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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 동네에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워낙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사셔서 명절 때마다 주차난을 겪는 곳이니만큼 어르신들이 노환으로도, 그냥 주무시다가도 세상을 달리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참 신기하게도 그분들이 사는 곳을 지나가게 되면 생전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와는 오며가며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그 가족들은 어떨까? 나의 둘째 동생은 세 살 때 죽었는데, 그 때 내 나이 겨우 일곱이었는데도 살면서 무수한 순간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생을 떠올린다. 고만한 나이의 청년들이 군대를 갈 때, 공원에서 땀 흘리며 운동할 때, 터울이 많이 지는 막내 동생이 결혼할 때, 그 동생이 애기아빠가 될 때 등등... 살아있으면 지금 이러이러한 일을 했겠구나, 맑고 예쁜 심성을 가진 아내를 맞이했을 거야, 애기 아빠가 되었겠지 하는 생각들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만약 돌아가신 분이 오랜 세월을 사시면서 수많은 기억들을 남기고 떠나셨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분을 잃은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노래하는 눈동자」에서는 열 세 살 난 소년 윌리엄과 여섯 살배기 여동생 비올렛이 어느 날 아침,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늘 노래하는 눈동자로 세상의 진귀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고 소소한 일상을 특별한 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할머니가 하루아침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어린 비올렛은 실감하지 못한다. 우연히 날아든 말벌 한 마리에 위협을 느낀 윌리엄이 그 벌을 죽이자 할머니가 죽으면 벌이 된다고 했다며 오빠가 할머니를 죽였다는 비올렛. 함께 벌을 묻어줄 곳을 찾아 나서면서 윌리엄은 비올렛이 굳게 믿고 있는 할머니의 말이 사실과 다른 게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한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게 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 속 깊은 윌리엄, 그리고 어린 비올렛은 할머니가 떠났어도 앞으로 벌을 보게 되면 할머니를 떠올릴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평생을 고무줄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멈출 수 없었던 할머니, 직접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상상 속에서 그려내 들려주셨던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일까? 윌리엄은 할머니가 직접 경험할 수 없어 꿈이 되어버린 일들을 이야기한 것으로 인해 자신의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을 만큼 생각이 많이 자랐다. 윌리엄은 살아가는 동안 종종 할머니의 꿈을 꾸는 듯한, 노래하는 듯한 눈동자를 떠올리며 할머니와 나눈 그 모든 것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은 시댁 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계시지만, 이웃이나 동료, 친구들의 가족이 상을 당할 때면, 이 분들 중 어느 한분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낀다.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죽음’ 하면 겁부터 나는 걸 보면 난 아직 한 참 어린 사람이다. 짧은 글인데도 좀 어렵게 느껴지는 「노래하는 눈동자」를 읽으며 죽음에 대해,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살아가는 것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 하니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 그래서 내가 죽은 다음에 나를 떠올리는 이들이 웃음이 묻어나는 얼굴이나 늘 노래하듯 재잘대던 내 입과 목소리를 기억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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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눈동자
울어도 울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커서야 알았다. 더 밟아, 더 밟아. 어린 여동생을 무릎에 앉힌 할머니는 계속 더 밟아를 외친다. 쫓기듯 과속 페달을 밟는 마음의 불안이 극한에 달할 쯤 꿈에서 깨어난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돌아가신 것이 무엇인지 여섯 살 비올렛은 알까. 열세 살 오빠에게 왜 울지 않느냐고 묻는다. 남자는 밤중에 조용히 내리는 눈처럼 우는 것이라는 소년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어머니를 잃고 가족들이 잠든 한밤중에 등을 돌리고 앉아 흐느끼는 남편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왔다. 할머니가 죽어서 벌이 된 거라며 오빠가 두 동강 낸 말벌을 들고 앉아 슬퍼하는 비올렛의 어린 마음이 고왔다. 그 말벌을 묻어주며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남매의 모습, 할머니가 듣던 레코드 판을 찾아 듣고, 지금은 테니스장이 된 할머니의 옛 집을 지나며 할머니를 추억하고, 할머니와 함께 보았던 오래된 옛날 흑백 영화와 할머니의 담배 한 개비와 미소, 할머니가 평생 다녔던 고무 공장..... 가족들의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운 마음이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입으로 흘러나온다.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할머니가 어디 가셨냐며 내 손을 잡고 물어오는 꼬맹이는 나중에 커서도 우리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을까.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을 때에도 할머니의 물건을 정리할 때에도 내내 할머니와 관련된 추억들을 끄집어내었었는데... 이들의 모습이 꼭 우리와 같았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슬프고 더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여기서 살았지만 자신의 인생은 딴 곳에 있다. 책 속 아이의 말처럼 우리 할머니도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셨지만 그래도 우리 마음 속에서는 살아계신다. 베풀어주신 사랑과 웃음과 추억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할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책 속 한 구절 : "내 말 좀 들어 봐. 할머니는 죽었고, 네가 숲에다 묻었어. 아빠와 엄마는 묘지에 묻을 거고. 그리고 나는, 여기에 묻을 거야."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쳤다. "나는 마음 속에 묻을 거야. 우리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하는 거야. 