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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에 시달리다 학교를 그만 둔 동기를 친구 아버지 부음을 듣고 문상을 간 상가에서 만났다. 40년 만에 만난 친구의 표정에는 신산하였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그동안 그가 겪으며 지냈을 고통이 먼저 떠올랐다. 두려움으로 차오른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기도를 올렸던 아버지의 모습은 오간 데 없이 테러를 선택한 아버지로 인해 잭 가족은 갖은 모멸과 냉대를 겪으며 불안 속에 지내야 했다. 아버지를 테러리즘으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서 시작된 테러의 잔상을 떠안고 살아온 가족은 불운한 숙명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편과도 같은 종교적 신념과 사상적 가치에 매몰된 테러리스트들의 광신적 행동으로 한 가정은 파국을 맞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는 무신론자와의 초혼에 실패한 뒤 상대를 꼼꼼히 알아보지 도 않은 채 이슬람교도인 아버지를 만나 서둘러 혼례를 치렀다. 모스크를 찾아 기도하며 신앙의 깊이를 더하던 어머니는 이슬람을 전도하는 일을 행하며 오갈 곳 없는 이들을 돌보며 종교적 이념을 실천해갔다. 선의의 뜻으로 숙식을 제공하였던 여인이 불순한 행동으로 쫓겨나자 아버지를 강간범으로 몰아 모욕감을 주었고, 가족이 여자의 옷을 훔쳤다며 배상을 요구하여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했던 일의 파장은 컸다. 기도 깔개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웅크린 채 수척해져 간 아버지는 가족 부양과는 멀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직장에서 감전 사고를 당한 아버지는 수니파 선동가의 현혹에 빠져 코란을 움켜쥐고 알라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하며 가족을 못 본 체하는 일이 잦아졌다. 멀리서 지하드를 지원하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는 알라의 의로운 분노를 실천하는 산 도구로 여기는 근본주의자로 굳어갔다. 멘코로 여기는 맹인 셰이크의 부추김으로 아버지는 표적으로 삼은 랍비 카하네를 살해하는 일을 소명으로 여겨 그를 해한 뒤 재판에 회부되었고 종국에는 가정 밖의 거대한 회색 벽에 갇혔고 가족은 살해 협박을 받으며 두려움을 피해 이사를 끊임없이 다녔다. 노사이르 가족이라는 꼬리표는 주홍글씨처럼 따라붙어 가족들을 두려움과 굴욕감으로 내몰았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으로 자리하길 바라는 꿈을 꾸고 있을 때, 수감 중인 아버지는 면회객을 연락책 삼아 쌍둥이빌딩을 무너뜨릴 전략을 짜고 있었던 점은 가족과의 결별이 수순처럼 이어졌다. 항공기와 폭탄을 동원한 동시다발적인 테러공격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 기존의 평화를 깨고 일상성의 균형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는 무기징역형에 15년간 가석방 금지를 선고받은 뒤 경계가 가장 삼엄한 교도소로 이송되어 가족과 통합하는 길과는 멀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폭력과 멸시를 감내하기 힘들었던 가족을 위해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이혼을 결행하였다. 무슬림에게 아버지는 영웅이자 순교자였지만 가족에게는 가정을 파국으로 몰고 간 장본인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은 희망은 꺾였지만 갖은 모욕과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생활 속의 행복을 찾아 나섰다. 옹졸한 복수심과 편집증으로 가득한 새아버지의 핍박과 학대를 참다못한 잭은 새아버지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가정에서 이탈하여 경제적인 활동을 잇는 길밖에 없음을 알아차렸다. 잭 형제가 놀이공원 직원으로 채용되어 새아버지 아메드의 시선과 폭력을 따돌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자 적이 안심되었다. 모스크에서 들은 이야기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던 지난날을 회의하며 경험하지 않은 편견을 깨나갈 때 자아의 본질을 깨달으며 총체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에 신물이 나는구나.’ 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한마디는 경험하지 않은 편견이 자행하는 폭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의 괴한의 기습적인 무장 테러는 150여 명의 목숨을 앗았고 테러리스트들의 무분별한 폭탄 테러에 대한 공포는 평화와 상생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압제의 서슬로 짓눌렀다. 형이상학적인 신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사는 이들의 광적인 행동으로 스러져간 숱한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 도처에서 흘러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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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타고난 숙명(宿命) 같은 것이 있을까?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치면 칠수록 더욱더 우리 인생을 옭아내는 덫과 같은, 헤어 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는 수렁 같은, 그래서 차라리 체념해 버리고 자신을 맡겨버리는 그런 숙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만약 그런 숙명이 있다면 그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일까? 어머니와 자녀들을 때리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던 아이가 커서 다시 폭력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가정을 버린 어머니를 미워하던 딸이 다시 커서 어머니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숙명은 부모님이 만들어 주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부모님이 지어준 숙명을 우리는 평생 짐처럼 떠매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우리는 그 숙명을 던져버릴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와 원래부터 한 몸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의지가 없기 때문일까? 이런 숙명을 끊어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테러리스트의 아들로 불리는 잭 이브라함(Zack Ebrahim)이라는 청년이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란 책으로 출간했다.
