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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상에 대한 앎
"그 대상에 대한 앎" 내용보기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어울려 함께 가는 교육은 없다. 지방 소도시에도 어김없이 학원이 난립하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듯 오가고 있다.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강사이자 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분명 지금 교육현실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아마, 교육 정책 수행 담당자 조차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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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어울려 함께 가는 교육은 없다.

지방 소도시에도 어김없이 학원이 난립하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듯 오가고 있다.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강사이자 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분명 지금 교육현실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아마, 교육 정책 수행 담당자 조차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집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아이들의 삶에 가해지는 유무형의 억압과 폭력'으로, 아이들을 깊게 병들게 한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 폭력은 무지에서 옵니다. 개별 존재에 가해지는 구체적인 폭력은 개별 존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비폭력 혹은 사랑의 바탕은 그 대상에 대한 '앎'입니다. ......"

아이들의 상처를 바라보고 보듬어 가는 교사, "폭력의 근원인 사냥꾼의 사냥을 중지시키는 나그네"와 같은 교사가, 이 책을 통해 한없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교육 현장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 삶의 현장에 항상 참여하는 저자 이계삼 선생에게 박수와 존경을 표한다.

YES마니아 : 골드 l******e 2009.1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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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를 묻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를 묻다." 내용보기
자라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열려 있는 무위(無爲)의 시간'이다. - 본문 26에서   *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 시간들, 친구들과 어울려 별볼일 없는 이야기에도 까깔대고 시시덕거렸던 시간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괜히 거리의 바람을 맞으며 서성였던 그 시간들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를 묻다." 내용보기

자라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열려 있는 무위(無爲)의 시간'이다.

- 본문 26에서

 

*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 시간들,

친구들과 어울려 별볼일 없는 이야기에도 까깔대고 시시덕거렸던 시간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괜히 거리의 바람을 맞으며 서성였던 그 시간들이

돌아보면 나를 그리고 우리를 크게 성장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놀고 웃고 까불고 서성이고 방황하면서 저마다의 고민과 상상과 생각과 고독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때론 훌쩍 어른이 되어갔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쁘다. 너무 바빠서 놀 시간도 멍하게 지낼 시간도 고민을 할 시간도

생각을 할 시간도 없다. 그저 부모가 짜준 시간표에 맞추어 학습하고 학습하고 주입하고 또 주입한다.

그렇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덩치와 욕망만 커다랗게 자라는 미성숙의 어른들이

양산되는 세상. 

 이 책은 바로 그런 세상에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현실이 기막히지 않느냐고 이 현실이 슬프지 않느냐고 묻는다. 왜 아무도 아이들에게 교문 밖을 나서서 바로 직면하게 될 세상과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여기와 동떨어진 멀리 있는 '이상'과 객관화된 '지식'만을 읊고 있어야 하냐고 묻는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문제들을 눈돌려 외면하지 말고, 바로 보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위로하며 그렇게 인간답게 살자고 말한다. 사람을 향해 거침없이 흔들리는 이 세상에서 조각배로 살아가는 우리지만 그래도 인간으로 인간답게 당당하게 살자고 말한다. 그 작은 양심과 인간다움조차 지켜내기 힘든 세상이지만 말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지키기 힘들게 만드는 이 세상과 그 속에서 지켜야 하는 양심과 아이들의 불안한 미래와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을 그저 모른 척 없는 척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대답을 찾는 그의 모습에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많은 고민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다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사람들 누구나 이 세상에서 각기 자기가선 그 자리에서  답을 찾고자 허둥대고 있구나 다들 아프게 견디고 있구나 싶기도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내몰려 휩쓸려가는 어른들과 그 어른들에게 손잡혀 함께 딸려 가는 아이들. 이 기막힌 나라 어처구니 없는 현실 속 가장 아프고 가장 슬픈 교육에 관한 책

이계삼의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다.

- 다락방서 허뭄

 

 

지은이는 1973년생으로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김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지금은 다시 고향 밀양으로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교조 밀양지회에서 활동하며 <녹색평론> <우리교육>한겨레 등에 교욱과 사회에 관해 썼던 글들을 모아 낸 책이다.   

