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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서양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온 의학자를 남편으로 맞아야 하는 중국 여인 퀘이란, 전통적인 중국의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서풍을 몰고 온
남편을 만나 그려지는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다. 주인공(퀘이란)이 아는 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글은, 읽는 내내 웃음을 짓게
한다. 사실 그 당시에 주인공이 느꼈을 문화적인 충격과 심연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2017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때 주인공이 가졌던
감정과 상황들을 읽어 내려가자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아니 어떻게'...?가 읽는 내내 느꼈던 나의 주된 감정이였다.
남편을 주인님으로 모시는 여자, 그리고 오로지 남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자신을 치장하는 여자, 그러나 정작 그러한
사랑을 받는 남자는 첩을 몇 명씩 두고도 또 다른 첩을 물색하는 기묘한 이야기에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퀘이란의 말처럼
여자는 그저 꽃이나 몽롱한 아편처럼 자극만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거나, 혹은 그녀의 엄마가 했던 말처럼 오직 남편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게 퀘이 란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들 이기게, 유학하고 돌아온 의학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주인공의 오빠는 서양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부모님과 그들이 가진 전통에 맞서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전통을
지키려는 부모님과 새로운 삶을 원하는 젊은 세대들.. 서양문물과 그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격정적인 변화와 갈등을 겪는 시대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집안끼리의 약속으로 정혼자를 정해놓고 얼굴도 모른 채 서로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의 결혼이 내게는 너무도 낯설다.
하지만 그보다 태어나 어느 정도 자라면 오로지 결혼과 출산, 남편을 주인님으로 모셔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보일 온갖 기교와 자태를
익히기 위해 자신을 수련하며, 매일 밤 현란한 치장으로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해야 하는 그 당시 여인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한 것들에 아무런 저항 없이 자란 퀘이란에게 유학을 다녀온 남편이라니.. 그녀의 삶에 불어닥친 서풍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지만 이내 남편의 뜻을 받아들게 된다.
물론 그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시집 간 여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남편의 뜻이야 둘째치고 주인인 남편에게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신주님의< 감정 수업>'에서는 사랑을 위해 자신이 지켰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남편의 뜻에 따라 신식 여성으로 거듭나는 그녀가,
오로지 자신의 원하는 모습일 때에만 사랑을 느끼려 하는 그녀의 남편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자인 내가 이 글을 읽었을 땐 그 이야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퀘이란이 남편의 뜻에 따라 신식 여성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그를 사랑해서라기 보다 여전히 그녀 안에 있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힘을 두었기 때문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육체가 아니라면 다른 면에서 그를 즐겁게 해줘야 했다'라는 그녀의
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변화가 결국엔 그를 사랑해서라기 보다 그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자신도 행복할 수 있다는,
남편이라는 주인에 예속된 여성으로서 딱 그만큼의 자리에서 시작된 변화이기 때문이다. 결국 퀘이란은 사랑에 몸을 던져 서풍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동풍에 몸을 던져 서풍을 견딘것이라 생각한다. 퀘이란의 사랑은 결국 자신이 가진 동풍에 순응한 결과인 것이다.
물론
그녀의 남편은 퀘이란이 전족을 벗으며 느꼈을 정신적 상실감이나 육체적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변화하는 그녀에게 남편으로서 충분히 위로와 힘을 보태어 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퀘이란과 그녀의 남편은 결국 완전한 사랑을 이루진 못했을
것이다. 만약 퀘이란 이 끝까지 전족을 벗지 않고, 삶의 모든 면에서 자신이 배우며 살아온 전통을 지키려 했다면 아마도 서풍이 아닌 그보다 더한
바람이 그들에게 몰아쳤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퀘이란의 사랑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그녀의 남편에겐
퀘이란이 신식 여성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랑이었다.
사랑은 단지 욕망, 아들을 얻고 싶은 여자의 욕망일
뿐이라던 퀘이란의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욕망이 충족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게 사랑이라던 그 공허한 울림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오로지 남자의 육체적 만족이나 그의 아들을 낳기 위해 살아온 그 세월을, 그 여인의 말못할 아픔을 누가 감히 알수 있을까. 그것이
그네들의 전통이며 그렇게 순순히 살아 갔다고 한들 정말 그녀의 마음엔 사랑의 미묘한 떨림이 없었을까.. 그 떨림에 가슴이 쿵쾅 거리던 그 느낌을
붙잡고 싶었던 적이 없었을까,,,
퀘이란의 오빠가 데려온 서양 여자를 끝까지 거부하며 결국 죽음을 맞이한 그녀의 완고함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신 ,구 세대의 갈등 안에서 뜨겁게 피어났을 그들의 사랑과 서로에게 맞춰가며 삶에서 균형을 찾아간 퀘이란 부부의
사랑도 그 안에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였을 거라 생각한다.
동풍과 서풍,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 앞에서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지키기 위한 모든 세대들의 아픔과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재미있는 책이였다. -2017.5.30 책읽는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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