책에 실린 잭과 아버지의 유일한 사진, 감옥에서 아버지를 면회할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테러리스트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의 따스한 아빠의 미소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에 마냥 좋아하는 아들의 미소가 너무 인상적이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
처음 테러를 저지른 후 아버지는 자신은 누명을 섰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잭과 어머니, 가족들은 아버지를 믿었고, 심지어 배심원단들까지 무죄판결을 내렸다. 잭은 아버지를 기다렸고, 다시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감옥에서도 또 다른 테러를 계획하다가 발각이 되었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잭은 아버지가 가족과 자신 대신 테러를 택했다는 절망감과 함께 학교와 주위의 폭력까지 견뎌야 했다.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은 그를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고 놀리고, 증오하며, 그에게 폭력을 가했다. 잭과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름을 숨기며 이사를 다녀야 했고, 계속해서 가난과 폭력에 노출되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결혼한 새아버지는 폭력적인 권투선수였고, 그는 잭이 성인이 되기까지 그와 어머니에게 종교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다. 잭의 성장과정은 만신창이였다. 폭력의 일상 속에서 그는 폭력으로 살았고, 주위에서는 그에게 증오와 분노를 가르쳤다. 그럼에도 그는 그 폭력과 증오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그리고 이런 폭력과 증오가 결국에는 편견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
어리 적에는 집이나 학교나 모스크에서 들은 이야기에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다른 모든 것과 함께 편견이 나의 사고 체계에 슬며시 스며들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 "파이는 3.14이다." "유대인은 모두 사악하며 동성애는 죄악이다."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다." 그때는 전부 사실처럼 들렸다. 내게 판단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나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그들에게서 멀어지려 애섰다. 편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기에, 그들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아닌지 애초부터 알 도리가 없었다.(P112)
잭은 마치 사고가 나서 만신창이 된 차량과 같은 존재였다. 반복되는 사고로 인해 모든 부분이 부서지고, 깨어지고, 찌그러져 있었다. 주위에서 보기에 도저히 다시는 수리될 수 없을 것 같은 차였고, 포기하고 버리려 했던 존재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며, 그 역시 자신 안에 있는 아버지의 폭력성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스스로를 고치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이 책에서 편견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누군가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선 취약한 사람을 찾는다. 자신감, 소득, 자부심, 활력을 잃은 사람을, 아니면 삶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을. 그다음 그를 고립시킨다. 그를 두려움과 분노로 채우면, 그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 캘버턴 사격장의 사람 형상을 한 얼굴 없는 표적으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날 때부터 증오를 훈련받은 사람도, 마음이 비뚤어지고 무기처럼 된 사람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평화를 남달리 옹호하는 사람도 될 수 있다. 폭력, 차별, 권리 박탈의 결과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어본 사람들은 세상에 더는 피해자가 필요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P122-3)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부터 어떠한 특정한 사상이나 가치관에 세뇌가 되고, 폭력과 증오에 그대로 노출이 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형성된 폭력과 증오의 자아는 타인에게 다시 그런 폭력과 증오를 심어준다. 단지 과격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세대 간의 갈등,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우리 사회 뿌리까지 스며들어 있다. 서로를 증오하고, 서로에게 언어와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상이 그대로 대물림되고 있다. 저자처럼 누군가가 끊지 않는다면 이런 폭력과 증오는 계속해서 우리를 옭아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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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이브라힘과 제프 자일스가 쓴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잭 이브라힘의 고난스런 인생 역정을 담은 자서전 형식의 에세이다. 잭 이브라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독서하는 정신에 긴장감이 감돌게 됐다. 왜냐면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잭의 어머니가 전화 한통을 받는 것으로 담담히 시작하는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한 일을 밝히며 시작한다. TV 뉴스를 틀었더니 호전적인 유대인랍비 카하네가 뉴욕 메리엇호텔에서 저격을 받았다는 속보가 뜬다. 용의자로 한 아랍인이 나오는데 이브라힘의 아버지 엘사이드 노사이르였다. 1990년에 벌어진 이 일은 미국 본토에서 테러의 목적으로 아랍인이 유대인을 암살한 첫 사례였다. 잭의 아버지의 일을 전해 들으며 왠지 내 기분도 요동치며 떨렸다. 911은 알지만 그 밖의 사건들은 몰랐다. 특히 미국에서 알 카에다가 처음으로 테러를 감행한 일이었음을 알고 더욱 놀랐다. 허나 일곱살인 주인공보다 더할까 싶어 놀라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글을 읽어나갔다. 본서는 테드TED 강연을 토대로 집필되었다. 