 

g*****6 2010.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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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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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저자 이계삼/출판 녹색평론사/발매 2009.10.29.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 통렬하게 반성하게 된다. 영혼이 없는 삶의 결과로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의식하지 못한 채 미국을 닮아가려는 삶에 종지부를 찍어보자. 지금부터는 당당하게 살자. 지금의 '사회'는 영혼이 없다. 본디부터 영혼이 없었던 것이다.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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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저자 이계삼/출판 녹색평론사/발매 2009.10.29.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 통렬하게 반성하게 된다. 영혼이 없는 삶의 결과로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의식하지 못한 채 미국을 닮아가려는 삶에 종지부를 찍어보자. 지금부터는 당당하게 살자. 지금의 '사회'는 영혼이 없다. 본디부터 영혼이 없었던 것이다.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P32~33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온전한 사람의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운명, 그러나 이 땅에 생명 붙이고 빚어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보다 힘없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의지. 아름다움의 신비에 대한 찬탄. 이러한 정신은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길러지는가. 나는 인간 정신이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가난', '결핍' 그리고 '힘없음'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은 바로 이 조건에서만 이루어지며, 이것들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정신이야말로 교육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는다. 행복이라는 환상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하다는 사람, 잘 산다는 인간들, 선진국, 경제대국, 이런 것 모두 야만족의 집단이지 어디 사람 다운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없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며, 생과 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의 바깥을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계'를 살면서 '저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한 개체에서 죽음이란 말하자면, '있음'이 어느 순간 '없음'으로 화() 하는 것일진대, '저 세계'의 존재에 대한 믿음 없이 이 기막힌 변화를 우리가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P70

만약 이 진리에 고개 끄덕인다면, 이제 이런 질문들이 생겨난다. 밥을 위한 노동, 밥을 위한 희생, 밥의 나눔, 거기에 깃드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우정과 사랑, 이것 외에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만약 사람이 밥을 위해 살지 않고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동차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어떤 세상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발전된 세상'이라고 굳게 믿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는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계삼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1.07.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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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나라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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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았습니다. 여기에 맞추어 그분의 자서전도 함께 출간됐지요. 방대한 분량이지만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자서전을 대필한 분을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언론계 대 선배님 뻘이었죠.   그분은 김 대통령의 마지막 눈물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서전의 집필위원 임명장을 받으러 간 날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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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았습니다. 여기에 맞추어 그분의 자서전도 함께 출간됐지요. 방대한 분량이지만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자서전을 대필한 분을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언론계 대 선배님 뻘이었죠.

 

그분은 김 대통령의 마지막 눈물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서전의 집필위원 임명장을 받으러 간 날이었죠.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다들 나보고 그냥 조용히 살지 왜 굳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돌아 다니냐고 한다. 하지만 나라도 나서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 내가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아무 힘도 없지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민주화를 위해 돌아가신 수많은 의사, 열사들이 지하에서 울고 있지 않나. 어찌 내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겠나.”

 

이 말씀을 하시며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평생을 싸워온 투사의 이미지도 그날엔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진정 사람들을 걱정하고 염려했던 노 정치인, 한 인간의 모습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나흘 뒤 대통령은 입원하셨고, 5일 뒤 서거하셨습니다.

 

2009년 6월 11일, 김 대통령은 마지막 연설을 했습니다. 6·15 공동선언 기념 행사였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이미 물 한 잔을 스스로 들 수도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약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분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대통령의 최후의 절규였습니다.

 

이계삼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처음 들었던 마음은 한없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평균 이상의 양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믿어왔던 제가, 사실은 애써 고통과 눈물과 아픔을 외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타인의 눈물이,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본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지, 얼마나 아플지 알면서도, 그야말로 푼돈을 후원금이나 회비로 내는 것으로 현실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돈에 대한 광기, 섹스에 대한 변태적 집착만이 남은 사회. 소외된 이웃들의 가슴 아픈 사연보다는 연예인의 화보 사진이 더 많은 화제가 되고, 인터넷 포털에는 온갖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검색 1순위가 되는 시대.

