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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가 겨우 다섯 개밖에 없다. (내가 이 리뷰를 올리면 여섯 개. ^^)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전면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로만 등장하는(전화 통화도 하긴 해요) 'M'이라는 여자. 중년의 남자와 M이라는 여자의 이야기. 이 부분은 일정 부분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연상시킨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역시 두 남녀가 주고받은 이메일로만 이루어진 작품인데, 그러고 보니 이 책도 작년 여름에 한국에 나왔을 때 읽었었다. 작년에 누군가와 이촌을 걸으면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비가 온 바로 직후. 습하기는 했지만 청명했던 저녁으로 기억한다. 암튼.
중년 남자가 맺은 두 관계 모두 오해와 갈등들이 있다. 하지만 한 관계는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데 다른 한 관계는 그게 잘 안 된다. 그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가 M이라는 여자와 소통하는 방식은 '문자'이다. 이메일과 핸드폰 문자 메시지. 인터넷 블로그도 '문자'를 기반으로 구축된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블로거간에 생기는 오해도 대부분 여기서 기인하는 문제같다. 만약 대화를 통해서 구축된 관계였다면 그들의 표정, 그들이 말을 할 때의 뉘앙스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진심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소통' 혹은 '이해'의 측면에서 읽었다.
1957년생 작가이자 남성 작가이지만 지나치게 무겁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아주 쉽게 쉽게 잘 읽힌다. 누구든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작가인 안드레아 데 카를로는 이탈로 칼비노의 추천을 받아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데, 소설뿐 아니라 영화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영상과 문자를 오고가는 작가의 작품은 기존 작가들의 작품과 어떻게 다를까?
이해받기 원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하고,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정작 스스로 닫아놓은 부분은 없는지. 당신이 정말로 이해와 소통에 목말라 있다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다면 작가가 말하는 '순수한 삶'에 조금은 다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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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a Vita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은 후 유아틱한 그림으로 또한번 나의 발목을 잡은 책.. 순수라는 이 표현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매우 어색한것이 이 책을 고른 첫번째 이유였고 세상에.. 이탈리아 작가라니.. 내가 이탈리아작가의 장편소설을 읽게 될 줄이야~ 여러가지 이유에서 이책은 내게 신선함을 주었기에 과감히 첫장을 펼쳤다. 사실 처음에 이책을 읽을때는 약간 지루했던게 사실이다. 원론적인 삶의 이야기들.. 작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냉소적인 자아비판, 아니 자아비하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반감이 들었고 어쩌면 내안에 숨겨진 모습들을 들킨거 같은 당혹감에서 였을지도 모르는 반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는 과정에서 이 책을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인공 조반니가 여행을 떠나기로 한 상내가 상상하고 있던 사람이 아닌 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부터 이책이 내게 기대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부모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하고싶지 않을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없애고 과감히 자신의 치부를 인정하는 조반니의 모습에서 남다른 아빠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건 뭐지.. 서양인의 가치관은 이런것일까?' 딱딱하고 엄격한 우리내 아버지들과 다른 아버지상.. 조반니의 모습은 내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순수한 삶"과의 긴여정이 시작되었다.. 자그마치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중간에'파페포포'시리즈를3권다 읽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작가의 인간분석의 시각에 나도모르게 젖어있어서 그의 말을 일상중에 인용하기까지하면서 신나게 책을 읽어나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결말 부분에서는 나도모르게 잠시 심호흡을 하고 눈이 흐릿해질때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딸과의 여행중에 조반니가 겪게되고 느끼게되는 사건들.. 그가 자신을 돌아보는 동안 나도 그와 하나가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굴속에 사는 작은 동물처럼 주머니에서 진동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휴대전화를 잡았다. 전자회로가 장착된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휴대 전화에서 체온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사람은 유년에 자기 가족 안에서 움직여. 작은 동작이나 말 한마디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개인적인 작은 공간이지. 평소보다 조금만 덜 먹거나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웃거나 평소보다 안색이 조금만 더 창백해도 식구들 모두가 관계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나서요?" "좀 더 큰 극장으로 무대를 옮기게 돼. 그러면 갑자기 아무도 자신을 몰라봐. 아무리 몸짓을 지어봐도 공허하게 사라지지. 아무리 말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아.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얻기위해서 하루 종일 자신의 태도를 가다듬고 힘과 포인트를 주지. 파리가 새로운 방에 들어가면 점점 더 크게 윙윙 거리듯이 말이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을 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더불어 세상의 추한것을 막아줄 해독제를 가지고 온다고 생각해. 권태, 슬픔, 고독, 반복, 두려움을 막아줄 해독제를 말이야. 문제는 이런 해독제가 진짜 약과 비슷해서 유통기간이 있다는 거야. 어느 순간 더 이상 약이 듣질 않거나 그 것만 가지고는 약효가 떨어지게돼. 어느 순간 권태가 찾아오고 슬픔과 고독이 반복되며 나타나. 우리를 공격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해독제를 준 사람을 공격하지. 그 순간 우린 진짜 해독제가 맞는 거였는지 아니면 단지 플라시보 현상일 뿐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속임수였는지 의문을 품게 돼.'