잭 이브라힘은 서문과 에필로그에서 자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전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자신과 가족이 겪은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편견과 증오는 이해와 사랑으로 없앨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알리고 싶어서라 했다. 마치 첩보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 했다면 작가에게 약간 미안하지만 한국인인 내겐 너무도 낯선 것이기에 그랬다. 유대인을 공격하고 미국을 뒤흔들고자 한 아버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살았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까 처음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틀린 것이었다. 일부 아랍인의 증오심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악함의 한 양식에 속했다. 특정한 민족에 대해 그들이 멸절되길 바라며 자신이 죽으면서까지 상대를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 보편에 내재한 극단의 사악함인 것이다. 더 큰 충격을 받는 실제 얘기는 연이어 등장한다. 노사이르는 범행을 부인하였고 핸드폰이 없던 시절 증거가 없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단지 다른 범죄가 인정되어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잭 이브라힘과 어머니는 아버지가 테러와는 무관함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남편 옥바라지에 전심을 다하며 석방만을 기다린다. 그러던 1993년 2월 어머니는 서재에서 소설을 창작중일 때 아들 잭은 뉴스를 보게 됐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죽었는데 조사하니 테러 임이 밝혀졌다. 어떤 이들이 고의로 차량에 폭발물을 싣고 건물안에서 터트렸고 주동자로 두 명의 중동 아랍인이 체포되었다. 이후에 잭은 놀랍게도 아버지가 이 일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는다. 아버지가 감옥에 있으면서 테러를 설계하며 면회를 오는 동료들에게 전하여 이 일을 도왔던 것. 몇 년 동안 범행을 가족과 재판부에 부인하였던 아버지는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다. 잭의 입장과 시선에서 묘사되는 '노사이르'의 모습은 생생했다. 그가 처음에는 보통의 평범한 이슬람교도였다가 미국에서 좌절과 불운을 거치며 어떻게 알카에다 극단주의에 깊이 빠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동안 나는 이슬람과 IS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그 저서들은 전부 기자의 취재, 언론사 인터뷰, 저널리즘 분석이 다였다. 반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 일곱살 이후부터 10여년간 겪은 인생을 통해 듣는 사연과 내막은 또다른 관점을 주었다. 아니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잭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어딜가나 따돌림을 당했고 뉴저지, 테네시, 필라델피아주까지 수십번 이사하면서 제대로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전학을 가면 어떻게든 그들의 정체가 들통났고 극심한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 남편이 진짜 테러범임을 알게 된 어머니는 자녀들을 위해 이혼을 택했다. 7살부터 열대여섯살까지 이브라힘 작가가 겪은 수모와 물리적인 폭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견뎠을 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게 오로지 아버지와 그가 저지른 두 번의 테러에 기인한다는 점이 무섭고도 슬펐다.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테러리즘의 추종자였고 직접 성공시켜 악명 높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폭력에 전혀 빠지지 않았다. 가는 곳에서 받는 조롱들을 감내하면서 죄인처럼 침묵한 채 한 해 한 해 살아나갔다. 좀 나은 삶을 위해서 잠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가 살아보기도 하지만 거기서 행복을 찾지못한 가족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이 책이 주는 전율하는 감동의 절정은 이브라힘의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일화였다. 나머지 하나는 2012년 이브라힘이 필라델피아 FBI 본부에서 펼친 강연 후일담이다. FBI가 어떤 덴가. 1990년 아버지의 테러 때 자신과 어머니를 찾아와서 엄청난 경멸감과 의혹의 눈길을 던져서 어린 이브라힘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조직이다. 서른살 이브라힘은 이런 유머로 강의를 시작할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이렇게 수백명의 FBI요원분들 앞에 서자니 어색하고 떨리네요. 저에겐 대체로 두 명이 짝지어 오신 분들이 익숙하거든요." 이런 노력에도 좌중은 오히려 정적이 감돌며 얼어붙어 있었다. 그 때 뒤쪽에서 누군가 한 명이 유쾌하고 자연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괜한 개그를 던졌나 당황했던 이브라힘은 그 한 웃음으로 마음을 풀고 강연을 무사히 마쳤다. 충격적이고 리얼한 강연이 끝나고 대부분이 우르르 강연장을 서둘러 나갔다. 이브라힘도 이제 할 것 다 했다고 생각하며 나가려는데 10여분이 조용히 줄을 섰다고 한다. 그들은 직접 이브라힘과 악수하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 머물렀던 것이다. 그 중에 한 여성이 울면서 다가와 이유를 물었더니 1990년 그 사건을 맡았던 요원이었다. 그녀와 이브라힘의 짧은 만남과 진정한 대화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울컥했던 사건은 앞에서도 말했던 열여섯때의 친구들과의 체험이다. 수학여행을 가서 절친 올랜도에게 자신의 정체(!)를 말해주었을 때, 아르바이트 하던 곳의 동료 수보에게 진실을 밝혔을 때 그 친구들이 보인 반응이 나를 울렸다. 전혀 생각지 못한 장면에서, 사람이 이렇게 타인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구나 싶어 코끝이 찡했다. 적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이 책의 가장 큰 감동이었기에 이렇게만 쓴다.^^ 작가가 아버지를 잃은 세월을 버티는 데에는 강인하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뒤에 있었다. 함께 유년을 보낸 누나와 동생이 있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들 가족에게 적대적인 시선과 냉대를 보이고 심지어 유대인 조직에서 복수로 이브라힘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문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이브라힘 곁에는 소수이지만 따뜻하고 양심적인 이웃들이 점차 생겨났다. 