도 오로지 남편과 자식만을 사랑하는 천사 같은 마음 마음들이 나 같은 독자들을 마음에 감동의 수를 한 올 한 올 그려 놓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2003년 10월 20일, 권성권 올림)디새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