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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그 희망찬 죽음의 신화
"불멸, 그 희망찬 죽음의 신화" 내용보기
※이 리뷰에는 작품의 내용이 담겨있어 혹여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의 독서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 『그녀(She)』가 상징하듯 한 여인이 지닌 신비의 역사를 쫓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지 1세기가 넘어 섰듯이 불기둥에 들어가는 여인의 행위 등 상징적 소재들에 대한 정신분석 해석이나, 절대 권위를 지닌 독보적 권력자로서의 그녀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불멸, 그 희망찬 죽음의 신화" 내용보기

※이 리뷰에는 작품의 내용이 담겨있어 혹여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의 독서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 『그녀(She)』가 상징하듯 한 여인이 지닌 신비의 역사를 쫓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지 1세기가 넘어 섰듯이 불기둥에 들어가는 여인의 행위 등 상징적 소재들에 대한 정신분석 해석이나, 절대 권위를 지닌 독보적 권력자로서의 그녀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의 해석이 오랫동안 가해져 온 작품이다.

 

이 세상의 이야기란 대개 세 가지의 상황, 즉 결핍이나 상실의 상황으로 시작하거나 아니면 악화되는 형편과 같은 나쁜 현실로, 혹은 세상의 변화나 새로운 것의 도래라는 상황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한편 이야기의 배경(장소)은 주요 등장인물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곳이며, 이 장소를 발견하는 자, 그곳에는 누가 살며, 무슨 일을 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게 하는 작가의 의지와 흥미가 담긴 곳일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추동력인 스토리 엔진에 주목하며 인물들의 욕구를 들여다보고, 또한 이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달려갈 때 정말 원치 않음에도 맞닥뜨리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일지를 예견하며 읽어나가면 그 위기 극복의 과정은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곤 이 소설이 캐릭터의 설정, 장소라는 세계관의 창조, 이야기의 단계별 구조가 얼마나 정교하게 디자인된 결과물인가를 알게 된다. 즉 이 작품이 발표된 1887년 이래 왜 많은 창작자들의 전범(典範)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소설 작법의 전형성에 끼워 맞추는 형식적 대입의 단순성이 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의 지성을 편협하게 몰아 갈 것이라 힐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겐 자칫 시대적 경과로 인한 지루함으로 외면 될 수 있었던 작품을 흥미를 지닌 채 읽을 수 있었던 유용한 견인책이었고, 소설의 재미는 더욱 풍성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 시작되고, 세계관을 펼치기 위해 어떤 장소를 배경으로 삼을까?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이 장소와 어떻게 연결될까? 그들의 욕망은 무엇이며,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장애물들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사설이 지나치게 길어졌다.

 


 

1. 이야기의 시작: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발걸음

 

소설은 케임브리지 대학 특별연구원 자격심사를 앞둔 '호레이스 할리'라는 인물에게 죽음이 임박한 친구가 아프리카 해안 어딘가의 백인 여왕에게 살해된 자신의 조상에 대한 역사를 들려주고, 상당한 유산 그리고 수수께끼 상자와 함께 다섯 살 난 아들의 스물다섯 살이 되는 해까지의 양육을 부탁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상자는 아이가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개봉되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모두를 통제하는 힘을 지닌” 아름다운 백인여성과 불행을 겪은 조상과 관련하여 생명의 비밀과 조상 칼리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요구가 담긴 질그릇을 보게 된다. 이같이 이 환상적 이야기는 할리와 그의 피후견인인 레오 빈시에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 갈 것을 요구하며 시작된다.

 

“미친 짓에 뛰어든 나의 어리석음에 통렬한 저주를 퍼부었다.” -105쪽

 

당연히 할리와 레오는 그들의 오랜 가족이랄 수 있는 충실한 하인 조브와 함께 질그릇에 묘사된 아프리카 해안으로 탐사를 떠난다. 이들은 아랍인 선장이 키를 잡은 다우선(船)에 실려 아프리카 해안에 접근하지만 거친 몬순 폭우를 동반한 극렬한 폭풍우와 육식동물들의 도전, 힘든 노동과 열기, 절망과 모기로 점철된 끝없이 펼쳐진 늪지 통과의 끔찍한 시간을 견뎌낸다. 늪지에서의 고군분투로 지친 생존자 4인의 의식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목에 창을 겨눈 일군의 누르스름한 피부를 한 아랍어 방언을 말하는 종족이 에워싸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설은 할리 일행의 생명을 위협하는, 다시 말해 레오의 조상 칼리크라테스를 살해한 불멸의 존재인 백인 여왕의 실존 확인과 복수라는 탐사 목표를 방해하는 시련에 예기치 못한 일대 전환을 가져온다. 흰색 아마포로 몸을 감싼 노인에 의해 “절대 권위의 그녀”가 발한 명령이 발설된다. “백인이 오거든 죽이지 마라. 그들을 ‘절대 권위의 그녀’의 땅으로 들어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107쪽)” 이들은 모계혈통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남녀 완전 평등의 칠천 명으로 이루어진 촌락으로 안내된다. 아마해거 족의 여왕, ‘하이야’ 혹은 단순히 ‘그녀’로 불리는, 눈이 없어도 볼 수 있고 귀가 없어도 들을 수 있는 존재로 설명된다.