친구들에게 진정한 이해를 받은 이후로 자신도 세상에 대해 닫힌 마음 문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이 부분은 한 소년이 통과의례를 거치며 성장하는 아름다운 스토리로도 다가온다. 이브라힘이 테드 강연을 초청받은 것이 큰 터닝 포인트였다. 그는 강연 순서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와 록스타 스팅보다도 앞서서 강연을 하라는 믿기지 않는 예우를 받았다. <테러리스트의 아들>을 읽고는 그러기에 충분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1993년 1차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이 왜 일어났고 그 후 미국이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그 속에서 풍비박산한 가족이 어떻게 꿋꿋이 고난을 극복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논픽션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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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 테러 이후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들었던 말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은 그 끔찍한 사건에 경악했고, 놀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지지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가까운 시일 내에 큰 성공을 거둘 것이고, 테러의 공포로부터 벗어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테러는 수그러들지 않은 채 계속되었고, 테러에 대한 공포도 여전하기만 하다.
며칠 전에 우연히 보았던 텔레비전 뉴스는 깜작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만수르가 미군 드론의 폭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얘기였다. 이럴수가! 내가 알던 만수르는 단 한 사람, 언젠가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던 중동의 부호이자 아랍에미리트의 왕족인 만수르(본명은 잘 모르겠다)였던 까닭에 미군이 왜 갑자기 만수르를 살해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나의 착각에 불과했을 뿐 만수르는 내가 알던 그 만수르가 아닌,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무장단체 탈레반의 최고지도자인 아흐타르 만수르였다. 만수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본 바에 따르면 그는 10대 때부터 이슬람 저항 운동에 투신해 1987년 교전 중 13군데에 부상을 입었고, 1994년 출범한 탈레반의 창립 멤버로 오사마 빈라덴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2015년 6월 전임자였던 무하마드 오마르에 이어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그는 알자지라가 공개한 첫 연설에서 "우리의 목표는 이슬람법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하드(성전.聖戰)를 계속해야 한다."며 단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지구상에서 테러가 사라질 가능성은 전무한 듯 보인다. 지금도 자행되는 이슬람국가 IS의 무자비한 만행과 그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난민, 그들의 만행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미국과 유럽의 대대적인 폭격, 그 와중에 희생된 사람들과 쌓여가는 분노... 언젠가 읽었던 후지와라 신야의 책에서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바위 투성이의 척박한 땅에서 만난 이란인의 모습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분노에 차 있는 듯 보였다고 그는 썼다. 분노는 결국 테러의 원동력으로 쓰일 터였다. 결국 테러를 지속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학습된 폭력과 피로 연결된 테러와의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해, 폭력의 종식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 있다. <테러리스트의 아들>로 잘 알려진 잭 이브라힘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호전적 랍비이자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메이르 카하네를 암살하고, 1993년에 있었던 미국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 사건을 감옥에서 모의한 인물이었다. 잭은 테러리스트였던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그의 가족이 겪었던 고통과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테드(TED) 강연장에서 담담하게 발표하였고, 그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우리는 늘 위험한 환경에서 살았다. 근처에는 무슬림 가정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렸다.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얻어맞았다.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조롱당했다. 머리쓰개와 베일을 썼다는이유로 유령이나 닌자로 불렸다. 안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 우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우리가 노사이르 가족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두려움과 굴욕감이 다시 찾아왔고 우리는 또 이사했다." (p.73)
살아갈 길이 막막해진 잭의 어머니는 잭과 그의 누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아이가 셋 있는 무슬림 남자와 재혼했다. 말하자면 잭의 계부였던 그 남자 또한 잭과 그의 어머니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고 이곳 저곳을 떠돌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다. 우연히 사귄 친구가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유대인임을 알게 된 후 그는 비로소 자신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테러리스트의 아들 압둘라지즈에서 평화의 메신저 잭 이브라힘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어느 날 밤, 코뿔소 랠리 복장을 한 채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아메드가 뭐라고 하든 세상을 믿어보겠다고. 어머니는 사람들에 대해 한 번도 험담을 늘어놓지 않았지만 나보다 더 큰 독단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날 어머니가 해준 말은 나의 남은 인생을 건설하는 토대가 되었다.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에 신물이 나는구나."" (p.118)