중요한 것은 그거야, 알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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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임하지만 죽음에 대한 관점은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관점에 따라 죽음에 대한 반응과 삶도 많이 다르다. <노래하는 눈동자>는 바로 이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는 철학동화다. 할머니를 무척 좋아하던 13살 윌리엄과 여동생 비올렛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가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어린이 동화 내지 그림동화로 분류되는 책인데 어린이에게는 쉽지 않은 내용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어린이 보다는 어른들의 동화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만큼 조금은 난해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처럼 아이들도 얼마든지 가까이서 죽음을 접할 수 있기에, 아이들도 한 번 쯤 읽어보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좋을 듯히다. 비록 아이들이 저자의 생각을 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단편적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아이들이 혼자 읽어보기 보다는 어른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그룹토론 등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6살난 비올렛은 오빠와는 조금 다르다. 할머니가 죽으면 벌이 된다고 했다고 죽은 벌을 묻어주러 가고, 오빠만큼 자라면 할머니에 대해 더 많이 생각날까 하며 묻는 비올렛이 오히려 어린아이답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죽음 같은 건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장례식에는 데려 가지 않는다는 초등생 학부모를 만난적이 있다.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또한 죽음도 인생의 중요한 한부분인데 오히려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면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장례식장에 데려가기 꺼림직하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통해 죽음, 특별히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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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살 나이면 과연 인생을 얼마나 알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 아니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을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꿈궈온 인생과 실제의 인생은 다르다는걸, 가짜와 진짜를,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이이는 그렇게 서서히 어른이 되는가 보다.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간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일만은 아니지만 어른들의 낯선 세상에 한 발짝 다가선 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나이는 비록 열세살이지만 어느날 닥친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의 슬픔보다 나이어린 동생을 더 생각하는 의젖한 오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 식탁위를 날아다니는 말벌 한 마리를 죽이는데, 그것을 본 여동생 비올렛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다. 영문을 모른채 쳐다보는 오빠에게 대뜸 "오빠가 할머니를 죽였어"라고 말하면서. 도대체 말벌이 할머니라니 그 순간 동생이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인지, 너무 순진한 것인지 잠시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오빠는 그런 동생을 위로하고 동생이 받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한다.
왜 여동생 비올렛은 뚬금없이 말벌을 할머니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 할 만하다. 할머닌 평생 고무줄 공장에서 일하면서 공장 너머의 세계를 꿈꿔왔었다. 그리곤 자신이 꿈꿔오던 인생을 아이들에게 들려 주셨다. 마치 진실인양, 동화처럼. 어느 순간부턴가 윌리엄은 그런 할머니의 이야기가 사실과는 다른 가짜임을 알게 되지만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기엔 아직은 어린나이리라. 할머니의 모든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있는 여동생 앞에서 그는 마음속으로 갈등하지만 어린 동생의 꿈을 깨뜨리지 않고 지켜주고자 한다. 할머니를 대신하여 말벌의 장례식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치른다. 그리곤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떠나 할머니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소중히 기억하게 된다.
"내말좀 들어봐. 할머니는 죽었고, 네가 숲에다 묻었어. 아빠와 엄마는 묘지에 묻을 거고. 그리고 나는, 나는 여기에 묻을 거야" 그가 가슴을 두드리며 동생에게하던 말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그가 좋아하던 음악, 좋아하던 음식, 즐겨 쓰던 말, 심지어 그의 표정이나 습관까지도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사랑하는 이를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하는 것이리라.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윌리엄을 통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윌리엄보다 나이많은 아들을 둔 엄마임에도 늘 성장소설을 읽으면 조금씩 성숙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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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함께 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함께 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혀옵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머리는 온통 하애질 뿐입니다. 나와 같이 숨을 쉬고, 나와 같이 움직이고, 나와 같이 대화를 하고, 나와 함께 생활을 했던 가장 가까운 할머니라면 더더욱 그 슬픔이 크겠지요. 이 책에서는 윌리암이라는 소년의 눈으로 그려진 할머니와의 이별에 대해 그들이 받아들이는 그 모습들을 잔잔한 글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별. 영원한 이별에 대한 것에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잔잔하게 알려주는 책입니다.
