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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교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종교가 중요하듯 다른 이들의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틀림이 아닌 다름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누구나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인이든 철학자든 혹은 나와 다른 종교인이든 그들의 좋은 말씀들은 따르려고 노력한다. 실천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읽게 된 책이다. 한 사람이 가고 없는 공간. 법정스님은 떠나갔지만, 그의 말과 글들은 남아 있다. 길 위에서 부처를 만나면 그 부처를 죽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스님의 글을 보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집착이 번뇌를 낳고, 번뇌는 윤회를 낳는다. 그의 책을 모두 거두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일부에서는 비평의 소리도 나오지만,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인 것 같다. 법문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철저히 종교적이지만, 그 속에는 삶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법정 스님의 법문은 법에 대한 것을 가르치면서, 비교적 쉬운 이야기로 전하기에 다른 법문보다는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쉬운 것 같다. 법이라고 해서 고리 따분한 경전의 해독이나 해석이 아닌 삶과 함께하기 때문일까! 주로 불교의 원시경전에 속하는 법화경과 숫타니파타 등을 많이 인용한다. 원시경전이기에 부처의 말과 행동이 더 사실적으로 기록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부처님 이야기와 여러 선사들의 이야기와 일상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로 된 법문들이다. 이 법문집은 거의 17년간의 법문을 모았기에, 저자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 등도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살아있는 가르침은 늘 지금 여기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라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스스로, 자주적으로 억제하는 일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행복은 오로지 자기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깨어 있지 못하면 현상들을 좇아 다니게 된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묵은 생각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기식대로 자신이 가진 잣대로 넓은 세상을 재려고 하니까 무리가 오는 것이다. 자기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아니다. 자신은 세상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한 작은 퍼즐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 자신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깨달음이란? 본래의 자기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의력은 본래부터 있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탐구하고 추구하는 노력을 통해서 그 바탕이 이루어진다. 독서를 통해서 살아있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가슴에 따뜻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경우가 휠씬 많다. 진리는 우리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일상의 삶에서 부딪히고 상처받는 이 마음, 평상심이 곧 도이며 진리이다. 삶의 기술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1. 남과 비교하지 말라. 자신은 단 하나뿐인 독창적인 존재이다. 2. 무엇이던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움켜잡지 말라. 3.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4. 가끔 기도를 하라. 추상적이고 막연한 원보다는 구체적인 원을 세워라. 5. 남을 도와라. 6.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 없어야 한다. 기도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밝히는 일이다. 변화 속에서, 무상함 속에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살라는 것이다. 해뜨기 전이 우리 정신의 가장 투명해지는 시간이다. 적어도 30분 정도는 순수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라. 스스로를 돌보면 반성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자신에게 평화를 주지 않겠는가. 항상 늦지 않았다. 지금 시작한다 하더라도 내생을 위한 준비가 될 수 있다. 누구의 삶에나 다 괴로움이 있다.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이다. 우리는 자신을 중심으로 여기지만, 타인에게 많이 휘둘린다. 남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 힘으로 하려고 생각한다면 곧 하는 것이다. 많이 안다는 것은 많이 분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게 알면서도 많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실천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세상에 공것은 전혀 없다. 풍부한 시대 우리가 선택해서 쓰지 않으면 완전히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만다. 좋은 일이 있으면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본마음이다. 풍요로운 삶이 어디 있는지? 