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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그물코 스타킹'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시 제목은 참 다양하고 새롭다고 생각했고 최근 몇권의 시집을 읽은 후였기에 제목이 참 신선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도 소설과도 다른 하나하나가 모두 이야기이기에 읽으면서도 어렵다 생각하고 또 몇번 되짚어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시라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해하는 것 또한 힘들지만 함축된 단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것이 시이고 시의 장점이겠지요. 최근 몇권의 시집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김미연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시를 써내려가고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추억과 과거들을 회상하듯이..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써내려가는 시들이 참 정겨웠습니다. 그렇게 꾸미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넣은것 같아서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은 디지털공간이 아닌 아날로그공간을 그리고 있고, 현재의 빠르게 흘러가는 공간이 아닌 과거에 멈추어져서 서서히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 시들을 읽고 있으니 긴세월의 무게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가의 감성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동시대 사람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나이어린 사람에게는 옛이야기에 귀를 귀울일 기회가 될런지요.
정말 시인이기에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것 인가봅니다. 그냥 지나쳐버릴 수있는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집어 내어 자신이 추억을 사물에게도 묻기도 하고 추억을 되새김질 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정말 시는 어렵게 생각하기보다 시 자체를 즐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하나의 '시'안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면서 알게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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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란 언어의 유희이고 그래서 시인은 언어의 유희를 만드는 창조자라고 생각해왔다. 언젠가 난해함으로 며칠을 수수께끼를 풀듯 반복하고 또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시란 때로는 포근하게도 다가오고, 때로는 풀어야 하는 암호로 다가도 온다.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시집 한권을 읽었다. 시인의 말로 시작하는 곳에서 부터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 있다.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을 애를 낳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완벽하지 않는 그래서 독자에게 쓸려가는 것을 낳아 기르겠다고 표현하는가 보다. 언어의 유희가 곳곳에서 살아난다. 내가 다니는 직장과 항문에 연결된 직장이 같이 놀아나고, 돈과 똥이 또 같이 놀아난다. 직장에 임금(賃金)만을 위해 용쓰는 못난 임금도 있다. 산골 정씨가 쌈이나 한번 싸 먹으라고 보내준 배추가 젖살 잘 오른 포동한 아기로 묘사되고 짚으로 잘 묶어서 부도탑으로 거듭난다. 시인이 고르는 언어가 시상의 나래를 편다. 시인에게 여자란 새끼, 꽃, 영계, S라인, 아내, 밭, 지는 여자, 폐계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며느리 보고 다그치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시를 많이 읽지 못한 나이기에 산문형식을 빌어쓴 몇 편의 시는 색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산토끼 전화번호와 지독한 벌레에서 정확한 그림은 그려지지 않지만 시도 산문형식을 빌어쓸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지금은 폐교가 된 어느 초등학교 연극을 보고 마을 전체를 한 권의 춘향전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지는 해를 밧데리 다 되가는 해로 묘사하기도 한다. 시멘트 바닥에 비치는 하현달이 땅바닥에 방치된 핏물 빠진 달이 되기도 한다. 시인에게는 아침이 오는 것조차도 지난 밤 힘껏 잠을 잤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잠은 휴식이 아니라 무임금의 노동이어야 하고, 힘껏 잠을 잔 사람들은 다 밤을 아침으로 지구를 옮기는 짐꾼이었단다. 그리고 잠근다에서 잠이란 용어를 따왔기 때문에 일어나면 열쇠를 동원해 풀어야 한단다. 내가 시인이 된 것처럼 큰 소리로 읽어 보기도 했고, 나도 시를 한번 써볼까 하는 것도 잠시, 내주제에 무슨 이라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상상이지만 시인이 되어 마음껏 느껴본 시간이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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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항상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한다. 시에서 표현하는 언어들. 많고 많은 언어들을 그대로 함축해서 적어놓은 것이 시가 아닌가. 그래서 짧은 시이지만 그곳에선 많은 이야기들을 안고 있다. 그 이야기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나는 항상 시가 어렵고 힘들기만 했다. 예전 그런 나에게도 시집을 사는 행위를 했던 적이 있었다. 사랑굿이라는 그냥 대학로 주변의 낙서들을 모아서 만들어낸 시집. 그래서 시어들이 어렵지 않았고 정감이 갔으며 보고 있어도 재밌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빨간 그물코 스타킹이 그때의 기분을 일깨워준다. 시인이 구수해서 그런지 시어들도 구수하다. 우리 주변에 흔히 늘려있을 정도로 편한 시어들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나 보다. 시집을 넘기면서, 또 시를 읽으면서 웃을 수 있는 시집.. 간만에 느껴보는 듯 하다. 게다가 사소한 일상에서 어찌 그런 표현들을 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수염이 억새꽃이되고 수염을 씻어내는 과정이 호수에 세밀화가 된다. 어렵지 않은 듯 하면서도 한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듯 하다. 일상의 하나에서 억새꽃도 되었다가 호수도 되었다가 바다도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풀이하는 일상에 존재한다. 하나의 단어에서 두가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직장은 단순 일하는 직장인줄 알았다. 하지만 우유가 흘러가는 그런 직장일줄은 어찌 알았으랴.