악몽을 꾸고 일어난 새벽에 윌리암은 할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그 엄청난 이별의 무게에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윌리암과 동생 비올렛은 할머니와의 추억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추억속에서 비올렛은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이야기들을 더듬어갑니다. 하지만, 윌리암은 할머니가 자신들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는 진짜가 아닌 가짜의 할머니의 삶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할머니의 그 희망과 꿈으로 그려진 가짜인생이 단순한 거짓의 눈으로 그려진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또한 윌리암은 생각하게 됩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떠나 진실과 거짓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한 윌리암은 깨닫기 시작하면서 할머니가 꿈꾸었던 가짜의 삶의 모습에서도 그 가치는 있다고 여기게되지요. 굳이 비올렛에게 할머니가 자신들에게 해주었던 할머니의 이야기들은 가짜였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 걸음 더 성숙된 윌리암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벌을 아침식사도중에 만나게 되면서 그 말벌이 할머니라 생각하게 되고 두 동강난 그 말벌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묻어주려고 했던 그 과정들에서 만난 할머니에 대한 그 애틋함이 먹먹합니다. 그동안에 함께 했던 할머니와의 추억은 윌리암이나 비올렛에겐 어느 누구보다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냥 세월 속으로 보내버리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할머니와의 그 추억에 윌리암과 비올렛은 눈물샘을 만듭니다. 할머니와의 그 추억속에 등장한 그 물건들을 가슴에 담기로 약속한 그 때부터 윌리암과 비올렛에겐 그 때에서야 할머니가 들풀을 꺾어 들고 숲에서 돌아올 때 지엇던 그 미소처럼, 노래 부르던 그 눈동자, 행복했던 할머니의 눈동자, 생기 넘치는 할머니의 그 눈동자를 맞아들이게 됩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바로 할머니였던 것입니다. 그 차이를 깨닫게 되는 그 때부터 윌리암은 어른으로의 발돋움을 한발 더 내딛게 된것이겠지요.
"나는 마음속에 묻을 거야. 우리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하는 거야. 중요한 것은 그거야, 알겟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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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얇아서 금방 읽었지만 솔직히 내 기억속에 남지가 않아서 몇 번을 읽어보게 된 책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외할머니를 간만에 떠오르게 한 책이기도 하다 노래하는 눈동자에 나오는 윌리엄과 비올렛은 아주아주 많이 사랑했던 할머니를 잃었다. 최고의 이야기꾼 할머니. 평범한 일상을 동화로 바꾸어 놓을줄 알았고 무엇보다 그리운 것이 할머니의 수다이다. 또 할머니의 담배 냄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가 죽은날 할머니는 죽으면 벌이 될거라고 비올렛은 설명했고 오빠가 죽인 벌이 할머니라고 믿고 있는 비올렛 그 벌이 할머니라고 묻어주기 위해 숲으로 가는 비올렛을 따라가는 윌리엄 할머니 한마디 한마디를 진실로 알고 있는 비올렛에게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깨고 싶지 않아 비올렛이 하는대로 그 벌을 산에 묻어준다 비올렛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벌이 할머니라 생각하며 숲에 묻고 윌리엄은 가슴으로 묻어 할머니를 떠나보낸다 겉표지의 모습이 노래 부르던 행복했던 할머니의 눈동자, 생기 넘치는 할머니의 그 눈동자인 것 같다. 윌리엄은 할머니의 진짜 인생과 가짜 인생을 받아들이면서 그 차이가 할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몇 번을 읽어보면서 8년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이 났고 할머니와의 추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이 남는다 아직도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신것만 같은 할머니. 할머니와의 추억을 생각나게 한 책이라 기분이 좋으면서 죽음이라는 걸 생각나게 해서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큰아이가 엄마가 할머니가 안되었음 좋겠어 왜? 할머니가 되면 엄마가 죽을까봐 딸아이의 마음이 지금의 내 마음이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면서 가슴이 아픈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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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력은 어린아이들의 동심속에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를 따랐던 두 남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상과 현실, 즉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삶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어느날 늘 함께 남매와 놀아주며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주셨던 할머니께서 죽으셨다. 할머니는 늘 자신이 죽으면 벌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죽음속에서 벌이 한마리 날아왔다. 그 벌을 오빠는 잽싸게 잡아 잘라 죽였다. 이 모습을 본 여동생은 지겁을 한다. 마치 할머니가 죽은 것처럼 그러나 정말 여동생은 할머니가 다시 벌을 되어 자기들에게 날아왔는 데 그것을 죽였기에 할머니를 죽인 것과 같았다. "오짜가 할머니를 죽었어", 오빠는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벌인데 그러나 여동생은 분명 할머니였다. 