나는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는 저자 어머니의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줄곧 카톨릭으로 살았던 그녀가 어느 날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고 무슬림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 평생 행복이라곤 모르고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이 오죽했을까 싶었다. 내가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저자는 '아무도 나에게 공감이 무엇인지, 왜 공감이 권력이나 애국심이나 신앙보다 중요한지 알려준 적 없다'고 하면서 '내가 당한 짓을 남들에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또한 다음 세대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 아버지가 끼친 피해의 일부를 사소하나마 힘닿는 데까지 보상하려는 욕구다." (p.126)
차곡차곡 쌓인 분노를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소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던가. 저자가 말했듯 그것은 단지 폭력과 평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지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폭력을 선택하곤 한다. 게다가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킴으로써 암살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강연을 결심했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용기는 아닌 듯싶다. 누적된 분노를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해소한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의 부재에서 비롯된 비겁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저는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I am not my father.)"라는 말로 끝을 맺었던 잭의 연설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것은 어쩌면 흔들리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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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0분의 시간동안 수백명의 청중에게 단 한번 강의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강의를 할까. 그 강의는 아마도 내 인생을 압도했던 유일하고도 가장 가치있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TED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단 10분 가량의 강연회이다. 이 시리즈는 TED 강의 중 특히 인기를 끌었던 강연을 선별해 책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당연히 나의 의문은 1번은 어떤 책일까였고, 아마도 편집자라면 가장 의미있는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게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였다.
저자 이브라힘의 아버지는 테러리스트 엘사이드 노사이르였다. '였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가 글의 마지막에 '우리는 더는 그의 자식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랍비 카하네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복역하는 중에,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옥중에서 사주했다는 혐의로 아직도 옥중에 있다. 저자에게 그사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그는 아버지의 교육과 강요에도 불구하고 테러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
저자 잭 이브라힘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캘버턴 사격장에 갔을 때였다. 잭이 총을 조명에 맞추는 바람에 작은 폭발이 일어나 표적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를 보고 있던 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은 무척 흐뭇해 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븐 아부(부전자전)'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성향을, 그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고스란히 받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아들의 인생이 평생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운명이다. 아들의 인생은 그 운명을 거스를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 '이븐 아부'라는 말이 그의 마음 속에서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찜찜했던 것은 '이것이 옳은 삶일까'에 대한 아들의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해서였을 지 모른다. 그는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나, '파이가 3.14'라는 가르침처럼 평범한 이론을 배우듯 '유대인은 사악하고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증오의 원칙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그가 아버지의 독단의 성을 빠져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놀이공원 일을 하면서 유대인과 게이도 우리와 똑같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친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이 남들 앞에서 얼마나 능청스레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스튜어트의 방송을 보면서 '독단'이 얼마나 어리석은 고집이었는지, 아버지의 가르침이 얼마나 완벽한 아집의 원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난생 처음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그는 생각한다.