작가의 생각을 이렇게 멋지게 글로 써낼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
| 꽤 오랜만에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읽은 듯하다. 이탈리아 작가라면 이탈로 칼비노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이 작가가 바로 이탈로 칼비노의 추천을 받아 소설을 냈다는 설명을 읽게 되었다. 책을 본 아내는 표지가 무척 재밌네, 라고 했는데 살펴보니 그 디자인 또한 작가가 직접 한 것. 책날개의 설명을 읽어보니 작가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펠리니와 그의 배우를 다룬 단편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는 설명. 이외에도 미국에서 이탈리아어 강사, 트럭 운전사, 정원사, 카페의 기타 연주자로 일을 했고, 호주에서는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 다양한 경험으로 미루어 소설이 재미없을 리는 없다. “삶은 의미가 있다 아니면 없다고 믿는 것은 기질 문제다. 만약 삶이 의미가 없다는 확신이 절대적이라면, 삶의 의미는 진화 과정과 더불어 점차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니고 그럴 것 같지도 않다.”-카를 구스타프 융. 책의 제목도 순수한 삶이고 그 시작도 융의 삶의 의미에 관한 전언으로 시작된다. 책의 주인공은 조반니라는 몇 권의 책을 낸 역사학자이다. 조반니는 자신의 딸과 며칠간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며, 그 사이 현재의 여자 친구인 M과 G라는 이니셜로 문자 메시지를, 전화를, 이메일을 나누며 다투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꽤나 자유스러운 정신적 풍토를 지닌 조반니는 그러한 자신을 현실에 옭아매려 한다는 이유로 M과 끊임없이 다투지만 동시에 딸에게는 현실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다. 그리고 이러한 여타의 과정 안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생,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우리는 사물을 인식하고 싶은 욕망과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고픈 욕망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어.” 그가 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이처럼 흔들리는 욕망 사이의 조율 내지는 욕망의 실체에 대한 접근을 위한 행로에 다름 아니다. “장점은 저마다 그에 상응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야... 장점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특별한 조합을 이루면서 밖으로 나오는 거고, 장점이 발전되려면 그만큼의 특정한 단점이 생긴다는 의미에서.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을 만들어내고, 가득 찬 것이 텅 빈 것을 만들어내기 마련인 것처럼.” 조반니는 이처럼 장점과 단점에 대해 꽤 여러번 말하는데, 그것은 앞에서 말한 그의 이중적인 태도와 맞물려 있다. 장점과 단점이 항상 맞물려 있는 것처럼 그는 상상력과 현실 감각이라는 얼핏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양태를 귀엽지만 치밀하게 합리화시킨다.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는 정보 부족 아니었니? 끔찍하게 불투명한 상황에서 나온 얘기야.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두려움이 깊어진 상상의 결과지.” 그리고 함께 하는 열일곱(열여섯이던가...)의 딸이 자신과의 여행중에 남자 친구와 전화를 하고 문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은근하고 지적인 질투를 하기도 한다. 쓸데없이 전화를 통해 소통하는 것은 결국 정보의 과잉을 낳고, 세기의 사랑 같은 걸 하게 될 가망성은 사라진다는 투정을 하는 것이다. 자신 또한 끊임없이 M과 접촉하기를 원하면서.「딸애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울음을 터뜨렸던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그가 “제발 어린아이처럼 굴지 마라.”하고 말했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난 네 살인걸요.”」 꽤나 심오한 이야기를 딸과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큰 장점이다. 