결국은 동생을 달래기 위해서 오빠는 그 벌을 고히 싸서 장사를 지내준다. 할머니처럼 정성을 기울여 장사를 지낸다. 오빠의 모습과 동생의 모습에서 죽음을 인식하는 차이가 있다. 물론 둘 다 어린아이이다. 그러나 성숙한 오빠의 마음과 순수한 동심속에 있는 동생의 죽음에 대한 받아들임이 다르다. 오빠는 의연하게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생은 벌로 다시 자기에 날아온 할머니로 인해 반가웠다. 그러나 오빠의 행동에 할머니의 실제 죽음보다 더욱 큰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어린아이들의 생각과 사고, 마음이 다르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 책은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할까? 현실속에서 낭만과 추억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받아들이는 이들에 대한 모습을 그리고자 했을까? 노래하는 눈동자로 인해 가상과 실제, 즉 가짜와 진짜를 새롭게 보게 했다. 모두다 필요했다. 동심속에 있는 가상은 실제를 쉽게 받아 들이기 어렵다. 가짜속에 있는 이들이 진짜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눈에 비친 것이 다르지만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오빠와 동생의 인식차이가 결코 밉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빠는 동생을 탓하지도 깨우치고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동생의 세계를 인정하고 배려해 준다. 그게 할머니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다보면 할머니에 대한 허구도 보게 된다. 그러나 허구라고 해서 할머니를 질타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그게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창의적이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잃어버렸던 세계를 다시금 찾아가도록 한다. 내 안에 있는 것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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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언가를 간절히 말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였다. 과연 눈동자는 무엇을 노래하는 건지도 궁금하였고.
땀에 젖은 채 악몽에서 깨어난 열세 살 나, 윌리엄이 이 책의 화자이다. 마치 악몽이 그런 의미였던 것처럼 바로 그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이들에게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대단한 일이 아닌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도 멋진 동화로 탈바꿈시키실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윌리엄과 동생 비올렛은 할머니를 정말 무척이나 좋아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침 식탁에 벌이 한 마리 나타난다. 윌리엄은 그 벌을 죽인다. 그 벌을 할머니로 생각한 비올렛은 벌을 죽인 윌리엄에게 "오빠가 할머니를 죽였어." 라는 치명적인 말을 남기고 집에서 뛰쳐 나간다. 비올렛을 쫓아간 윌리엄은 비올렛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비올렛을 따라서 숲으로 벌을 묻어 주러 길을 떠난다. 벌을 넣을 관을 찾기 위해 들어간 버려진 낡은 고무 공장. 그 곳에서도 할머니를 추억할 많안 소재는 있었다.
작년에 우연히 이제껏 할머니가 들려 주신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윌리엄. 하지만 윌리엄은 그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고 싶어 했다. 고무 공장에서 오빠에게 이야기 속의 할머니 인생이 가짜였다는 말을 들은 비올렛은 눈물을 글썽이며 슬퍼한다. 그런 동생을 온 힘을 다해서 위로하며 안심시키려고 애쓰는 윌리엄의 의젓한 모습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았다. 비롯 거짓일지라도 비올렛이 그렇게 믿도록 그냥 두자고 윌리엄은 생각한다. 윌리엄은 동생을 참 사랑하는 멋진 오빠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비록 거짓이었을 지라도 이야기 속에서의 할머니의 인생은 늘 재미있고 행복했다.
참 슬픈 내용이었지만 슬픔과 더불어 따뜻함을 같이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지나온 인생에 대해 멋지게 들려 주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태도가 허풍과 과장, 거짓이라는 느낌은 전혀 가질 수 없다. 비록 할머니의 가짜 인생일지라도 그것이 진짜 할머니의 인생이었다고 믿고 싶어하는 두 아이들. 너무나도 이쁜 풍경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할머니는 이야기 속의 가짜 인생처럼 진짜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에서 슬픔만을 보지 않고 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는 두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노래를 들으면서 할머니를 회상하는 윌리엄에게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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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나를 정말 귀하게 여겨 주던 한 분이 계셨다. 그분에게는 그분 어깨에 다일 듯 한 마른 부인과 엄마의 키를 훌쩍 넘는 두 딸이 있다. 어느 날 그 분의 큰 딸에게서 문자 한통이 왔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 인천으로 차를 타고 급히 달려갔다. 왜 그리도 인천이 먼지……, 달려가니 그 분의 큰 딸이 달려와서 안긴다. 다른 큰 어른들이 인사해야 한다고 아이를 막는다. 엄마는 잠시 서류를 떼러 가셨다 했다. 그리고 큰 딸이 엄마에게 전화 걸어서 나에게 바꿔주었다. 나의 전화 목소리는 듣자마자 빨리 오겠다고 하신다.