김미연님은 이렇게 일상의 말들을 시라는 틀에 옮겨놓았다. 그냥 일상에서 쓰면 아무런 힘도 없는 말들이 시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시를 읽다보면 이것도 한번 데려다 써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어의 꾸밈을 과감히 버려두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이 좋다. 꾸미지 않고 단순한 글. 그러면서도 그들은 김미연님의 손에서 아름다운 시가 되는 것이다. 그 시들은 때론 호통치듯 엄하기도 하고 혹은 지가 무슨 위로자가 되는지 위로도 해준다. 그러다가 그냥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두손 모아 기도하는 부도탑이 되었다가 하늘에 기원하는 아멘이 되기도 한다. 세상을 그리고 일상을 탄식하기도 한다. 또 그 시어는 힘도 가진다. 펄펄 살아 팔짝팔짝 뛰는 생선같은 그런 살아있는 힘이다. 그럼 시도 함께 살아서 우리곁에 오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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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막짤막하고 간단 명료 하고 함죽된 단어로 되어진 글이 "시" 라는 단어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나보다. 이책 빨간 그물코 스타킹은 내 머릿속 사전적 단어를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짧은 글이 있긴했다 그러나 대부분 문장 그것도 긴 문장, 마음을 길게 설명하며 해석하고 풀이한 듯한 글이 있었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선뜻 다가가 손잡고 수다 떨 수 있는 반가운 친구를 만난듯 했다.의인화된 제목들에서 두번세번 읽고 음미하면서 무엇을 말하신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드네..그러나 쥔장은 뭘 말하려 했을까? 고민도 해 보고 크크크 그렇게 빨간 그물코 스타킹은 내 자리에 엉덩이 삐집고 들어 앉아 버렸다. 그물코처럼 엉성하다 싶어서 그냥 두었더니 어느사이 한자리가 아니라 나의 온 자리 없는 구석이 없는듯 여기저기 안낄때 낄대 상관없이 어느때엔 그 물코가 먼저 자리를 잡은듯 큰소리 치기도하고 어느 곳에선 새색시처럼 수줍어 얼굴 붉히면서 그렇게 나의 마음 자리에 온전히 자리 차지 했다. 미워할수 없는 그물코.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접하면 맘이 맑아진다고 했었나? 시중에서 파는 아리수 생수물도 바다물 건너온 삼다수도 아닌 시골 집 한켠에 자리잡은 펌프질 열심히 하여 퍼 올리던 그 생수 물 같은 시원하지만 내장까지 칼칼하게 쏟아지던 그 생수를 벌컥벌컥 드리키며 "아~좋타"를 연발하던 그런 생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산토끼 전화번호를 읽으면서 아련한 추억의 번호가 아직까지 귀퉁이에서 쪼그 리고 앉아서 감히 보자기 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사방사방 아버지와 은행나무 아버지 읽으면서 어쩜이리도 내 아버지를 잘 표현 해 두셨을까? 싶어서 감동이전에 존경의 고개를 먼저 숙이게 만들어 주시었다. 누구에겐 휘왕찬란한 축제의 술잔처럼 내려앉는가 하면 우리아버지께는 똑같은 능금같은 노을이 검은 빛으로 홍건히 아버지의 등을 휘감고 있는지. 그 고단스러 움을 어디에 가서 뉘여야 축제는 아니라도 잔치속 막걸리 한잔을 머금을 수 있을지 지금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능금같은 노을을 기다릴 울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스쳐 지나며 한번 안아 만 줘도 알아들었고 등따리한번 문질러만 주어도 그 말뜻을 헤아릴 수 있었던 엄마.. 빨간그물코를 덮으며 빨간사과를 넣어주던 엄마가 그리워 지는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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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시라는 애를 낳은 엄마, 김미연 시인을 만났다. 아직도 형성되지 않은 장기를 갖고 있는 애이기에, 완성됨의 시점에 낳으려다 이제서야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걸 깨닫고 세상 모서리에 쓸려가며 기르려고 애 밴지 십년만에 낳았다고 한다.