과거에 비해 가진 것은 많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따뜻한 정이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 지구가 다 초토화되어 사막화하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 물질이란 마음의 그림자로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물질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이기에 마음을 나누고 베푸는 일이 보시의 근본이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문명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자연을 보호합니까? 다만 있는 그대로를 지키는 것일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비교적 쉬운 실천. 텔레비전을 끄고 인생을 켜세요. 부스러기 뉴스를 피하라. 핸드폰, 광고에 저항하여야 한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내가 거듭거듭 형성이 되어야 한다. 매체 등에서 쏟아내는 말들은 자기 나름대로 여과하지 않고 받아쓰고 있다. 자기언어가 없다는 것은 자기 나름의 사유, 깊은 생각이 없다는 반증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오늘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깨어 있으라. 지금이 바로 그때. 시간은 순간 순간의 삶과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애의 과정에서 후회되는 일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나이를 탓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한다면 삶 자체가 스스로 노쇠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몸이 편해질 때 무언가 퇴화되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스님은 항상 일상의 삶을 강조하시는 것 같다. 우리는 젊어서 삶을 배우듯이 죽음도 배워야 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떠나고 싶은 것이다. 죽음도 하나의 삶의 모습이다. 영혼은 육체가 자기 할 일을 다했음을 알고 낡은 옷을 벗어 버리듯이 한쪽에 벗어 놓는다는 스님의 말씀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고요히 입적하신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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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니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내 옆에는 언제나 법정스님의 글들이 함께 했었던 것 같다. 바쁘다고 언제나 동동거리며 살았고 많은 일들에 치여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그저 부웅 뜬 구름마냥 그 날이 그 날이었던 평범한 도시인의 생활 패턴 그대로 그럭저럭 살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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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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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하얗게 보였을 법한 어린 시절, 내 곁을 항상 지키고 계시던 엄마의 손엔,
[가난이 죄는 아닐지언대 죄가 되어 죽습니다.] [산중에서 길을 물었더니.] [풍경]....등과 같은 스님들이 쓰신 책이 늘 들려있었다.
그런 엄마의 영향아래, 종교완 상관없이,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필요로 할때 종종 읽게 된 도서들.
도서들이라 하기엔 너무나 깊은 울림이라, 독서라 말하기 보단, 명상이었다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권, 한권, 이윽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거쳐 읽게 된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
책을 펼쳐드는 순간, 이미 목차에서 내 손끝을 떨게 하던 그 단어 하나하나, 글 하나하나가 나의 손과 더불어 마음에 작은 소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창 사회의 때들에, 그 비릿한 역겨움에, 그리고 나약하던 내 스스로에, 지쳐있던 나에게 목차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말씀들이, 나를 준비자세에 놓이게 했고, 그렇게 새벽을 거쳐 총 하루 반나절만에 끝까지 읽어나간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 은, 책 제목 그대로 나라는 한사람을, 품어줬고, 때론 비판했으며, 통찰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이란 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리석은가. 다른 시각으로 보면 책 한권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책 한권으로 방금까지 바라보던 세상이 다른 시각으로 비춰질수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 깊은말씀 가득한 책 한권에 미치지도 못하게 살고 있다는 현실이.
책속에서 법정스님은, 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한번쯤은 생각하는 부류들을, 욕심과 허영, 아집과 소유등의 시각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시각이 아닌, 말 그대로 자연과 같은 깊고 넓은 시각으로 말씀하고 풀어주면서, 책 속의 말 하나하나가 명상이 되듯, 깊이 있게 전달하고 계셨다.
자신과 타인의 거리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욕심과 무소유의 차이에서, 미움과 사랑의 본질에서, ....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 하나하나에, 글 하나하나에 깊이를 담아 전하고 계셨다.
단지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단지 하루 사이에 책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 나의 맘은 명상의 끝에서 평안을 찾았고, 스스로에 대한 통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책으로 엮어진 깊이있는 명상을 추천하고 싶을 뿐.
... 책의 끝에 다다라서 나는 오로지 하나를 가슴에서 꽃피우고 있었다. 나는 살 것이다. 잘 죽기 위해 잘 살 것이다. 사소한 일에 허우적댈 필요 없다. 그저 잘 살기만 하면 된다. 살아있되 죽은 것과 다르지 않은 삶이 아닌, 허우적대는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만족을 찾을 수있는 삶, 그런 잘 사는 삶을 살 것이다.