 

이런 세상에 도무지 희망이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부러 외면하고 부러 눈 감고, 모른 척 하려 했습니다. 스스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스스로의 나약함과 무력함이 너무도 보기 싫어, 그렇게 허망하게 살아왔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명박 정권의 오만방자한, 경악할 만한 작태들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결국 “어찌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난감함이 돌아올 것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전 그렇게 비겁하게 숨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그 몸을 불살라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당 정치인 그 누구도, 양심적 지식인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으려 했던 침묵의 시간에, 그는 그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미쳐버린 세상에 대한 열패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 눈물이 사리지고 욕망과 탐욕만이 숭배 받는 시대에, 전 모두지 설 자리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슬픈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와 닿았습니다. 책을 읽다 눈에 번쩍 들어온 글이었습니다.

 

“행복이라는 환상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 잘산다는 인간들, 선진국, 경제대국, 이런 것 모두 야만족의 집단이지 어디 사람다운 사람 있습니까. 어쨌든 저는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눈물의 소중함을 잊고, 마냥 외면만 해 온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미쳐버리게 만든 인간이 바로 나와 같은 종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워만 했습니다. 짐짓 고상한 척 뒷짐을 지고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행동하지 않았던 ‘악의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찾아야겠습니다. 더 이상 최악일 수 없는 세상이라도, 희망을 찾아야겠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고, 서럽고, 고통스럽겠지만, 눈을 부릅뜨고 다시 세상을 바라봐야겠습니다. 미디어가 전해주는 쓰레기 같은 뉴스들이 아닌, 시스템이 강요하는 비인간적 돈 놀음이 아닌, 제 ‘눈과 양심’으로 다시 세상에 맞서겠습니다.

 

저 하나 따위야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도 살아야겠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수치와 모욕 대신, 더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람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계삼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고 인연이 닿는다면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더욱 더 좋은 글과 행동으로 어리석은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서럽지만 아름답게,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0.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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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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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영혼을 유지하며 아이들 앞에 설수 있다는 것, 일관성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 문제의식을 가지고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귀찮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아이들에게 세상일을 왜곡시키지 않고 숨기지 않으면서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 사소함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 상처가 포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 ....... 쉽지 않다.   저자 이계삼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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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영혼을 유지하며 아이들 앞에 설수 있다는 것, 일관성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 문제의식을 가지고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귀찮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아이들에게 세상일을 왜곡시키지 않고 숨기지 않으면서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 사소함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 상처가 포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 .......

쉽지 않다.  

저자 이계삼씨가 쓴 이 책은 쉽게 읽힌다. 

한국사회에 대해, 한국교육에 대해,노동운동에 대해, 지역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국어교사이면서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시민단체 활동까지...

실천하는 교사, 행동으로 보여주는 교사가 절실한 한국사회에 의식있는 교사의 모델이 아닌가 한다.

세상살이에 무관심한 자, 세상일에 고뇌하는 자, 세상일에 고뇌하며 행동하는 자.

행동하지 않으면서 남이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입에서는 불평 불만이 떠나지 않으면서 말이다..

갑갑함을 지닌채, 서로 단절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나, 너.. 

서로의 무관심은 외로움을 낳고, 그 외로움은 삶의 의미를 잃게 한다.

소통할 수 없는 단절에.. 쉬이 삶을 저버린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을 살아갈만하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음에 화가나는 요즘이다. 이 화는 누구에게 내야 하는거지?....누구에게..

대안을 얘기하기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절망감까지 든다.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자신감이 그립다..

