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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평론가인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가 병중에 추리소설 2천여권을 읽고 분석을 한 뒤, S. S. 반 다인이란 필명으로 추리소설의 창작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그의 생활고를 감안한다 해도 아이러니하다. 자신 스스로가 그 당시 추리소설에 대한 낮은 평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추리소설 작가나 독자들에 대한 우월감을 없애지 못했지만, 그가 쓴 추리소설 작품들로 인해 예술평론가보다는 추리작가로 보다 유명해졌으며 문학사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물론 읽는 사람의 분석 능력이나 지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추리소설 2천여권을 읽어 모든 트릭이나 기법들을 통달해 명작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 정말 궁금하다.
여하튼, 파이로 번스는 내가 읽은 여러 추리소설 중 가장 지적 - 생물학, 정치학, 경제학, 여러 언어,철학, 심리학 등 - 이며 (셜록 홈즈도 여러 분야에서 우월한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를 한번도 자만심이 가득하다고 생각해보진 못했다), 자만심이 대단한 - 포와로도 헤이스팅스의 추리를 깔보긴 해도 속된말도 '재수없다'고 생각되기는 커녕 항상 귀엽게만 보이더만...) 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이 작품을 들었다가 그대로 던져버린 적이 있다. 아무리 그가 천재라 할지라도, 극소수의 천재에 의해 이 세계가 발전될 지라도, 그 보다 많은 무지하지만 성실한 일반 사람들을 경멸조로, 훈계조로 말하는 것을 보고 (아무리 허구의 탐정이며, 그 탐정의 개성이라 할지라도) 읽고 싶은 모든 매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레이터인 반 다인은 거의 투명인간이거나 아주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파이로 번스의 첫번째 사건으로 그에 대한 설명 - 배경 및 인물, 성격 묘사 뿐만 아니라 범죄수사에 있어 물리적인 증거보다 심리적 증거를 우선시하는 점 등 - 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여인의 변호를 위해 총알이 나온 시점을 추적, 범인의 키를 분석하는 부분은 웬지 CSI의 한 단편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또한 드러난 증거를 전부로 생각해 조작된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 경찰의 오류나 상황적 증거의 위험성을 지적한 부분을 괜찮았다. '범인은 범죄현장으로 돌아온다'는 등의 심리적 오류를 지적한 부분도 신선했다. 하지만, 범죄를 예술작품에 비견해 심리적 경향을 분석하라든가, 누가 이익을 볼 것인가에 대한 동기나 기회 분석 등은 필요없다던가, 통계나 골프 등에 대한 우월한 비평 부분을 읽자니 정말 없던 성질이 다 날것만 같다.^^ 결국은 법정에서 쓰이는 것들은 파이로 번스의 심리적 증거보다는 물질적 증거들이지 않은가?
다소 열을 내면서 읽다가 (매번 용의자들을 범인으로 지목할 듯 매컴을 이끌다가는 그를 조롱하듯 "난 그 집에 도착한지 5분만에 범인을 알아냈다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최후용의자의 알리바이 트릭을 깨는 부분에서 흥미가 일기는 했지만, 결국 실망해버리고 말았다. 재판 또한 그때까지의 증거를 갖고 변호인단이 식은땀을 흘리기에는 좀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맨처음 나레이터인 반다인과 탐정 파이로 번스의 관계 설명 내지는 작품을 쓰게된 동기를 설명하는 머리글이나, 반다인의 귀족적 성향 (아침 늦게 일어나 시종의 시중을 든다 든가), 수사방법 (항상 경찰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경찰을 깔본다든가) 등은 엘러리 퀸을 연상케 만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봤을 매력도 평가면에서는 엘러리 퀸 쪽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p. s: p220의 deus ex machina에 대한 설명은 학식 높은 작가가 쓴 것은 아닌 듯 싶다. '때맞춰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수호신'이라기 보다는 'god from the machine', 즉, 고전 그리스극에서 신의 등장시 기계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므로 차라리 '때맞춰 위급할때 나타나는 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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