[빨간 그물코 스타킹]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제목으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김미연 시인은 사뭇 사물을 보고 느끼는 마음의 깊이가 남 다르다 시를 대하면 시인의 마음이 느껴지는데 김미연 시인은 방향성이 다양하다 결코 감정으로만 느껴지는 글의 표현이 아니다 주변의 생활이 느껴지고 시인이 걸어온 길과 과거사가 엿보인다. 시인의 추억과 시인의 시선이 느껴진다. 참으로 절묘한 시간예술이요 공간예술의 표현이다 아름다운 언어, 함축된 언어로 말을한다.
「빈배」에서 느껴지는 풍경은 젊어서는 생계유지를 위한 고기잡이 배가 참으로 많은 고기를 실어나르다가 달가고 해가고 시간의 흐름에 그의 몸은 피멍들고 소금꽃피어 고기잡이 나가는 일보다 부두에 매인날이 많아지게 되고, 더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더이상 고기잡이배가 아닌 빈배로 부둣가에 정착되어 스쳐가는 여행객들의 추억의 대상이 되고있는 그림을 자아낸다. 얼마전 남펴과 함께 양평 두물머리에 가서 보고온 조각배의 모습이 떠오른게 된다. 잔잔한 물결에 떠있는 내마음, 평화속에 싹트는 아름다움 그자체이다.
수염,짐짝,각도,숙이 너만 알아!, 선루프, 세탁기,빨간 그물코 스타킹,취워라! 취워!, 콩나물 도해,깡통..등등 시제 하나하나조차 일반적이지 않고 독특하다. 「세탁기」이 시를 읽고 나는 김미연 시인의 시상의 세계가 궁금하기까지 하다. 세탁기 속 안에서 온 가족의 빨래가 빙빙돌면서 세제로 인해 거품이 일고 또, 멜로디 소리를 내면서 탈수와 헹굼의 동작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은유적으로 시라는것을 쓴다는 것은 결코 다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빨간 그물코 스타킹]이 시를 읽다가 나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소주를 꺼내어 한잔 따라 마셨다. 알싸한 맛이 입안에 돌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뒤 술을 못하는 나는 약간의 열기를 느끼며 이 시를 다시 읽고 또 읽고, 읽기를 거듭거듭 하여도 도무지 아스라한 알코올의 열기를 느끼며 이 시를 접하지 않으면 그 깊이를,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다.나는..... 이시집은 끝자락에 문학평론가이자 한양대 유성호 교수의 사라짐의 잔상, 감각의 밀도라는 제목으로 해설이 되어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지는 멋진 말씀이시다.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해설의 글을 읽고 나니 시인의 마음을 다소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래서 시의 세계가 무한히 크고 넓은가 보다. 이후, 김미연 시인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사물의 형상들이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되어 보여질 것인지 살짜기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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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큼이나 친근한 시집인 것 같아요. 사실 거리에서 빨간 그물코 스타킹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지만 누구나 하나씩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시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도무지 가까이 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것 같다가도 한 편으로는 너무나 익숙하고 정겨운 게 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멋진 자연과 풍경이나 자신의 심정을 시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물건을 가지고 시를 지어내는 경우도 있잖아요.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백일장 같은 거라든지 아이들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시들 말이죠.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어쩌면 저런 색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때론 나이가 든다는 게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래서 그런지 시를 보면서 낯선 느낌과 황당함을 느끼는 것이 고정관념에 의해서 시가 가지는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냥 단어의 뜻이나 해석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그림이나 시나 화가와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를 보면서 그 속에 담긴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는 거겠죠? 빨간 그물코 스타킹이라는 시집은 경남작가에 등단한 김미연 시인의 첫 시집이라서 그런지 새롭고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아요. 마치 시인의 일상을 담은 듯 줄줄이 써여진 시들을 보면서 때론 동감도 하고 때로 꺄우뚱거리면서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어요. 살아오면서 누구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한 순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기억의 순간들이나 물건들이 있을 거 같은데 그런 걸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지 머릿속에 맴돌다 이내 사라져간 무수한 시들이 있지 않나요? 그런 걸 본다면 하나의 시에 담긴 수많은 시어들의 선택과 감정을 쏟아넣을 수 있는 시인들이야 말로 언어의 마법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봐요. 가끔 메모지와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 하나 써 봐야지 하는 욕심만 앞서고 정말 하얀 종이 위에는 정적만이 흐르네요. 하지만 아름답고 때론 슬프고 때론 삶의 일부같은 시를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순간 나도 같은 시인이 되어 마음 속에 시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엔 아무 느낌이 없다가 어느 순간 특별한 느낌이 들어서 한 동안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 시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속에 담긴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