 

 

 

 

 



YES마니아 : 로얄 m****5 2010.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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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신이 온전하려면 가난해야 한다"
""인간 정신이 온전하려면 가난해야 한다"" 내용보기
《녹색평론》2001년 9-10월호(통권 60호) 뒷부분을 보면「카를로 줄리아니의 죽음 앞에서」라는 글이 있다. “부자들만의 세계화도 이제 그만! 공권력의 살인도 이제 그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글은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시위를 하다가 죽은 스물세 살 젊은이의 죽음을 “지극한 형제애로, 연민과 슬픔과 분노로 지켜”본 소회를 담고 있다. 마지막에는 글을 쓴 사람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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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2001년 9-10월호(통권 60호) 뒷부분을 보면「카를로 줄리아니의 죽음 앞에서」라는 글이 있다. “부자들만의 세계화도 이제 그만! 공권력의 살인도 이제 그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글은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시위를 하다가 죽은 스물세 살 젊은이의 죽음을 “지극한 형제애로, 연민과 슬픔과 분노로 지켜”본 소회를 담고 있다. 마지막에는 글을 쓴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시민 이계삼, 손영익, 변홍철”이라 적혀 있다. ‘시민’이 글을 쓴 것도 흥미로웠지만 한반도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외국의 한 젊은이에게 깊은 형제애를 느끼는 감성이 자못 미더웠다.


이계삼 선생은 그렇게 미덥게 다가왔다. 그런 뒤 선생은《녹색평론》의 주요 필자가 되어 글을 발표했고 그때마나 주의 깊게 읽었다. 예민한 감성과 단단해지는 지성이 결합한 성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이《한겨레》나 다른 매체에 글을 발표할 때도 자주 글을 찾아 읽었다. 글로도 만났을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자리에서도 가끔 만났다. 권정생 선생님 장례식장과 선생님 기일에 맞춰 방문한 조탑리 오두막,《녹색평론》에서 주관하는 행사장, 강연회장 등에서 만났다. 그럴 때마다 선생은 새로운 현장에서 행동하고 있었고 새로운 행동은 새로운 인식과 글을 낳았다.


선생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가난이다. “자연으로부터 쫓겨나 한국 교육이라는 집단가학 시스템 속으로 유폐된” 아이들을 구하는 길은 가난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저는 인간정신이 가장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가난’, ‘결핍’ 그리고 ‘힘없음’이라고 믿습니다. 이 땅의 아이들은 가난했던 시절에 가장 아이다웠고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은 경제성장 이후로부터 아름다움을 잃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녹색평론》이나 권정생 선생님의 글에서 익히 보았던 내용들이다. 다만 그것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선생이 교육 현장에서 겪으며 직접 길어 올린 글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온전한 사람의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운명, 그러나 이 땅에 생명붙이로 빚어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보다 힘없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의지. 아름다움의 신비에 대한 찬탄. 이러한 정신은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길러지는가. 나는 인간 정신이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가난’, ‘결핍’ 그리고 ‘힘없음’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은 바로 이 조건에서만 이루어지며, 이것들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정신이야말로 교육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는다. (32-33쪽)


말만 번드르르 할 뿐 실천하지 않는 지성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선생은 교사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고통을 함께했다. 때로는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했고 더 많은 경우 혼자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제 선생은 아예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 평생을 보장받는 정규직인 교사직을 버리고 밀양송전탑대책위 사무국장이 되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선생은 싸우는 한편 밀양이라는 소도시에서 농사를 지으며 학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의 스승으로 자라고 있는 선생의 계획이 비틀거리되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지기를 바라며 그 길에서 어떤 식으로든 손을 잡고 싶다.

YES마니아 : 골드 g*******g 2012.09.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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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환희,새마을,참나무,옻나무-성석제와 이계삼
"청자,환희,새마을,참나무,옻나무-성석제와 이계삼" 내용보기
담뱃갑 ...어린아이들 싸우는 것 보면 몸으로 엉겨붙어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 입으로는 온갖 욕을 다하잖아. 그래 춘근이가 먼저 욕을 하기 시작한거야. "야이 씨발놈, 개새끼야, 좆만새끼, 호로자식…" 이렇게 춘근이가 한바탕 욕을 끌어붓자, 멍하니 듣고 있던 일근이가 맞서 대거리한다는 것이 이러는 거야. "야이 참나무야, 대나무야, 밤나무야, 옻나무야…" -<영혼없는 교육
"청자,환희,새마을,참나무,옻나무-성석제와 이계삼" 내용보기
담뱃갑