 

여기에 여자의 공개적 포옹이 상대 남자와의 결혼 예식으로 승인되는 아마해거의 관습으로 레오는 ‘우스테인’이라는 여인의 배우자가 된다. 우스테인은 광적인 의식행위의 과정에서 질그릇 조각에 복수의 명을 쓴, 남편 칼리크라테스를 잃은 아내 ‘아메나르타스’가 환생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내가 당신을 떠날 때, 내가 선택한 분이여, 당신이 손을 내밀어도 나를 찾지 못하는 밤이 오면 나와 같이한 시간을 떠올려 주세요. (...) 과거에 했던 쓰디쓴 추억뿐이겠지요(131쪽)”

 

 

 

아마 이 소설이 인종차별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장면이 등장하는 데, 폭풍우 끝에 생존하여 끌려온 4인 중 검은 피부를 한 아랍인 선장은 붉게 달아오른 대형 항아리에 씌워져 삶아지는 아마해거 족 식인 풍습의 희생자가 된다. 다만 레오의 의협심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성난 아마해거 족과의 생사를 건 이들의 격전 속에 목숨을 잃는다.

 

사실 다우선이 폭풍우 속에 난파되어 침몰 될 때에도 아랍인 선원 18명은 배와 함께 수몰됨으로써 일찌감치 백인이외의 인종은 소설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백인 우월주의는 이 작품의 평판을 해치는 요소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아마해거 역시 백인 여왕에 의해 절대적으로 통치되는 유색인종으로 그녀(She)는 이들을 “저 미개한 자들은 상상력이 부족해서 닮은 짐승의 이름을 붙이지요.(198쪽)”와 같이 저급한 동물, 노예로 표현한다.

 

2. 지하 묘지 동굴: 세계관, 욕망들

 

“죽은 것은 죽지 않으며, 영혼의 윤회 속에서는 삶도 죽음도 무가치하기 때문이라네. 아아, 모든 만물은 불멸이네, 때로는 잠들고 잊히겠지만.”  -150쪽

 

이제 생존한 세 명의 백인은 그녀의 메신저인 촌장 빌랄리의 안내로 여왕이 거주하는 곳에 이른다. 질그릇 문장에 기록된 백인 여왕의 실존은 확인 된 셈이다. 그들이 도착한 여왕의 거주지는 시신 방부처리, 매장을 생생하게 표현한 조각과 벽화가 방 전체를 채운 거대한 지하 묘지 동굴이다. 레오는 아랍인을 구하려는 싸움에서 입은 깊은 상처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로 실려 왔다. 할리는 얼굴부터 전신을 얇은 천으로 감싼 유령의 모습같은 그녀와 마주하게 되고, 두 존재의 2천년이 넘는 시간의 장벽을 허문 대화가 이뤄진다. “나는 기억과 같이 살아왔고, 내 기억들은 내 손으로 파낸 무덤 속에 있답니다. 사람의 자식은 스스로 만든 악의 길로 향한다고 했기 때문이죠.(195쪽)” 죽은 자들의 그림자로 덮인 땅임을 할리에게 인식시키는 말이다.

 

그녀는 할리에게 왜 자신이 미천한 야만인들과 이곳에서 살고 있는지 이유를 밝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이 어쩌면 사악하다고 하겠죠.(205쪽)”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연인 칼리크라테스를 살해한 기원전 300여 년 전부터 영원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 2200년의 장고한 시간 속에서 칼리크라테스의 환생을 기다린다. 그녀는 “못생긴 나무지만 지혜를 키우고 있는” 할리에게 호감을 지니고 본명 ‘아샤(Assha)'로 대해줄 것을 청한다. 할리는 용기를 내어 베일을 벗어 얼굴을 보여 줄 것을 아샤에게 청한다. 아르테미스의 나신을 본 악타이온의 죽음을 비유하며 “무력한 욕망이 그대의 심장을 먹어치울 것입니다.(212쪽)”라며 자신의 얼굴을 본 남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상기시킨다.