그러니 간간히 유머가 섞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난 이 작가의 보다 젊은 시절의 소설을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자신들의 동족과 다른 동물들과 자연에 대항한 싸움에 자신들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싶어하지 않아... 여자들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증거를 별로 축적하고 싶어하지 않거든... 존재할 줄 알기 때문이야. 존재를 생산하잖아. 기호를 남기는 데 흥미가 없으니까 기호를 남기려 들지 않아.” 여기에 여성에 대한 파악이라는 덤도 따라 붙는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단 한 번 말하는 바에 따르면 순수한 삶이란 우리가 하는 일에 유별나게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순수한 삶에는 뭔가 중요한 기저가 깔려 있는 듯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작가는 중요한 뭔가가 없다고 했지만, 중요한 뭔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탐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탐구를 통해 그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기 위한 탐구가 계속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와 함께 ‘날카로운 지성과 거친 충동적 감정,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이라고 작중 주인공의 불화의 원인은 그대로 소설 전체에 버무려져 있다. 어쩌면 지성과 감정의 충돌로 인한 불안이라고 지칭해도 좋을 그 무언가야말로 순수한 삶의 본질일 수 있지 않을까. |
| ‘순수’라니! 반감을 사기에 충분한 제목이다. 역설이거나 기만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물론 대부분의 소설에서의 ‘순수’ 운운이 그렇듯 후자 쪽에 가까울 터. 어쨌거나 소설에는 ‘순수한 삶’에 대한 왈가왈부가 그다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행히. 주인공 조반니는 딸과 함께 자동차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그 여정 동안의 부녀 간의 대화, 그리고 이니셜 M으로 표현되는 조반니의 애인과의 휴대폰과 이메일을 통한 교신이 소설의 대부분이다. 부녀 간의 대화는 주로 조반니에 관한 것이다. 조반니는 말하고 딸은 듣는다. 나는 주인공인 조반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기 발견을 위해 골방에서 할 수 있는 시도는 많지 않단다. 밖에서 시도를 해봐야지. 우선 네가 잘 아는 사람들과. 다음은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젼혀 모르는 살마들과 숱한 접촉을 거쳐야지.”와 같은 쏟아지는 잠언성 발언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왠지 못미더운 것도 그 때문이다. 조반니는 필시 작가의 투사일 텐데, 작가는 대책 없는 나르시스트는 아니다. 도리어 충분히 자기성찰적이다. 그래서 불화를 겪고 있는 M을 통해 조반니에 대한 비판은 거침 없이 쏟아지고, 퍽 매력적으로 형상화된 딸에게서까지 거친 비난이 나온다. 물론 나는 아무래도 그녀들에게 공감하는 쪽이 된다. “우리가 아무리 튼튼하고 단단한 토대 위에 있는 척해도, 실제 우리의 균형은 불안하기 때문이야.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름을 배우고 이름을 주고, 안정감과 지속성을 가진 친숙한 이미지를 사고파는 데 시간을 보내. 이 이유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또 변화를 필요로 하지.”라고 조반니는 말한다. 과연 이 책은 그러한 불안에서 비롯된 성찰과 그 궤적이랄 수 있다. 조반니는 “코드체계”에 갖히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별 수 없이 그 안에 기질적으로 안주한다. 때로 그렇지 않은 척이야 하지만. 조반니는 “창문이나 열쇠 구멍으로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냉소주의자들. 쓸쓸한 일상에 체념하고 지혜로운 척 거짓 이유을 들어가며 삶을 질질 끌고 나가는 환상에서 깨어난 수많은 무관심한 커플들”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아무래도 그도 이 소설도 별 수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