...어린아이들 싸우는 것 보면 몸으로 엉겨붙어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 입으로는 온갖 욕을 다하잖아. 그래 춘근이가 먼저 욕을 하기 시작한거야. "야이 씨발놈, 개새끼야, 좆만새끼, 호로자식…" 이렇게 춘근이가 한바탕 욕을 끌어붓자, 멍하니 듣고 있던 일근이가 맞서 대거리한다는 것이 이러는 거야. "야이 참나무야, 대나무야, 밤나무야, 옻나무야…" -<영혼없는 교육>에서 구자행 구술 인용/이계삼/실천문학사/2009.10


그때까지 욕을 몰랐던 못물골 일근이는 늘 보고 듣는 것이라곤 소나무, 대나무, 밤나무, 노루, 산토끼,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이런 것 뿐이었으므로 욕도 성정에 맞게 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흙'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밖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태 교육학자 이계삼(고향인 밀양에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은 아이들이 참나무나 노루가 안되고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가 된 것에 대해, '영혼없는 사회의 복제품'이 된 것에 대해 뼛속까지 아파하고 있었다. 

고민거리라도 떠안듯 책을 펼친건 아픔과 슬픔에 눈물짓고, 비판과 통탄만 거듭할 것이 염려되어서다. 예외없이 받았던 영혼없는 교육에 분노를 보태보자고, 아이에게 심심찮게 저지를 영혼없는 교육방침에 찔려보자고 무거운 독서를 시작했지만, 그래도 눈에 불을 켜고 찾게 되는 대목은 '실천적' 가치였다. 교사의 '가르침' 말고 '배움'의 소스를 얻어내고 싶었다. 결과는 '얻은것 같다'이다. '얻었다'고 확답할 수 없는 것은 저자가 말한 '어쩔수 없지'로 굴러가는 세상에 내가, 나의 아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석제의 <인간적이다>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들이 상시적으로 피우던, 임진왜란 때 수많은 왜적을 수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함 '거북선'과 같은 이름의 담배를 살 수 있는 돈 삼백 원에서 백원이 모자랐다. "야, 청자 피우자. 값도 딱 맞네." 네 사람 중 돈을 한 푼도 내놓지 않은 내가 말했다. "청자 사봤자 우리가 또 한 시간만 피우면 다 없어져. 차라리 백 원짜리 환희를 두 갑 사는게 어때?"  전체 돈의 절반인 백원을 낸 김의 주장이었다. 그러자 오십 원을 낸 박이 반대했다. "차라리 삼십 원짜리 새마을을 피우면 피웠지 환희는 목 따갑고 존심 상해 못 피운다." <인간적이다>/성석제/하늘연못/2010.3

돈이 없는 것과 담배를 피운다는 공통점을 가진 친구들은 이런식으로 거북선, 청자, 환희, 새마을, 까치 라는 담배 이름을 줄 세운다. 국가의 공공사업에 걸맞게 애국심과 국민의식 고취로 점철된 이름짓기이긴 하지만, 속이 빤한 슬로건조차 사라진 국적불문의 디스, 레종, 시즌, 에세, 심플에 비한다면 참으로 토속적인 감칠맛이 있다. 두 책의 인용구는 불과 한세대 전쯤의 일이지만 변화의 가속 덕분에 복리이자와도 같은 시간의 곱을 느낀다. 

사진출처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06021702533&sec_id=560101&pt=nv

담배 이름 하나만 하더라도 현대가 원하는게 무엇이냐 하는 점은 분명해진다. 거북선의 기상과 청자의 유구함, 까치의 청량함을 되돌려 세우기보다-꼭 그래야 하는 건 아이지만- (미국을 향한)싸구려 세계화나 난해한 감성을 무기로 담배를 포장하고자 하는 욕구. 그것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에서 등장하는 '자극으로 편집된 세계' 와도 같다.