나와 세계, 테러와 평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세계화된 오늘날에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한복판에서 작은 국가가 붕괴하더라도 그 영향이 전 세계에 미친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는 과거의 적대적, 냉전 관계를 넘어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지구 어디에서 일어난 일이든 그 영향력은 반대편까지 미친다. 테러는 나아질 희망이 없는 이들이 극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극단의 방법이다. 이는 어떠한 신념도 정당화 시키지 못하며, 어떤 죽음도 당연하게 할 수 없다. 테러는 '증오'의 표현일 뿐, 돌아오는 것은 '증오'의 증폭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떻게 테러리즘의 대이음을 벗어났는지 그가 어떻게 증오와 폭력의 시계바늘을 이해와 관용의 이상으로 돌려 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남으로써, 기존의 가치와 기준을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 때문이다. 임제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부처처럼 되는 것도, 아버지의 삶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도 아니다. 부처를 죽이고 나만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며, 아버지를 죽이고 그 가르침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를 있게 한 그 모든 편견과 가치를 그 안에서 파쇄하고, 자신이 옳다고 하는 새로운 길로 작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세상을 믿어보겠다고 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저자가 FBI 요원들 200명 앞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한 요원이 울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 사건을 다뤘던 요원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의 아버지의 뒤를 따랐을까봐 늘 걱정했다고 말한다. 그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는 제 속에 있는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모든 기준으로부터 자유스러워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기준을 뛰어넘는 혁명이었다. 그가 테러리스트의 아들로서 진짜 테러를 가한 것은 세계무역센터의 건물이 아닌, 아버지의 증오의 빌딩에 대해서였다. 편견과 고집의 거대한 장애물에 테러를 가할 수 있는 삶이야 말로 그 어떤 테러리스트의 삶보다 위대한 삶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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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테러리스트의 아들입니다... 만약 나라면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잭 이브라힘이 이야기하고 있듯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에 둘러싸여 어린시절부터 모멸과 폭력, 학대를 받으며 살아야만 했다면 과연 두려움과 분노,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랍비 메이르 카하네를 총으로 살해하고, 수감된 상태에서도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모의한 엘사이드 노사이르의 아들인 잭 이브라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연 그는 아버지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증이 커져갔다. 테러리스트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미국 사회에서 단지 이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멸당하고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데 테러리스트의 아들임을 밝히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그리고 그의 선택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얼마전에 읽었던 [내 심장을 향해 쏴라]를 떠올렸다.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동생인 마이클 길모어의 가족사 이야기는 죄의 근원과 그에 대한 보속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사형수인 게리 길모어의 통제되지 않는 감정분출의 근원에는 폭력과 불행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거쳐 뭔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법제도의 살인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보여지는 것 그대로의 기나긴 이야기와 테러리스트의 아들인 잭 이브라힘의 이야기는 어딘가 닮아있다고 느꼈다. 이브라힘은 그의 아버지가 “하룻밤 새 미국에서 마음이 돌아선 것이 아니라 우연히 닥쳐오는 추악한 현실과 불운을 겪으면서 천천히 마음이 굳어갔음을”(41) 말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로 인해 가족의 생활환경이 바뀌어버리고 오해를 받으며 두려움과 모멸감에 기도에 전념하던 노사이르는 점차 코란에 빠져들고 근본주의자가 되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이때쯤까지도 나는 그저 그렇게, 그의 이야기가 아버지의 죄에 대한 변명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브라힘의 불행한 성장과정을 온통 뒤덮는 증오와 폭력 상황 안에서 그 역시 자신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게 타인에게 폭력을 휘둘러보기도 하지만 약자에 대한 폭력과 타인에 대한 증오가 자신을 해방시켜주지도 않고 기쁨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고, 자신의 아버지가 무고한 죄인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테러리스트임을 받아들이고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모든 폭력과 증오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기로 선택을 하고 테러리스트의 아들이지만 자신을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친구를 만나며 이브라힘은 점차 공감, 평화, 비폭력의 길을 가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브라힘의 선택은 마이클 길모어의 고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브라힘의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의지와 그의 선택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 마음을 열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책에서 편견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누군가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선 취약한 사람을 찾는다. 자신감, 소득, 자부심, 활력을 잃은 사람을, 아니면 삶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을. 그 다음 그를 고립시킨다. 그를 두려움과 분노로 채우면, 그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 캘버턴 사격장의 사람 형상을 한 얼굴없는 표적으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날 때부터 증오를 훈련받은 사람도, 마음이 비뚤어지고 무기처럼 된 사람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선택할 수 있다. ... 나는 공감이 증오보다 힘이 세다고, 공감을 퍼뜨리는 것을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공감, 평화, 비폭력. 이것은 내 아버지가 창조하려 한 끔찍한 세상에서는 기이한 도구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비폭력으로 분쟁을 해결한다고 해서 반드시 수동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를 방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싸움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적을 인간으로 대하고, 나와 그들이 공유하는 욕구와 두려움을 인식하고 복수보다는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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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잠시만 빌려야겠다.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 ‘선택’은 지구라는 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생명체 중 사람만이 가진 특권이다. 