 

“열정이 그대의 이성에 올라타 그대가 원치 않는 곳으로 가도 나를 탓하지 마세요. 베일을 벗은 내 모습을 본 남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나를 지우지 못합니다. (...) 그래도 보겠습니까?”   -213쪽

 

천상의 아름다움, 절대 미를 인간이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한글 번역본이긴 하지만 이 불가능한 표현을 작가 해거드는 어떻게 묘사하는지도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앞이 안 보일만큼 눈이 부시고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천상의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었다는 운운에 이어 “끔찍할 정도로 사랑스럽고 순수한데도, 사악했다. - 적어도 당시에는 악처럼 나를 후려쳤다. 내가 그것을 어찌 묘사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었다. - 단순히, 불가능하다!(214쪽)”며 이 세계를 초월하는 표현 불능의 존재 미임을 고백한다. 극단은 극단과 물려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선과 악, 삶과 죽음이 결코 다르지 않듯이.

 

육체의 성벽을 강화해 한없이 기나긴 세월 동안 부패의 포격과 파괴에 저항토록 한 여인이 지닌 집념의 실체란 대체 무엇일까? 단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고 단순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의 지고함과 비애라 하겠지만, 어쩌면 아샤와 할리가 주고받는 대화가 작품을 통해 작가가 은밀히 드러내려했던 의도가 아니었는가하는 의심도 해보게 된다.

 

3. 이야기의 진심 혹은 의심

 

아샤, 절대 권위의 그녀는 자신의 열정이 무엇인지 결코 모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지켜온 것의 실체를 설명한다. “생명의 본질이 거주하고 개인의 기억이 머무는 곳, 판단에 대한 모든 잘못과 실수, 충족되지 못한 열정과 실체 없는 정신의 공포가 절망이라는 환상과 더불어 영원히 조롱하고 떠들고 헐뜯고 심장을 쥐어짜는 곳(275쪽)”이다. 그녀는 세상의 이치를 “죄에서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선에서 많은 죄가 태어난다.(281쪽)”며 도덕성이 촉발한 행위의 결과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누가 각각의 끝을 알겠습니까?”

 

“나는 죽음을 극복했고, 죽음은 죽은 그를 내게 돌려보냈네.” - 322쪽

 

자아의 무한 반복적 복사로 영원한 존재가 되려는 ‘희망찬 죽음학’을 외치는 오늘의 극단적 실증주의와 닮지 않았는가? 어쩌면 생명의 근원인 여성을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또한 그녀의 거주 공간을 지옥 같은, 하데스라는 상상의 공간으로 설정함으로써, 게다가 “무덤 속에서 자신을 가둔 채 한없는 세월을(408쪽)” 견뎌 온 불멸의 존재로 만든 것은 마치 전설의 뱀 바실리스크의 치명적 눈으로 인간 세계를 꿰뚫어 비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가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특히 이천년을 기다려 온 연인 칼리크라테스의 환생인 레오와 조우함으로써 그에게 영생을 부여하기위해 불멸의 비법인 화산 동굴의 심연 속에서 순환하는 불기둥에 들어갈 때 그녀는 그 결과를 과연 알지 못했던 것일까? 아샤는 급속히 영광, 그 숭고한 아름다움의 외피를 상실하고 작고 흉측한 원숭이 모습으로 쪼그라든 채 죽음을 맞이한다. 역진화다!

 

통제할 수 없는 힘들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과학이라는 신앙에 매몰된 오늘의 인류를 떠올리게 하는 할리의 문장은 이러한 문명 비판의 사유에 연결시키게 된다. “무엇이 인간이며 어느 날 무엇이 될지에 대한 유형과 이미지를 생각할 때 (...) 고귀한 사고의 영적인 눈으로 무한함의 저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163쪽)” 물론 억측이 될 수도 있다. 밤하늘을 수놓은 천공의 별들을 헤아리며 할리의 마음속에 깃든 인간의 하잘 것 없음에 대한 각성, 이 인간의 흐릿한 지성에 대한 내려놓음의 발언은 마치 수세기 미래에 대한 예언처럼 읽힌다. 할리는 창조주의 힘을 보기위해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새긴다. 불멸이라는 생기를 주던 장소에 죽음이라는 차가운 냉기만 남는다. 내겐 사악할 만큼 집요한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불멸을 향한 인간의 탐욕스러움에 대한 비평적 사유처럼 여겨진 작품이다.

 

“미래에 무엇이 벌어질지 아는 자는 미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인간의 끝인 먼지로부터 달아나려고 안달하지 마세요.” - 3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