< 잘 산 사람만이 잘 죽을 수가 있다. 사람은 살 줄 알아야 한다. 살 줄 알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고, 살줄 모르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산다 하더라도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 -책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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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법정스님 법문집 <일기일회>를 뜻깊게 읽었다. 그런데 어느새 또 하나의 법문집이 나왔다. 이 책은 법정스님이 1992년에서 2009년까지 17년이란 시간의 간극을 두고 일반인과 불자를 대상으로 이야기한 36편의 법문을 하나로 담고 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들과 당신의 경험을 가지고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마음의 정갈함과 평정심이 커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지난번 <일기일회>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소중한 순간이란 가르침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에서 법정스님은 남이 나와 무관한 타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열린 마음으로 보면 모두가 하나라는 점을 깨달을 것을 강조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즉일체 다즉일'이란 말처럼 하나하나에는 전체가 담겨있고, 그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를 이룬다는 연기론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러한 인식은 남을 향한 자비의 마음가짐과 실천의 강조로 이어진다. 남을 돕는 것도 크게 보면 내 자신을 돕는 것이 된다. 전 세계가 커다란 네트웍으로 연결된 하나의 나무이다. 남을 위한 자비나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본시 자신을 위한 길과 같은 마음이기도 하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것을 강조한다
다른 중요한 개념은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는 '무상'의 개념인 것 같다.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도 끊임없는 정진할 필요도 여기서 생긴다.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세상이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꽃 한 송이,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만족할 줄 알고, 열린 마음으로 날마다 거듭남을 추구한다면 우리 곁에서 얻을 수 있지 않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속에 송곳하나 세울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들 때 이책을 꺼내 다시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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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없이 흐르는 개울물처럼 우리 자신도 그렇게 어디론가 향해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 개울물처럼 우리들 자신도 어디론가 쉼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꽃도 날마다 새롭게 피어납니다. 겉으로 보면 어제 핀 그 꽃 같지만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닙니다. 꽃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겉모양은 어제와 비슷하지만, 오늘 피어난 꽃은 어제의 그 꽃이 아닙니다. 새로운 향기와 새로운 빛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들 자신도 순간순간 죽어가면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닙니다. 어제의 나는 어제 이미 살아 버렸습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중에서.
스님의 글들은 늘 오늘 새로 핀 꽃처럼 신선하다. 법문집 2권의 제목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듯하다. 사람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돕고 사는 것임을 강조하신 스님의 가르침을 잘 표현해주는 제목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표지는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단순하고 소박한 것들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오래도록 가슴 한 켠에 머물러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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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이라고 한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은 결국은 서로서로 관심과 사랑. 배려를 느끼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혼자사는 존재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혼자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개별적으로 살아가더라도, 서로에게 얽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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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기일회]에 이은 법정스님의 두번째 법문집 이다. [일기일회]에 빠져있는 법문 및 2003년 이전의 시기에 법정스님이 정기법회, 초청법회, 해제, 결제일등에 행한 법문 35개가 실려있다. 스님은 특히 깨달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시며, 환경, 자연에 관한 것은 물론 우리 삶의 종착역인 죽음에 대한 많은 고찰을 할 수 있게 해주신다. 또한 세속을 탐하는 절 내부문제, 그리고 사랑, 용서, 친구와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까지 귀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 주신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내가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생각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목적 이랄지, 살아가야 할 방법등에 대해 고민이 생긴다. 스님은 무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 하고 있다. "몸이 아플 때 이건 아니야 라고,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몸이 나을 때 그래 이거야 라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살아 있는한 조만간 아플일이 또 다시 있을 것 이므로…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불행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 하신다. 다만 맑은 정신으로 지켜 보라고 한다. 행복은 행복이고, 불행은 불행일 뿐이라고 한다. 그것에 좋고 나쁨을 대입할 때 고통과 불만족이 시작된다고 한다. 무상함의 진리에 대한 자각은 자유를 가져다 준다고 설법한다. 또 스님은 [아함경]에 나오는 부처의 말씀을 빌어 나에게 얘기 한다.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 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일을 자세히 살펴. 