아니, 숙제 어쩌면 짐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에게 선택은 일상이다. 삶의 모습과 형태는 각자 너무나 다르겠지만 모두가 매일 수없이 많은 선택의 계단을 오른다. 다만, 선택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오늘 내가 빨간 옷을 입을까 파란 옷을 입을까 정도의 선택을 하는 동안 이 별 반대편의 누군가는 ‘빨간 옷과 파란 옷 중 누구를 먼저 죽일까‘라는 선택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테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를 계획했고 실행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에 희생당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었다. 이 테러를 일으킨 사람들, 테러리스트와 그 조직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와 사람들에게 증오와 공포를 심는 데에 성공했다. 나아가 테러리스트들의 종교와 인종에 대한 혹독한 편견 역시 깊은 뿌리를 내렸다. 911테러가 일어나고 십여 년이 지난 후,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그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작은 책 한 권에서 그는 증오, 공포, 편견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시간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지난 시절에 대한 회고나 고백은 아니다. 그는 테러도, 종교도, 국가도 아닌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이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무엇이 아버지를 테러리즘으로 이끌었는지 이해하느라 인생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피가 내 혈관 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희망과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다. 광신의 불속에서 자랐으되 비폭력을 받아들인 젊은이의 초상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대단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저마다의 화두가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화두는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증오를 훈련받았어도 관용을 선택할 수 있다. 공감을 선택할 수 있다. 28쪽
책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과 아버지가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서술하는 걸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는 상처 받은 여인을 여왕으로 만들었던 남자였고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품을 내줬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몇 번의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아버지는 이제껏 그가 걸어온 궤도와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선택해 나아간다.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증인으로서 저자는 이 시기의 아픔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제 열세 살이 되었고,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자존감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그칠 기미가 없었고, 늘 복통을 알았으며, 내 또래 여자애들이 칼로 자해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밤마다 침실 벽에 머리를 찧었다. 죽으면 얼마나 편안하고 평화로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끔찍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지는 나 말고 테러를 선택한 것이었다. 92쪽
아버지의 선택, 그 시작과 끔찍한 결과까지 목격한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폭행과 편견과 외면으로 양육 받은 아이는 뜻밖에도 비폭력과 화해의 길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혈통적 공범이라는 괴로움, 성장기 내내 시달려야 했던 불안과 고통 속에서 그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내렸고 그의 선택이 옳음을 알려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사람이란 선택을 거듭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하지만 이 선택의 순간에 때로 ‘편견’이란 것이 눈앞을 흐리게 한다. ‘편견’의 저주는 내가 죽이고 괴롭히려는 저이도 사람임을 잊게 하고 화해와 평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잊게 한다. 그렇게 테러리스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미니 롤러코스터를 탔던 반짝반짝한 어린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결단코 두둔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은 명백히 살인이고 수치였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테러리스트인 아버지도 사람임을 말하고 싶었던 저자의 뜻을 이해한다. 테러를 자행하는 모든 이들은 사람이고 그들을 비난하는 편도 사람이고 그들에 희생된 모두 역시 사람이다, 공감은 증오보다 힘이 세다.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더 이상 편견의 덫에 희생되어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되는 사람도, 그들에게 희생되는 사람도 없을텐데.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을 비롯하여 편견과 증오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전하는 마지막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누군가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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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았다. 분명 저자의 성장과정이고 그가 모두 겪은 일인데도 이런 삶이 있을까 싶어 차라리 소설로 믿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처럼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랍비를 살해했고 수감 중에 1993년에 일어난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까지 모의했다. 저자가 겨우 일곱 살 때 일어난 일이었고 그런 아버지를 둔 삶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수없이 이사를 다녀야했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온갖 모욕과 추문, 학교 폭력 그리고 새아버지의 폭력까지 견뎌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저자의 삶은 일그러져 버린 것일까? 부모의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비극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란 호칭은 따라 붙어 있고 그의 삶은 일곱 살에 상상해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삶으로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아닌 테러를 선택한 아버지 때문에 완전히 산산조각 나 버린 가정. 아버지는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혀 있지만 정작 모든 모욕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남겨진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는커녕 삐뚤어진 신념만 강해졌다. 아버지의 삶이 평생 감옥에 갇혀 끝나버린 것처럼 저자를 비롯한 남겨진 가족의 삶도 끝나 버린 것 같았다. 그나마 무역센터 테러를 모의하지 않았을 때는 면회도 가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신념이 바뀌지 않는 한 잠깐의 평화도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변하지도 않고 곁에 있을 수 없는 아버지 대신 재혼을 했지만 모든 걸 악화시킬 뿐이었다. 새아버지의 폭력을 오랫동안 견뎌야했고 그런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없이 우울해졌다. 