자극으로 편집된 세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극으로 편집된 세계로 지칭되는 것은 '매체'다. 선택의 자유가 한없이 보장되어있는 착각을 주는 미디어들이 사실은 퇴폐적인 뉴스편집 아래 놓여있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어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멋쩍은 그 접속 세상을 들춘 저자는, 미디어가 현대적 의미의 보육기관, 즉 우리는 '정신적 고아들'이라는 거침없는 진단을 내린다.
 
담배갑에서 한글이 빠진 변화의 순간을 되짚어보려는 개구진 시도가 아니라, 흙과 풀과 나무와 강을 등지고 나아온 2010년의 한국의 삶이 담배갑에서 사라진 향토성에서 드러난다는게 얄궂은 거다. 이제는 독(毒)도 세련되게 포장되어야하는 위장의 시대에 우리는 결국 청자와 시즌 중에 고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담배와 담배 아닌 것 중에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즌과 에세 사이에서 자유선택 한다는 믿음을 가져야한다. 이 분절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통감스러운지(과장의 유머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지금 당장 담배인삼공사에 들러 담배 이름 좀 바꿔보자고 방명록 한 줄 갈기고 싶어진다. 

담배도 담배밭을 등졌는데, 농촌이 논밭을 버리는 일은 왜 못할까. '우리 아이들에게 농업과 농촌의 가능성은 제로의 게토'라는 <영혼 없는 교육>의 말이 목덜미를 조른다. 다시 한번 지금 당장 농촌으로 가서 인구를 보태고, 교육부에 대고 노작교육을 실시하라고 시위하고, 병역의 한 분야로 농촌을 생각해보라고 저자와 함께 외치고 싶은 심정이 들고만다. 이런 실천적 가치가 이 책의 심각한 어조 속에 뭍힌 감동이다.  

자꾸 부딪혀 섞임

<여기는 은하스위트>의 이명랑은 마주할 수 없는 사람들(계층간의 차이)을 한데 모아놓고 이야기판을 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꾸 부딪혀야 합니다' 라고 소설과는 사뭇 다른 경건한 어조로 말했다.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하게 그려졌을 현실의 판타지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섞일 수 있을까까지 소설에 바랄 수 없으니, 해답은 스스로 구할 밖에. 

마침 <영혼없는 교육>에서 교육은 '섞이는 것'이라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여기는 은하스위트>가 교육적인? 취지가 있었음을 다시금 상기했고, 더불어 이 말이 얼마나 소설적인 환상인지도 실감했다. 교실에는 온갖 아이들이 있어야 '아이들 존재에 찍힌 가난과 열등감의 낙인이, 부유함과 우월함의 표지가 실은 별것 아님을' 알수 있다는 생태교육학자. 현실적인 비판의 칼을 수두룩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미련을 어수룩히 간직한 감성적 교사를 단 한번이라도 나는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또 진정한 교육을 우정이라 부르는 저자는 권위의 실추나 배움의 군기가 빠질것을 염려할리는 만무하다. 성석제의 이야기가 구현하고 있는 '인간적인 삶'을 아이들이 상향의 가치로 느낄 수 있다면 하고, 멋대로 '자꾸 부딪혀서 섞이는' 설계도 한 장을 그려본다. 하지만 삶은 이토록 편편하지 못해 성석제의 이야기맛이 평민의 영웅담이자 일상의 강력한 위로임에는 분명 하지만, 그 어떤 위태로움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위태롭지 않은게 성석제 이야기의 마력이고 또한 의당 그러해야 하며, 영혼없는 교육의 수혜자보다 영혼없는 교육의 패배자가 이렇게 빛나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고 대거리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가 들추어내지 않았더라면 감쪽같이 사라졌을 수많은 군상 중에 나나 나의 이웃이 끼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잘디 잘은 생활근육만큼 든든하다.

허무한 접속의 삶에서 앎의 삶을 되돌아보게하는 작가와 교사. 서정시의 언어를 닭살스럽게 여기는 황폐해진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감성이 이곳에 있는데, 너희라도 무게잡지지 말자고 대자보라도 방방곡곡 학교에 붙이고 다닐까보다.  
m*******4 2010.05.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