잘 알고 익히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순간순간 너에게 주어진 시간과 세월을 너는 지금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라고 반문 하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그 시간들을, 아니 내 자신이 온전히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라는 것을 아직은 깨닫지 못한 우리의 우매함을 꾸짖는 것 같이 들려온다. 어떤 책에서 읽었던 귀절이 떠 오른다. 우리가 통제할수 있는 시간은 현재, 지금 당장 뿐 이라고.. 지나간 과거의 시간도, 다가올 미래의 시간도 우리는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아니 지금 당장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님께서는 말씀 하신다. “전에도 우리는 이와 같이 모였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또한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아니다. 새로운 우리들 이다. 강물은 항상 그곳에 있기에 어느 때나 같은 물이지만,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날마다 그날이 그날이고 같은 시간인 것 같지만, 늘 새로운 날이다. 그것을 자각해야 한다. 하루하루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또 스님은 독서에 대해서도 말한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지은 [한정록]이란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밤은 낮의 여분이고, 비 오는 날은 맑은 날의 여분이며, 겨울은 한 해의 여분이다. 이 여분의 시간에 일념으로 집중하여 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농경사회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이지만, 책 읽는 것의 중요함을 설명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좋은 책이란 베스트셀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결정하는 것 이라고 말씀 하신다. 세월의 채에 걸려져서 남은 책들이 바로 양서이며,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두번 읽을 가치가 없는책은 사실 한번도 읽을 가치가 없다고 말씀 하신다. 신영복교수의 독서는 삼독三讀 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그리고 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 이라고 우리 모두에게 말씀 하신다. “여기 삶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이 나무 아래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왔다가 떠난다. 때로는 미물의 몸으로, 때로는 동물의 몸으로, 인간의 몸으로, 여자와 남자의 몸으로, 그렇게 몸을 바꿔가며 이 삶이라는 나무 아래 앉았다가 간다. 그대는 이 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깨닫고 가는가? 그대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깨달음을 이루는가 이다. 그대는 하나 속에 전체가 있음을 깨닫고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 삶을 실천하는가, 아니면 개체와 자아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가? 그것에 따라 그대의 삶은 성자의 삶이 되기도 하고 속인의 삶이 되기도 한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중고등학교를 다닐땐 그 학교들이 소위 미션스쿨 이어서 성경을 신물 나도록 읽었다. 좋아서 읽는 것이 아닌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왠만한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가끔은 좋은 말들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이러한 잠언집이다. 모두가 다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질렀는지.. 상징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이 얘기하고 몸소 행했던 그 실천을 믿고 행하는 것이 참된 종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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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법정스님께서 좋아하시는 말이라고 책에도 나와있다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영어로 하면 all for one, one for all 바로 삼총사에 나오는 명대사이기도 하다 법정스님의 두번째 법문집이다 첫번째인 일기일회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책장 어딘가에 있을텐데 정리를 못해서 아직 찾지 못한탓에 우선은 사다놓고 읽지 못한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일년 사계절 서울 성북동 길상사와 뉴욕 불광사 등 각처에서 운수납자, 학인, 재가불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35편의 법문을 실은 책이다 직접 법회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는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법정 스님의 귀한 법문이기에 다른 책들과 달리 좀 더 신경써서 책을 읽었다
35편의 법문들은 모두다 하나같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될 도리 그리고 버려야 하는 욕심들 스님께서 읽으셨던 법문에 관한 내용은 물론이고 책에 나와 있는 내용중 좋은 것들은 따로 발췌하셔서 옮겨 놓은 것도 있었다
하나속에 모두가 있고 모두속에 하나가 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 스님은 아무래도 이 말을 강조하셨다 아무래도 공동체라는 것에 대해서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쓰신 말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을 새로 정화시키는 기분이었다 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고 한다 전체속에 하나가 있고 한 사람은 전체를 위한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어떤 깨달음을 이루는가이다 한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 삶을 실천하는가에 따라서 삶이 성자의 삶이 되기도 하고 속인의 삶이 되기도 한다
어려운 불교에 쓰이는 인물들과 단어들이 있어서 조금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책 뒤부분에 용어해설란이 따로 되어 있어서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법정스님은 우리는 모두 하나의 큰 생명체에서 나온 존재들이며 남이란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이다 라고 하셨다 그래서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사람을 이란 진리의 말씀을 하신게 아닐까 한다 나와 타인을 따로 보지 말고 타인이 곧 나라는 걸 깨닫는게 삶의 깨달음이고 진정한 진리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책 제목과 같은 의미로 화엄경에 일즉일체다즉일이란 말이 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곧 전체가 하나라는 가르침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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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우리는 큰 스승을 잃었다. 누군가를 잃고서야 남겨지는 깨달음은 그래서 언제나 잔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마음 한켠에 함께 스며온 고마움이라는 녀석이 진정제처럼 마음을 어루만져 달랜다.