나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또한 다음 세대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 아버지가 끼친 피해의 일부를 사소하나마 힘닿는 데까지 보상하려는 욕구다. (126~127쪽)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테러 방지와 비폭력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의 행동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라면 아버지를 증오하며, 주어진 불우한 환경에 대한 비난을 끊지 못한 채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저자는 그 모든 걸 견뎠고 이겨냈으며 이제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것이 타인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일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의 폭풍을 견디고 헤쳐 나가는 모습에 경견해지기까지 한다. 그 모든 걸 혼자서 할 순 없었다. 자신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도 변함없이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이 있었고 복잡다단한 의미의 남겨진 가족이 있었다. 혼자라 느껴졌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가능했고 그런 깨달음을 얻자 자신의 고통을 뛰어넘어 타인의 고통까지 관심 갖게 되었고 어루만지게 되었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모습에 잠시나마 내가 가진 편견과 색안경을 내려놓게 되었다. 내 맘대로 꾸려진 나의 내면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오류를 범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시선으로 타인에게 상처가 된다면 나도 정의로운 사람일 수 없다. 내 안의 평화가 유지될 때 세계의 평화를 지키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작은 평화를 지켜가는 일. 그것도 나만의 방식이듯이 정당한 행위에 수긍하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더 오래 지켜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게 평화든 정의든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 좀 더 긍정적인 요소가 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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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의 성장에 있어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의 언행을 고스란히 익히고 따라서 하는 아이를 보며 놀라곤 한다. 양육자의 태도와 가치란 양분을 먹고 아이는 자란다.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부모는 단 하나의 거울이자 세상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일곱 살 잭에게 아버지 다정한 사람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자애로운 사람이다. 신앙심이 깊은 이슬람인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1990년 미국에서 유대인 랍비를 죽였다. 그랬다. 잭의 아버지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테러리스트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누명이라며 모든 걸 부인한다. 면회를 갈 때마다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기도하고 있니? 엄마한테 착하게 굴고 있니?”라고 말할 뿐이다.
노사이르는 유대인 랍비 살인 혐의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범죄 목적의 무기 소지와 폭행은 유죄를 받았다. 그리고 경악할 사실은 1993년 2월 뉴욕 세계무역센터빌딩 화재 역시 테러였고 감옥에 있던 노사이르가 계획하고 도왔다는 것이다. 노사이르는 잭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니였다. 테러리스트 노사이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야했고 폭언과 조롱을 온몸으로 견뎌야만 했다.
‘안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 우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우리가 노사이르 가족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두려움과 굴욕감이 다시 찾아왔고 우리는 또 이사했다.’(73쪽)
그럼에도 잭은 열두 살까지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감전 사고로 화상을 입은 아버지가 미국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이슬람을 향한 신앙이었다는 걸 알기에. 그러나 어린 잭이 알 수 없었던 사실이 있었다. 노사이르가 지하드 운동의 중심에 있다는 걸 미국인과 이스라엘인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걸 몰랐다.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지만 시련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새로운 가족이 생겼지만 새아버지 아메드의 폭력에 시달렸다. 미국을 떠나 이집트에 머물렀으나 행복하지 않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낼 수 있었던 건 누나와 동생, 그리고 강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잭에게 모스크는 언제나 옳은 존재였고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편견이었다는 걸 잭은 알게 되었다. 편견 없이 자신을 바라봐 준 친구가 있어 잭은 새로운 용기와 힘을 키울 수 있었다.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잭은 그들에게 누구의 아들이 아닌 그냥 잭이었으니. 만약, 잭에게 그런 친구가 없었다면 잭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을 삶의 수단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대단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저마다의 화두가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화두는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증오를 훈련받았어도 관용을 선택할 수 있다. 공감을 선택할 수 있다.’ (28쪽)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삶을 들려주는 잭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택이 아닌 주입식으로 스며든 모든 것들이 불러온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가 생각한다. 더불어 편견과 섣부른 판단이 무서운 독을 품은 화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는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보고 진실인 양 믿었고 다른 방향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우리 스스로가 공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경우는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니 무섭다. 공감이 증오보다 힘이 세다는 잭의 말에 응원을 보낸다. 더불어 공감을 선택하고 퍼뜨리는 하나의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이 작은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 안에 담긴 거대한 울림과 마주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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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소설가의 강연으로 인해 알게 된 TED 강연. 영상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책으로 더 찬찬히 훑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랍비를 살해하고 쌍둥이빌딩 테러를 획책하였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그 무시무시한 테러리스트의 아들의 삶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리스트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테러 조직에 가담하거나, 자포자기한 채 엉망진창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편견을 가지고 읽어내려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일상과 따뜻한 공감을 향해 용기 있게 한 발짝 내딛는다. 살면서 의도치 않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선택은 분명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 짧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나아가, 테러리스트의 가족을 비롯하여 가해자는 아니지만 가해자와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어떤 시선을 견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