기다리는 동안 두 딸과 상을 마주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서로 얼굴 보며 눈물이 났었는데, 순간 두 아이의 반응이 다르다. 큰딸은 울기도 하고 때로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계속 화가 난 사람처럼 화가 나있다. 언니가 하는 말에 계속 화만 낸다. 그 아이게 물었다. 왜 그리도 화가 났냐고 그랬더니 언니는 처음에 손님 오면 울다가 나중에 다시 웃기도 하고 해서 너무 싫다고 아빠가 돌아 가셨는데 진짜로 슬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잠시 그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사람마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 다르다고, 그 아이는 여전히 화가 덜 풀렸는지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점차 그 아이의 그림도 봐주고 학교도 봐주고 이야기도 들어 주었더니 점차 자기도 살짝 웃기도 한다.
그래.. 그랬구나.. 외로웠구나.. 결국 혼자 겪어야 하는 슬픔을 배우고 있구나..
나는 두 아이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오히려 나보다 이젠 인생의 선배가 되었노라고 나는 아직 아버지를 보내지 않아서 그 아픔을 배우지 않았다고 이제 너희들이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그러다 작은 아이가 순간 작은 미소를 띤다. 그리고 한 가지 이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한꺼번에 배웠다.
“ 할머니가 죽은 날, 할머니가 나한테 말했어, 할머니는 죽으면 벌이 될 거라고.”
「노래하는 눈동자」소중한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그저 슬프게만 풀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순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분의 두 딸이 생각났다. 여기 나오는 두 아이는 과연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그 두 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소중한 할머니를 먼 곳으로 보냈다. 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의 여동생 비올렛도 마찬가지였다. 온 가족이 할머니 잃은 슬픔에 있었다.
비올렛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벌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믿고 할머니는 이미 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주인공의 비올렛의 오빠는 우연히 벌을 죽였는데 그 일 때문에 비올렛은 그 벌을 묻어주려 깊은 산으로 간다. 걱정이 된 - 벌을 죽인 책임감도 있었을 것이다 - 그의 오빠인 주인공도 그 길을 따라 나선다.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을 길을 가며 하나씩 기억한다.
“눈물이 났다. 비올렛은 눈치 채지 못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울었다. 눈물이라고 할 수도 없다. 눈에서는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 그저 내 눈에서 떨어지는 솜, 잠시 떠다니다가 내가 판 구멍 속으로 떨어지는 솜뭉치들이다.”
두 아이는 그 벌을 땅에 묻어 주며 각자가 받아 들여야 하는 슬픔을 각자가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른들은 할머니의 진짜를 묻으면서 그 슬픔을 받아들이겠지만, 이 두 아이는 또 다른 할머니를 묻으며 그 슬픔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 만약 당신이 문을 닫는다면, 밤은 영원히 계속될 거예요. …… 태양은 밖에서 빛나도록 내버려 둬요. 그리고 인사해 줘요, 영원히…….
온 가족이 다시 집에 모였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아이, 비올렛은 할머니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자고 한다. 어쩌면 할머니가 불렀다는 그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온 가족이 할머니와의 이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을 억지로 참으려고 해서도 안 되고 또한 부정을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슬픔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각자가 다 다를 것이다. 왜냐면 사람마다 감정이 민감한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내가 다녀온 장례식과, 이 책에서 표현되어지고 있는 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그러한 것들을 가르쳐 주는 듯 했다. 몸도 가장 힘들 때 가장 약한 부분이 아프다고들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장 슬플 때 가장 민감한 부분으로 표현되어 진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화를 내고 어떤 아이는 눈물이 나오지 않고 어떤 아이는 어떤 것에 의미를 붙인다.
이 책은 매우 섬세하게 감성을 표현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한 번 그 군데군데들을 기억하고 찾아내고 싶다. 그래서 그럴까? 앞 뒤 안보이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깊은 받아들임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아름다운 언어로 다시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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