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 이라고 말씀하셨던 법정스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벌써 몇십년 전으로, 그때가 중학교 처음 입학하던 해였는데 엄마가 읽고 계시던 책 한 권을 어깨너머로 넘겨보면서였다. [무소유]라는 그 말씀이 좋아 엄마를 따라 스님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스님 입적 후, 방송을 통해 그간 스님께서 강연하신 모습이나 남기신 말씀을 육성으로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날카로우면서도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인상적이었다. 귓가를 파고드는 단어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리는 타종이 되어 가슴에 남겨졌다.
수없이 많았을 강연회에 단 한번도 참여하지 못했던 후회스러움을 대신해 살아생전 스님께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35편의 법문말씀을 남기신 책,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읽기 시작했다. 분명 눈으로 읽고 있었지만 스님의 육성이 귓가에 남아 직접 듣는 것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읽혀졌으며 왜 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항상 감사기도를 드리며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님은 꼼꼼하게 체크하지 못하고 있던 내 일상을 꼬집기도 하셨다. 식사기도와 저녁기도뿐이었던 하루에 생각지도 못했던 아침기도를 더하게 도우셨고 상황을 바라보는 제3의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병이 되었든 상황이 되었든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면서 좋은 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씀 속에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삶이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입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 항상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행운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라는 말씀 속에서는 감사한 마음을 갖게 만드신 우리의 큰 스승은 이 좋은 말씀들조차 공해라며 책의 절판을 유언하셔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셨다.
이런 스님의 출가를 두고 다들 왜 출가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는데, 특별히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될 때가 되어 된 것이라고 답변하시면서 타종교와 달리 모집 공고도 없는데 다 제발로 걸어 들어오는 곳이 절집이라는 명답을 남기셨다. 본인 외에는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를 두고 속세의 우리는 또 어리석게도 호기심을 갖다붙여대고 있었다.
스님의 말씀을 읽다보면 평소에는 평범하게 느껴져 몰랐던 우리의 일상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에서 멀어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인간다움이라는 잣대를 우리 멋대로 옮겨가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자기합리화하고 당연시해왔는지....
사람이 불행한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묵은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벗삼아 새해를 맞이한 지금, 지난해의 묵은 것들은 다 털어버리고 오로지 오늘과 올해만을 위한 새로운 다짐을 시작해야겠다.
35편의 법문이 짧게만 느껴졌지만 그와 더불어 충분하게도 느껴졌던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그 힘에 있는데, 물건이든 사람이든 올해부턴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어느 것이든 천년 만년 일리 없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은 상하고 누군가는 떠난다는 것을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스님이 계실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를 향해 있어도 계속 될 것만 같던 좋은 말씀의 소중함을......!!!
지난해의 산타클로스 선물보다 새해의 스님 말씀에서 더 큰 선물을 발견하면서 힘찬 한해를 시작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